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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 성경:66요한계시록03:0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네가 어떠한 각오도 있었고 감화도 있었고 작정도 있었고 깨달음도 있었고 그 있은 그것은 살았는데 그게 곧 예를 들어서 주일날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었고 어떤 소원을 가졌었고 어떤 각오를 가졌었고 어떻게 방편을 쓰겠다고 그 깨달아 가진 것, 받아 가진 것, 들어서 가진 것 이것은 곧 살아있는 건데 이것을 오늘부터 이 생활을 실천해서 그 사람으로 살면 죽을 것이 죽지 안하고 살아 있지마는 오늘 행동하지 안 하면 죽습니다. 죽으니까 오늘 행동하면 그 죽게 될 것이, 죽을 것이 죽지 안하고 이제는 영생이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진리를 받아서 자신이라는 사람이 변화가 되고 지식이 변해지고 또 그 감정이 변해지고 자기에게 없던 새 길이 오고 이게 다 모두 다 받은 것이며 들은 것인데 이것은 이대로는 영생을 못합니다. 이것이 지금 살아 있기는 있지마는 곧 죽습니다.  

자기가 주일날 어떤 사람으로, 어떤 감정으로, 어떤 지식으로, 어떤 힘으로 이렇게 받아 가지고 쓰면 이게 곧 영생하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데 이것을 받아 가지고 있는데 오늘 그대로 실천을 하면 죽을 수 있는 이것이 다시 살게 되는 것이고 오늘 그만 실천하지 안하고 지내 보내버리면 그게 죽는다 말이요.

(79082710)




'너는 일깨워'
일깨운다 말은 생명은 벌써 속에 들어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생명은 있는데 자고 있으니까 깨면 내나 산 사람 생활 할 것이고 그만 활동 안 하면 활동적으로는 죽어 있다 그말입니다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은 바 죽게 된 것이라 하니까 자기에게 있는 것들은 다 죽었습니까 이제 과거로 현재까지는 다 죽었는데 아직까지 미래에 남아 있는 것은 살아 있다는 말입니까? 미래 남아 있는 것은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과거 현재는 왜 죽었습니까? 죽은 것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살았다는 이름만 가지고 있지 죽은 자라’ 하나님과 연결돼서 연결됐다는 명단만 네가, 연결된 명단만 거기 얹혀 가지고 있지 네가 연결된 그 효력은 네가 얻어 가지지를 않고 써먹지를 않았다. 그 효력은 써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죽게 된 것은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 말입니다, 죽어 가고 있는 것. 죽어가고 있는데 현재에서 그 모든 죽어 가고 있는 것을 중단해 가지고 거기서부터 산 생활을 시작하라 그말입니다.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굳게 하라 그 말은 죽지 않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88050321)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하나님 앞에서 온전타 인정을 받은 그 행위라야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천인 만인이 인정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분이 인정을 해야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인을 맞아야 된다 했습니다. 성령이 도장을 꾹 찍어서 됐다 인정을 해야 된다 그말입니다.

사데 교회는 하나님이 어떤 것을 표준하느냐?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하나님 앞에 온전한 행위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온전이라면 백점입니까 50점입니까, 99점입니까? 백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백점입니다. 백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간의 인정에 백점이 아니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백점의 온전을 이루는 이것을 하나님이 소원하시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는데, 이 온전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습니까 불가능하다고 했습니까?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가능한 그 이유가 뭐인가? 생명책에 녹명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하나님과 연결이 됐다’하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을 한 그것 때문에 가능합니다. 사데 교회는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행위가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당신이 보증이 되시고 증인이 되어서 ‘이는 온전합니다. 통과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이렇게 인정할 수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내가 네 이름을 시인하겠다’ 하신 것입니다.

