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건설구원은 대속과 영감과 진리의 이 세 능력이 자기에게 와서 자기를 붙들고 역사 해서 이 세 능력이 자기 마음도 이 세 능력이 감화시켜 인도시키고 뜻도 생각도 하도록 자기를 돕고 결실을 맺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 능력이 역사하실 때 그 역사가 둔하게 나타나면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세가지 능력이 도왔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겠지만 전지의 능력으로 너무 민첩하게 움직이시기 때문에 건설구원을 이룬 사람마다 전부 자기가 했다고 여길 만큼 그렇게 은은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나 양심을 쓰고 심령이 밝은 사람은 모든 건설구원을 이루어 놓고 난 다음에 건설구원 이룬 그것을 다 주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아서 면류관을 주님 앞에 던진다고 했습니다. 던진다 말은 천해서 던지는 게 아니고 이제 그 면류관은 보니까 승리한 것은 전부 주님이 은혜로 승리하도록 했는데 이 땅에 있을 때에는 그 주님 앞에 만만스러웠으나 차차차차 눈이 뜨여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보니까 그분 근방에 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감히 가까이 가서 손으로 바치지도 못하고 멀리서 던진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감히 갈 수 없다는 그것을 깨닫게 된 그 행동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 품에 기대기도 하고 아주 만만스럽게 상대했으나 밧모 섬에 가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그 눈이 뜨이고 보니까 예수님이 두려워서 볼 때에 그 앞에 거꾸러져 그만 기절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수하시며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만만스럽게 내 몸에 기대고 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변치 않는 하나님인데 네 눈이 그때는 어두워서 그렇고 지금은 밝아서 그런 것이라, 그때에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긴 그 내가 지금도 또 앞으로도 영원히 긍휼
히 여기니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면서 위로로써 깨우쳤습니다.
점점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수록 눈이 밝아지고 눈이 밝아질수록 주님은 크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인간과 비교 못 할 무한히 탁월하신 하나님이시며 이제 눈이 어두울수록 주님은 만만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이렇게 말한 것은 사도 바울이 죄가 많아 그런 게 아니고 사도 바울이 눈이 밝아지니까 자기에게 단점을 다 보게 됐고 주님에게 장점을 다 보게 됐고 인간들에게 대해서 바로 보게 되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서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를 안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안했고 그저 자기가 죄인 중에 제일 죄가 많은 사람이라 하는 것을 간증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눈이 밝아져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 잘난 재미로 날뛰고 있는 그것은 눈이 어두운 탓입니다. 자기 잘난 재미로 날뛰고 무슨 주장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또 자기를 위주로 하려는 것은 그 사람의 눈이 어두워서 그런 것입니다. 눈이 밝아지면 그렇지 않습니다. 눈이 밝아지면 누구보다도 자기에게 있는 그 모든 잘못된 점이 찾아지기 때문에 그 일 고치는 데 급급하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말할 시간이 없고 또 모든 사람을 볼 때에 눈이 밝으면 다른 사람은 껍데기만 보지만, 자기가 자신에게 대해서는 알맹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죄인 중에 자기가 제일 죄인이다 하는 것으로 마지막에 결론 난 것은 그것은 눈이 밝은 연고입니다.
* 계1:17 :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 계4:10 :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88030230)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자기의 신앙 행위가 점점 나빠져 그런 것이 아니고 점점 성자는 되어 가는데 성자가 되어 갈수록 자기에게 미비점, 미달점, 삐뚤어진 점, 연약점 그 점을 보는 눈이 자꾸 더 밝아지기 때문에 그 면이 자꾸 더 커진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떠나고 사망이 들어오면 자기에게는 자꾸 만족이 옵니다. '됐다. 됐다.' 자꾸 만족이 되어 자기는 더 할 것이 없고 이제는 그 한 것을 자랑할 것밖에는 없습니다. 해 놓은 것을 자랑할 것밖에 없으니까 자기에게 전부 잘된 점, 만점 그것만 자꾸 보이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실상의 생활은 점점 타락해 가는데 자기 딴에는 점점 자랑하고 광고 선전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자기가 볼수록 점점 이미 이루어져 놓은 장점도 보지만 단점과 장점을 같이 보기 때문에 할 일이 항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악령의 미혹에 들어서 타락하게 되면 자기의 단점은 안 보여지고 장점 그것만 보여지기 때문에 하려고 애쓰고 못 해서 안타까운 것은 없어지고 자기에게는 항상 만족하고 자랑할 것뿐입니다.
