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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성경:58히브리서10:22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나는 그렇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완전한 행위 한 것이 없지마는 예수님이 내 대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 대신 형벌 받았기 때문에 나는 형벌 안 받았지마는 죄의 형벌 다 받았으니까 남아 있는 이것은, 형벌은 받고 남아 있는 이것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모든 의를 다 행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이행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도 행하지 않았지마는 나는 행한 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나는 주님의 것 됐습니다.

아직까지도 자기가 자기 것으로 아는 사람은 주님의 대속과는 건설구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건설구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기본구원에는 '우리 행위대로 된 것이 아니고 영원한 때 전부터 하나님이 은혜로 이렇게 하시기로 작정해서 거저 주신 은혜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구원은 믿음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 영 구원은 영원한 때부터 우리는 죄 정함을 받지 않기로 작정돼 있고 예수님이 오셔서 대속하셨기 때문에 그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본구원은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기본구원 영 구원 얻는 것이 영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입니까 그전에 이 구원이 됐는데 구원된 것으로 만들어졌습니까? 영이 만들어진 것이 뒤입니까 구원된 것이 뒤입니까? 뭐이 뒤요? 우리 만들어진 것이 뒤입니다. 그전에 이 구원이 설정돼 있었습니다.

'마음에 뿌림을 받아' 이것이 우리의 행위구원입니다. 행위구원을 이루는 데는 '마음에 뿌림을 받아' 예수님이 뭣 때문에 죽으셨느냐? 그분이 죄 때문에 죽으셨고, 순종 의 때문에 죽으셨고, 하나님 배반치 않고 하나님과 화친 때문에 죽으셨으니 내가 죽어도 이제는 죄짓지 않아야지, 죽어도 의는 놓지 않아야지. 죽어도 하나님 배반하고 우상 섬기지 않아야지이렇게 마음에 뿌림을 받는 것입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우리 양심이 살아난다 말입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는다 말은 양심이 살아난다 말입니다. 양심도 악해져 버렸었는데, 양심도 자기 중심의 양심이 됐는데 양심이 예수님의 피뿌림을 받아 가지고 이제는 악을 깨닫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형 받아 죽은 것은 무슨 형인가? 악으로 행한 것을,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행동한 그것을 대신 형벌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내가 행하지 못한 모든 것을 예수님이 대신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행하느라고 죽기까지 행했습니다. 죽기까지 해서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법을 지키려고 해서 어려울 때마다 주님은 그 억억만 배도 더 되는 것을 다 대신 지켜 행하시느라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한 죽음이지마는 그 속에 분류하면 세 가지 죽음을 했습니다. 우리 형을 대신해서 죽으셨고, 우리가 행할 것을 대신 하나님의 입법을 완수하기 위해서 죽으셨고, 하나님 아버지와 화친하기 위해서 화목의 제물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죽으심을 깨닫고 보니 양심이 살아납니다.

과거에는 양심도 마귀에게 삼켜져서 악의 양심 원죄의 양심이 됐었는데 이제 예수님이 대속하신 그 피공로를 인해서 '양심의 악을 깨닫고' 이제 양심이 살아납니다. 양심이 살아나고 난 다음에는 산 양심을 따라서 복종만 하면 됩니다. 산 양심 따라 복종하면 산 양심은 어디로 인도합니까? 내 모든 마음을 통솔해서 진리로 인도합니다. 성령으로 인도합니다. 어디 가려고? 예수님의 구속 그것 찾아 가려고, 그것으로 살려고 합니다.
택한 자로 살려고, 아버지 아들로 살려고, 공심판 통과한 의로운 자로 살려고, 죄에 대해서 사망에 대해서 마귀에 대해서 자유자로 자유 생활 하려고, 하나님을 향하여 진리 영생하려고, 영감 영생하려고, 만물의 중보인 제사장 생활 하려고, 선지 생활 하려고 찾아갑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었다 말은, 이 몸은 우리의 육체를 가리켜 말합니다. '맑은 물로 씻었으니' 하나님께서 선포해 놓으신 이 약속을 인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사죄 칭의 화친 받았으니, '맑은 물로 씻었으니' 더럽히면 안됩니다. 조금이라도 더럽혔으면 즉시 이 두루마기를 빨아야 됩니다.

'몸을 맑을 물로 씻었으니'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습니다. 이제 흰옷을 사서 입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으니 벗지만 않으면 깨끗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씻었기 때문에 다시 더럽히지만 않으면 됩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에 베드로가 반대할 때에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 하는 말에 깜짝 놀라서 '온 몸도 다 씻어 주십시오' 하니까 '이미 목욕을 해서 전신을 씻었으니 발만 씻으면 된다'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전히 구속함을 받은 자는 날마다 걸어가면서 행위에 나쁜 거 있으면 즉시 즉시 예수님에게 고해서 씻음 받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대속 받았으니 마음대로 죄지어도 된다는 것 아닙니다.


'씻었으니'
씻었으면 어쩌라는 말입니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참 마음 가지고 주를 믿어야 됩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참 마음, 참 마음은 무슨 마음입니까? 참 마음은 양심이 인정하는 마음이 참 마음입니다.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이 주를 믿어야 합니다.