온전한 행위가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달려들어야 됩니다. 우리는 죄를 안 짓고 살 수가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우리가 현재 죄를 완전히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이 못 되어 있을지라도 우리는 털끝만한 죄도 짓지 않고 깨끗한 사람으로, 하나님 말씀은 다 이행할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의 희망이 확실히 있습니다, 생명책에 녹명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과 연결된 그 능력이 들어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계3:5 :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내가 네 이름을 시인하겠다

(88050321)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행위의 표준은 온전>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 행위의 온전한 거 이것은 주님이 온전한 걸 찾지 못했다 하니까 우리 행위는 온전한 것이 표준입니까 미온전이 표준입니까? 온전한 것이 표준입니다.

<온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배경>
온전 행위를 우리가 하려고 할 때에 우리의 몇 가지 배경을 믿어야 됩니까? 다섯 가지 배경을 믿어야 돼요. 이 배경만 내가 믿으면 이 배경이 해 줘요. 그러면 이 배경의 첫째가 뭐이요? 주님. 주님이 주인이라. 또, 배경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의, 예수님의 피. 내나 피라 하는 거는 하나님의 의를 만든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이제 과정으로써 완성해 놓은 걸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이래요. 하나님의 의, 피 해도 돼요.

그 다음에는? 일곱 영. 일곱 영은 하나님의 일곱 영인데 일곱 빼 버리면 하나님의 영이오. 하나님의 영인데 왜 일곱을 넣었느냐 하면 우리에게 대해서 이 구석 저 구석 이모저모 뭐 하나도 빠짐없이 동글동글하게 모든 면에 전체가 원만하고 완전하도록 이 역사를 책임지고 오신 이가 일곱 영입니다. 영이 일곱이라 그런 게 아니고 일곱 영이라 하는 것은 그것을 뜻한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일곱 교회 사자. 이제 하나 남았는데 뭐이요? 편지. 편지도 또 이 편지에는 참 능력 있어. 그렇지 않소? 이 나라에서도 만일 대통령이 직접 무슨 편지했으면 그 편지면 그 나라의 권력있는 동안에는 그 편지면 그대로입니다. 이 편지. 이 편지는 뭐이요? 신구약 성경 말씀.

이러니까, 우리가 온전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요것을 믿어야 돼요. 그러면 우리는 어느 목사만치 하고 누구만치 하면 됩니까 주님이 온전하심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가 온전하심과 같이 이렇게 온전하는 것이, 요게 우리 표준입니까? 이런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온전이 되나, 어디? 온전 안 된다. 어느 내가 주석을 보니까, 온전 안 되는데 이것은 사람들을 교만하지 못하도록 정죄하기 위해서 이 성구는 나온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내가 하나님처럼 온전하냐 하면 꼼짝 못 하고 그만 정죄받는다고. 이걸 정죄의 성구라고 그렇게 주석해 놨어요. 아니오.

우리가 이렇게 온전될 수 있는 우리의 표준, 내가 바로 온전해질 수 있는, 행위가 온전해질 수 있는 요것이 우리가 계약입니다. 온전해질 수 있는 걸 계약을 했어. 그러니까 이 계약만 믿으면 온전하게 돼요. 뭘로 돼요? 다섯 가지 배경으로 돼요.

(86050840) 9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이미 죽은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죽었습니까? 행위에서 죽었습니다. 행위의 그것이 삶에 속해서 건설 중에 있는 것이 있고, 그 행위가 벌써 삐뚤어졌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는 많이 죽었는데 아직까지 다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으니까, 죽지 않고 남은 그것을 살리도록 해라, 영생하도록 해라, 영원히 죽지 않도록 견고케 해라, 완전케 해라, 영원불변의 것을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네가 '이만하면 뭐 됐지.' 이렇게 생각하나, 그 행위의 온전함에 도달해야, 흠이 없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에서 정죄하려고 해도 정죄를 받지 않을 것, 이 말씀 가지고 심사해도 합격 저 말씀 가지고 심사해도 합격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 말씀에 열 가지 면이 있다고 하면, 아홉 가지 면은 네가 다 어겼고 한 가지 면만 옳아 가지고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네 스스로 만든 표준이니 버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행위가 온전함에 도달한 것만 행위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행위가 온전함에 도달한 고 양만 건설구원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제가 행위를 옳게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중간까지 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온전함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건설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85011260) 9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너는 깨닫고 다시 일어서서 '너는 일깨워' 너는 다시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새로 이제는 새로운 걸음에 출발해라.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해라' 남은바 죽게 되다니? 남은 바는 뭐입니까? '남은바 죽게 된 것' 다 죽어 버리고 남은 거 좀 남았습니다. 다 죽고 남은 거 쪼그매 남았는데 남은 거 그거나 죽지 않도록 네가 굳게 해라.

