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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성경:59야고보서01:02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여러모로 어려움 당하는 것을 가리켜서 시험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어려움 당한 것을 왜 시험이라고 말씀하셨는가? 그 이유는 어려움 당하는 것이 우리가 볼 때에는 어떤 사람으로 인한 어려움, 또 무슨 자연으로 인한 어려움, 또 자체로 인한 어려움. 다른 사람으로 인한 어려움, 사건으로 인한 어려움, 또 자체로 인한 어려움, 모든 사물로 인한 어려움 그런 어려움들을 가리켜서 시험이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런 어려움 당하는 그것이 그런 것들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하나 그 어려움이 다 시험이다 그말입니다.

시험이라 말은 그것들이 나를 어려움 주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이용해서 나의 신앙 생활에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우리를 사랑하사 구속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어려움이지 다른 것으로 인해서 오는 어려움은 아니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알면 거게 대한 첫째 초보 지식을 바로 가지게 됩니다.

또 그 다음에는 그것이 우리를 공연히 괴롭히거나 또 우리를 뭐 어렵게나 또 우리를 놀리는 것이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실력을 기르기 위한 주님의 사랑과, 또 우리 자신들의 실력이 어떠하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하려는 주님의 사랑의 역사와, 또 우리를 현재의 그 단계에서 좀더 가치가 높고 또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그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역사라 하는 이 세 가지 상식을 우리가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든지 신앙 생활에 어려움이 올 때에는 이제 말한 대로 요 신앙 상식을 가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사람이 됩니다.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기쁘게 여기는 그 사람이 되는 것이 필연한 일입니다. 왜 기쁘게 여기는가? 나를 사랑하시는 전능의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위해서 하시는 역사이기 때문에 기쁠 수밖에 없고, 또 그분이 우리의 실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밖에 없고, 또 여러면으로 우리를 양육해서 온전하고 구비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우리를 점점 성장시켜서 자타로 하여금 정확한 인정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의 신앙에 정확한 인정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마지막은 우리를 높여서 좀더 큰 일을, 중요한 일을, 가치 있는 일을, 영광스러운 일을, 값비싼 일을 맡기시기 위해서 시험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시험은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87041050)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그 신앙생활이 계속 되야 성공을 하는 것인데 게을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방해가 있을 때에 우리는 그 방해를 신앙의 방해로만 생각하고 이것 때문에 신앙생활을 못하게 된다 그렇게만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은 아주 잘못입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그 모든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것인데 그 모든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방해되는 그런 것은 신앙생활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연단을 시켜서 우리 신앙생활이 어떤 형편에서라도 요동치 않고 그대로 계속하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무엇이든지 옳은 일을 시작해 가지고, 옳은 일 그것이 신앙생활인데, 옳은 일을 시작해 가지고 할 때에 그때에 옳은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어려움이 오면 사람이 어렵게 하든지 물질이 어렵게 하든지 뭐 자연 이 천연 이 자연, 일월성신, 모든 우로 비나 이런 바람이나 어떤 것이 신앙생활을 계속하지 못하게 할지라도 못하게 하는 그런 것이 닥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이랬습니다. 온전히 기뻐하라. 왜 그런 것이 닥치는데 온전히 기뻐하겠는가? 그 이유는 그것이 신앙생활을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신앙생활에 더 힘을 쓰도록 해 가지고 온전한 신앙을 갖추어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니까 나를 연단시키고 연습시키고 온전케 하기 위해서 오는 모든 시험들이기 때문에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그저 시작만 하고 버리지 말고 시작했으면 옳은 것이면 그 시작한 일을 계속을 해야 거기에서 좋은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85053151) 9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 말은 너희들이 시합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말 한가지입니다, 시합 만나거든. 시합 만나면 뭣 때문에 기뻐합니까?

