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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성경:66요한계시록03:04
 

'나와 함께 다니리니'
'나와 함께 다닌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5장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음을 보지 안하고 승천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보였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에서만 영생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계시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세상을 정죄 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됐습니다. 홍수 심판을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의 여덟 식구만 이 심판을 면했습니다. 우리는 토막 토막의 중간 심판도 있지만 마지막 종말 심판은 곧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데 교회에 하나님과 함께 다니는 사람 외에는 생명록에서 제거되지 이니할 사람은 없습니다. 생명록에서 그 이름을 흐리지 아니한,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흐리지 아니하는 것은 주님과 같이 동행한 자들이다 고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영생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심판을 면하게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생명록에 제명되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 창5:24 :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창6:9 :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 고후5:10 :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 계3:5 :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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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횐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함께 다니는 것을 네가 볼 거다, '횐옷 입고 나와 함께' 횐옷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네가 볼 수 가 있다 말입니다. 이거 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횐옷이 무엇입니까? 횐옷은 대속이 횐옷입니다. 하나님의 노의 완전 해결, 하나님의 기쁨의 완전 성공 이 대속을 입는 그것이 횐옷 입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횐옷이 없습니다. 이는 결백하다 말입니다. 완전하다, 희다 말은 결백만 아니고 완전이라 그말입니다. 섞인 게 없습니다. 잘못된 게 없습니다. 완전입니다. 완전히 이 대속을 입었습니다.


'나와 함께 다니리니'
주님하고 동행합니다. 주님하고 동행. 주님과 동행. 동행하는 거 볼 수 있습니다. 이걸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보자, 저 사람은 새카만 옷 입었다. 마귀하고 동행한다. 저 사람은 하얀 옷 입고 주님하고 동행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횐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 말은 다니는 걸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말입니다. '다니리니' 보라 그말입니다. 횐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니는 것을 네가 보리라, 사죄를 입고 칭의를 입고 화친을 입고 죽었으면 죽었지 그 사람은 죄 짓지 않고 이깁니다.

'횐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이걸 봐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자의 전기를 많이 봅니다. 성자들의 전기. 횐옷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 보려고 성자들의 전기를 보니까 그 사람은 참 횐옷 입었습니다. 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생명을 내놨고 하나님 말씀 지키기 위해서 사업을 내놓고 큰 기업체를 내놓고 이렇게 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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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데에 이러한 외식(外飾)과 불완전의 분위기 중에서도 속화되지 아니한 몇 명이 있는 것을 기뻐하셔서, 그러나 몇 명이 있다는 그러나의 은사를 언두에 두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성도의 생활을 주밀히 간섭하시고 회개와 충성을 즐거워하신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그 심장을 바라보면서 행위를 가져야 합니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성결은 도덕적 순결을 말한 것이라고 하나 이것은 소아시아의 이교 사상에서 취할 그릇된 해석입니다. 이 옷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말함이니 모든 인격인 자율적 행위를 버리고 신본적인 그리스도 중심으로 모든 동기와 법도를 삼아 그리스도의 구속의 합당하게 살아 신본적 성결의 방법과 결과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 동기와 소속이 신본이 아니면 대선(大善)의 적이 되는 소선(小善)입니다.

‘몇 명‘이라 함은 원어 자역(字譯)하면 몇 이름이라 함이니 이렇게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의 이름을 주님은 낱낱이 기억하시고 또 하늘의 생명책(계3:5)에 등록까지 하여 두신 것을 의미합니다.


'흰옷을 입고'
한 흰옷은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하여 성결을 보수한 자에게 천계에서 입혀 주시는 영광과 완전한 성결을 그들에게서도 주님의 영광과 성결을 입혀 주님은 그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성결의 역사를 이루시나니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다‘는 자, 곧 구속의 관계를 끊지 아니하고 거기에 기인하여 사는 자에게 이런 영광과 승리를 주시는 것을 의미하고 (요15:5 참조)


'나와 함께 다니리니'
주님과 밀접한 교제에 복된 생활을 의미함이니 주와 동거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도 세상에서 시작하여 하늘에서 완전함으로 영원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것은 그들이 유공(有功)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여 주님과 함께 다닐 자격이 있다는 (자기의 공로가 있다 함이 아님)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런 축복을 받는데 이르는 바른 신앙노선을 걷는 것을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를 보수한 자란 말이니 시은주의 요구에 합격된 자란 것입니다. 합격자는 자기 공로가 아니오 수은자요 불합격의 행위에서 머무는 자는 선행 아니함이 아니라 실은 배은의 행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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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러면 우리가 이 신앙생활 하는데 우리의 표준은 베드로만큼 해야 됩니까, 사도 바울만큼 해야 됩니까 엘리야만큼 해야 됩니까? 우리 표준은 어디까지입니까? 네, 예수님. 온전한 사람. 행위 온전. 행위 온전이 우리의 표준입니다. 횐 옷 입고 다니는 것은 예수님의 사죄를 입고 살고, 사죄 받은 자로 살고 칭의 받은 자로 살고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버리지 안하고 언제든지 사죄되어 죄 없는 자가 살고, 또 의로운 자가 살고 하나님하고 한 덩어리 된 자가 사는 그것이 우리의 표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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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다니는 것을 우리가 본다 말이오.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 앉아서 '저 사람 뭐 잘못이 뭐 있나?' 이런 것 생각하는 것은 자기 죽는 자살 행위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 네게 있어서 횐옷을 입고 나와 같이' 주님과 함께 다니는 사람. 주님과 함께 다니는 성결한 사람이 있다 말이오. 주님과 함께 다니는 성결한 사람을 네가 보라 그 말입니다. 사데 교회가 이렇지만 주님과 함께 다니는 성결한 사람을 볼 수 있다 말이오.

