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3
'진실로 진실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하는 이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 쉽습니다. 왜? 다른 데는 진실로 라는 말씀을 하지 안하고 또 어떨 때는 '진실로' 하는 말씀을 또 덧붙여 하시고 여기는 진실로 진실로를 이래 두 번이나 거듭 말씀을 하셨으니 예수님의 하신 말씀에 대해서도 그 진실성에 대해서 그 차이가 있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하기 쉽겠습니다.
예수님의 하신 말씀은 어떤 말씀이든지 그 진실성과 권위성과 책임성이 꼭 같습니다. 또 한 번 말씀하신 것이나 수십 번 말씀하신 것이나 또 그 권위성도 다 같습니다. 같은데 여기는 특별히 진실로 라는 말을 두 번 거듭한 것은 이 말씀에 권위성이 어떻다는 그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이 모든 연약성을 향해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들이 더욱이 기억하고 또 인정하고 또 원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더욱 더 많이 힘써야 되는 그 점을 나타내서 진실로 진실로 이렇게 두 번 붙이신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 거듭난다는 말씀은 한문 글자로 음을 따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해 나오고 있습니다. 중생이라 말은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중생은 거듭 중(衆)자 날 생(生)자 거듭난다 그 말이 그 말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다시 살아난다는 말은 이미 있는 것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다시 살아난다 이렇게 말을 하고 또 그 속에는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이 아니고 그 속에는 새로 생겨 나온다 하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살아난다는 뜻은 그것은 좀 외부적이 돼서 알아듣기가 쉽고 다시 출생한다는 말은 알아듣기가 어려워서 그것은 지금 일반 교계에서 부정하기 쉬운 교리들입니다.
첫째 아담에게 난 사람들은 왜 다시 살아나야 되느냐 하면 죽었기 때문에 살아나야 합니다. 영은 단번에 죽었고 이 심신은 이미 죽은 것이 마지막 아주 없어지기까지에는 그 시간이 상당히 걸려서 어떤 사람은 뭐 오십 칠십 팔십 구십 이 세상에 사는 그 연수, 사람들이 나이라고 하지요. 나이 수, 나이의 그 숫자는 곧 죽은 육이 마지막 다 없어지기까지에 기간을 가리켜서 그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사는 날이 아니고 죽는 날이라 요렇게 했으면 맞보기로 그 뜻을 가리킨 것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고 사는 날이라 그 말은 이제 고것만 살고 그 다음에는 다 삶이 없어진다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니까 뜻은 같습니다.
이래서, 원죄로 죽었다 그 말은 그것은 뱀에게 유혹 받아 가지고서 사람의 본성이 죽었다는 말이고 또 본죄로 죽었다는 말은 본성이 죽었기 때문에 본성 죽은 자가 세상에서 몇 해를 살든지 사는 전 생활은 다 범죄하는 생활이 돼서 죽는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본죄는 자기가 일생 동안 지은 죄를 말하고 원죄는 인류 시조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본성이 죽은 것을 가리켜서 원죄라, 죽은 본성이 범죄한 죄를 가리켜서 본죄라. 원죄는 본성이 죽은 죄요 죽은 본성이 범한 죄를 가리켜서 본죄라 그렇게 신학에서 명사를 붙여서 말을 합니다. 그러면, 본죄는 일생 동안 자기가 지은 죄고 원죄는 선조가 지은 죄를 가리켜서 원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영육이 다 죽어 있는데 죽어 있는 이것을 다시 살린 것을 가리켜서 거듭났다, 또 거듭 살아났다, 거듭 출생했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이 살아나는 것은 이것을 가리켜서 거듭난다 말했고, 여기 본문에 말하기를 성령으로 난 자는 영이니 하는 것은 성령으로 살아난 자는 영이라, 성령으로 난 자는 영이니 하는 그 영은 성령은 하나님을 가리킨 것이고 영은 사람의 영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영생으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영생으로 살아난 것은 꼭 진리로 살아나야 영생이 됩니다. 진리는 영생하고 변하지 안하고 늙어지지 안하고 쇠해지지 안하고 병들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은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또,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은 성령으로 살아났습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하나님으로 살아났습니다. 또, 우리 영이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다. 이래서, 우리 영이 이렇게 이 세 가지로 살아난 것은 우리가 살아날라고 애를 써서 살아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도 알기 전에 살려서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의 무엇과 바꿀 것이 없고 그 권위를 아는 사람은 아무것에게도 거기서 굴하거나 접하거나 뭐 꺾기거나 할 그럴 리가 없는 것이고 또 이 영광과 존귀를 아는 자는 온 천하를 주고도 이 중생된 영과 바꿀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하는 말은 중생된 영을 잊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중생된 영을 잊어버리는 것은 중생된 영을 잊어버릴 수 있고 찾을 수도 있느냐 하면 중생된 영은 자기 안에 있는데 잊어버린다는 것은 뭘 잊어버렸다 하느냐? 중생된 영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설명이 빠르니까 녹음을 해두어다가 이제 수백 번 들어봐야 알 것입니다. 야 안 들으면 몰라요. 그러면, 중생된 영을,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잊어버리면 손해갔다, 소용없다 이렇게 말했는데 온 천하보다 그러니까 중생된 영이 가치가 무한히 큰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중생론: 중생의 성격은 '새로 난 것'
(88070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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