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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요약  
■ 성경:01창세기03:01-24
 

창03:01-24

*전체요약
안식일에 대하여 안식일은 토요일이 안식일입니다. 7일 중 마지막 날입니다. 처음에 안식일은 1차 창조가 끝나고 난 후 안식일입니다. 6일 동안 창조가 마치고 끝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2차 창조가 끝나고 난 후에 있습니다. 1차 창조는 진동될 나라요, 2차 창조는 진동되지 않은 나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 만에 부활함으로 다 이루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그날부터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그 새벽부터 주일입니다.

안식일은 무엇 하는 날인가? 복 주시고 거룩한 날입니다. 복 주시는 데는 창조만 받았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생육하고 번성한 것을 안식일에 주었습니다. 또 한 가지 거룩하게 합니다. 창조한 그 모든 것을 구별해서 물에 있을 것 물에 있고 하나님은 하나님 자리, 피조물은 피조물 자리에 있도록 했습니다. 안식일은 복 주심과 구별하는 것 주었습니다. 2차 창조 우리에게 이루시고 이 주일날은 2차 창조함 받은 것을 복 주고 거룩하게 하는 것을 여러 가지 은혜 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는 안식일 지켰습니다. 부활하신 후 주일 지켰습니다. 복 주신 것은,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주일날 변화했습니다. 이것은 안식일이 폐해지고 주일이 됨을 알리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변화 받는 것을 주일날 되는 것 보이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예루살렘 나귀 타고 올라간 것은 만왕의 왕의 상징인데 그날도 주일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시민권도 주일날 받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부활한 날이 주일날입니다. 죽고 살아난 은혜가 주일날입니다. 또 부활하신 은혜가 주일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 받을 때도 주일날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 오셔서 큰 행사 다 주일날 받았습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 세례 받으신 것이 주일인지 아직 연구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새 나라에 된 일이 다 주일날 했습니다. 이 주일은 특별한 은혜 받는 날이니 주일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이 주일을 지킬 때에 6일 동안 네 모든 일을 힘써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했습니다. 6일 동안 네 일은 무엇입니까? 육신의 일입니까?

주일은 예배당 고치고 주를 위한 일은 상관없습니다. 또 주일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주일날 해도 상관없습니다. 또 생명을 구하는 것은 주일날 해도 됩니다. 의논이 분분합니다. 어느 것을 표준삼겠습니까? '주일날 너희들의 양이 구렁텅이에 빠졌으면 건지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생명에 관한 문제는 주일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해석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릅니다. 틀렸으면 큰 일입니다. 만일 양을 건지는 일은 주일날 해도 관계없다 말입니까?

'너희들이 물질인 가치 없는 양도 주일날 살리지 않느냐 나는 피로 값 주고 산 너희를 주일날 구원 못 하겠느냐' 안식일은 인자 때문에 났습니다. 인자는 무엇입니까? 만유주 여호와가 인자 몸 입고 온 것입니다. 이 안식일은 인자가 주인입니다. 인자 운동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내가 주일날 일함은 사욕을 위함이 아니요 영원한 이 운동 위하여 일함입니다. 주일날 일함은 영혼 구원하는 일 외에 못하는 것이 되겠다, 또 육신에 생명에 관계된 일 할 수 있겠다 합니다. 어느 것을 취하겠습니까?

그런데 또 제자들이 안식일날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은 타작과 같은 일한다 할 때 인자는 안식일 주인이라 했습니다.(성전에 떡 먹는 일 말하고). 모든 것은 의도 되고 죄도 됩니다. 모든 적은 것은 큰 것 위하여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그 행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경중을 말합니다. 다윗이 같이 가는 동지와 같이 갈 때 진설한 떡을 먹었습니다. 제사장만 먹는 떡을 다윗이 먹었으니 잘못이나 하나님이 다윗을 데리고 일하시니 이 일은 여기에 제재받지 않습니다.

불?초를 피우지 말라, 이것은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한 말입니다.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 이 율법이 상관없습니다.

예1) 5가지 뜻이 있다고 하면 큰 뜻을 위하여 4가지 있고 둘 뜻 이루기 위하여 그 나머지가 있습니다. 1, 2, 3, 4, 5를 서로 위하여 있습니다.