'아, 그 사람 보자. 이럴 때도 성결하고 저럴 때도 성결하다.' 봐야 몰라. 그를 모르는 사람은 몰라.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성현이라야 능지성현이라' 성현이라야 성현을 보고 성현인 줄 알지 성현 아닌 사람은 성현인 줄 몰라. 그러면 깡패는 보면 깡패에 대해서 잘 알아. 도적은 도적에 대해서 잘 알아. 깍쟁이는 깍쟁이에 대해서 잘 알아.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쟁이에 대해서 잘 알아. 의인들은 그걸 몰라.

그러니까, 네가 너와 같이 있는, 너와 같이 있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라 그 말이오. 너와 같이 있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라 '아 저 사람은 어떤 경제 문제가 있을 때도 돈에 굴하지 안하더라. 저 사람은 그렇게 돈에 대해서 정직을 버리지 안하더라, 저 사람은 주일을 범하지 안하더라,' '저 사람은 아주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욕을 얻어먹어도 보니까 그 사람이 악을 악으로 갚지 안하고 참고 견디더라' 모든 네 이웃에 횐옷 입고 다니는 사람을 네가 좀 보라. 나와 함께 다니는 사람을 보라. 남의 장점을 보고 가는 사람은 그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이요 남의 단점을 보고 가는 사람은 교만이 저의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에게서 물리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 양원 목사님이 인민군에 잡혀가면서도 복음을 전했다, 가면 죽을 줄 아는데, 전선줄에 묶여 가지고 지금 산으로 가니까 거기 가면 구덩이 파고 죽는 것 아닙니까? 죽는 것이 지금 한 시간도 남지 안하고 뭐 십 분 남았는지 오 분 남았는지 그래 끌려가면서도 복음을 전하고, 총부리를 가지고 입을 때려주니까 입에 피가 나면서도 그래 전하고, 그걸 말을 들어도 예사로 듣는다 그 말이오.

그걸 네가 보라. 옷을 더럽히지 안하고 횐 옷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자를 보라. 감옥에 있으면서도 거기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 거기서도 봉사를 버리지 안했어. 그것들이 주면 뭐 얼마나 주겠습니까? 그래 주는 거기서도 그 받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을 대접하는 일을 버리지 안했어. 또 왜정 말년에도 그분 신앙생활 한 것이 그 이의 사랑의 원자탄이라 하는데 전기가 있을 거라 말이오. 자기 아들을 공산주의에게 죽임당한 데도 그런 것 다 기록된 것 있다 말이오.

그래도 그런 걸 예사로 본다 그 말이오. 예사로 봐. 성도들은 그걸 예사로 보지 안하고 그걸 자꾸 새깁니다. 새길 뿐만 아니라, 새길 뿐만 아니라 나는 그 일을 당하면 어찌 되겠느냐 그 일을 당할 때에 어떻게 해 달라고 자꾸 기도하고 또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있다 하고도, 할 수, 뭐 의례히 나는 그래 하겠다 이라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이 안 도와 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불이 타도록 자꾸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이렇게, 너와, 네가, 사데 교회는 이 꼬라지이지만 횐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네가 봐라. '나와 함께 다니리니' 나와 동행하는 것을 네가, 내가 동행할 테니까 동행하는 것을 네가 봐라 그 말이오. 이제 그걸 들을 때에 예사로이 지나가는 그런 말로 들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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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보고 있지 않느냐? 네 눈에 봐라. 네가 이걸 볼 줄 알아야 돼.

의인을, 하나님을 볼 줄 아는 것이 복있는 사람이고 둘째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고 셋째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사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 다른 사람의 장점만 봐.

'흰옷 입고 다니리니' 그 말은 저 사람은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그는 벗지 안하고 임고 다닌다. 아 그렇츰 어려운 시험을 닥쳐도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는 그 사람이 벗지 안하더라. 사형을 준다는 사형틀 위에서도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는 벗지 안하더라 그런 사람을 보지 않느냐? 우리가 우리 교회에는 현재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귀로 들어도 봤고 또 눈으로 또, 볼 줄 몰라 그렇지 볼 수가 있고 볼 줄 몰라 그렇지 볼수가 있다 그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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