죽은 거는 언제 다 죽었습니까? 네? 죽은 거는 언제 다 죽었소 무슨 전쟁에서 죽었소? 어디서 죽었습니까? 다 죽고 조그매만 남아 있다 하는데. 어디서 죽었습니까? 죽은 장소가 어디요? 현실에서 죽었어, 현실에 다 죽었어. 어리석게, 가져가지 못할 돈 지위 명예 이런 것 때문에 현실에서, 요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제것 삼고 요것은 예수님의 것으로 예수님의 뜻대로 쓰도록 예수님의 지체로 예수님의 몸으로, 예수님의 소유로, 예수님의 종으로, 예수님의 제사장으로 예수님의 선지자로 예수님의 왕으로 예수님의 것으로 살면, 예수님의 것으로 살면 죽습니까 삽니까? 영생입니다. 내것으로 살면 죽습니까 삽니까? 그라면 현실에 돈하고 영원한 제 손의 기능, 영원한 제 마음의 기능, 이 기능이 이게 보배 아닙니까? 이 보배인데 이 기능을 돈 받고 팔아먹고, 이 기능을 권세 받고 팔아먹고, 이 기능을 직장받고 팔아먹고, 이 기능을 행락 받고 팔아먹고, 이 기능을 유흥 받고 팔아먹고, 흥미 받고 팔아먹고, 재미 받고 팔아먹고 이 기능을 전부 다 이리저리 다 팔아먹고. 무슨 시장에서 팔았습니까? 현실이라는 시장에서 팔았습니다.

이라면 '현실' 하는 게 아니라 이 자꾸 따라 나오면 '현실!' '요놈을 내가 이제는 현실 시장에서 내가 절대 안 판다! 죽어도 안 판다!' 이게 있어야 돼. '절대 안 판다. 죽어도 안 판다.' 부귀 영화 지위, 권세 그게 무슨 가치 있다고 자기 팔을 팔고 다리를 팔고 눈을 빼 팔고 귀를 빼 팔고 혀를 빼 팔고 자꾸 이래 팔아 가지고 있기는 있지만 무능이라. 이렇게 주님의 것으로 현실을 살아 통과하면 현실에 이제 이 사는 것이 어째 가지고 삽니까? 이미 산 것이 안 죽으면 돼요. 이미 산 것이 안 죽으면 돼요.

안 죽으면 되는데, 이미 산 것이 안 죽으면 되는데 안 죽는 비결이 뭐입니까? 이미 산 것이,산 자의 생활 법칙이 뭐이지요? 신구약 성경 말씀. 이미 대속으로 산 것이 산 자로 살면 돼. 산 자로 살다니? 성경 말씀대로 살면 돼. 성경 말씀대로 성경에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하라는 것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면 돼요.

(86050621 집회) 5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이래 가지고 이 의를 입히도록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러면, 와 가지고 무슨 일을 하러 왔습니까? 와서. 여게 보니까 "내가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이러니까 행위 온전을 이루기 위해서 이 모든 운동과 역사들이 있습니다. 행위 온전을 이루기 위해서 또 뭐?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인데 이 산 자가 산 자로 살지 못하고 산 자가 죽은 자로 살아서 `너는 산 자인데 죽은 자로다.' 산 자인데 죽은 자로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의로써 산 자가 산 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몇 가지 세력이 왔어요? 다섯 가지 세력이 왔어요. 그러면 산 자로 사는 것이 행위 온전인데 온전한 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몇 가지 이 웅원이 왔어요? 다섯 가지의 응원이 왔어요.