* 고전15:8 :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88042620)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나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입니다. 자기의 물생활에 숨어있는 비밀을 그 심령들의 형형색색이 들어있는 그 비밀 진실치 못하고 한갓 되지 못하고 비열한 야수적인 욕망 중에서 살던 나를 이런 큰 은혜 주었습니다. 이 은혜 생각하니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괴수 죄인은 최락(最落)의 범죄자이던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두가지만 잡으면 다 해결됩니다. 항상 감사와 기쁨과 겸손과 소망 중에 살게 됩니다. 내 앞에는 쓸쓸한 광야가 있어도 주님만 내 마음에 계시면 천국으로 부은하여집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요'
발단적(發端的) 은혜. 이것으로 은혜 생활하다가 죄 지으면 받은 은혜 붙들고 예수님 십자가에 대속함을 의인 부르러 오신 것 아니고 죄인 부르러 오신 것을 거머쥐고 범죄하였을 때 소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라.
죽자사자 하다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 때에 회고적(回顧的)인 은혜만 생각하라. 그 자리에서 머물 것입니까? 아닙니다. 일어서라. 또 은혜만 받은 자로서 생활하면서 무심히 범죄하면서 그대로 사는 생활은 강도의 굴혈 만드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쓰러져 넘어져도 생명길을 열어주시고 태만을 부리는 자에게는 얼마든지 태만하여집니다.
은혜받아 무심히 주님은 사랑이시니 하고 허리띠를 줄여놓으면 이는 강도의 굴혈입니다. 죄는 두려워 짓기를 두려워하는데 짓거든 곧 일어서라. 그 자리에 있지 말라. 복음 받아 더욱 완고하여 지는 자 있습니다. 죄인 구원하려 오셨다 하면서 방봉하고 여사로히 범죄하는 자는 걸려서 넘어지게 하시고 힘을 다하여서 싸우고 넘어지는 자에게 살려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죄를 짓기는 잘하면서 일어서지 않는 자는 멸망이요 범죄하고 즉시 일어서는 인간은 연하니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피가 있으니 살고 그를 이용하여 범죄를 여사로이 여기는 범죄는 잘 사면서 즉시 이는 안하니 생명이 없는 자요 시온의 도리니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고 선 자는 반석 위에 굳게 서게 하십니다. 감사 찾아 과거는 어떤 자며 오늘은 어떤 자입니까? 공생활, 물생활에 감사 찾아 감사하자.
현재 먼저 감사하고 과거 어떤 자 찾아서 생각하면서 더욱 감사하라. 과거 먼저 생각하면 은혜 생각할 0가 없습니다. 배은하면 저주받는 것 기억하고 복음에 순종하여 개인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 우리는 책임지라.
1. 죄가 있고 다음 차(次) 은혜 있습니다.
2. 회고적 은혜 = 선세최고(先勢最高)...정(頂)을 보면서 감사에 또 가감하여야 합니다.
3. 발단적 은혜 = 선세회고(先勢回顧)은혜 감희(感喜)중 현범죄세(現犯罪勢)
서주고득효(序主告得效)후 즉시 득혜(得惠) 발할 것
4. 회고적 은혜에서는 : 그 은혜에 합당생활.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의무 감당치 못하면 방색사(方色思) 始初의 정반대도(도리어) 진노, 저주, 복을 받을 줄 알고
5. 발단적 은혜에서는 : 죄인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고죄득(告罪得) 처자 (妻子)를 확신소(所)하면서 하루 일흔번의 일곱 번이라도 일어서야 됩니다.
6. 회고적 은혜에서는 : 발단적의 계명 「죄인 구하러 오신 주다」을 잡아 강도 굴혈 만들고 무심히 범죄하며 사망입니다.
7. 발단적 은혜에서는 : 회고적인 은혜에 관한 계명 「범0*하면 노, 저주, 화 받으리라」을 잡아 일어서지 않습니다.
(55101560)
딤전1:15(12주해사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인데 바울은 자기의 병신만 찾아 여기도 병신이라 이 병신 고치려고 해서 이 병신 고치고 나니 만신창이가 되지만 또 저기도 병신이다 또 이 병신 고치려고 고치지만 갈수록 고쳐야 할 부분은 병신된 부분은 많고, 성한 점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의인된 것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생각지 아니하고 잘못한 행위를 하는 사람 이것만 찾아 죄인으로 범죄로 죄인인 자기로 범죄 행위로 여기서만 살다가 갔습니다.
