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5:3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게네사렛 호수가에서도 배 타고 거기서 전할 때에 배를 타고 갔으니까 선주 베드로에게 따라서 간 것 같지만 거기서 조금 띄우라 한 다음 주님은 아버지에게 피동, 모든 사람들은 주님에게 피동 요렇게 모든 것이 정질(正質) 정색(正色)대로 피동적이었고 위에서는 독재적으로 한 분의 자존하신 한 분의 그분의 뜻을 주권의 뜻을 그대로 펴 나갔습니다. 영원 자존하신 한 분 그분이 그분의 뜻을 쫙 펴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앞으로 다 충만하게 하여, 당신의 뜻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충만해서 그 한 뜻으로 충만하게 합닏. 타락 후에 마귀가 만든 것은 뜻이 억억만도 넘은데 단일의 의사입니다. 하늘나라는 전부 성질도 하나 마음도 하나 뜻도 하나 생각도 하나 전체 하나니까 누가 양보를 하고 누구의 것을 따라갔느냐? 그분 한 분의 것을 다 따라갔고 그분 한 분의 것을 펴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꼭 그겁니다.
(88060830)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
여기에 우리에게 도리의 깊은 한 토막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고 또 신앙 앞선 사람이 신앙 어린 사람을 찾아가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그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를 찾아가 가지고 예수님이 배에 오르신 것은 예수님이 시몬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잘 믿는 사람이 못 믿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가르치고 권면하고 또 믿는 사람은 큰 사람이 작은 사람에게 찾아가 가지고 가르치고 또 무엇을 이렇게 접선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복음 진리라 하는 것을 여게서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세상 일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찾아가지 않고 작은 자가 큰 자를 찾아가고 큰 자는 작은 자가 찾아오도록 기다리는 것이 그것이 세상의 전이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찾아가는 것이 기독교의 도리라 하는 것을 요게서 깨달아서 굳게 잡아야 합니다.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띄워라 명령하니까 시몬이가 ‘예’ 하고서 순종해서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웠습니다.
기독자는 큰 자가 작은 자에게 구원하기 위해서 찾아가기는 찾아가지마는 끝까지 큰 자가 작은 자에게, 앞선 자가 뒤선 자에게, 믿음이 장성한 자가 믿음 어린 자에게 항상 피동으로 돌아다니면 성경적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여게 대한 도리를 배우지 못해서 세상 일과 같이 교회 안에서도 큰 자는 작은 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작은 자가 큰 자를 이렇게 위해서 먼저 솔선적으로 노력하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전도도 하고 목회도 하고 하는 그런 방편을 취하는 일들이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돼 가지고 교회에 부작용과 또 복음이 그렇게 영광스러워지지를 못하고 가리워지는 일 많이 있습니다.
또 이 큰 자가 작은 자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한 그것을 끝까지 항상 큰 자가 작은 자에게 그저 줄줄 따라서 끌려갑니다. 자녀를 기를 때에 아주 얼러 키운 호로자식이라고 말이 있는데 그와 같이 그래 기르면 항상 부모는 자녀의 소원대로 따라가야 되고 피동해야 되고 순종해야 되고 저에게 끌려가야 되는 이것으로써 그 가정 교육 나가는 그런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만 교회도 언제든지 목사는 교인에게 끌려서, 권찰은 지권찰에게 끌려서, 지권찰은 교인에 끌려서 이렇게 끌려가는 이것으로써는 예수 믿는 도리의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되면은 그 구원을 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그 사람을 망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찾아갔지마는 그 다음에는 시몬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시몬을 이제는 순종시키는 그 일을, 조그만한 순종이라도 순종시키는 그 성질의 일을 출발했습니다. “시몬아 배를 좀 띄워라” 하니까 그때 ‘예’ 하고 띄웠습니다.
(8701235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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