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3:30
'보라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신앙이라 하는 것은 고정체가 아닙니다. 아무리 자기가 오늘까지 잘했다 할지라도 힘쓰는 게 없으면 안 됩니다. 여기 24절에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했습니다. 힘쓰지 안하면 안 됩니다.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지 않으면은 이 영생은 안 이루어집니다.
오늘 신앙의 열심을 두고 다른 사람들이 너무 좁다고 비판하지만 좁은 게 뭐인지 알지도 못하고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것을 무슨 욕 얻어먹을 좁은 것으로서, 사람이 관대하지 안한 것으로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원수의 주먹만한 작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좁은 것입니까 아니면 집 무더기만큼 큰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좁은 것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그거는 진리 아니요? 원수를 사랑하라 했는데 그러면 원수의 주먹덩이만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좁은 것입니까 진리로 자꾸 들어가니까 무한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좁은 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꾸 주님과 연결되기 때문에 연결만 되면 그만 몇 층이라도 몇만 길이라도 뛰어오를 수가 있고 연결됐다가 떨어지면 그만입니다. 우리는 자꾸 전진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앞 시간에 아무리 전폭적으로 구원 얻었다 할지라도 이 시간에 방임하면 없어요. 구원 얻은 거는 그대로 있는 것이지만. 자꾸 새 구원을 이루고 작성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 가질 것은 없습니다.
(88031412)
'보라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그런데, “먼저된 자 나중되고 나중된 자 먼저될 자 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는데 어떤 자는 예수 믿은 지 오래 돼도 실행 안 하니까 만날 그 꼴이고 뒤에 믿어도 딱 믿고 난 다음에 딱 실행하니까 그 사람은 앞서서 가서 그 사람은 성자가 되고, 성녀가 되고, 부자가 되고, 뭐 육신의 것도 축복받아 부자가 되는데 이거는 오랫동안 예수 믿어도 만날 그 꼬라지라. 예수를 오래 믿어도, 이대 삼대 믿어도 아무 희망이 없는 것은 그것은 다 더럽게 믿어 그렇습니다, 더럽게 믿어서. 바로 믿으면 축복받아요. 더럽게 믿어 그래. 바로 믿으면 다 축복 받아요.
(8609125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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