(87012020)


'시험을'
시험치는 목적은 시험치는 사람에게 자기의 나쁜 점을 알려 그 사람이 그 나쁜 점을 고쳐서 온전케 하기 위하여 시험치는 것입니다. 또 시험치는 사람에게 자기의 좋은 점을 알려 그 사람이 그 좋은 점을 견고히 잡도록 하기 위하여 시험치는 것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뻐하라는 말은 부분적으로 기뻐하지 말고 일방적으로 기뻐하지 말고 전부 다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백 점으로 통과할 수 있는 그런 시험이 올 때도 기뻐하라. 왜? '이 면은 백 점이다. 이거는 누가 뭐라고 한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굳게 잡고 놓지 말아라.' 이러기 때문에 기뻐해야 됩니다. 또 시험을 닥쳤는데 하나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 시험도 기뻐하라. 왜? 그 시험은 자기가 그렇게 완전 허무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알려 그 면을 갖추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시기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88042401)


'내 형제들아'
'내 형제'는 살아 있는 전 성도들을 다 총칭해서 한 말입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여러 가지'는 말 시험도 있고, 욕심 시험도 있고, 성격 시험도 있고, 이성 판단 시험도 있고, 정서 시험도 있고, 평가 시험도 있고, 기쁨 시험도 있습니다. 이런데 주님이 모든 것을 다 시험해서 틀린 것, 모자라는 것, 없는 것은 알리고 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옳은 것이 있으면 옳은 것도 알리고 온전한 것도 알리고자 하는 여러 가지 시험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모든 시험이라는 것은 안에 있는 실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실상을 드러내는 목적이 그 사람을 꺾으려고 창피를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기르기 위해서 속에 있는 내용이 삐뚤어졌으면 '삐뚤어졌다' 또 옳으면 '옳다' 하고 드러내는 것이니 이는 사랑하시는 주님이 믿는 자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자는 어떤 시험이라도 기뻐해야 됩니다. 이런 시험도 기뻐하고 저런 시험도 기뻐하고 낙제가 돼도 기뻐하고 합격이 돼도 기뻐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은 자기 자체의 전부가 기뻐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기쁘다고 하는데 속으로는 근심입니다. 또 입도 마음도 행동도 기뻐하는데 양심은 근심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지식도 기뻐해야 되고 성질도 기뻐해야 되고 마음도 기뻐해야 되고 또 입술도 기뻐해야 되고 모든 얼굴도 기뻐해야 되고 양심도 기뻐해야 되고 성령도 기뻐해야 되고 이래야 그 기쁨이 온전한 기쁨입니다. 그러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 속에는 자체 온전, 시험 온전 두 종류가 들어 있습니다.

(88042402)


'내 형제들아'
'내'하는 것은 야고보가 이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에 야고보 자기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요 '형제들'이라 하는 것은 동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화평함'에서 '평'은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로나, 하나님과의 관계로나, 소망으로서나, 지능으로서나 모든 것이 다 꼭 동등, 평등인 것을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야 합니다. '내 형제들아'하는 것은 야고보가 이 성경을 기록했는데 야고보와 믿는 사람들은 꼭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 히12:14 : 화평함과

