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 성경:19시편091:14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나님께 대해서 자기가 알 수 있는 데까지 자기가 진실 되게 다해서 알고 또 자기가 안 데까지 자기의 전부를 다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그 사람은 자꾸만 전진되고 향상되고 개량돼서 나아갈 것을 가리켜 말씀했습니다.

(88081250)


'저가 내 이름을 안즉 저를 높이리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5계명인데, 왜 여기는 약속 있는 첫계명이라 했는가? 5계명인데 첫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거기 순종하는 것은 5계명이면서 제1계명입니다. 그것은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이신 하나님,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이신 그분을 공경하고 그분을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을 공경하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그것이 내려와서 자기로서는 부모에게 나서 부모가 지금 자기로서는 제일 근원이 되기 때문에 거기 순종하는 것은 1계명 순종이 되어지는 것이고 1계명 하나님 공경하는 것이 되어지는 이 깊은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우리가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하는 것은 혹 5계명은 인간과 인간 계명에 첫계명이라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녜, 인간끼리의 계명으로서는 오계명이 첫계명입니다. 그러니까, 약속 있는 첫계명이라 하는 이 첫계명이라는 데에는 인인 관계에 첫계명이라는 거기에 뿌리를 두지 안하고서 신인 관계에 첫계명인 제1계명에 뿌리를 둡니다. 1계명에 뿌리를 두는 것은 왜?

그 부모에게 전달돼 내려오는 것이 혹 부모가 그것이 아직까지 성화되지 안했어도 내려 오기는 저 위에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께서부터 당신이 목적하신 목적을 계획 세워 가지고서 내려오는 그 계통이기 때문에 여기 5계명 순종이 곧 자존하신 그 하나님 그분에게 순종이요 그분의 뜻을 달성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그러기에, 하나님의 계명은 통틀어 말하면 하나님의 계명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계명은 자존하신 그분을 공경하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공경한다 말은 무슨 자존하신 분을 우리가 뭘로 공경합니까? 우리에게 있는 것이 다 그분의 것인데 뭐 우리 것 가지고 공경할 게 뭐 있습니까? 공경한다 말은 그분의 지대하심을 인정하고 존대한다 말입니다. 그분의 지극히 크심을 인정하고 지극히 크심을 이렇게 숭배한다는 말이오. 지극히 크심을 인정하고 그분을 알아서 높힌다는 말입니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래서, 계명의 모든 전부는 자존하시고 유일하신 그분의 이 크심을 이렇게 존대하고 인정하고 바라보고 섬기고 높이고 하는 이것이 제일이고, 둘째는 그분을 따라서 피동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지극히 크신 것을 인정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소망하고 ‘그분에게 모든 게 다 있다’ 그분에 전, 그분을 지극히 크신 분으로, 그분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행복의 근원이요 모든 성공의 근원이요 그분이 완전의 근본이시라 하는 것을 인정하고, 인정하고 소망하는 것이 그것이 공경하는 것이요 그다음에는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공경하라 말은 부모를 존경하고 거기 순종하는 것을 가리켜서 공경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경하라는 것은 그분을 자기가 위대하게 크게 존대하고 그분에게 순종하라 하는 것을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을 썼습니다. 공경하라는 말을 쓴 것은 부모를 왜 그렇게 공경해야 되느냐? 그것은 저 하나님에게서부터 줄기가 이 줄기가 쭉 내려오는데 그 부모에게는 하나님의 줄기가 거기 와 있기 때문에 부모를 높여 이렇게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은 곧 위에 자존하신 그 근본을, 근본의 줄기를 바라보고 거기서 소망을 가지고 거기 순종하는 것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 공경이요 하나님 공경하는 자는 그 부모에게 공경을 해야 그것이 연결돼서 계통 돼 내려온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엡6:2 :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 출20:3 :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 출20:12 : 네 부모를 공경하라

(88060502)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작은 자가 큰 자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받는 것입니다. 작은 자가 큰 자를 사랑하는 것은 큰 자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당신이 대형 사죄, 대행 칭의, 대화친의 제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만들었으니까 이것을 받는 것입니다. 또 부활하심으로써 영생하는 생명 주셔서 날마다 진리와 영감으로 영생하게 했으니 이거 받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하면 안 건져 나올 데가 어디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 받으면 안 건져 나올 데가 어디 있습니까?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아는 것은, 현실에서 그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는 그분의 뜻을 찾아 가지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살고 이러면 죽는다, 이 뜻 어기면 죽고 이 뜻 지키면 산다 하는 이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주님을 아는 사람이지, 현실을 만나서 하나님은 산다 해도 사람들이 말하기를 죽는다 한다, 내 경험에도 죽는다, 내 주관에도 죽는다 하면서 안 들으면 그 사람은 주님 모르는 사람입니다.