예2) 남의 서랍에는 손대지 말라 했습니다. 군(郡)에서 나와서 조사하러 왔습니다. 이때에는 남의 서랍에 손댈 수 있습니다. 이 법이 하나님께는 도달치 못합니다. 침략치 못합니다.

성경에 담대하라는 담대는 일조일석에 된 것 아닙니다. 여러 수십 가지의 계명 지키면 되어집니다. 건설하라는 말씀은 그 이면에 여러 가지 지켜 나가면 건설이 되어나갑니다.

안식일은 거룩히 지키라. 6일 동안 부지런히 일하라. 육신의 일 부지런히 하라.
자기 일은, 중생된 사람의 자기 일은 자기 영 구원시키는 것이 자기 일 아닙니다. 여기 자기 일은 구원 이루는 것을 가리켜서 자기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구원을 상업에서 공업에서 6일 동안 자기 일을 하다 주일은 복 받고 거룩을 하라,

복과 거룩은 진리와 영감을 받아라. 네 구원 이루는 일하라.
예수님은, 주일날 생명을 살리는 날입니다. 죽은 자 살리는 날입니다. 모든 인생 구원하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은 이것 하시는 날입니다.

주일날 네가 눈 떰 받으라, 주일날 네가 신령한 일 하라, 성신의 감화 받아라, 성신이 주일날 진리와 영감 주는 재료 주니 6일 동안 네 구원 이루다가 주일날 피로한 영 새로워지라, 주일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워지는 은혜 주십니다.

주일날은 우리가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예수님은 주일날 일하셨습니다. 당신 구원 이루는 일 하셨는가 타인 구원 이루는 일 했는가? 우리가 주일날 일하려면 타인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 하늘의 은혜 받는 날로 정해야 하겠습니다. 주일은 내 구원 이루는 재료가 되고 원료가 되는 복을 주시니 그 두 가지 은혜 받는 날로 정해야 되겠습니다. 복은 무엇이며 거룩은 무엇인가? 복은 자체에게만 한(限)한 것입니다. 복과 거룩이 다릅니다. 복은 자기 자체에게만 좋게 되고 거룩은 대외에 모든 관계 바로 가지는 은혜입니다. 이 두 가지 은혜 전용하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자기 자체가 잘 되는, 자기의 영이 잘 자라고 은혜 받고 자기 자체가 잘 생활하는 것이 복입니다. 같은 말 같으나 거룩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구별하고 성신과 나와, 인생과 나와, 세상과 나와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에 대한 은혜요, 복은 자기 자체의 은혜입니다. 6일 동안은 이 받은 바 은혜 써먹는 것입니다.

내 자체가 온전케 하는 은혜 받았으니 6일 동안 자기 자체 온전케 하라.
그러면 주일날 일을 할까 하지 말까? 네 자체가 온전한 일이면 일을 하라, 네가 구별된 은혜이면 하라, 또 네가 남의 영혼에게 유익 주는 일이면 하라, 이것 하라 저것 하지 말라 한계를 그을 수 없습니다.

본인의 의사에 맡기라.
내가 하는 일 저 사람이 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신앙 양심에 맡겨 판정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복음을 도무지 받지 못한 지방에 갔었습니다. 거기서는 복음을 전하지 못했는데 주일날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일날 리어카에 짐을 끌고 갑니다. 이때 이 리어카에 짐을 꼭 밀어주어야 전도가 된다 하면 그 리어카에 짐을 밀어줄까요? 안 밀어줄까요? 밀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 됩니다. 부득이한 일입니다.=남의 영혼에 유익을 주는 일입니다.

부득이한 일은 하라.
이런 한계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면 해야 하는데 다 '부득이'를 붙여서 주일날 일합니다. 리어카 밀어주고 그 사람에게 복음 전했습니다. 그 다음은 그 사람에게 주일날 리어카 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내가 주일날 리어카 밀어준 것은 네 구원에 대하여 밀어주었습니다. 이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왜 주일날 리어카 밀어주었는가? 그 하나님의 법은 율법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유의 법입니다. 율법은 지키는 자의 강제요 독재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자율로 해야 합니다. 하고 싶어 해야 하고 지키고 싶어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하는 일 저 사람이 하면 안 됩니다.

