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1:12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교회가 교역자가 바꿔질 때에, 시대가 바꿔질 때에 다른 데서 들어오는 이리도 있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이리도 있습니다. 이것을 유다서에는 ‘애연의 암초라' 했습니다. 사랑의 잔치 속에 숨은 암초라 말입니다. 그 암초가 있습니다. 자기 교회 속에도 그런 자들이 있다 하는 말입니다.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 아노니'(행20:30)
어그러진 말은 나를 하나님과 가깝게 만들지 않고 자기와 가깝게 만드는 말입니다. 그것이 어그러진 말입니다. 그것이 이리요 절도요 강도요 원수요 도적입니다.
이것은 돌아가는 이치입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옳은 것을 가르치고 난 다음에는 옳은 것을 까뭉게는 것이 오고, 옳은 행동을 하고 난 다음에는 옳은 행동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험들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연한 일입니다, 밤도 필요하고 낮도 필요한 것처럼. 밤에도 안 죽고 낮에도 안 죽어야 그 식물이 성장해서 결실을 맺지 밤에만 잘 자라고 낮에는 말라 죽는다면 그 식물이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까? 그와 꼭 같습니다.
* 행20:30 : 또한 너희 중에서도
(88050541)
'너의 애찬의 암초요'
'애연'은 사랑의 잔치를 말합니다.
(88041000)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이 말씀은 자꾸 죽고 또 죽은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86072110)
'저희는'
'저희는' 하는 이 저희는?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요 또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들이요 신의를 지키지 못하는 모든 이단자들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이 이단자 가운데에는 택한 자도 있고 불택자도 있는데 택자든지 불택자든지 이단자의 행위는 이단인 줄 알고 우리는 취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돌아오면 또 돌아온 것으로 대우 대접하고 회개하기 전 까지는 이단으로 대접을 취급을 해야 됩니다. 또 지금 이단자의 행위를 보입니다 .
'기탄없이'
기탄없다 말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말입니다. 그만 자기가 늘 익혀 놓은 길 가듯이 아무런 주저하지 안하고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와 함께 먹는다 말은? 같이 은혜를 받는다 말이요. 같이 은혜 장소에서 같이 교인 노릇 할 수 있고 같이 양성원에 공부를 할 수 있고 또 교역자 노릇도 할 수도 있고 모두 다 이런 같은 그 은혜 생활하는 것을 가리켜서 '너희와 함께 먹으니' 먹는다는 것은 성경에 인격의 양심입니다. 인격의 양식은 행하는 것이 인격의 양심이요 또 들어 배우는 것이 인격의 양식입니다.
그러니까 같이 교인 노릇 한다 말이요 같이 동역자 노릇 한다 말이요 지금 양성원이나 신학교나 같이 공부한다는 말입니다.
'너희 애연의 암초요'
애연이라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그 모든 은혜의 모임은 다 그게 사랑의 잔치입니다. 애연이라 말은? 사랑 애자, 잔치 연자, 사랑의 잔치인데 그거 사랑의 잔치입니다.
애연의 '암초요' 같이 이렇게 은혜 안에 있지만 암초는 그 특징이 뭐인고 하니? 보이지는 아니하는데 물을 이용하는 선박들 그 선박들이 항로할 때에 물속에 보이지 안하는 바위로 있다가서 그만 자기에게 부딪히면 그 배를 파선 시켜버립니다.
그것이 '애연의 암초라' 신앙 생활 하는 것 같고 교역자 노릇을 하는 것 같고 이렇게 교인 노릇하는 것 같지마는 은혜도 받고 교인 노릇도 하는 것 같은데, '애연의 암초라' 이렇게 은혜를 받기는 받는데 사람만 부딪치면 절단내 버립니다. 사람 부딪치면 그 사람에게 은혜를 잘 안보해 주지 아니하고 믿음을 떨어뜨리고 그 사람에게 이간을 붙이든지 거짓말을 하든지 어짜든지 그사람의 그만 신앙의 방주를 파선시켜버립니다. 그 사람의 신앙을 깨뜨려 버립니다.