주님 아는 사람은 당신의 말씀하신 것을 신실히 믿고 인정하고 행하는 사람이 아는 사람입니다. 마10:32-33에는 저가 나를 안다 하면 나도 저를 안다 하고 모른다 하면 나도 모른다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 마10:32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2)

(88052160)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이 14절은 믿는 사람들이 대개는 외우는 요절입니다. '저희'라는 말은 여럿을 나타내는 복수고 '저'라고 할 때는 단수입니다. 여기는 '저'라고 했으니,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아는 것은 개적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공동체요 단체로 되어 있는데 단체의 것은 하나 둘이 잘해도 그 단체가 나쁘면 다 나쁜 것으로 그렇게 계산 대고, 또 여간 하나 둘이 좀 잘못됨이 있어도 그 단체가 다 잘하면 잘한 것으로 그렇게 인정을 하는 것이지만 여기는 '저'라는 말을 하였으니 개적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하나님도 삼위 일체 하나님이지만 여기서는 삼위 일체에 어느 성부 성자 그걸 말하지 안하고 삼위 일체이면서 일체이신 하나님, 하나님 전부를 총칭하는 뜻으로 '내가'라고 말했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그러면 성부를 사랑한즉, 성자를 사랑한즉, 성령을 사랑한즉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3'이라는 복수를 쓰지 않고 단수로 「나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복수 아니고 단수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주의를 가져야 됩니다.


'내가 저를 건지리라'
어떤 사람이나 사는 데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문제인고 하니 빠져 내려가는 문제가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올라가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은 더 불행에 빠졌다, 작년보다 금년은 훨씬 더 빠져 내려갔다, 또 작년보다 금년은 솟아 올라갔다고 비교를 합니다. 이런 경우 빠져 내려가느냐 올라가느냐가 문제입니다. 본문에 '건진다' 말은 내려가는 데에서 건져 올린다는 말입니다.


'내가 저를 높이리라'
여기 '높인다' 말은 저를 점점 높여 올린다 말입니다. 사람은 무엇에든지 안 망하려고 애쓰는 것과 또 자기가 성공하려고 애쓰는 것 두 가지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 죽으려고 애쓰는 것이요 살려고 애쓰는 것 두 가지 뿐입니다. 이 두 가지를 여기 나타내서 '건지리라' '높이리라'고 했습니다.

'건진다'는 것은 궁지에 빠진 데에서 병에 빠진 데에서 실패에 빠진 데에서 건진다는 말입니다. 죄악에서 건진다, 환난에서 건진다, 그 사람의 가치가 점점 흉하게 되고 천하게 되는 거기에서 건진다는 것을 여기에서 하나 말씀했고,

'높인다'는 것은 정반대로 그 사람이 소원하는 그 모든 면으로 높아진다, 커진다, 영광스러워진다, 권위 있어진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기 높인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서 모든 면으로 빠져 내려가는 거기에서 구출되는 것은 방편이 하나 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뿐입니다. 사람이 내려가지 않는 방편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하나 뿐입니다. 사람이 천해지지 않도록 하는 방편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하나 뿐입니다. 사람이 무가치하게 되지 않도록 하는 방편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하나 뿐입니다.