(88042620)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시험을 받는다 말은 쉽게 말하면 어려움을 만난다 하는 말이고, 또 어떤 어려움이냐 하면 자기 속에 있는 그 진상이 나타나게 하는 그런 어려움이요, 진상이 나타나서, 자기는 공연히 한 닢 밖에 안 되는 사람이 아주 만 원짜리나 되는 척 그렇게 하면 그런 것을 시험으로 인해서 너는 네가 아무리 잘난 척하고 또 네가 의로운 척해도 너는 한 닢 밖에 안 된다 하는 것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속에 허무한 것이 허무한 것으로 나타나고 또 그 속에 아주 다른 사람이 허무하게 봤지마는 실상은 참 실력 있는 그것이라면 실력 있는 것이 실력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그 속에 진상이 나타나는, 나타나게 하는 것을 시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시험은 이제 자기의 진상이 나타나니까 이전보다 존귀해지는 사람도 있고 또 이전보다 천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연히 실력 이상의 위치를, 대우를 가져 있던 사람은 이 시험으로 인해서 뚝 떨어져서 이제 자기 실력에 합당한 위치와 대우를 받게 되고 또 다른 사람이 인정치 안 했는데 이 시험으로 인해서 실력이 있게 되면 이전보다 높은 대우와 인정을 받게 되는 이런 대우 문제를 인해서 닥치는 것이 시험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시험이 닥치는 거, 믿음의 시험이 닥치는 것이 믿는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라 이렇게 인정하는 인정이 달라집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아, 그 사람 그런 줄 몰랐더니마는 참 허무하다. 또 그런 줄 몰랐더니마는 아, 그 사람이 참 믿음에 실력이 있다. 또 하나님도 네가 이러니 네게 대해서는 이 대우가 합당치 않느냐? 하나님은 알고 계시지마는 본인이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니까 오해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 주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그 대우를 모르고 '그 사람 예수를 잘 믿어도 어째 그런고? 참 하나님도 이상하다'. 이래 돼지고 또 '그 사람은 예수님을 못 믿는데, 잘 믿지도 않는데 또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왜 이렇게 복을 줄까? 하나님도 이상하다.' 이렇게 돼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시험해 가지고 본인이 자기를 바로 알도록, 또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바로 알도록, 하나님이 그에게 대해서 대우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하는 것을 알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험은 과거에 쓰여 속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현재와 미래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험을 앞에다 두고는 어쨌든지 이 시험에 통과할 수 있도록 하려고 자기가 준비를 하는 것이고 또 이 시험이 현재가 되었을 때에는 이것은 과거에 자기가 미래에 있는 시험을 두고서 준비를 잘했나 못했나 하는 그것이 이 현재의 시험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이 시험이 벌써 과거가 되어졌을 때에는 그때는 벌써 판정이 났습니다. 이 시험이 과거가 되어졌을 때에는 판정이 나서 이제 이 시험으로 인해서 '허무하다. 아, 실력 있다.' 그만 천해지고 높아지고 하는 것이 벌써 그것이 판정이 났습니다.

이 시험이 회고적으로는 그 실력이 드러나서 가치와 대우에 결정이 되어진 것이고 이 시험이 현재가 될 때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것이 이제 이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비밀이 드러나게 되고 시험을 미래에 두고는 어쨌든지 이 시험에 잘 통과가 되도록 준비케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시험은 미래에 두고는 준비케 하는 것이고 또 현재에 있어서는 자기의 그 진상을 자타가 알도록 하는 것이고 이 시험이 지나가고 나면 벌써 그 사람에게 가치와 대우가 결정됐습니다. 그걸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것은 현재의 시험입니까 미래의 시험입니까 과거의 시험입니까? 요건 현재의 시험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왜 기쁘게 여겨야 할까요? 이제는 자기의 진상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걸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거는 자기가 어떤 자인지 자기의 진상이 이제는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기쁘게 여겨야 됩니다. 그 진상이 드러나면 그 다음에 무엇이 따라오지요? 인정과 대우 문제가 따라옵니다. 아, 되지 못했는데 공연히 된 줄로 알고 그렇게 망령되면 안됩니다. 이제 이로 인해서 드러난다 말이요.

기쁘게 여기라는 것은 이제 이 시험이라는 것은 저울과 한가지라, 저울로 다는 것이라. 내가 몇 냥쭝이나 되는가 보자. 이 저울에 달아보면 그 중량이라 하는 것은 사정없이 딱 딱 들어맞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가 중량이 얼마나 되는지,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진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돈을 어느 정도 가치 있게 여기는지, 내가 진실이 얼마나 있는지, 정직이 얼마나 있는지, 사랑이 얼마나 있는지, 내가 얼마나 세밀한지, 얼마나 똑똑한지,

사람들을 접촉해 보면 전부 장승이라, 장승. 사람을 접촉해 보면 장승이라. 장승은 뭐가 장승이냐 하면 나무를 사람같이 깎아서 눈 그리고, 코 그리고, 귀 그리고, 입 그리고, 그려 놓은 그게 장승이라. 말도 못하고 생각도 감각도 없고 얼른 보면 사람 같은데 사람이 아니라 말이요. 장승이라. 감각이 없어요. 아무 감각이 없어요.