예) 리어카를 밀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전도 잘 받았습니다. 내가 그 리어카를 밀어주어야 할까요 안 밀어주어야 할까요? 밀어주면 그 사람은 전도 받습니다. 전도하기 위하여는 밀어주어도 되고 타작해 주어도 된다 했으니 어느 것이 복음 전도에 유익되겠습니까? 구원 운동에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 구원 운동에는 안 밀어주는 것이 났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주일날 일함으로 모든 영혼에 유익줄까요? 주일날 일하지 않음으로 복음 운동이 유리하다면 복음 운동에 주일날 일함이 유리합니까 해로웁니까? 안 해야 유익한 이 일을 땀 흘리기까지 할까? 생명 끊어질 때까지 할까? 주일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일 지키는 계명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인 살리기 위하여 일 했습니다. 주일날 예수님은 일 했습니다.

나귀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일날 주의 일은 할 수 있으니 주의 일에 방해하는 일은 말라.
예배당 짓는 일이 주의 일이라 주일날 지어야 하는가 안 해야 하는가? 주의 일 아닌가? (집짓는 것, 예배당) 요한복음 5장 16절,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일한다 하시매 나도 일합니다. 아버지가 동하니 나도 동하고 아버지가 정할 때 나도 정합니다. 아버지가 일할 때 나도 동시에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가 일하고 그가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영안에 계시니 예수님이 일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로만 구별 맙시다. 주님 일은 그렇게 못 합니다. 사람들이 전도하는 것 주의 일 아닌가? 주의 일입니다. 그 전도는 어떤 곳에든지 어디서나 언제든지 할까?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하시니 나도 해야 합니다. 외식으로 전도하는 것은 실상은 주의 일하는 것 같은데 주를 대적하는 일 됩니다. 그러면 주의 일 이것만 잘 구별하면 주의 일에 대하여 아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구원하는 일은 하라. = 주님이 하시는 일이면 협동하여 하라.
주님이 하시는 일을 같이 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내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이 진리 깨닫고 하면 명확한 답이 나옵니다.

1. 타인의 영혼 구원하는 일이면 안식일에 하라.
2. 자체 온전케 하는 은혜, 거룩하게 하는 것, 모든 존재와 ?리를 바로 가지는 일이면 하라. 주일날 일은 못하나 이 일은 하라.

주일날은 진리와 영감은 심적으로 받는 날이요 하나님이 나에게 실지로 그 은혜주시지 않는데 내가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잘못하는 방법 통하여 주시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일날을 얼마나 엄격히 지켜야 되겠는가? 주일은 일해야 된다고 해도 틀리고 안 해야 된다고 해도 틀립니다. 구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날 일하는 날이 되겠는가? 이 말씀대로 지키려면 일을 하는 날이 되겠습니까 못하는 날이 되겠습니까? 우리 형편과 사정으로는 주일날 할 일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한국교회에서는 주일날 할 일이 없습니다. 타인 구원하는 일이라면 주일 바로 지키고 하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주일날 예배드리기 위하여 차 타고 다니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주일날 차 타는 것, 교인이 이사하니 교인 붙드는 방편일까? 주일날 자가용차가 있는데 운전사가 교회에 나와서 같이 예배보면 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그 차 운전사이고 차주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 얼마든지 차 탈 수 있습니다.

또 주일날 예배보기 위하여 차 타는 일 얼마든지 해도 될까요? 하나님께 은혜받지 못하는 그 손해보다 차 타고 가서 예배보는 것이 낫다 합니다. 만일 손해일 것인 줄 알면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 것 아닌가? 그러므로 주일날 차를 탐으로 손해 많이 보고 있습니다. 자기의 구원 이루는 복과 거룩을 이룰 수 있는 타인의 영혼 유익하게 하는 것은 모릅니다. 내 예배 보는 것은 좋으나 타인의 영혼에는 손해이라 오산입니다. 4계명이 중심되는 계명입니다. 주일날을 바로 지키면 모든 계명 지키게 됩니다.


