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1:1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마흔 두 달은 신약 시대 전부를 말하는데 신약 시대 하나님의 교회는 네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성전 밖마당이 있고 성전이 있고 제단이 있고 경배하는 자가 있습니다. 넷으로 상징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제일 많은 부분은 성전 밖마당입니다. 이는 예수님 승천 이후로부터 재림 때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으로 부르지만 세상의 종입니다. 세상에 밟혀 살지 세상을 꿰뚫고 이기고 살지는 못합니다. ‘마흔 두 달 동안’ 예수님 승천 이후로 재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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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구속받은 자는 다 주님의 것, 주님의 종, 주님의 성전 아닙니까? 성전은, 뭐 쉽습니다. 성전은 주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자가 성전이오. 그러면 성전은 자기가 자기 안에 주님이 계시기를 원하는 자는 성전될 희망이 있는 자요. 주님이 자기 안에 계시기를 원하는 자, 계시게 하는 것은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사모하면, 주님을 사모하면은 주님이 우리를 떠나지 못해. 주님을 떠나지 못하구로 볼끈 붙잡는 그 이유는 주님을 사모하면 주님은, 내가 주님을 사모하는데 주님이 나를 떠나지 못해요.
또 주님을 붙드는 방법이 뭐이냐 하면은 주님을, 다른 것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봐. 주님에게 뭐 소망을 가져. ‘주님이 이거 해 줘야 되겠다, 저거 해 줘야 되겠다. 주님에게 이걸 부탁해야겠다.’ 주님께 소망을 가지는 자는, 소망을 가지는 자는 주님이 떼지를 못해요.
성도들이 그 전심 전력으로 힘쓰는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떠나지 안하셔서 내가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모든 것을 내가, 내가 능동으로 하면은 내가 주인이라.
성전이라 하는 것은, 성전이라 하는 것은 성전 안에 이 하나님이 계시고 성도들이 있지 성전 그거는 죽은 거라. 성전은 돌담이기 때문에 성전은 요동치 않는 것이 그게 장기입니다. 성전은 요동하지 안하고 무너지지 안하는 게 장기라. 뚝 이래 가지고서 요동치 않고 있는 거라.
그래 가지고서 성도들이 성전에 들어가도 치이지도 안 하고 나와도 치이지도 안하고 주님은 그 안에 계시고, 주님은 무형의 존재로 계시고. 치이지 않는 것이 그것이 성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안에 주님이 계셔서 나를 맡아 주관하시고 나는 성전처럼 내 단독이 주장하는, 단독이 동하고 정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좋은 성전입니다. 성전이 자꾸 흔들흔들 해 가지고서 이제라도 무너질듯 하면 그런 성전은 헐고 새로 지어야 되지 못쓴다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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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이는 하나님의 잣대이니 신약적 성경 말씀을 상징한 것입니다. 계10:과 11:13상반은 한 내용을 가진 것이니 또 내게 주었다 하는 것 보면 계10:9에 책을 주며 갖다 먹어 버리라고 한 그 천사 같으나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외부에 보기에는 지팡이와 같은 갈대같이 양척(量尺)이 아닌 것같이 보이나 실상은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는 하나님의 잣대이니 성경 말씀은 그러합니다.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볼 때에 상벌의 총심판을 주시한 법규가 아닌 평범한 책같이 광야에 빽빽하게 들어선 갈대같이 보이고 실상은 피조물 하나 하나 그 사물의 귀정을 주권한 심판의 책입니다.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라 함이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 말씀대로 심사하여 진가를 재세에서 드러내어 다시 고칠 수 있도록 하려 함입니다. 인정한 하나님의 척도대로 맞추어 과(過)나 불행이나 좌우로 치우친 것을 고쳐 꼭 맞도록 몇 번이든지 수정하려는 것을 명함이니 이는 사도 요한이 받은 사명인 것만큼 지상 성도는 자타에게 대하여 별세하는 시간까지 말씀의 척도에 맞추어 몇 번이든지 수정하여야 할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일어나서라' 함은 앉은 것이나 누운 자를 말함이 아니고 특히 열심을 내어 자타의 수정(修正)운동에 힘쓰라는 명령입니다. 성전은 고전3:16과 고후6:16과 벧전2:5과 요일3:24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하나님 모신 그 몸과 마음을 성전이며 산 집이라고 하신 그대로 중생된 자, 곧 그 안에 하나님을 모신 자의 몸과 마음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상징한 것입니다. 모든 물건 안에 몸, 몸 안에 이성, 이성 안에 영혼, 영혼 안에 주인인 나,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고로 구원받은 자의 그 인격과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는 중생자를 하나님께서 근본적으로 곧 원죄적으로 간섭하시며 수정하시고 선행에 대하여는 그 심신에 하나님을 모신 자에게 그 행사를 간섭하여 선행케 하신다는 말입니다.
