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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  
■ 성경:48갈라디아서0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것은 법적으로 박혔다 그말입니다. 법적으로 못박힌 것입니다. 자기는 살아 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자기 못박힌 것이라 그말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러면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는 살아 있는데 이건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지금 이 살아 있는 것은 예수님의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살아 있다 말입니다. 예수님의 것이 살아 있다, 예수님의 것으로 살아 있다 말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에 사는 것은'
'내가 육체 가운데 산다' 하는, 내라 하는 이 나는 누구입니까? 고거 하나를 바로 알면 또 아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은 주의 것 된 내입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육체 가운데 산다 말은 지금 죽었는데 안 죽고 있는 그자 속에 산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 심신으로 지금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살고 있는 거 이것은 나는 죽었는데 어째 살고 있느냐? 죽었는데 살아 있는 자이니 예수님의 것 되어 살아 있는 자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내가 지금 사는 것은 믿음 안에서 산다 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이 (일곱 가지) 때문에 사활하신 그 사활은 내 대신 사활했습니다. '사'라 말은 죽음이라 말이요 '활'이라 말은 산 것이라 말입니다. 예수님이 죽고 사신 그것은 곧 내 대신 했기 때문에 그것은 내것이라, 예수님의 사활로 (일곱 가지) 대속을 이룬 그 건설은, 설정은 내것인 것을 믿는 그 믿음, 또 그 대속이 내것 됐으니까 나는 주님의 것 된 것을 믿는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사활로 설정해 놓은, 건설해 놓은 (일곱 가지는) 나 위해서 만드셔서 나에게 은혜로 주시니까 그것을 내것 만든 믿음, 또 그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이 내것 됐으니까 나는 주님의 것이 된 것을 믿는 믿음, 또 주님의 것이 된 나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서 나를 붙들고 당신의 지체로, 당신의 몸으로, 당신의 성전으로, 당신의 것으로, 값 주고 사신 당신의 종으로, 내 주장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당신의 것으로 당신이 내 안에서 사시는 이것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몇 가지 믿음을 말합니까? 세 가지 믿음 안에서 삽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대속이 내것된 것을 믿는 믿음, 또 나는 주님의 것 된 것을 믿는 믿음, 주님의 것 되어 있는 나는 내가 주장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주님이 내 심신을 주장해서 사시는 것을 믿는 요 믿음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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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못박힌 것은 주님이 못박혔지 내가 못박혔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내 대신 못박혔습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의 율법에서 내가 범죄한 것을 예수님에게 다 정죄를 해 가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저주의 형으로 못박혔으니까 그것은 내가 못박힌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것은 율법으로 못박혔습니까 은혜로 못박혔습니까? 율법으로 못박혔습니다. 이 율법은 하나님의 공심판의 법입니까 사심판의 법입니까? 공심판의 법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러면 공심판의 법에서 죽었는데 내가 살아 있는 거는 뭐입니까? 예수님의 것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것으로.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리스도께서 지금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이 지키는 공법에서 죽은 것은 내가 죽었습니까 예수님이 내 대신 죽었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이 됩니까? 예수님의 죽으신 것이 내가 죽은 것이 됩니다. 그러면, 내가 죽었을 때 그때 죽은 것은 죄와 사망과 마귀는 죽어버렸고 나는 살았습니다.

그러면, 그 죽은 자는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내가 죽었는데 내게는 죽은 것은 하나도 없고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만 내가 죽었습니까 예수님이 내 대신 죽으심으로 내게 죽은 것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내 대신 죽으심으로 내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는데,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에 내게는 죽은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옛사람이 죽었는데 마귀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마귀가 죽었고, 죄가 죽었고, 악습이 죽고, 악성이 죽었습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악이라는 것이 죽었습니다. 자기 중심의 영, 자기 중심의 원죄성, 자기 중심의 본죄성이 죽어버렸습니다. 죽어버렸으니까 내 심신은 죽었습니까 남아 있습니까? 그러면 이 대속을 받기 전 심신과 대속을 믿음으로 받은 후에 내 심신이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탈색이 됐습니다.