왔는데 우리가 이것을, 기도하는 게 그겁니다. 기도하는 게 뭐이 기도하는 것이냐? 이래 뭐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 나는 아무것도 없지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나는 의인이다. 나는 의인이다, 의인이라 하지만 이거 입으로는 말도 못 해. 자랑도 못 해. 왜? 행동이나 자랑하지 너무 과거가 흉했기 때문에.

의인인데 의인 생활을 할라 할 때에 의인생활 이래 할라고 할 때에 방해하는 자가 있습니다. 방해하는 자가 있습니다. 방해하는 자가 세계에 제일 대가리가 방해한다 합시다. 그러면 세계에 제일 대가리 방해하는 그 대가리가 강합니까 내게는 뒤에 배경 응원이 몇입니까? 다섯. 내 배경이 다섯이라. 다섯하고 그거하고 비교해 보니까 내 배경이 좀 약합니까 강합니까? 그까짓 거 볼 것 없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할렐루야! (아멘?) 아무데도 겁날 것 없어.

(86050732 집회)5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그러면, 이제까지 이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못하고 벗어버린 것이 있다. 벗어버린 것이 있으나 앞으로는 지금 입고 있는 것 있으니까 앞으로 입고 있는 이것일랑 네가 벗지 말고 계속 입으라 그 말입니다.

(85052930) 9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2절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은 바라 말은 죽고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남아 있는 걸 말합니다. 남아 있는 것 아직까지 현실을 통과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 심신의 기능이 앞으로 살아날 희망이 있고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지금 산 데에 속해 가지고 있는 심신의 기능이 있으나 현실을 통해서 영원히 죽는 것으로 결정되고 영생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바 죽게 된 것. 남은 바 죽게 된 것은 이제까지 네 심신의 기능이 다 살, 영생할 수 있는데 네가 게을리 해 가지고 영생하지 못하고 다 죽여버렸는데 아직까지 다 죽이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 있으니까 남아 있는 이거는 네가 굳게 해서 죽이지 말고 영생하도록 해라 하는 그 말입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이 신앙 행위를 하기는 하지만 온전하다 인정이 될 때에 그때에 영생하는 생명으로 산것이 됩니다. 지금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생이 되지 안하고 고 행위를 통해서, 행위 구원이기 때문에 행위를 통해서 구원이 되는 것인데 고 행위가 온전할 때에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치 안하면 영생 안 됩니다. 이 온전한 것은 그 행위의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고 고 현실 현실마다 부분적 행위를 말하는 것인데 고 현실에 해당된 부분 행위가 온전해졌으면 전 시간까지는 다 죽었다 할지라도 요 시간 행위는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 시간까지는 영생을 다 갖추어서 참 성자와 성녀의 길을 걸어왔다 할지라도 이 시간 요 현실에 하나님 앞에 고 행위가 온전치 못하면 그만 고 토막은 다 죽어 버립니다.

