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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 성경:40마태복음05:41
 

마5:41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라, 속옷을 달라고 하거든 겉옷까지 주어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향하라' 하는 이 말씀들은 강한 복수성을 말한 것입니다. 강한 복수성이요 강한 투쟁성을 말한 것입니다. 죄악이 무슨 방편을 가지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죄에게 패해 죄에게 피동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죄악이 올 때는 무엇으로 올지 모릅니다. 재산을 다 뺏는 죄악으로 올지 또 생명을 끊는 죄악으로 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소유를 다 뺏기고 생명을 다 뺏기더라도 그 죄악에게 종이 되지 말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항하지 아니하는 무저항주의자가 아닙니다. 무저항주의자가 아니고 굉장한 저항주의자입니다. 예수님의 저항은 영원히 저항했기 때문에 영원히 이기고 패전하는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88041002)


'누구든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이 말은 로마 병정들이 유대인에게 한 것도 되겠으니 우리에게도 복음입니다. 이 말씀의 원리는 타인의 내 전 힘, 노력을 원수가 다 빼앗을지라도 성결 내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의 일생을 헛수고 할지라도, 노력의 종이 될지라도 성결만은 뺏기지 말아야 합니다. 억울한 수고와 손해 본 노력만 보면 실패입니다. 그이가 요구 전에 그이에게 주어야 할 것을 준비하고 있으라.

예수님의 교훈뿐 아닙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성결 지키는 데는 그랬습니다. 땅의 과학 시설의 역사가 깊어갈수록 장성한 것 보여지나 기독교는 점점 퇴보합니다.

초대교회 아벨은 생명 내어놓고 진리 지켰지 다른 것으로 안 지켰습니다. 만일 아벨이 하나님이 주신 성결보다 생명을 귀히 여겼다면 성결 내놓고 삶을 얻을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생명 내놨으니 만고의 예배 표준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죽음으로 성결을 지키는 것 즉 기독교의 신앙 표대는 아벨의 신앙원리입니다.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성결의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는 성결지키기 위하여 300년동안 하루해와 같이 긴장했으니 그 긴장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므로 성결 지키는 데는 긴장이 필요합니다. 일순간도 우리는 긴장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가 삼백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하나님과 나누어진 때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성결을 내어 준 때가 없단 말입니다. 삼백년간 긴장한 것이 얼마나 위대하냐! 다음으로 우리의 신앙 표본인 노아의 성결 볼 때에 120년간 하나님이 명한 그 명령 그대로 지켜서 성결을 파수했습니다.

120년 고독 걸음 걷기에 온 세상에 유혹 많았지만 성결 내주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구별하여 살아서 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결 지키는 고독 각오하고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120년 노아는 물들 길이 많았으나 고독한 길 걸어가면서 구별의 생활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결 지키는 데는 주만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 아니면 성결 지키지 못합니다. 노아는 120년을 하루와 같이 지냄은 하나님과 관계가 땅위의 모든 관계보다 깊었고 땅위의 유혹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부절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성결 지키지 못합니다. 온 천하에 자기가 제일로 기독교는 알아야 합니다. 자기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부인 미색에도 자기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러운 음란한 이용물로 쓰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죄악에게 내주어서 더럽게 음란의 이용에 내주지 않는 구별했으니 성도는 자존심이 강해야 합니다. 온 천하가 내 몸 하나 내주면 산다해도 내줄 수 없습니다. 주님 외에는 내 몸도, 마음도 내주지 않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자기를 금액에 정욕에게 내준 자는 정신없는 자요 하나님의 긍휼 받지 못한 자입니다. 만세전에 기억해서 택한 자기입니다. 요셉은 자기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신불신간에 부정행위 있으면 결혼을 말아야 합니다. 만일 결혼하면 반드시 불행합니다.

믿음 후 범죄하면 주의 사업에 일하나 거리는 멀어집니다. 결단코 하나님이 가깝게 잡아 써주지 않습니다. 다윗이 의로웠으나 범죄 후 행사는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과 같이 자존심이 강해야 합니다. 온 천하를 희생시켜도 내몸과 내영 길러서 주께만 바쳐야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존귀성을 알아야 하나님의 아들인 것 알아고 성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7번 뺏겼으나 성결 뺏기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에는 물만 있으면 재산입니다. 이삭은 이것 내주어도 성결은 안 내어주었습니다..

주님은 어떤 성결을 파수했습니까?
마4:1- 마귀시험에 성결을 파수하였고 사랑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매 성결을 파수하였고 왕 세우려고 높이 들어도 왕의 권세 물리치며 성결을 파수했습니다.
눅10:25, 요8:6 바리새교인들이 주님 송사하는 가면을 가지고 농락해도 성결 안 뺏겼습니다. 마26:49-50 가룟 유다 암호로 예수님에게 입맞춰도 예수님은 친구라 하고 다 버리고 방해해도 소망 요동치 않았습니다.

마15:10 예수님을 시기하여 송사해도 성결 안 내 주었습니다. 조롱, 훼방, 십자가에 못박고 길가는 자 "유대인 왕 평안하냐?" 조롱하여도 성결 안 내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뒤를 따라갈 각오 안하면 성결을 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표준이 빈약한 정도에 있었습니다.

보편적 신앙 본뜨자 하나 성결은 죄없는 완전한 성결로 준 표준입니다. 이 표준 잡고 우리가 연약하여 가지 못할 때에 죄인으로 나타나고 이대로 이루어지면 감사해야겠습니다. 이 표준 안 가지고 만족하고 교만해지고 자기에게 손해 본 일까지 하려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결이 말하는 대로 흠과 티와 주름잡힘이 없는 자로 자기가 자기 죄악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자로 이제는 둘도 데리고 가지 말고 자기단독의 성결 가지고 나가는 것이 좁은 길 걸어가는 올바른 길입니다. 몸, 소유, 생명, 인권 다 내주나 성결만 내주지 않을 각오 가지고 쉬지 않는 긴장으로 쉬지 않는 고독의 각오로 자존심 강하게 날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야겠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미운 사람 때문에 성결 가지지 못함은 초계단입니다. 이는 걷기 쉽습니다. 미운 사람 위해서는 피 흘려도 억울함도 견디기 쉽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사랑하는 자 데리고 갈라 하는데 시험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단독이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라도 끌고 가려 할때는 성결에 좀이 먹고 인간의 방식이 나오는 것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털끝만한 것도 가지고 못가고 자기의 양심의 죄악 발견하면 주님 피에 고해서 사함 받고 천국 그대로 들어가지 못할 것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 표준은 어리석어 인간 스스로 위로 받았습니다. 이것 가리켜서 강도의 굴혈이라했습니다. 이런 일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죄 가운데 있다고 낙망하지 말고 옮겨 서야 합니다. 옮길 대 구원이 있고 긍휼이 있고 죄 끊고 비로소 천국이 자기 것이라는 것 표준입니다. 이렇게 되어짐이 은혜입니다. 궁극적은 구원의 도인 것입니다. 누가 죄 안 짓는 자가 있느냐 죄 지어도 주의 피가 있으니 하는 위안제는 벗자. 죄를 아주 버려야 천국을 갑니다.

(551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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