무엇이 탈색되었습니까? 악이 하나님의 법으로 죽었습니다. 탈색이 되어 악령 악성 악습은 내게 상관없고 죽어버렸습니다. 그러고 예수로 다시 살았습니다. 예수로 살았는데 이제 탈색이 되고 그대로 있습니까 다시 염색을 했습니까? 염색을 했습니다. 뭘로 염색했습니까?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으로 염색을 했습니다. 그러면 일곱 가지 대속으로 염색했으니까 이제 염색된 나는, 과거에는 악으로 염색되니까 악으로 산 것처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곱 가지 대속으로 염색했으니까 뭘로 살게 됩니까? 일곱 가지 대속으로 살게 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말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가진 이 대속을 나에게 입혔기 때문에, 이 대속으로 염색된 내 속에는 주님이 주인이기 때문에 주님이 내 안에서 살아서 역사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이 심신을 가지고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대속하신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그러면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 하는 이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인데 어떤 것을 믿는 믿음입니까? 내 대신 죽으심으로 일곱 가지 대속을 나 위해서 설정했기 때문에 이 설정은 내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일곱 가지 설정을 입어서, 일곱 가지 설정으로 염색 들여서 일곱 가지 설정이 돼 버렸습니다.

흰베쪼가리에 푸른 물을 들여놓으면 완전히 푸른 거와 꼭 같이 푸른 걸로 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제 하나님과 완전 결합으로 물들여 버렸고,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 통과로 물들여 버렸고, 죄를 이긴 자유로 물들였고, 마귀를 이긴 자유로 물들였고, 사망을 이긴 자유로 물들였고, 하나님을 향한 진리의 영생 영감의 영생으로 물들였기 때문에 그게 돼 버렸습니다.

분석하면 속에 인적 요소가 있지마는 이제 보이는 전부가 염색돼 있는 것은 다 신적 요소의 완전 일곱 가지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만 쏙 빼서 탈색만 해 버리면 순전히 인적 요소의 영육인데 그냥 보기에는 꼭 신적 요소라 그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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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는 계시의 지식과 지혜가 되어야 되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모형의 그 지식, 그분에게 피동 되는 그 지식, 그분의 지식이 우리에게 와야 됩니다. 그분의 지식이 우리에게 와야되고 그 분의 지혜가 우리에게 와야 됩니다. 그분의 지식과 지혜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를 살려서 그 지식과 그 지혜가 우리를 붙들고 내가 말하는데 그 지식과 지혜가 말하고. 내가 행동하고 비판하는데 그 지식과 지혜가 나한테 와 가지고서 나를 통해서 비판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말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내 안에서 역사하시니까 그 역사가 내 입에 말로 나온 것이니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셔 역사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말씀하신 요대로의 된 것이 주님이시요 요대로의 예수님의 모형으로 예수님을 닮은 모형을 가진 것이 사도 바울의 그이의 그 지식과 지혜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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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안에 있는 새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그 새사람이 두 가지 받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영, 그 영의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요12:49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말하는 것이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아버지가 일하시는 그 일이 내 말로 나온 것이다' 아버지의 지시를 받은 것을 말했습니다. 또 내가 스스로 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요6:57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 말은, 나로 인하여 산다 그 말은 주를 위해서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속에 능동 돼서 그분에게 피동 되어 산다 그 말입니다. 즉, 예수님의 대속을 양식 삼아서 살면, 제 마음대로 능동적으로 살지 않고 주님이 자기 안에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분에게 피동 돼서 그분이 주장하고, 그분이 세력을 받아 가지고 그분에게 꼼짝 못 하고 자유를 다 박탈당하고 그분이 자유 하시고 주권 가지고 그분이 주장하는 데에 그분의 뜻대로 살고 그분의 능력에 피동 되어서 산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갈2:20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 요12:49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 요6:57 :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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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사죄의 공로를 입을 때에 죄의 종 된 자가 죄에서 해방되어서 자유 하는 사람됩니다. 칭의의 공로를 입을 때에 무지 무능한 자가 아주 실력 있는 권위 있는 자가 됩니다. 왜? 칭의는 성신의 감화에 피동 되는 것이 칭의 이니까, 성신의 감화에 피동 되니까 그거는 전지자요 전능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화친의 공로를 입으면 하나님하고 하나가 됐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가 아니고 자기가 하나님이 됩니다.

