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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 성경:58히브리서02:03
 

히2:3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등한히 여긴다 말은 예사롭게 여긴다 말이요, 이렇게 크고 무한한 이 구원을 우리가 너무 예사롭게 업신여기고 그저 그렇게 하지 우리 전부를 기울이지 않는 그런 정신과 태도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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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말은 등한히 여기면 그 진노의 징계를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등한히 여긴다 말은 아주 예사롭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같이 큰 구원을 우리가 예사롭게 여기는 이것은 오늘은 얼마든지 예사롭게 여기지마는 이 구원을 두려워하고 크게 여기는 것만큼 그 사람은 복이 됩니다.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긴 그거는 그대로 영원히 자기에게는 참 후회요 실패요 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이 구원은 처음에는 주님께서 모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입니다. 주님은 친히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나타나셔서, 사람에게 들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이 도를 전하기 위해서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피조물처럼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은 자들이'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피조물처럼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이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들은 자들이' 사도들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사도들이 또 우리에게 확실히 증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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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중생된 자들을 한해서 '우리'라 말씀한 것입니다.


'이같이 큰 구원을'
이같이 큰 구원이라 말은 우리 구원의 근거와 또 구원의 건설과 또 구원 받은 자의 영원한 기업을 두고 말씀합니다.


'등한히 여기면'
이 구원을 세상에 있는 것들, 또 세상의 무슨 이런 종류 저런 종류들, 세상에서 듣고 본 것들 이런 것들과 유사하게, 그런 것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이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크게 여길 대로 여기고,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고, 마음에 간절할 대로 간절하고, 우리의 영육이 여기 충격받아서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지지 않는 그런 것이 다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예사롭게 여긴다는 말이요, 업신여긴다는 말이요, 아주 이 구원에 대해서 놀랄 만치 놀라지 않는 그것도 다 등한히 여기는 것이요, 또 큰 것만치 크게 여기지 않는 것도 등한히 여기는 것이요, 이 구원에 대해서 충격이나 자극을 받을 대로 받지 못하는 그것도 다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상대하는 우리의 노력이나 역사나 그런 것이 발동되어야 할 대로 발동되지 않는 그런 것이 다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피한다 말은 이 구원의 은택도 크지마는 이 구원의 보응함도 큼을 말합니다 사람이 육체가 살아 있을 때에 어떻게 그 공기를 피할 수가 있습니까? 공기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디 가도 공기가 있지 공기 피할 수가 없습니다. 또 만일 공기를 마시지 못한다고 하면, 공기의 호흡을 하나님이 중단시켰으면 어디 가든지 공기가 없기 때문에 공기 없는 그 썩는 세계를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 그 말입니다.

생명이 있을 때에는 이 공기는 어디 가도 가득 찼습니다. 얼마든지 마실 수 있도록 공기가 가득 찬 거와 마찬가지로 이 구원의 혜택을 입는 자는 이 구원의 혜택이, 뭐 바다 물 속에 들어갔을 때에 물이 가득히 채였다 하는 그런 것으로도 비유할 수 없을 만치 이 은혜가 위에도 아래도 전후 좌우에도 가득 찼습니다.

또 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구원에 반대인, 이 구원의 역사가 생명이 안 되면 사망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적으로 받지 못하는 자는 사망적으로 받는 그것을 아무 데 가도 피하지 못합니다. 뭐 바늘 끝만한 그런 공간도 없습니다. 이렇게 이 구원으로 영계나 물질계에 꽉 짜여 가지고 있는 걸 말합니다. 이 구원이 영계와 물질계에 꽉 짜였습니다. 빈틈없이 짜였습니다. 짜였기 때문에 이 구원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면 전체가 생명이 되고, 이 구원이 자기에게 멸망이 되면 전체가 멸망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87090930)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피하지 못한다는 말은 거기에, 이 구원을 등한히 여겼으면 이 구원을 무시했다 말이요 이 구원을 자기가 받지 안하고 이 구원을  멸시해서 이 구원을 가지지 안하고 이 구원 없이 산다는 말입니다. 등한히 여긴다 말은. 이 구원 없이. 이 구원 없이 제가 피할 곳이 없습니다.

전부는 이 구원만이 살고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이 구원인데 이 구원을 반대하면 제자 위로 가도 갈 곳이 없고, 아래로 가도 갈 곳이 없고, 옆으로 가도 갈 곳이 없고, 앞뒤로 가도 갈 곳이 없고, 들어가도 갈곳이 없고, 아무리 가도, 이 구원만을 위해서, 이 구원만을 위해서 있는 충만한 존재, 이 충만을 피해서 갈 곳이 없습니다.