그 사람의 사업이 점점 내려가지 않도록, 그 사업이 어제보다 내려가지 않도록, 작년보다 내려가지 않도록, 젊을 때보다 내려가지 않도록,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 내려가지 않도록 모든 면에 내려가지 않도록, 망하지 않도록, 전보다 못하지 않도록 하는 방편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하나뿐이다 하는 말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범위가 넓어서 간추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방편이 어떠했는가 하는 거기에 다 집결돼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어서 우리를 모든 죄와 멸망에서 구출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젖먹이 그것이 부모를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세 살 먹는 아이가 부모 사랑하는 것보다 바로 낳아놓은 갓낳은 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이 더 뜨겁고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도 또 그를 더 사랑합니다. 부모를 사랑한다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은 갓낳은 것이 한 살 먹은 것과 비교하면은 부모 사랑을 더 잘 받습니다. 또 열 살 먹은 것보다는 한 살 먹는 게 더 잘 받습니다. 또 한 스무 살 먹으면 대학교나 들어갈 정도고 아주 강건할 때니까 그때는 부모의 사랑을 잘 받을 줄 알아도 열 살 먹는 아이만큼 부모의 사랑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약자가 강자를 사랑하는 것, 밑에 있는 자가 위에 있는 자를 사랑하는 것, 작은 자가 큰 자를 사랑하는 것은 큰 자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이기 때문에 이분을 인간이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하나님이 지극히 크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니 이분을 사랑하는 것은 이분의 사랑을 받는 것 외에는 이분을 사랑하는 길이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는 것은 이것을 모르면 사랑한다는 것이 도리어 육적으로 사랑하는 것, 인간들이 사랑하는 것, 아내가 남편 사랑하고 남편이 아내 사랑하는 것 같은 이 땅에 사랑의 법칙을 가지고서 이 사랑의 법칙인 줄 알고 하면 도리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가 됩니다.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높아진다 말은 보다 좀 좋아진다 말이오. 어제보다 오늘 좋아지고, 오늘보다 내일 좋아지고 시작 할 때보다 중간이 더 좋고, 중간보다 자꾸 끝이 갈수록 더 좋고 그것을 가리켜서 높인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점점 좋아지는 것, 점점 높아지는 그 방편은 어떤 방편이냐? 그 방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애 법칙을 주셨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법칙을 인정하고 그대로 하는 자가 하나님을 아는 자요 신구약 하나님이 주신 법칙을 무시하는 자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법칙은 신구약 법칙 뿐인데, 이 법칙은 망한다 흥한다 둘뿐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망한다는 이것은 하나님이 망한다 했기 때문에 이거는 안 망할 수 없고, 하나님이 잘된다 한 것은 잘됩니다.

(88031040)


'저가'
'저가' 하는 말은 어떤 사람이든지 중생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주님을 아는 사람 전부를 다 가리켜서 '저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예수 믿는 목사라도 주님을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에게 대해서는 '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가 나를 안즉' 하는 것은 주님이 어떤 분인 것을 아는 그 사람에게 한해서 '저가'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안즉,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 말은 무슨 말인가? 이 말씀은 구약과 신약의 이 계약을 두 권 선포해 놓으시고 그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안즉 하는 말입니다. 이름을 안다 말은 하나님의 역사를 안다 말이요, 하나님이 하시는 그 운동을 안다 말이요, 하나님의 그 모든 행하심을 안다는 말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신다' 말씀하신 그것도 주님의 이 모든 역사, 행적, 또 운동 그런 것을 다 한 말로 말해서 이름이라 표시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 사람의 이름이 점점 높아져 간다, 그 사람 이름이 점점 파묻혀지고 안 보인다, 그 사람의 이름이 아주 수치스럽다, 그 사람의 이름이 영광스럽다 하는 것은 다 그 사람의 행위가 그러하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어떤 그 택한 자가 주님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 이행을 안즉, '주님은 이렇게 행하시는 분이라' 하는 것을 알고 그 하나님에게 합당하게 행동을 하니 '그를 높이리라' 얼마든지 그를 높이리라, 모든 면을 높여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는 것은 너무 범위 넓게 섭리하셔 가지고 높이시기 때문에 그 높이는 것을 사람들이 봐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 앞에 실컷 높임을 받아도 주님을 모르 니까 제가 잘나 높아진 줄로 그렇게 아는 사람들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님이 지금 마구 높이고 있는데 제 지식이 틀려 가지고 그 높아지는 것을 높아지는 줄 모르고 자꾸 그게 낮아지는 것인 줄 알고 거기 또 불만 불평 있는 그런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지식이 통일되지 않기 때문에 참 하나님도 우리에게 대해서 답답하고 애 터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서로 통하지 안하니까.