하나님이 되는 것은 하나가 되어서 자기 안에 살아 역사 하는 이가 하나님이요 자기는 하나님이 입고 있는 옷과 같습니다. 이러니까 그 옷을 대통령이 입었으면 옷이 대통령 권세가 있습니다. 또 사장이 그 옷을 입었으면 그 옷이 사장 노릇을 합니다. 그러면, 옷이 사장이 아니지만 그 속에 있는 그 사람이 사장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옷이 대통령이 아니라 그 옷을 입은 속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니까 대통령이 입으면 대통령이 되고, 또 도적이 입으면 도적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옷과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나님의 집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하고 한 덩어리 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살기 때문에,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렇게 말했고, 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역사 하시는 그 역사가 나를 통해서 나왔으니 내가 한 말은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이다. 아버지가 말씀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는 아버지가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 하셨고, 또 사도 바울 안에는 예수님이 그 안에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우리 안에 하나님이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 하셔서 내 언행 심사를 당신이 맡아 주관하시니까, 내 한 말이 내 말이 아니고 내 말을 당신이 맡아 주관하시니까 내 말은 전능자의 말이요, 내 말은 하나님의 말이요, 내 말은 창조주의 말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서 사람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과 꼭 같은 자가 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다, 하나님의 모양이 된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던 것처럼 너희들을 부르신 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불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형상은 겉모양 아닙니까? 이러니까, 겉은 나지만 속은 주님이시기 때문에 내 언행 심사하는 것이 주님의 언행 심사가 되어지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 학2:1-3
* 요15:3 :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긋하였으니
* 고전3:16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요14:10 :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롬8:29 :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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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자기가 성경을 자꾸 말씀을 보고 읽고 요대로 실행을 하면 자기 양심이 살아납니다. 양심이 살아나면 그 양심을 성령은 붙들 수 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거리 멀어서 붙들 수 없는데 우리 양심이 살아나면 살아나는 고 양심에, 살아난 제일 거기에서 깨끗하게 양심된 고것을 겨우 성령이 붙들고 요렇게 접선 이래서, 그러면 차차 차차 그 성령과 접선이 되면 마음이 더 깨끗해져서 양심이 이래 자꾸 깨끗해지고. 그러면 그 사람이 이 타락한 마귀에 속한 이 마음이 차차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고 마음대로 변화가 되어지고 요래서 진리와 일치된 마음이 되고 일치된 행동이 되고, 영감과 일치된 마음이 되고 영감과 일치된 행동이 되고, 요것이 자꾸 돼지면 이제 하나님과 접선돼서 연결된 모든 마음의 몸의 움직임이 되고 그리 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하나님이 나를 움직여서 나는 순전히 하나님에게만 피동 되어서 살게 되는 고것을 가리켜서 참사람이요 새 사람이요,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가 살고 나는 그이에게 붙들려 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마치 이런 등이 있는데 그 등 안에 불이 없으면 그 등이 새까맣지만 그믐날 밤에 등이 암만 있어도 검지만 그 안에 불이 켜지면 그 등이 환해 불덩어리가 됩니다. 환하게 불덩어리가 되나 불은 속에 있지만 등이 불덩어리가 아니고 불만 빼 버리면 등 암만 수십 개 있어도 깜깜합니다. 안에 그 불빛이 등을 통해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마치 그 등과 같이 돼져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셔 가지고 우리를 통해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니까 전능한 그 능력이 나오고, 영생이 이래 나오고, 이래서 그 하나님이 내주하셔 가지고 우리 안에 역사하는 그 역사가 나오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보는 것이나 또 견해하는 것이나 또 소욕하는 것이나 경영하는 것어나 움직임이 전부 사람만의 움직임이 아니고 내주하신 영감이 움직이고, 영감 배경에는 하나님이 움직이셔서 이래서 하나님으로서 움직임이 되어지는 그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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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래서, 말씀 지키는 사람은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그것이 말씀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내게 있는 양심을 찾고 양심을 자꾸 길러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이거는 틀렸다 하니까 양심은 거게서 세력을 얻고 못 쓸 모든 죄악의 욕심은 다 정죄 받아서 다 깨집니다. 이렇게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려는 것이 요것이 목적이요, 자기가 말씀을 지켜서 이 말씀대로 지켜 행했다 하는 행함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요것이 행함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행하는 요 행함이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데 행함에 목적이 있는 그것은 다 율법자요 다 헛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행함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 이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 다음에는 자기에게는 뭣이 제일 선하냐? 욕심이 선하냐 감정이 선하냐 총명이 선하냐 이성이 선하냐 명철이 선하냐 지식이 선하냐? 그 모든 것보다 우리 주관에는 양심이 제일 깨끗합니다. 양심이 제일 깨끗하고 제일 맑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지키니까 이 양심을 선봉장으로 세우지 안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양심을 찾지 않는다는 거는 거짓부리 돼요. 하나님은 양심 보다 무한히 탁월해 계시는 분이십 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먼저 양심도 반대하고 양심도 싫고 양심도 맞지 안하고 양심도 자기에게 거리끼거든 어떻게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이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법칙대로 내가 행함으로 행하는 것이 말씀대로 지켜서 행동하는데 목적이 있지 안하고. 말씀을 지켜 요대로 행함으로 내 속에 모든 양심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차차 차차 꺾어지고 양심이 차차 세력을 얻고. 이 말씀대로 지킴으로서 이제는 양심을 억누르던 그 몹쓸 것들이 다 차차차 꺾어져서 쫓겨나고 물러가고 이제는 양심이 내 마음에 제법 어른 노릇을 하고,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모든 아시아에 있는 교인들이 목을 안고 울면서 가지 말라고 이라니까 '놓아라 너희들이 와 울어서 내 마음을 괴롭히느냐? 나는 예루살렘에서 내가 박해를 당할 뿐만 아니라 죽어도 마땅하다. 나는 내 마음에 붙들여서 나는 예루살렘에 죽을 줄 알고 안 갈 수는 없다. 마음에 붙들여 나는 안 갈 수 없다.' 고 마음이 무슨 마음이냐? 그 양심은, 사도 바울이 양심을 길러 놓은 그 양심은 자기의 몸과 생명이 감옥에 갇히든지 죽든지 할 것 없이 이 양심이 명령할 때에 이 양심을 거슬리지 못했습니다. 이 양심은 그 생명을 자유했고 자기의 몸을 자유했고 자기 욕심들을 자유해서 이렇게 장성한 그 양심이 비로소 하나님을 가깝게 만났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하게 친밀하게 지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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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러니까. 이 주님 만나 가지고서 주님께 인정 받을라고. 주님께 옳다 인정 받올라고, 주님이 나를 '아노라' 하는 그런 환영을 받을라고, 주님 만날라고, 주님 앞에서 주님 모시고 영생토록 평안하게 살라고, 주님은 완전히 옳아요, 참은 것이요.