(85061930) 9 / (82050901/1233/1453) 8





'일깨어'
‘일깨어‘라는 헬라 원어로 기누그레고론이니 일시동안 깨는 것만이 아니고 계속 경성을 의미합니다. 이 경성은 과거 신앙의 잠을 깨라는 말이니 1절에 기록한 살았다는 이름만 가지고 죽은 자의 행위를 하는 그것에서 깨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는 현재 자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 자는 산 자이나 마음과 몸에  활동이 없는 잠자는 자와 같이 마음과 몸에 활동이 없는 잠자는 자와 같이 중생 된 생명은 가지고 있으면서 중생한 자의 속성 활동인 말씀과 영감의 행위는 휴식(休息)상태에 있고 중생자의 생활인 천국 생활은 곧 내세의 생활인 십자가 생활은 자는 자 같이 쉬고 있으니 여기서 일어서 성신감화와 진리 말씀의 노동과 중생자가 사는 생활 곧 천국에 생활은 십자가의 도의 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남은바 죽게 된 것'
각양 영감의 은혜와 말씀의 은혜를 받아(받은 것은 살았다는 이름정도) 또 말씀은 지식에 머무는 정도이니 절에 총괄적으로 죽은 자라고 말하였으나 2절에 죽게된 자라고 하는 것은 1절에 말한 죽은 자와는 모순된 것 같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이전에는 명재 사경(命在死境)을 말하고 1절은 전사자(全死者)로 말함입니다. 그러나 이 두 구절은 배치됨이 아니고 동일한 것입니다.

2절에 ‘남은바 죽게된 것‘이라고 함은 영감과 계시은혜를 총괄적으로는 저버린 셈이 되나 부분적으로는 그 은혜생활을 하여 생명화 영화 능력화 된 것이 있으니 죽은 자는 아니요 죽게 된 자 또 자는 자라고 상징한 것입니다. 특히 죽게 된 것이라고 함은 성화나 행위에 있어 그 자본으로 은혜를 주신 주님은 거기 대한 기대와 요구의 일정한 한정이 계시나니 거기에 도달치 못한 것은 미완성품과 같아 정한 기간 내에 주의 요구점인 그 완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기회를 지나면 99로 100에 하나가 부족해도 미완성으로 불합격 곧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 죄인 거와 같이 배은(자본으로 준 두 은혜)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죽게 된 것이라는 것은 주의 목적과 요구에 대한 성화성(性)은 행위의 미달 중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요구점을 모르는 유한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전 4:4에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하여 이 요구점을 모르는 것을 표시하였고 모르기 때문에 거기 대한 대책은 (고전 4장 2절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하였고) 주님도 계 2장 10절에 충성하다 죽으라는 것으로 이 점에 대한 비결을 말씀하였고 또 바울은 빌 3:8과 12-14에 ‘얻었다 함도 아니고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내가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점을 모르나니 여기 대한 염려를 가지지 아니할 수 없으나 다만 불합격할까 두려워하는 중에도 안심할 한 길은 그 두 가지 은혜 생활에 대하여 더 충성할래야 더 할 수 없는 정도의 노력에서 사는 것 만으로서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굳게 하라'
주의 요구의 만점에 도달하라 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감과 말씀의 은혜가 내 생명화 영화 능력화 됨과 이것으로 선행하는 일에 있어 투자하신 시은의 주께서 그 분량에 적합한 요구 만족에 도달하도록 인적 요소를 가(可)하라는 것입니다. 굳게 하는 방법은 새김질과 쪽발의 걸음 (레11:1-8) 이니 말씀은 계속적인 새김질로 영감(靈感)은 늘 거기 머물고 떠나지 아니하는 연감(連感)으로 쪽발 걸음은 전 행위를 구별하여 이 두 은혜에 배치되는 쪽은 벗어버리고 합치되는 쪽은 덧입어 건축하여 가는 것을 말함이니 이것으로만 굳게 하는 방식이 됩니다. 삼갈  것은 우리의 회개가 내 스스로의 표준이 아니고 주님의 표준에 의준하여야 할 것과 또 사람마다 이 두 가지 은혜도 각각 다를 뿐 요구하심의 양도 각각 다른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마25:14 금 맡긴 비유에 보면 2냥중 맡은 자는 4냥중으로 합격되었으나 5냥중 맡은 종이  그대로의 5냥중으로 합격이 될 것인가? 그러나 사람 보기에는 오히려 1냥중이 더 많지 아니한가? 이는 9냥중 가지고도 합격은 안될 것입니다. 기어코 10냥중이 되어야 하리니 이는 은혜 주신대로 요구하시고 거기 대한 계산은 은혜 = 요구량의 수학적인 무사(無私)정확성을 보이는 비유가 아닌가? 도리어 오늘은 보편 은혜나 특수 은혜를 막론하고 자본으로 교만하고 장사하지 못한 쫓겨날 겸손은 가질 줄 모른다. 굳게 할 기간은 오늘 뿐인 줄 아는 것이 지혜요 내일까지 계산에 넣는 것도 심히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내 하나님 앞에'
주님이 하나님을 가리켜 내 하나님이라고 함이니 특히 지공무사하신 심판의 하나님의 공의 앞에 라는 말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나니'
행위 전체를 총칭하는 말이 아니고 각개개의 행위를 말함이니 그 어느 하나에도 주님 요구의 완성인 만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찾지 못하였나니‘ 함은 여러가지 행위 중에서 하나도 찾지 못한 것과 또 주님은 피로 산 당신의 백성의 온전한 부분을 찾으시는 것만큼 원하고 계시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 공의로운 하나님의 존전을 통과할 것을 생각할 때에 합격점이 없는 그 점을 보시고 심히 안타까워하시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범사에 주께서 요구하시는 그 만점을 향하여 달려야 합니다.

