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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 성경:58히브리서11:19
 

히11:19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예를 들면 아브라함 시대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라 하는 것은 그때 사람들이 지식하지를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부활이라는 그 지식은 인간계에 들어오지를 못했고 또 인간은 부활이라 하는 그 지식 속에 발을 내 디디지를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제일 초보로 그 지식에 발을 내 디뎠으니 그것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의 능력으로써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갈에게서 난 서자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하지를 안하고 곧 그 늙어서 지금 해산할 수 없는 그런 할머니 사라에게서 난 사람이라야 꼭 그 자손으로 인정을 하고 또 거기다 축복을 하시고 또 그것에게서 생겨난 자손이 하늘의 별의 수효와 땅의 모래의 수효와 같이 되어진다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이 그 후에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 하셨는데 번제로 드리는 것은 잡아서 불에 태워서 완전히 재가 되도록 해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번제입니다. 그러면, 이삭을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말씀을 이렇게 하시지만 그래도 말씀만 이래 하시지 실상은 그렇지 아니할 것이라 이런 식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에누리하는 행동을 하지를 않았습니다.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이삭을 완전히 재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이래 드리라 하는 것으로 알았고 그렇게 또 재를 만들어 드리려고 그 일을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럴 때에 아브라함은 부활이라 하는 것을 거기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신 약속을 변치 않으니 이 이삭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자손들이 나고 복의 근원이 된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또 이삭을 재로 만들라고 하니까 이 둘이 모순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고 신실하니 그 자손이 생육된다는 말도 변치 않는 말이요 또 죽여서 불에 태워서 재를 만들라는 말도 변치 않는 말이니 이 둘을 다 믿을 때에 거기서 필연적으로 둘 다 믿는 그 믿음의 작용으로써 ‘재된 것도 살아나 가지고서 아이 낳을 수 있다’ 하는 그 부활이라는 지식을 두 믿음의 작용으로써 비로소 그 지식에 발을 내 디뎌서 아브라함은 부활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부활을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다시 죽으면서 터가 있는 가나안을 바라본 것은 지금 있는 가나안이 아니라 영원히 진동되지 아니할 그 터가 있는 가나안을 바라봤다는 것을 그 후에 성경에 증거를 했습니다.

* 히11:16 :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88080920)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역사에,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지 죽고 난 다음에 다시 부활한다,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한다 하는 그것은 이 아브라함 이전에는 아무도,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하나님은 죽일 수도 있고 다시 살릴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그런 길이 있다.’ 하는 그것을 아브라함 전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 전에는 아무도 인간의 부활이라 하는 그걸 몰랐습니다. 몰랐는데, 아브라함이 그걸 먼저 발견했습니다.

발견한 것은 어떻게 발견했느냐?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번제로 드리면 번제는 불에다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것이 번제입니다. 다른 제사는 뭐 그 기름을 떼고 각을 떼고 머리를 떼고 또 뭐 껍데기를 떼고 뭐 이렇게 하는 일 있지마는 번제라 하는 것은 뭐 껍데기, 털, 창자, 뼈 전부 다 한목 몽땅 불에다 태워 가지고서 드리는 것이 번제라 그말이오.

그러면 이삭을 번제로 드리니까 이삭을 재로 만들라는 그 말씀입니다. 그 재로 만들라 할 때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재로 만들면 이제는 재가 뭐 되겠느냐? 부활을 못 한다.’ 이렇게 안 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재를 만들어 가지고 이 재를 가지고서 다시 아이 낳을 수 있는, 이 재를 가지고서 동침해서 아이 낳을 수 있는 이런 이제 이삭을 하나님이 만들어 내겠구나. 재로 사람 만드는 그런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로구나.’ 그러면 거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이라 하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았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활시킨다, 죽였다가 재를 만들었다가 부활시킨다.’ 하는 그 부활 시킨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어떻게 알았느냐? 확실히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느냐? 안 그것을 어떻게 해 가지고 아브라함이 알았습니까?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이 그걸 알았습니까? 어떻게 해서 알았지요? 누가 한번 말해 봐요. 양성원 학생 중에 한번 말해. 예? 큰 소리로 한번 해 봐. 그겁니다. 이삭을 통해서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을 많게 해 준다고 했으니까 이삭이 재가 무슨 사람을 만듭니까? 재가 무슨 아들을 낳소? 재가 아들 못 낳으니 하나님이 아들 낳아서 그렇게 자손이 많게 하겠다고서 하나님이 약속했으니 그 약속 변치 않다.

하나님의 약속을 변치 않는 확신을 가지다가 보니까 필연적으로 재가 사람된다 하는 것은 믿게 됐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그거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러니까,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죽은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다시 살려내신다’ 하는 그 지식을 가진 그것은 아바라함이 이삭으로 자손이 많게 하겠다고 하는 약속 그 약속을 의심치 안하고 그 약속을 확실히 믿는 그 믿음이 들어서 그걸 낳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믿음 외에 딴거는 아브라함에게 그걸 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자기 속에 있는 믿음이 이 말씀도 믿고 이 재로 사르라는 이 말씀도 믿어서 재로 사를라고 자기가 생각하고 재로 사르라 하니까 의례히 사뤄야 될 줄 알고, 그러면 재로 사르니까 이삭이 재가 될 것을 알고, 또 후손이 그렇게 많겠다 하니까 자연히 필연적으로 둘을 합하면은 재가 다시 살아나 사람이 돼 가지고서 아이 낳는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더 있습니까? 그렇게 알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것은 요 믿음을 가지고서 그 지식을 발견했지 믿음이 아니면 그 지식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안 이것을 자기가 실행을 함으로, 실행을 함으로 알 수 있는 그 진리, 자기가 하나님의 진리를 그 진리를 실행할 때에 실행하면은 일차적으로 자체가 변화되고 또 이차적으로, 변화되면 자기가 실행한 그 진리가 어떤 진리라는 것을 자기가 다시 새로 깨닫게 된다. 깨닫게 되는 그것이 뭐냐 하면은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행함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를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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