(87010253)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주님을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그러기에, 자기 생활에서 계속 주님 잊어 버리지 안할라고 사람들이 자꾸 공을 들이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말하다가 보면은 잊어 버렸고 눈에 퍼뜩 뭐이 보이다 보니까 잊어 버렸고 귀에 들리다 보니까 잊어 버렸고. 봄으로 주님을 잃지 아니하고 들음으로 주를 잊어 버리지 아니하고 뭐 사물이나 인간이 접촉됨으로써 잊어 버리지 안하고, 주님을 잊어 버리는 시간이 순간도 찰나도 없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주님을 모신 것이 계속될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성도의 노력입니다.

하루 종일 제가 주님 생각도 못하고 다 잊어 버리고 이렇게 살았는데 그 동안에, 하루 동안에 저를 멸망시킬  그 일이 백 번 닥칠란지 천 번 닥칠란지 모릅니다. 어떻게 여호와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을 잊어 버리지 안하고 주님을 모시는 그 시간이 끊어지지 안하고, 잊어 버리지 안하고 모시는 시간이 계속되는  거기에서 우리의 구원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이렇게 안 잊어 버리고 그분만 사모하고 그분만 모시고 있는 그자가 기도하는 거 하나님이 들으시지 돈 백 원만 와도 돈이 크니까 돈으로 기울어지고 주님 잊어 버리고 무슨 인간만 와도 주님 다 배척해 버려 버리고 그 인간하고 한 시간이고 하루고 이야기 하고, 눈에 뭐이 보여도 그렇고 들려도 그렇고 접촉돼도 그렇고, 주님이야 헌신짝처럼 그렇게 집어 던져 버리는 그 하나님이 그에게 무슨 역사를 할 수가 있겠소?

‘네가 나를 배척하니 내가 너를 구원하지 않는다’ 그말 아니오.  배척을 해도 거기 상관없이 구원할라 하지마는서도 주님에게 귀를 기울이지 안하니까 주님 암만 ‘그라면 죽는다. 그리 가면 죽는다. 이리 가거라’ 해도 그분의 말을 듣지 안하니 어떻게 하겠소? 어리석지 맙시다.

(86022040)5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기독교는 청종이 제일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네가 모시고 계신 그분, 내 안에도 계시고 내 밖에도 계신 내가 모신 이분이 대통령만큼 큰 분인가, 왕만큼 큰 분인가, 이분이 무슨 사장만큼 큰 분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한국에 제일 되는 그분만 한가, 세계에 제일 된 그분만 한가, 이분이 어떤 분인가, 내가 모신 이분이 얼마나 크시며 얼마나 능력을 가졌으며 이분이 얼마나 지혜가 있으며 얼마나 모든 것을 다 공평 되게 계약한 대로 처리하실 분인가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느냐? 아는 거만큼 자기 행동은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를 아는 자는 아는 그것으로 높아진다." 주를 아는 자는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어떤 정권자나 어떤 그 부강한 사람이나 어떤 엄위와 권위가 있는 그 권력이 있는 분이나 이런 분도 우리가 그분을 모셨다고 하면 우리의 행동이 어떨 것이며 우리의 조심이 어떨 것이며 그분에게 거슬리지 않으려고 그분에게 그분의 비위를 상하지 않으려고 그분과 대립되지 않으려고 또 자기 의무와 책임에 실족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필연적 다 생의 본능의 지식입니다.

(85022033) 9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전능자, 자존자 개별개별을 주권하고 계시는 줄을 알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시요 모든 생사가 다 그분이 주권하고 계시는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자의 하나님이지 말만 듣고 실상은 부인하는 그런 자의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래서 “저가 나를 안즉” 나를 나로 인정한즉 “내가 저를 높인다” 이랬습니다.