(타락된 사람의 지위)
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영과 육을 지으셨습니다. 말이나 영도 흙으로 지었을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을 준공했다 말입니다. 영은 언제 지었을까? 흙으로 육을 지을 때 동시에 지었을까? 영은 물질이 아닙니다. 영은 영입니다. 여기는 물질 창조만 하니 영으로 지은 것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많은 영을 지으시고 하나씩 둘씩 내어보내는 것인지, 육을 지을 때 하나씩 내어보내는 것인가? 많은 학자들이 의문 중에 있습니다. 사람이 잉태될 때 영을 지으시는지 사람을 지어놓고 그 영을 내어보내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육을 지을 때 영을 당시에 지었다고 믿습니다. 영이 당시에 지으면 죽은 더러운 영입니까? 하나님의 창조가 더럽다 말이나 그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학자들 중 난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것 창조하시지 않고 더러운 것 창조하시지 않고 죽은 영 창조 아니고, 우리 영은 자존자가 지으셨고 하나님께 피동자요 하나님의 원형을 본받은 모형입니다. 자존자 의지하여 된 영 아닙니다. 이것이 정죄한 범위 안에서 영을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그 영을 깨끗하게 창조했으나 하나님은 그것 주관하지 못하시고 지어놓은 영은 마귀가 주관합니다. 그 영에 능동자가 마귀요 주관자가 마귀입니다. 그 영혼 속에 시설되어 있는 것이 죄입니다. 지은 것은 본질과 본성을 깨끗이 지었으나 주위에 죄와 같이 있습니다. 영은 지었으나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닙니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기를 불어넣으니 영이 살았습니다. 생기를 불어넣으니 영이 생겨졌습니까? 있는 영이 살아났습니까? 이것이 안식교에서 크게 떠드는 교리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떠듭니다. 여호와의 증인, 생기가 생령이라, 생기가 사람의 영이라 합니다. 통일파에서도 여호와의 증인에서도 안식교에서도 영은 생기라 합니다.

영이 떠나가면 생명이 떠나간다 하는 그 말은 이단입니다. 이단은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천당이 없다 하거나 이런 것이 이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라 중생된 영혼 범죄한다 해도 이단입니다. 예수님의 신성 부정함도 이단입니다. 삼위일체가 아니고 삼위가 본체라 해도 이단입니다. 요새 이단의 범위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존재 부인 그리스도의 대속 부인해도 이단입니다. 동정녀 탄생 부인, 이것만 이단인 줄 압니다. 아닙니다.

흙으로 준공되었으나 영이 있습니다. 생기 불어넣기 전에 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기가 영이 아닙니다. 생기는 무엇인가?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니 이??인가? 생기 불어넣기 전에 육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영과 육이 있는 것이 산영입니다. 생기 불어넣으니 하나님과 연결되었습니다. 생기가 생명이지, 생명이 무엇인가?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입니다. 피조물의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요, 피조물의 죽음은 하나님과의 절단입니다. 식물이 끊으면 생명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 가져야 살 수 있고 관계 가질 때에 그 자체로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생기는 곧 성신의 감화입니다. 성신의 감화를 줌으로써 삽니다. (생기불어 넣으니) 중생된 자는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왔습니다. 진리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산영이 되었습니다. 산영은 어떤 지위 가지고 계신가? 모든 창조물은 주격이 생명이 주인입니다.

창세기 1장, 모든 것을 하나님의 대리로서 주인 노릇할 수 있는 것이 타락하기 전 사람의 지위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피창조물이 이것이 무생물이든지 생명이 있는 것이든지 이것이 죽은 것 아닙니다. 바위도 바위대로의 생명 가지고 있습니다. 개미는 활동을 하나 날아다니지 못 합니다. 고기는 물 속에는 활동하나 그 외에는 활동 못 합니다. 고기가 공중의 새와 같이 날아다니지 못한다고 부인하겠는가? 이런 식물이 저가 향기로서 어느 정도 다닐 수 있고 공중으로도 활동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은 다 살아 있습니다. 자기의 활동과 의무가 다른 것뿐입니다. 돈도 살아났습니다.

모든 만물도 살아 있습니다. 밥도 그대로의 생명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개미의 말 새가 듣지 못하고 고기 말 우리가 듣지 못하나 하나님은 다 듣습니다. 하나님은 물고기의 소리도 듣습니다. 하나님은 안경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이 안경이 죽은 것 같으나 살았습니다. 안경 제대로의 활동합니다. 모든 창조물은 제대로의 수권(守權)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성경적입니까? 아닙니까? 안경은 안경 말하고 새는 새 말하고 바윗돌도 다 의사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 사람이 범죄하니 땅들이 저주받았습니다. 그들이 생명이 없으면 저주받지 못합니다.