'제단'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물이 놓여지는 곳이니 한 번 제단 위에 놓은 것은 바쳐지지 아니한 것이 없고 또 죽지 않고는 제단 위에 놓여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성을, 곧 우리의 주격을 제단으로 상징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전 주격의 소산인 발생(發生)은 전부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결시켜 전부가 나와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과 그 의에 대하여 받아 사는 자의 그 중생된 주격과 이성을 가리켜서 제단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인하여 자아의 전 인격과 전 이성에서는 하나님께 받아 하나님만 위하여 살면 이 일만 전업으로 하는 그 사람이 이 척량에 들어갈 제단에 소속한 자라 말입니다. 이는 하나 하나에 생각나고 마음먹는 그 전부가 다 이와 같이 되어진 후라야 제단 자격을 가졌다 함이 아니고 원리를 말함입니다. 곧 그리스도 중심 곧 하나님 제일주의(第一主義)로 사는 자라야 제단 되어 있는 자라 함입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자의 발생은 전부가 희생주의여야 합니다. 실지로 희생해야 하나님께 바쳐집니다. 다만 특수한 제물 산 것으로 바치고 또 죽지 아니하고 제물 된 것 하나만 있으니 이는 이삭입니다. 그러나 그는 히11:19에 죽은 데서 도로 살리심을 받은 것이라고 했으니 이는 오늘 우리의 생명을 바치는 제사의 성질을 보입니다. 주의 진리를 위하여 내 생명을 산 것으로 순교의 제단에 바칠 때에 죽여 받으시는 일도 있고 또 생명을 받은 셈하시고 생명을 도로 살려 두시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본성구에서 깨달을 것은 우리의 이성이 제단이니 우리의 이성 위에 발생되는 것, 곧 우리의 이성 움직임의 전부는 하나님께 바칠 것과 바칠 희생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은 간섭하시고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당신의 법도대로 온전하게 만드십니다.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은 몸을 주로 말하고, 제단은 이성과 모든 봉헌의 생애를 가리키고, 여기 경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의 자격을 가진 몸과 이성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존대하고 영화롭게 하는 그 인격을 가진 그 사람의 주격을 상징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섬기는 참된 교회를 말함이요, 또 이러한 교회와 이러한 개인만을 간섭하시며 하나님의 것으로 취급하시고 그에 대하여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건설 또는 성화와 선행하도록 섭리하시고 시언하라는 말입니다. 이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은 이는 요한이니 이는 지상교회를 대표한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님의 역사와 성도들의 헌신으로 된 것이니 곧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것을 겸전(兼全)한 교회와 개인에게만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와 성도의 역사의 운동이 허락된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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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바깥마당은 이방인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씀했는데 하나님께서 척량하시는 자는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를 간섭하시고 잘못 행하면 견책하시고, 징계하시고, 바로 행하면 칭찬하시고,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제일 큰 축복을 받은 자는 어떤 자입니까? 하나님에게 척량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받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입니다.
'성전'
성전은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마음 가운데에 모시고 하나님의 슬하에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모신 자로 조심 있게 사는 자를 말합니다.
'제단'
제단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과 몸과 소유를 희생의 제물로 바쳐서 사는 자를 말합니다.
제단은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 제단이요, 또 하나는 예수님이 제물이 되셔서 바친 십자가라는 제단이요, 또 하나는 성도의 제단입니다.
예수님은 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아래로는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여 복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생명과 몸과 소유를 십자가라는 제단에 다 드렸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위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주님의 소원인 이웃을 바른 길로 주님에게로 돌아 오게 하는 이것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과 몸과 소유를 다 비치는 사람이 제단인 것인데, 죄인들을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이 운동을 자기 속에서 일으키고,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려는 이 불타는 마음이 제단입니다.
따라서 제단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타에게 있는 죄를 멸하고 의를 건설하고 진리를 세워 보려고 하는 이 마음과 노력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죄인으로 하여금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는 이 운동에 자기를 아끼지 않고 희생하고자 하는 이 마음과 이 노력을 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간섭하시고 도와 주십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로 척량하십니다.
'경배하는 자들'
경배하는 자는 하나님을 생존하신 신격자이심을 알고 제일로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외에 천상천하에 있는 그 어떤 존재를 경배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인격을 가진 자라도 그 사람이 죽었을 때에 그 사람의 시체에게 절을 하면 죄가 되고, 또 살아 있는 인격자라고 해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상면이 안되는데 절을 하면 죄가 됩니다. 왜정 말년에 일본 정부에서 강요한 동방요배 같은 것은 죄가 됩니다.
그런데 인격과 인격이 서로 상대할 때에 서로 절을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이라'하여 무슨 형체를 만들어 가지고 섬기거나, 상상의 존재로 섬기면 하나님은 이것을 죄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생존하신 분이시오, 신격을 가지신 완전자이심을 알고, 신격대 인격상대로 의논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셔서 간섭하시고 도와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가 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성전이 되지 않고 제단이 되지 않고 경배하지 않는 자는 성전 바깥마당인데,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이방사람에게 내어 주어서 짓밟히게 하십니다. 그러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천한 자가 되고 맙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척량하되 지팡이 같은 갈대로 척량한다고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사람이 보기에 허무하게, 가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 갈대 지팡이로 척량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팡이 같은 갈대'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허무하게 보고, 가치 없게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 곧 신구약 성경 말씀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허무하고 가치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인간이 어둡고 미련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허무하게 무가치하게 여기지만 이 말씀에게 맞으면 인생은 가치가 있고 이 말씀에게 맞지 아니하고 배치가 되면 가치가 없습니다. 인생의 가치는 이 말씀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허무하게 보는 지팡이 같은 갈대, 곧 신구약 성경말씀이 사람을 척량하는 척도인 것입니다.
(주해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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