(87062802) 4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즉’ 하는 것은 조건부입니다. 사랑하면 건지시고 사랑치 않으면 안 건지신다 그런 조건부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거 하나 기억해야 되는데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우리가 여게 대해서 잘못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이 정의를 우리가 모르면 그만 두숭두숭하고 벙벙해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게 주님을 사랑하는 건 줄을 모르니까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라” 그렇게 똑똑히 밝혔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할 것,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 어떤 궁지에서라도 우리를 건질 때에는, 내가 건져 나올 때에는 반드시 뭘 가지고 건지느냐? 주님을 사랑한즉 건진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거 가지고 건지움을 받습니다. 어떤 종류의 환난에 빠져 있을 때라도 거게서 나를 주님이 건져 주시는 그 건져 주심은 꼭 다른 방편 없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이러니까 어려움 속에 파묻힌 데서 하나님의 건지워 주심을 받는 방법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건져 주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꼭 함정에 들었을 때는 주님의 계명 지키면 거게서 구출되도록 계명을 주시는데 마귀란 놈은 우리를 미혹시켜서 그때에 주님이 나를 건져 주실 수 있는 그 주님의 계명은 그때 보면은 그 계명 지키면 자기는 빠져서 완전히 전멸된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우리가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해 있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시는 방편은 뭐이냐? 내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 방편이라. 그러면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방편은 무슨 방편인가? 주님이 내게 네가 이렇게 해라 하는 계명 주는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이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행동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행동은 간단히 몇 가지만 말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 독생자까지 줬으니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행동, 하나님의 전지 전능을 아는 행동,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심을 아는 행동, 하나님은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행동, 이거면 다 돼, 이 행동이면 돼. 딴거 아무것도 없어. 이 행동이면 다 돼요. 이라면 높아질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지식으로는 말하고 실지로 행동에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

머리털 하나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이 혼자 주권하셔 가지고 주권대로 움직이신다.’ 이렇게 입술은 말하면서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와 가지고 ‘이놈 찌른다’ 이라니까 그때에 살고 죽는 것은 ‘주님이 주권 개별 섭리하시기 때문에 보기에는 이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나를 지금 찌를라고 달라들고 있지마는 이것을 조정하시고 주권하시는 이는 주님이시다.’ 요것을 믿으면 나 위해서 생명까지 버려 주신 주님이 내게 해로운 일 안 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먼저 없어집니다.

그 사람이 생명이 끝날 시간이 됐으면 주님 믿다가서 자, 독침 찔려 가지고 죽으면은 그냥 병들어 죽는 게 좋아요 늙어 죽는 게 좋아요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양보하지 안할라고 진리를 양보하지 안할라 하다가 죽으면 좋아요? 어떤 게 좋아요? 이미 죽으면은 어떤 죽음이 좋아요? 순교가 좋습니다.

(87062910) 4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자기 마음에 ‘내가 이 궁지를 벗어나야 되겠다. 이 어려움을 벗어나야 되겠다. 이 고통을 벗어나야 되겠다. 이 설움을 이 억울함 을 벗어나야 되겠다. 이 가난을 벗어나야 되겠다. 이런 압제와 이런 천대에서 벗어 나야 되겠다. 내가 사망 중에 들었으니까 이 사망 중에 벗어나야 되겠다. 내가 이 감옥에서 벗어나야 되겠다. 모든 사람이 다 보는 대로 나는 완전히 희망 없는 멸망 가운데 빠진 사람인데 여게서 벗어나야 되겠다.’'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했기 때문에 이 성구를 보고 ‘하나님이 나를 건지시려고 하면 나를 능히 건지실 수 있다. 내가 나를 구속하신 주님이 안 계시면 내가 빠져 있는 이 궁지에서 세상 아무것도 건질 수 없는 궁지에 빠졌으니 나는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 낙망할 수밖에 없지마는 나를 구속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이 궁지에서 나를 구출 못 해도 주님은 나를 여게서 구출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당신이 나를 구출하시려고 하면 능치 못할 것이 없으신 당신이 나를 여게서 구출 하실 수 있다.’ 이런고로 '하나님께서 나를 구출해 주실 이 한 길이 있으니' 하고서 이 계약을 붙들고 당신 앞에 소망을 가지는 자를 당신은 찾습니다. 당신은 부자를 찾지 않습니다. ....................................................................
...............................................................................................................................
하나님께서는 잘난 사람, 부자, 행복스러운 사람, 모든 것이 구비한 사람 그런 사람을 찾아오신 분 아닙니다. 주님은 참 멸망 가운데에 빠져서 ‘나는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하는, 육적으로 영적으로 병든 자, 저주와 멸망 속에 들어 있는 자 그자를 구원하려고 주님이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을 맞이하러 왔느냐? ‘아무도 나를 이 궁지에서 이 비참에서 이 근심 걱정 고민에서 구원할 이가 없는 이 어려움인데 주님이 계약하시기를 건져주신다고 하셨으니 주님이 나를 건지시려면 건지실 수 넉넉히 있으리라’ 하는 이 사실을 믿고 당신에게 향하는 그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 사람을 원하시요.

(81031353) 5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