'지금 저 사람 누구든지 만나면 꼭 참 암초네' 딱 표를 찍어나요'저 사람은 누구든지 만나면 믿음의 손해를 보이네.' 우리 여기 총공회도 암초들이 많이 지나갔소. 암초들이 많이 지나갔어요. 암초 의례히 그러면 그런 말할 때에 그 말할 필요가 없어 그 사람이 그래 말 한다고 말 안하나 그게 다 암초인데 그거야 언제나 저 할 노릇이 암초인데 겉은 우리 총공회 좋다고 하고 속으로 사람 만나면 그 사람, 총공회 헐고 또 위원회 좋다고 해 놓고 속으로 헐어서 사람들을 이 진영 노선 관념을 그 사람에게 파선해 버려서 노선 관념을 파선을 시키고 그 사람의 교리와 신조를 파선을 시키고 또 그 사람의 소망을 그만 파선을 시키고 그 사람의 열심있는 그 모든 신앙 행위를 그만 파선 시켜 버린다 그겁니다. 목회자 되면은 이런 사람을 잘 봐야 됩니다. '보자 우리 교회는 암초가 없느냐' 그것을 잘 살펴 가지고서, 암초를 말이요 암초를 처리하려면 어떻게 처리해야 됩니까? 한번 대답해 봐요 암초는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지? 암초를 피해갈 것이 아니라 한번 부딪혀 싸워보지. 어때? 암초는 피해가야 되지 둘러가야 되지 암초하고 싸우면 안돼. 싸우면 파선돼 버려 그만 그런 것은 그저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거기에 피해를 당하지 안하도록 서서히 이래 둘러 가야 됩니다. 그러나, 그기 암초인 줄 알아야 되지 암초인 줄 모르면 그만 박살나 버리요. 우리 진영에도 그 전에는 암초들이 더러 있었어. 그만 만나면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말입니다.
그건 또 제가 벌써 암초 그게 짜다라 등대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야 암초가 암초를 면하지를 못합니다. 그거는 어디 가도 사람에게 이간 붙이고 간교하게 또 그 유혹해서 사람을 어쩌든지 꼬아 가지고서 무엇이든지 숨어 먹는 것을 좀 "맛있다 맛있다." 하는 것 모양으로 그렇게 그런 노릇을 해야 맛이 있고 재미가 있지 그 무엇이든지 원형적으로 진리대로 원리대로 하는 데는 맛이 없어 못살겠다 그기요. 그런 인물들 여러분들이 조심해야 됩니다.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목자는 양을 길러야 되는데 양을 안 기르면 자기 곁을 떠나 살이 찌면 좋겠는데 아니면 자기가 기르면 될건데 [자기 몸만 기른다 자기 몸만 기른다]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양을 안 기른다 말 아니요? 자기 몸만 기른다 그 말은 양을 기르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또 자기 몸만 기른다고 하니까 그 사람은 항상 육신주의로서 자기 육신의 유익 될 것만 자꾸 도모해. 육신에 유익 될 것만 도모해. 육신 좋은 것 육신에 유익 될 것 육신에 필요한 것 항상 육신 생활 그러면 육신 생활이 커지면 뭣 됩니까? 가정 생활이지. 항상 그것만 계획을 합니다.
'교인들의 이 믿음이 어찌 되나? 이들의 영이 어찌 되나? 하늘의 소망이 어찌 되나? 죄와 의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이 세가지 대속 하나님과의 어찌 되나 또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율과 어찌되나 또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어찌 되나' 하는 그런 것은 지금 살펴 가지고서 그것을 치료를 해서 따뜻하게 하고 배불리고 잘 관리해서 이렇게 살찌게 하지 안하고 목회 한다 하는 것이 만날 저를 길러도 제 영이나 기르면 하지마는 항상 육신주의로 제 육신의 것만 생각한다 이겁니다. 이런 것은 대번 살펴보면 압니다. 이런 것은 살펴보면 그만 압니다.