이것을 피해서 갈 곳은 하나님이 마련해 놓은, 유황불 구렁텅이라하는 것은 홍포 입은 부자가 물 한방울을 요구했지만 물 한방울 요구가 안 됐다 그말은 하나님의 이 충만함이 거게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이 충만함이 없는 곳은 유황불 구렁텅이기 때문에 거게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죽는 것이 아니고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역사가 충만하고 또 하나님 당신의그 모든 지능이 충만하고 당신의 본체가 충만한 그 충만이 마치 고기가, 물은 고기 살 수 있는 고기의 사회요 고기가 거처할 수 있는 좋은 곳이요, 물이 없으면 고기는 못 사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의 충만이 없으면 피조물은 살 수가 없는데 하나님의 충만이 물 한방울도 없는 그곳이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충많이 하나도 없는 곳이오. 거기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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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등한이 여긴다 말은 예사롭게 여긴다는 말이요 또 그렇게 무심히 여긴다는 말이요 또 무시한다는 말이요 멸시한다는 말이요 그뭐 이런 아이들 그저 이야기 잠꼬대 하는 말 같은 그렇게 듣지 이 말씀이 이렇게 이 큰 구원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는 이것을 사람들이 인정치 않는다 그거요.

등한히 여긴 것만치 지옥에 타 버립니다. 등한히 여긴 것만치 눈의 시력도 눈의 기능도 타고 손의 기능도 타고 다 타 버리고 껍데기만 이다음에 부활해서 가고 속에 기능이라 하는 거는 다 타 버리고 그 기능이 다 부활할 때에 부활의 능력, 이러기 때문에 바울도 “어짜든지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그 고난에 참여해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라고 애를 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할 곳이 없습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이 전부가 뭉쳐 가지고 된 구원이기 때문에, 뭉쳐 가지고 된 구원이기 때문에 이 구원의 반대되는 것은 이 전부와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견뎌 배길 수 없고 안 녹을 수 없고 안 망할 수 없는 이 구원입니다.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이 뭣뭣이 들어서 이 구원이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땅의 썩을 것을 인해서 이 구원에 손해보면 안 됩니다. 어리석습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가 제가 끌고 간 그 법궤 쪼갱이에 타서 순교됐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선지는 자기가 하나님의 법도를 세상에게 숨기지 안하고 다 전한 그것 때문에 순교당한 것이 올바른 순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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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이 어떤 게 등한히 여기는 것인가?
‘이로 하나님의 선택을 우리가 받았다. 하나님의 본체에서부터 당신이 계획하신 이 지극히 광대하시고 영영하신 계획의 이 계획을 달성하고 완성하기 위해서 정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니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라.’ 하는 이 사실을 등한히 여기고 이 사실을 관심 없이 하나의 지내가는 신화같이 한 이야기같이 이렇게 지내 보내고 마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영원히 큰 벌을 받을 면할 수 없는 그 어려움의 재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선택받은 피택받은 이 피택을 자기가 죽는 날까지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것이 참 부족하고 거기에 대해서 그저 날마다 미결되어서 갈급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성도들인데 이것을 등한히 하고 돈에 파묻혀서, 세상 권세에 파묻혀서, 일시의 사소한 이해에 파묻혀서, 자기의 감정에 파묻혀서 하는 것은 분명히 이것은 악령에게 미혹받은 우리가 비정상의 미친 생활이지 정상 생활은 아닙니다.

이 모든 수많은 존재들이 나타날 때에 분명히 나타나는 전개되는 모든 순서들은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예정하신 예정이건마는 여게 대해서 무관심하게 생각하고, 예정의 무엇이 순서가 나타나면 ‘크다 작다 이런 종류라 저런 종류라’ 그런 소리나 하고 이 전개되는 모든 순서가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인정할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알아볼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그저 세상 일에만 분망하게 날뛰는 그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영원히 무섭습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서도 모든 존재가 내 구원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예사롭게 여기고 등한히 여기고 무심히 여기는 것이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행동입니다. 딴게 아니오. 예정의 모든, 전개되는 모든 전개되는 순서를 등한히 여기고 내게 옛날 지금 보여지는 내 앞에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한 이 지식에 대한 존재관을 등한히 여기는 그런 것이 다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돼 오셨다 하지마는, 존귀한 인간이 누구를 구원하기 위해서 천한 인간이 된다는 것도 놀랠 만한 사랑이고 참 칭찬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이 피조물되어 우리 구원하러 오셨다는 이야 참으로 얼마나 놀래야 되고 얼마나 우리가 기절해야 될 일이지마는 여게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이 썩을 일에만 분망해서 날뛰는 이것이 이렇게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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