(79081420)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성경을 읽는 데에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계약을 계약으로 알고 계약대로 아는 대로 자꾸 지켜 나가며 읽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과 꼭 같은 사람으로 자꾸 변화돼 나가지만, 지식으로만 읽게 되면 이 지식은 그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 지식 때문에 교만해진 사람은 고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 지식으로 교만해 졌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멸시하고, 또 이 말씀 가지고 다른 사람 정죄하는 데나 쓰고, 또 자기 삐뚤어진 길을 걸어가면서도 거기서 다 합리화를 시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지식으로 알고, 요 지식대로 행하는 데에서 겸손해집니다. 요 지식을 보고 요 지식대로 하려고 하니까 만날 미달뿐이오. 이 지식대로 하려고 하니까 만날 어긴 것뿐이오. 이러니까 한 것보다 어긴 게 많지, 또 달성한 것보다 미달이 많지. 이래 놓으니까 항상 이 지식이 많아 갈수록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는 무능한 자입니다. 나는 미완성품입니다.' 이러니까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자라', 이 말씀을 자꾸 알고 행하다기 보니까 전부 미완성뿐이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이렇게 말한 그것이 행하려고 하는 데에서 필연적으로 그 사람으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 고전15:8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85021810) 9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러니까, 내가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서 나 모든 자연 만물에게서 거게서 받지 못하는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나의 할 일이요, 이래서 받지 못한 그 원인을 찾아서 받지 못한 그것을 고침으로 나에게 받아지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게 아주 어렵습니다. 나는 더러운 것을 찾는 것이 내 생활이라.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죄인 중에 괴수라' (딤전1:15)하는 그것은 그분이 더러운 것을 많이 찾은 그 증표입니다. 그는 자기가 더러운 것 중에 모든 사람보다 더러운 것이 자기가 많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분이 더러운 것을 많이 찾아서 많은 것이지 우리보다 더러운 것이 많아서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고칠 사람이기 때문에 고칠 것을 이렇게 많이 찾은 사람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실력 있는 사람이요, 많이 고치는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마땅히 성경이 말한 대로 이렇게 존대함을 받는다고 했는데. 받지 못하는 그 원인을 찾아 가지고서 받지 못하는 그 원인을 찾아서 고치는 것이 우리 할 일이지 그거 고쳐 가지고서 받는 그것을 볼 우리는 아닙니다.
* 요일3:3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요일3:21-22
(85041250) 9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우리가 무슨 소망으로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느냐?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자기 양심을 기르고 가꾸려는 목적입니다.
이 말씀을 지켜 행하면서 자기 속에 병든 양심이 치료가 돼야 될 것이고 파묻혀 있는 양심이 드러나야 될 것이고 자기에게 어린 양심이 장성해서 이 양심이 자기 마음 안에 욕심이니 주관이니 감정이니 온갖 정욕, 온갖 그 취미 이런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는 자기 마음을 다 사로 잡을 수 있는 장성한 양심으로 기르는 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심에서 자기 양심을 기르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하고 찾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하는 일은 율법을 지키는 자이기 때문에 교만만 강하게 가지고서 멸망에 가장 강한 자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써 자기 양심을 찾고 자기 양심을 보호하고 자기 양심을 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러합니다.
사울이 자기는 율법으로서 흠이 없다고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은 그전에는 양심을 기르지 안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자기는 교만한 사람만 됐는데 예수믿고 난 다음에는 늙어가 머리가 허옇이 죽을 때가 다 되어 갈 때에 그 때에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했는데, 젊은 청년으로서 율법으로 서는 흠이 없는 자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냉정스럽게 하나님을 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할라고 하면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대로 지켜 행한다는 것이 전부 외식이요 거짓부리요 과장이요. 냉정스럽게 정평 한다면 하루 종일 말씀대로 행했는데 자기는 말씀을 알고 범한 고범죄를 범한 사람이요 사람의 눈을 속이고 마음을 속이고 사람을 속였지 실상 말씀대로 행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그 정죄를 자기가 받게 될 것입니다.
(84061002) 3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기고 난 다음에 새로 발견된 여호와의 평강을 그가 볼 것이다. 여호와의 평강. '아, 참 하나님이 지켜셨다. 하나님이 도우셨다. 하나님이 승리케 해 주셨다. 하나님이 이런 걸 다 점령시켜 주셨다' 이래서 그가 그 신앙의지가 꺾어지지 아니하고 통과하고 다음에 새로운 세계, 참 사망이 없는. 다시 요동이 없는, 근심 걱정이 없는 평강의 세계를 자기가 취득하고 그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평강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또 한번 이기니까 또 새로 그 이상의 평강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또 이기니까 그 이상의 평강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네가 너와 세상을 초월하는 그것이 일보요 그 다음에 또 초월 하고 초월하면 점점 네가 벗을 사람이 자꾸 나온다. 벗을 사람이 나와서 벗을 사람 벗고 벗을 세상을 벗고 자꾸 벗으니까 입는다, 벗으니까 입는다, 벗으니까 새것을 입고 벗으니까 새것을 입습니다.