어떤 목사, 우리 진영에 왔었는데 와 가지고서 뭐 어쩌고 하는데 그게 항상 빼딱하게... 그게 좀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 이래 보여지는데 그 때 한 번 대폭적으로 이동을 할라 했어 "전부 다 이동을 한 번 하기로 하자" 이러니까 그만 이동하자 하니까 이동을 못 한다고서 뭐 그 때는 찰떡같이 붙었는데 이동을 못한다. 왜 이동을 못하느냐 이러니까 이거 뭐 교인들에게 요리 빼고 저리 빼고 암만 하는 것이 교회가 어찌 되나 그게 아니고 요래서 얼마 있다가 자기가 수입을 보고 요래서 얼마 수입보고 요리하고 요리 해 가지고 자기 주머니 계산만 하는 기라 주머니 계산만 되어 가지고서 이거 이 이동하면 주머니 계산 안 맞다는 겁니다. 그것은 교회로 하나님 삼는 사람이며 자기 몸만 기른 목자라 이기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 이거 보면 환하게 압니다.
요게 있는 이단 하나를 버리면 그만큼 권위가 있어집니다. 둘을 버리면 권위 있어 그래도 그게 '저기 행위 보면 그런데 어째 저래도 목회를 한다.' 하는 것 보면은 요 이단 요소를 그래도 한 개나 두 개나 몇 개를 버렸다 그 말입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그저 환경 주위 시대 형편 사정에 따라서 어쩌든지 거기에만 맞추어 가지고 거기에 피동되는 하나님께 피동되지 안하고 환경에 피동되고 주위에 피동되고 시대에 피동되고 이 모든 정치에 피동되고 교회에 피동되고 교회에 그 모든 브로커들에게 피동되고 교회 정치나 이런 정치 그런것에 피동돼 가지고 그런것에 맞추어 가지고서 이래 돌아다니지 속에 물은 없다 그 말입니다.
속에 농작물에 필요한 물은 없어. 곡식이 자라는데 물은 없어. 양떼가 자랄 수 있는 무슨 신령한 그런 영감이나 진리나 그런 것을 여는 것은 없고 그저 사람만 아듬고 돌아다니면서 자꾸 이 사람 거머쥐고 또 교재하고 저 사람 거머쥐고 가지고 교제하고 이래 가지고서 마치 이런데 똑 부로커 모양으로 그렇게 목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리저리 교제해.
보자 대세가 어느게 대세인가 봐서 고만 여기가 좀 대세인 것 같으면 거기 가 똑 들어붙고 그러니 창기라는 그것에 무슨 정조가 있습니까? 오늘 저녁 이 남자하고 또 이래 교제하다가 또 이튿날 또 다른 남자하고 이렇게 교제하고 이래서 뭐 그 목적이 뭐이냐 하면은 돈이 목적이라 이기요. 정조는 상관이 없고 이거 모양으로 그저 [물 없는 구름이라] 양떼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이 은혜가 어찌 되느냐 하는 은혜는 생각지 안하고 사람들만 거머쥐고 돌아가지고서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자기 당파가 되면은 아 목사나 몇 끼고 하면은 고만 당회장이나 끼고 사찰장이나 끼고 노회장이나 끼고 고만 몇 순회 목사님들이나 거머쥐고 이 교제하고 그러면 그들이 알아주면 그만 힘있고 그만 그들에게 인정을 받고 또 옹호하고 하지만 그 속 생명의 양식은 없습니다. 하도 이래 쌓으니까 우리 진영에는 그런 걸 못하니까 발을 못 붙이지만 그래도 그런 것 많아요 인화주의 못 씁니다. 사람들로 더불어는 화평을 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생각지 안하고 인화주의, 인화주의 자는 둥굴둥굴하고 사람이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싫어합니다.
또 인화주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얼마 안가서는 그 사람하고 사귀는 것은 권태가 나서 사귀지 안해 그걸 노리개나 삼고 흐리멍텅하이 방탕하지 그것에 대해 취미를 가지지 안 합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그 말은 바람에 불려가는 말은 환경에 피동된다 말입니다. 환경에 피동만 잘 받고 양떼 먹이는 하나님과 진리와의 관계되는 그것이라야 양떼의 양식이 되는데 그거는 없다 이기요. 자꾸 밀리고 그런 사람은 목회해도 자기 마누라한테 옹호나 받고 마누라가 좋아서 인정하면...