이런데 그저 날이 새니까 밥 먹어야 되겠고 또 밥 먹을라 하니까 일해야 되겠고, 일하니까 또 품 받아 가지고 밥 먹고, 일하고 밥 먹고 자고 일하고 밥 먹고 자고 그러다 죽고 이러니까 너무 허무해요. 이러니까 사람을 접촉해 보면 너무 허무하고 흐리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더불어 사는 것이 괴로워 죽어요. 뭐 내가 이거 하나 하나 세밀히 말해 보면 캄캄합니다.  도무지 진동이나 변동이나 생명에 움직인 역사가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기형으로 하나 둘 그것만 알아 가지고 그 면만 힘쓰고, 그래서 저는 하나밖에 모르니까 그 면만 힘써 가지고 그 면만 크니까 귀만 커서 이제 귀에다 대고 다른 건 다 작아서 나중에 귀만 자꾸 크니까 귀가 채기짝만 합니다. 이건 귀만 들어 붙었어요. 귀를 대보고 그 사람 크다, 아주 대인이라. 귀를 대보고 내 귀만 못하네. 이 귀만 가지고 보니까 그 사람도 내 귀보다 작네. 전체를 보면 네 체격의 그 체계에는 귀는 요만해야 될 게 그렇게 크니까 병신이 아니가, 등신이 아니가? 이걸 알아야 되요. 그걸 알리기 위해서 시험이 있는 것이라.

아, 이거는 눈이 아니면 못 보는데 딱 보여주는데 안 보입니다. 왜 못 보지요? 허, 이놈이 귀를 가지고는 암만 해도 안됩니다. 귀 이거는 암만 커도 못 봅니다. 눈이 없어 못 봐요.  이렇게 자기의 진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어떠한 자라는 것을 알기 위한 시험이요 그 시험이 지나고 나면 그 다음에 대우 문제가 나옵니다. 자기도 '아, 나는 요만한 가치밖에 없는 거다. 나는 참 허무한 자다. 나는 참 이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실력을 많이 길렀다.'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을 그렇게 인정하고 대우합니다.  

(79082820)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이런 환경 되면 이렇게 어렵고 저렇게 환경 되면 저렇게 어렵고 이런데 실은 꼭 같이 어렵고 꼭 같이 쉽습니다. 우리는 지식이 일방적이라서 이렇게 우리를 잘 한다고 추켜 올리고 이렇게 보호하면 그것은 어려움이 아니고,
그 총을 가지고 예수 믿는다고 이렇게 핍박을 하면 어려운 줄 알지만은 그 어려움이나 저 어려움이나 다 같은 어려움이요. 그 어려움이 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지 아니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에 활용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82030440) 8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시험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려고 할 때에  신앙생활을 계속하기에 어려움이 되는 그런  모든 것을 가리켜서 시험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어려움은 여러 종류가 있겠는데 크게 나누면 좋아서 신앙 계속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나빠서 신앙  계속하기 어려운 그런 것도 있고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든다면 물질이라고 하면 물질이 너무 많아져서 신앙 계속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물질이 아주 매우 가난해져서 계속 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자기 모든 일이 다 형통해짐으로 그만 사람들은 교만해져 가지고 신앙생활 계속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또 모든 것이 다 막혀지고 욥과 같이 그렇게 어려움이 되므로 신앙을 계속하기 어려운 그런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고, 그것을 분류한다면 물질로 어려움, 신체적으로 어려움, 활동적으로 어려움 또 이 모든 인인 관계의 사회적으로  어려움, 가정적으로 어려움 뭐 어려움이 수가 심히 많겠습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러나 그런 일을 닥칠 때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은 껍데기로 기쁘게 여기는 그런 일 하지 말고 참 거기 대한 것을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똑 바로 알고 바로 알면 따지고 따지고  암만 따져도 그 기쁨은 없어질 수 없는  그런 기쁨이 있기 때문에 그런 기쁨을 가리켜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말하면 그것이 지성적인 기쁨을 가지라, 지식을 가지고 기쁨을 가지라,  논리적인 기쁨을 가져라. 그러면, 이치에 닺는 그런 기쁨을 가지라 이런 말인 것입니다.

잘못하면 사람들은 여기 유의하지 안하면 그 사람이 뭐 기뻐한다는 것이 바람에 나는 거와 같이 조금만 환경이 변해져도 그만 기쁨이 슬픔 되고 고통 되고. 뭐 그렇게 변해지는 그런 것은, 그 기쁨이 변해지는 것은 그것은 다 진실한 온전한 기쁨이 되지 못하고, 껍데기 하나의 감정 또 그렇지 않으면 자기 주관에 맞으니까 기뻐하는 자기 주관대로의 기쁜 그런 기쁨은  다 온전한 기쁨이 아닙니다. 기쁨이라는 것이 객관이라도 하나님적인 기쁨이라야 됩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 진리로 인한 기쁨 그런 기쁨은 변동이 없습니다.