사렙다 과부는 떡 한 개로 봉헌의 온전이 표시되었고 다니엘은 하룻밤으로 기도의 온전이  이루었던 것이 봉헌에 있어 중도에 머뭇거리고 절정인 이 온전점의 같은 관심을 가지는 일이 적다. 일본인은 최후의 5분간을 말했고 마 24:13에는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통과할 온전한 정도라는 점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으며 가지고 안심을 하는지 스스로 시험하여야 할 것입니다.

(570121)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나니'
행위의 온전한 것은 당신의 명령한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하지 안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받았다 말은 주님이 어떻게 해서 나에게 사죄의 공로를 베풀어 주셨으며 어떻게 해서 칭의의 공로를 베풀어 주셨으며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 이렇게 친목한 부자(父子)의 관계를 베풀어 만들어 주셨는가, 또 당신이 어떻게 해서 나를 피와 성령과 진리로 영생하는 생명으로 날 살려 주셨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어서 들었든지 설교 말씀을 들어서 들었든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둘은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하면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 대속 3가지를 생각하고, '나는 영생으로 중생 됐다. 나는 죽는 자가 아니다. 영생으로 중생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자기가 영생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생각하면 두려울 것이 뭣 있습니까? 중생된 자는 못 죽입니다. 안 죽습니다. 영원히 안 죽습니다. 중생된 영은 안 죽습니다. 우리의 주격은 안 죽습니다.

'생각하고 지키어' 받은 것 생각하고 들은 것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킬 것이 나옵니다. ‘내가 영생으로 중생했으니 중생된 나로 살아야 된다. 내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죽은 자로 살지 안하고 나는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아야 된다.’ 이게 나온다 그 말입니다. 이게 지킬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과거에 대해서 이거 잘못됐다. 나는 과거에 이 받은 것을 버렸다. '아, 내가 과거에 요래 잘못되었다.' 회개할 것이 나옵니다. 회개합니다. 그라면 요 현실에 주님이 내게 명령 하시요 명령을 착 찾습니다. 주님 만납니다. 이것이 주님 만나는 비결이라 그 말입니다. 요렇게 회개하면 그 현실에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해 가지고 지극히 큰 능력 가지신 주님과 나와 동행할 수 있습니다. 요렇게 하면 우리는 세계 모든 민족 위에, 전인류 위에, 천상 천하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자가 됩니다. 그는 많든지 적든지 뛰어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고. '만일 네가 일깨지 아니하면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임할런지 알지 못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대에 이 심신의 기능은 무궁한 기능이요 무한의 기능이요 만물을 통치할 기능이요 하나님 다음에 존영할 기능인데 영광된 구원이 되는데 이것 다 도적 다 맞고, 다 뺏겨 버립니다. 그러고 나중에 가서 보면 부활은 했지만 무능자로 부활하니까 허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85011410)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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