가정에서는 아무 일 없이 가정에는 인정하고 교인들 몇 사람이나 그 제 사람 만들어 가지고 교인들 몇이나 좋아하면은 그걸로 다 된 줄 아는데 교인들이 처음에는 그 무슨 목자인 줄 알고 그렇지만 나중에 얼마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꿀도 안나오지 젖도 안나오지 물도 없어 농작물에 목이 말라죽을 지경인데 아무 물도 안나오지 비도 안나온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그걸 그 뭐 웃는 낯에 침 못 뱉기로 이래 하지만 멸시와 천대를 얼마나 합니까? 그런 사람들이 다 [바람에 불러가는 물 없는 구름이라] 물 없는 구름 그날 다방에서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저거 그 사람 의지해 놨는데 기도할라 하면 깜깜하지 뭐 기도가 나올 것입니까? 참 불쌍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버림당한 교역자 버림받은 사울왕 그 때 하야를 해서 왕 치워 버리고 그냥 농민으로 갔으면 따뜻이 살다 죽을 긴데 왕이기 때문에 그 때 비참하게 죽고 참 안 할 고생 안 할 근심 많이 했습니다.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죽고 또 죽어' 이거는 처음 죽은 것은 뭐이냐 하면은 원죄로 말미암마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마 죽은 죽음인데 그 뒤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마 살아났었는데 이거 현실마다 살아난 것으로 살지 아니하고 또 살아난 것을 벗어버리든지 이것을 가르쳐서 두 번째 죽은 것입니다. '죽고 또 죽어' 옛날 사람으로 살면서 현실에서 예수님의 구속까지 벗었기 때문에 죽고 또 죽었습니다.
'뿌리까지 뽑힌'
우리 뿌리는 어디다가 박아야 되느냐 하면은? 진리에 뿌리를 박고, 영감에 뿌리를 박고 이제 하나님의 속성의 뿌리를 박는데 영감과 진리의 뿌리를 박아야 되는데 거기에 뿌리 박는 반대로 거기에서 뽑혔으니까 그 뭐이냐? 뿌리가 뽑혔으니까 하나님과 연결 되어야 할 터인데 하남과 연결에서 뽑혔으니까 누구하고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하고 연결이 없어지면 어찌되느냐? 사람하고 연결됩니다. 사람하고 연결.
그러니까 뿌리가 뽑혔다 말은 외식자라 그 말입니다. 외식하는 자. 그러면 외식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자꾸 겉만 꾸미고 단속하고 겉만 두려워하지 사람의 이목만 두려워하지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인정만 받으려 하지 하나님의 인정은 생각지 아니하고 세상적으로만 그 일을 물 샘틈 없이 하지 하나님과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런 사람이 돼 버린다 이기요
'뿌리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
그러니 열매가 있을 수가 있겠소? 여기 열매는 무슨 열매겠습니까? 내나 성령의 열매요 진리의 열매라 이 열매가 없습니다.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 나무라' 가을이면 시기가 지나갔습니까? 안 지나갔습니까? 가을에 열매맺는가? 시기가 다 지나갔지. 가을에 무슨 열매 맺습니까? 열매 맺는 시기가 지나가지 아니했소? 항상 미래적 영감도 가지지 못하고 현실적 영감도 가지지 못하고 그저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잘못됐다, 뭐 봐라.' '아 잘못됐습니다.' 후회도 따가운 후회도 아니고 그저 뒤에서 잘못됐다는 말 한마디로 그만 다라. 자극도 받지 아니하는 그런 썩은 사람되면 안됩니다. 이래 '이거 잘 못됐다.' 이라면 '예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 소리를 잘하는 사람도 두 종류가 있는데
1. 잘못됐다 하는 그 속에는 참 간이 녹는 그런 뜨거움이 있는 잘못이라는 그놈이 미워서 자꾸 잘못됐다 이렇게 하는 게 있고
2. 그저 잘못됐다 하는 데에는 잘못에 대해서 아무 느낌이 없고 자극도 받지 아니하고 수치감도 느끼지 아니하고 그만 잘못됐다 하기를 예사로 하고 아무런 그런 마음에 원통하고 모욕감을 가지지도 아니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가을나무라. 가을나무.