어려움이 오는 것을 왜 기쁘게 여기느냐 하면 그 어려움이 믿음을 연 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을 시험하고, 네가 믿나 안 믿나 하나님깨 믿음을 시험해 보시고, 또 하나님만 알 것이 아니리 본인에게 데가 믿는 지 안 믿는지 네가 알아라' 본인 이 알도록 하고, 또 제삼자 다른.사람 이 그 사람을 보고 저 사람 믿음 있는 사람이라 믿음 *없는* 사람이라 이래. 우리는 인인성사를 하기 때문에 믿음 없는 사람을 믿음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날이면 그 사람 인정한 그 모든 경영과 역사는 다 실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본인이 알아야 되겠고 또 제삼자들이 알아야 되겠고, 뭐 하나님은 하나 안 하나  다 알고 계시지만 인간들이 알아야 되기 때문에 그 믿음에 대한 시험을 주는 것입니다. 시험치르는, 것은 이 사람이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을 치러 가지고 그 사람을 등용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어느 정도인지 하는 그 사실을 본인이 알고 다른 사람들이 알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시험을 만들어서. 힘들여서 시험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닥치게 하는 것입니다.

(85061010) 9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러기 때문에, 모든 시험을 당할 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깁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요. 이 사람에게는 세상이 해하지 못하고 이루어지는 건 뭣만 이루어지느냐 하면 인내만 이루어집니다. 인내만 이루어지다니? 이런 때도 주님 사랑하고 저런 때도 주님 사랑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한번 `얼마나 네가 나를 사랑하는고?'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시험해 보실라고 이라는데 여게도 사랑 저게도 사랑 백 가지로 백 군데도 시험해도 사랑 만 군데로 시험해도 사랑 언제든지 주님 사랑 변치 않는 그와 같이 나도 주님 사랑 변치 않기를 목표하고 이제는 내가 이대로 출발한다.

이렇게 딱 가지고 요것을 표준을 삼고 이렇게 살기로 자기가 작정하고 자기가 어떤 배경을 가졌으며 어떤 소속을 가졌으며 어떤 입장을 가졌으며 어떤 처지를 가졌으며 자기의 모든 환경 배경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똑똑히 깨닫고 주님으로 더불어 흰옷 입고 동행하는 이 생활을 하기로 이 자리에서 자기 표준을 여게다 두고 정해 놓고 나서면 바쁠 것이요. 분망할 것이요.

* 벧전1:6 :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86050840) 9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러므로, 기독자들은 자기에게 오는 난제는 어떤 난제든지 치료에 필요한 치료하기 위한 난제든지 자기를 좀 모든 면으로 성장 승격하기 위해서 오는 난제든지 난제이니, 이 난제에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똑똑히 깨닫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은 충분히 알고 기쁘게 여기라 말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84070653) 3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모든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것이 믿음을 연단하는 것이다.' 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완전한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완전하신 그 능력이 만들어 놓은 것은 타지 않는다. 그 능력이 만들어 놓은 것은 세상이 태우지 못한다. 해하지 못한다. 왜? 그것이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한 고차원의 것인데, 근본이 거기 있는 것인데 그것이 피조물들에게 피해를 받습니까?

이러니까, 네가 속고 있는 거, 사이비한 것에 속고 있는 거, 아니면 없으면서 있다고 아는 거 그것이 이제 드러나 가지고 그게 다 타서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거는 마치 금을 불로 연단할 때에 잡것이 다 타 버리고 순금만 남는 그보다 더 귀하다. 더 귀하다는 말은 가치 있다는 말 아니오. 금을 불로 연단해서 잡철이 다 타고 순금만 남는 그보다도 더 귀하다 그 말은 그보다 더 정밀히 정선돼 가지고 하늘나라에 간다 그 말입니다. 하나도 섞여 있지 못해요.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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