이래서, 사도 바울이 자꾸 벗으니까 벗어 갈수록 벗어 갈 것이 많아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 이라! 이렇게 말한 것이 벗을 것이 많기 때문에 그 벗을 것을 가리켜서 괴수 죄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84070320) 3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차차차 천국 가면은 예수님과 자기와 가깝습니까 멉니까? 천국 가면은 예수님과 자기와 가까와지겠소 멀겠소? 예? 가까와지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손 놓읍시다. 천국 가면 주님과 자기와 멀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멀어, 멀어. 멀어요.
왜? 이제 사도 요한이가 보니까 처음에는 주님과 가까와 주님 앞에 뭐 기대고 이래 가지고 뭐 예수님을 깔고 드러눕고 이래 자꾸 이래 이래 쌓았지마는, 사도 요한이 말이지. 이래 쌓았지마는 밧모섬에 가 가지고 주님이 어떤 분인 걸 알아 놨다 말이오. 알고 보니까 어떻게 그 앞에 그만 기절해서 그만 죽을 지경이었어.
주님을 알아갈수록이 주님은 점점 크시고 무한하신 분이라 그만 갈수록이 놀래고 놀래고 자꾸 크시고, 또 주님과 자기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한 일이 너무 거리가 멀어. 자기 한 일이 환하게 보이고 주님이 한 일이 환하게 보이니까 주님에 대해서는 사모가 돼서 존경은 자꾸 되고, 갈급은 자꾸, 주님은 자꾸 좋기는 좋고 자꾸, 두렵기는 두렵고, 자꾸 존대는 더 되고, 숭배는 더 되고, 자기는 점점 더러워지고, 그러니까 바울이 그라기를 다른 사람 모르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이 죄인이라” 이렇게 깨달은 것입니다.
(86090220) 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이 참 둘도 없다고 할 만큼 그렇게 성자이지만 그는 마지막에 고백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죄가 많다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죄가 많으면 그 바울 같은 분이 우리들과 같은 그런 실수를 저지른 일이 있는가? 저지른 일이 없습니다. 그는 참 양심에는 가책 받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능한 그 진리와 영감을 가지고 자기와의 관련된 모든 것을 살펴보고 따져 보니까 자기에게 자꾸 나와서 심히 많이 발견됐으니까 많이 발견됐으니 많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한 사람이 됐고, 많이 의논 했으니까 많은 사죄를 받았고, 또 많은 해결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뭐 변론해서 누구에게 잘했다, 못했다 그 사람에게 인정 받는 것은 그것은 극히 사소한 것입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4장에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의 그 폄론은 아주 그것은 뭐 무시한 게 아니고 사람들의 폄론에 걸렸다면 그거야 말할 것도 없이 아주 잘못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폄론은 그것은 별로 그렇게 거석할 게 없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자기 비밀을 아는 자기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으니까 뭐 사람들에게 띄일 것이 없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설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우리가 잘못된 그것을 임시 언변으로 덮어 가룰라고, 또 사람들에게 그것을 무력으로 덮어 가룰라고. 또 어떤 무엇을 자기의 소유로 덮어 가룰라고 해서 그렇게 지나갈 것이 아니고 물론 세상에서야 덮어 가룰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그것은 다른 사람의 덕을 위해서 덮어 가루었으면 가루었지 그렇지 않으면 다 폭로 되는 게 좋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죄 위에 죄를 짓기 때문에 가루는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루는 것이 없이 완전한 해결을 받아야 됩니다. 해결을 받지 안하면 자기는 영원한 보상을 해야 됩니다.
그런고로 잘못된 것을 그것을 찾아서 우리가 해결 받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다음으로는 하나님과 사람들과 모든 존재들에게 대해서 내가 반드시 책임진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고 내 본분이 있는데 그것을 내가 감당 하지 못해 가지고 남에게 내가 담당할 일을 담당하지 못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는 해 끼친 것을 고해서 사함을 받아야 되겠고, 또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내가 담당 한 일을 담당을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의무와 책임을 담당해서 남에게 해주어야 할 그 의무와 책임을 내가 하지 못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 보인 일이 없도록 하는 요것이 둘째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말씀하시기를 '피차에 복종하라' 했습니다. 피차에 복종하라 말은 네가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것을 다 이용을 당해야 되지 네가 이용당할 것을 이용당하지 안했으면 네가 이용을 당해야 될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인데, 이용당해야 할 그것을 네가 이용당하지 안함으로 그 사람의 일들이 지장 된 것은 자기가 그것을 배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85042650)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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