그러니까, 기회를 지내 보냈다 그 말이요. 기회는 언제입니까? 우리는 미래에 준비를 해야 되겠고 현재의 일을 줄 때에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에는 다 지내 버리고 과거로 회고적으로 뒤로 돌아보면서 후회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 그 말이요 가을나무라 그래 가을나무니까 그 사람에게 만날 주의가 후회주의이고 준비주의도 아니고 후회 주의고 현재에 해야 되는 현실주의도 아니고 후회주의고 그거는 소용이 없는 겁니다.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혀'
뿌리가 뽑혔으니까 뭐요?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이 없고 인간하고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외식자라 그 말입니다. 열매가 있을 수가 없지 가을나무라 그러니까 다 시기는 다 놓친 자라
(주해공과)
'애찬의 암초요'
유대인이라 말은 하나님의 선민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택한 선민, 가릴 선자 백성 민자, 하나님이 가린 백성들을 선민이라, 지금으로 말하면 성도라 신자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자칭 믿는 사람이라 자칭 성도라 이렇게 말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그 위에 보면 그들은 다 사탄의 회들이라고 했습니다. '보라 내가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교회는 제가 스스로 믿는 척 하고서 믿는다고 이렇게 자랑하고 남에게 믿는 것을 내보일려고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실상은 그것이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다, 성도가 아니고 마귀의 회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유1:12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너희 애찬의 암초'라고 했습니다. 애연이라 말은 사랑하는 잔치라 말인데 너희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영감과 진리의 양식을 나누고 있는 이 잔치, 지금 새벽기도 이런 것도 애연입니다. 하나님의 애연, 사랑 애자 잔지 연자, 유다서에 보면 애연이라 했는데 애연이라는 그 한자는 사랑 애자 잔치 연자입니다.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네가 내 인내의 말이라 말은 계속하는 말씀을 지켰다 그말입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지키다가 그만 그것을 계속하지 안하고 시작은 잘하는데 그만 중단을 해 버립니다. 예수 믿는 것은 계속이 돼야 무슨 효력을 내는 것이지 한 시간 천사노릇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일주간 천사노릇도 할 수가 있어. 계속이 돼져야 되는데 계속이 안 되고 지키다가 말고 지키다가 말고 이러기 때문에 헛일입니다.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시험이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모든 어려움 닥치는 것이 시험 아닙니까? 물질로 시험 오는 것도 있고, 또 사건으로 시험 오는 것도 있고, 또 가족으로 시험 오는 것도 있고, 뭐 감정면 시험, 이성면 시험, 명예면 시험, 자기의 사업면 시험, 자기가 또 출세할라 하는데 거기 방해되는 시험 명예적 시험 뭐 온갖 시험의 종류는 굉장히 많습니다. 시험이라 하는 것은 내가 견디기 어려운 그 모든 어려움을 가리켜서 시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라'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니 하는 말은 그런 시험의 때에 시험이 되지 안하고 그 시험이 없고 지나간다 말이오. 시험이 되지 안하고 시험이 지나가 버려요, 자기에게는. 이 말은 달리 말하면 네게 어려움이 없게 해 주겠다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애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애로와 굴곡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걸 애로와 굴곡을 가리켜서 시험이라 하는데 애로와 굴곡이 있을 때에 너에게 애로를 주고 굴곡을 주는 거기에 관련된 그 사람들이나 사건들이나 물건들이나 거기다가 책임을 전가시켜 가지고서 거기 대해서 원망이나 원수나 그 물건을 아주 멸시하고 포기하거나 그런 짓을 하지 마라.
만일 십 년 동안을 그랬으면 사람들이 놀랠 만치 그는 모든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 받는 신임적으로나 인정적으로 굉장히 이는 그 가속도로 성장될 수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뭐 힘만 쓰면 굉장히 영육이 다 존귀해질 수 있는, 소유도 존귀해질 수 있는 것인데 자꾸 힘을 쓰지 안하고 이 말씀을 계속 지키지 않기 때문에, 인내의 말씀이라 말은 한 말씀을 계속 지킨다는 말이 아니오. 우리 현실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이 현실에도 하나님 말씀 찾아 가지고 고대로 하고 저 현실에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현실이라 하는 것은 날마다 자꾸 변해 나가는 것인데, 변해 나가는 것인데 그 현실 현실마다 거기 대한 하나님 뜻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서 그와 같이 지키는 것입니다.