'내가 양심에 자책할 것을 찾지 못하나 눈이 어두워 찾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써 내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했습니다. 알지 못함이 없으신 그분이 심판 세워놓고 나를 심판할 터이니까 그때 가서 어찌 되나 해서 내가 옳다 한 것도 다시 더듬어 보고 옳다 하는 것도 다시 더듬어 보고 씻어서 깨끗해진 것도 다시 씻어보고 씻어보고, 그날까지는 발발 떨면서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서는 것이 우리들의 정상적인 자세입니다.


'참 마음과'
참 마음, 참 마음이라 말은 양심이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무슨 마음입니까? 거짓 마음이 아니고 참 마음입니다. 진짜 마음, 수지 마음, '참 마음' 수지 마음. 마음의 수지가 뭐입니까? 양심입니다, 양심. 참 마음이라 말은 양심으로, 거짓부리 없이, 껍데기로 하지 말고 양심에 가책 없는 양심이 인정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온전한 믿음은 야고보서에 몇 가지가 합해서 온전한 믿음 됐습니까? 두 가지 합했습니다.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 그게 온전한 믿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요13:5-10

(87050630)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마음에 뿌림을 받아'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마음으로 알고 깨닫고 인정하고 믿는 걸 말합니다. '마음에 뿌림을 받아' 마음이 그 대속의 공로를 인정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대속의 능력이 와 가지고 그 마음을 완전히 새 마음으로 만들어서 살리는 역사를 착수했다 그말입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과거에도 양심은 있었고 지금도 불신자의 양심도 모든 이종교들의 양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심이 다 자기 종교적인 양심이요 또 세상 사람은 각각 자기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 지식대로의 양심이기 때문에 지식이 종류가 많으니 양심의 종류도 많게 됐습니다. 지식이 죽은 지식이 많으니 죽은 양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양심이 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대속을 입어서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 어두움을 벗고 사망에서 벗어나고 자존자를 바로 찾아서 올바른 관계를 척 가지고 보니까 과거의 것은 전부 다 주관적이요 사욕적이요 악령적이요 다 원죄적이요 본죄적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다 죽었던 것이라 하여 그 양심이 하나님의 이 대속으로 살아난 것을 가리켜서 '양심의 약을 깨닫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양심의 악을 깨달아야 합니다. 양심이 자기 편이 된 양심은 다 악의 양심입니다. 자기 편이 된 양심은 악의 양심입니다. 돈의 편이 된 것은 돈의 종인 양심입니다. 세상 무슨 권세를 목표로 삼아서 권세 위주로, 권세 목적으로, 권세 중심으로 판단한다면 그 양심은 권세라는 화인을 맞아서 권세의 소유물이 됐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고침을 받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몸을 맑은 물로 씻었다는 말은, 영은 벌써 이 도를 받기 전에 영이 중생된 후에 당장 믿는 사람도 있지마는 오랜 후에 믿는 사람들이 대개 많습니다. 이래서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심신의 이 육을 가리켜서 몸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몸을 말해도 마음은 따라가고 마음을 말해도 몸은 따라가고 둘이 합해서 육입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었다' 맑은 물로 씻었다 그 말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무오한 진리의 말씀으로 씻었으니, 그러면 정확무오한 진리의 말씀은 우리를 깨끗게 할 수 있습니까? 못 합니다. 왜 그러면 이 물을 예수님의 공로로 해석하지 않고 이것을 진리로 해석하는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정확무오하게 효력있게 전달해 주고, 알려 주고, 믿게 하고, 바라보게 하고 힘입게 하는 것이 곧 정확무오한 진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맑은 물로 씻었으니' 그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정확무오하게 우리에게 효력있게 전하고 적응시키는 그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는 대속을 온전히 입어서 깨끗해졌으니 하는 말입니다.


'참 마음과'
참 마음이라 말은 대속받은 받은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참 마음이라 말은 거짓부리를 헤치고 헤쳐서 그 마음의 주체를 말합니다. 마음의 주격체, 마음의 수지, 그 마음의 주인이 되는 마음의 중심 그것을 가리켜서 참 마음이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진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진정으로 예배하는 진정이라는 것도 참 마음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요 곧 마음의 주체라 말과 같은 말이요 곧 양심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양심으로 섬겨야 되지 다른 것으로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조상 때부터 맑은 양심으로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양심으로 섬겨야 그 섬김을 받지 양심으로 섬기지 않는 섬김은 하나님은 받지를 않습니다. 암만 섬겨도 양심으로 섬기지 않는 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양심으로 섬긴다는 것이 마음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참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의 수지를 다 드렸으니까 찌꺼기는 다 따라가는 것입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이제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으로 이제 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공로를 힘입었기 때문에, 이 공로가 있으니 이 공로를 입고 이 공로 입은 자이니 이 공로 입은 자로서 참 마음을 가지고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됩니다.

참 마음으로 나아간다 말은 착한 양심으로 나아간다는 말과 같은 말이요,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간다 말은 확실히 똑똑히 정확히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거, 바로 알고 실행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말입니다. 이게 아니면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못합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믿음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강제로 나아갈 수 없고 억셈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집으로 나아가고, 자기 기백으로 나아가고, 자기의 배짱으로 나아가고 하지마는 저는 지옥만 가지 못 갑니다. 하나님 앞에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가야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습니다. 양심으로 하나님을 찾아가야 되지 양심 인도 받지 않고는 하나님 찾아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 요4:24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 딤후1:3 :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8705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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