사랑이요. 평강이요, 불변이요. 영원이요, 참 깨끗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그분 만남을 인해서 나도 모든 면이 좋아지고, 깨끗해지고, 발라지고, 옳아지고 이렇게 그분 만나 가지고 그분 가지고 살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배우든지 해 가지고 이 말씀대로 자기가 지켜 행하고, 뭐할라고? 지켜 행하면 상급 받을라고? 그 사람들은 전진을 잘 못 합니다. '내가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해야 상급을 받지.' 상급도 좋지만 지켜 행함으로 자신이 변화돼서, 자신이 변화돼서 주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켜 행함으로 자신이 변화되는, 그 변화되는 거기에 재미를 붙이고, 변화되니까 진리가 다 알아지고 변화되니까 주님이 더 가까와집니다.

변화됨으로 진리와 더 가까와지고, 변화됨으로 주님이 더 깨달아지고, 알아지고.

주님 만나지고 이라니까, 주님과 같이 만나서 주님 모시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지켜 행하고, 그래서 행하기 위해서 행하는 사람은 참 원통합니다.

행하는 것이 뭣 때문에. 행하는 것은, 행하는 것은 내 행위가 변화되고. 거게서 내 자신이 변화되고, 그래 변화되면, 내 마음 속에는 오만 마음이 다 있고. 오만 마음이 다 있고 양심이라는 거 하나 있고 이래 있는데, 나중에는 그만 양심화돼 버려요. 따 양심화돼요. 모두가 전부 양심화돼. 욕심이 그만 전부 다 양심화됐어. 욕심도 양심, 욕심도 양심화. 양심에 거리 끼는 욕심이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양심화되고. 말씀과, 말씀과 내 행위 와 하나가 되고, 또 말씀과 내 육체가 하나가 되고, 말씀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고, 말씀과 내 양심이 하나가 되고, 그러면 그때의 그 사람이 누구 인가? 그 사람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참자기요. 새사람의 참자기입니다. 이러면.

그 사람은 영감된 사람입니다. 이 영감된 사람, 영감된 사람이 되면 그때에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주님은 자기 안에 있고.

그러니까, 그리 되면 말에 대해서 주님이 내 안에서 하지 안하는 말은 하고 나면 께끄름해서 견디지 못할 거고, 토해 내트려야 되고. 회개을 해야 되겠고, 주님이 내 안에서 말씀하심으로써 내가 그로 인해서 말하고. 주님이 내 안에서 움직이시므로 그로 인해서 내가 움직여지고. 이래 가지고서 이제 주님은 내 안에 내요. 참 내 생명이시요 평강이라. 이렇게 되기를 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라 하고. 뭐 하라고? 알아서 행할라고. 행해 뭐 할라고? 자기 행위가 변화될라고.변화돼 뭐 할라고? 자신이 변화될라고. 변화돼 뭐 할라고? 자꾸 자기, 차차차 자신이 변화돼서 양심과 변화되면 자기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참사람이 되기를 위해서 요렇게 소망을 하고 하면 빨리 됩니다. 속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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