* 계3:10 :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88122610)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땅에 것에게 피동되는 자요 자기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라 자기 밖에 있는 이 진리에 피동되지 아니하고 그저 주의 환경 형편에 따라서 피동됩니다. 바람은 정처 없는 하나님 운동외에 땅위에 모든 운동 바람이라고 하는 그 운동에게 힙쓸려서 요동되는 '물없는 구름이요' 구름이 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부 다 쏟아서 다른것 만물에게 주는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는 것을 하려고 가지지 않은 자가 물없는 구름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에게만 피동되는 그것이 기독자인데 그 사람은 환경에 피동됩니다. 지옥갈 사람의 생활입니다. 남을 위한다는 외모는 있지만 이름은 있지만 그 위치는 가지고 있지만 실은 남에게 줄것이 없습니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갈 자들의 생활입니다.
'죽고 또 죽어'
처음에도 죽었고 두번째 사망에도 사망을 당하고
'뿌리까지 뽑힌'
하나님과의 기본 구원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아무 연결이 없습니다. 중생되지 아니한 불택자들입니다.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벌써 시기를 다 잊어버리고 결실도 추수도 가질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인간으로서 결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시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라 이것은 멸망 받을 사람의 생활입니다.
(78120521)
유1:12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안식일을 잘 지켜 가지고 무궁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이날을 잘 못 지켜서 무궁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아, 이날을 이제 일주간 이레 중에 제일 노는 날로 정해 놨으니 이거 망하고 망하고 또 망하고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입니다.
(79082602)
'애찬의 암초요'
설명 : 하나님의 진리 영감의 사랑의 잔치에, 껍데기 신앙은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는 암초
그OOO조사님은 이렇게 말했어. '해는 꼭 같이 깡깡 쬐우고 있는데 그 자체가 진흙이 되어 있는 것은 딴딴 굳어지고 그 자체가 초가 되어 있는 거는 물신물신해진다.' 그러면 같은 은혜가 오는 그 자리에서도 그 자체의 본질과 본성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거 가리켜서 애연의 암초라. 사랑의 잔치는 뭐냐? 하나님의 진리 영감 잔치인데 진리 영감 잔치에 거기에 암초라.
가만히 숨어 가지고 껍데기 예수 믿는 척 하지만 그래 가지고서 다른 사람 넘어지게. 저 사람 보니까 저래 예수 믿어도 되네. 저 사람 보니까 저래 주일 지켜도 되네. 저 사람 보니까 저렇게 뭐 돈에 대해서는 저럴 때는 다 형편에 따라서 그렇게 해도 되네. 이러니까 그게 암초라 말이오. 다른 사람 넘어지게 하는 암초라.
(8406166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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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은 햇볕이 쪼이지만 진흙덩어리는 더 굳어지고 초는 녹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성분이 달라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라도 마귀가 주장하고 있으니까 점점 하나님 말씀을 들을수록 강퍅해지고 교만해지고 굳어집니다. 회개는 하지 안하고. 그래도 그것들이 다 택한 자기 때문에 언젠간가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소망 가운데서 증거를 합니다.
(8906180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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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연의 숨은, 애연의 숨은 암초라.’ 애연의 숨은 바위라 말은 애연의 숨은 암초라 말입니다. 애연이 뭐이요? 애연이 예수님의 피잔치요. 예수님의 피잔치가 애연입니다.
예수님의 피잔치 하는 데에 예수의 피를 믿는 것같이 있지마는 겉어머리는 다른 것이 아니지마는 속에는 이 큰 바위덩어리가 있어. 그라기 때문에 배가 가면은 탁 부딪혀 가지고 그만 배가 깨진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껍데기는 같지마는 속은 다르다 그거요.
(89042040)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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