로마서 8장, 만물들이 탄식할 줄도 압니다. 또 그들이 소원할 줄도 다 압니다. 우리 속에 있는 지화가 사람들이 현물에 대한 대화 말합니다. 지화가 생명이 없는 줄 압니까?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범이나 사자나 맹수나 그 모든 것이 생명이 있고 용기가 있습니다. '보라 그것이 다 말한다 하니 범신론자다. 무신론자다' 할는지 모르나 분명히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만물이 생명을 다 가지고 있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안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안경이 말하는 소리 하나님은 들을 줄 아나 나는 못 듣습니다. 모든 존재가 어떻게 지음을 받았는가? 이것도 본질과 본성과 본능대로 움직입니다.

그 본질과 본성이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이 모든 존재들에게 내가 환영을 받으려고 하면, 그들이 다 좋아하도록 하면, 그들이 선거할 때 나에게 투표하도록 하려면 그들이 어떤 본질과 본성을 가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왕노릇 하겠습니까? 독사 속에 가서 내가 왕노릇 하지 못하면 그만큼 천국의 지위가 좁아집니다. 우리가 왕노릇 하는 왕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전부 다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비위가 어떠합니까? 본질과 본성과 본능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이 풀 속에 와서 아무리 길러도 본질과 본성과 본능은 모릅니다. 아는 것은 춥다 하면 덥게 하고 그것은 보여줍니다.

우리가 영원 무궁한 나라에 가서 왕은 강제의 왕이 아닙니다. 형식의 왕 아닙니다. 실제의 왕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본성과 본능과 본질이 무엇인지? 어떠한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과 본능과 똑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저이들의 본성대로의 것 본능대로의 것 본질대로의 것 좋아합니다. 이 하나님으로 이것들이 만족하고 부요해지고 이것들의 전 기쁨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모든 존재들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기의 본능보다 더 본능을 좋아합니다. 자기들의 본능과 같은 것 좋아하고 자기들의 본능 중에도 더 본질과 본능과 본성보다 더 온전한 것 좋아합니다.(약?하는)

예) 달고 맛있는 것 좋아하는 자가 달콤한 것 좋아합니다. 만물의 소원이 그것들이 자라고 싶고 더 영광스럽고 온전하고 싶고 그것들의 소원은 이루어지도록 원함이 아니고 그들이 흥하기 원하고 점점 온전해지도록 원합니다. 자기보다 지식 나은 사람을 점점 따라갑니다. 지위를 귀한 줄 아는 자 지위를 탐하고, 지식을 원하는 자는 지식을 탐하고, 돈을 소원하는 자는 돈을 탐하는 것처럼 모든 피조물이 환영하는 것은 저들이 원형이 되어 있는 자를 제일 기뻐하고 소원하고 탐내고 제일 기뻐합니다. 하나님 다음 무엇을 기뻐할까? 호랑이가, 독사 뱀이 하나님 다음 무엇을 기뻐할까? 누구를 기뻐할까?

하나님 다음 누구를 기뻐할까? 천군 천사 모든 만물이 누구를 제일 기뻐할까? 하나님 제일 많이 닮은 사람을 제일 환영하고 기뻐합니다. 그 다음 둘째 닮은 사람을 기뻐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다음 닮은 것이 ??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리 정돈되어 철두철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는 참됩니다. 그 나라에 본능과 본질과 본성이 무엇인가? 어떻게 생겨졌는가?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 보면 사람 같고 문 같고 전부 한 가지입니다.(이 진리 깨닫고 보면) 하나님, 성도, 인생, 지옥 있습니다. 내 밖에서 보는 하나님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는데 영원히 배워도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본 자도 없고 무한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소원입니다. 영원한 믿음입니다. 모든 존재가 그 본질과 본성과 본능이 다 그대로 되어 있으니 하늘나라에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밖에서 보면 아닙니다. 자기보다 낫게 하나님화된 것은 알게 됩니다. 자라면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전부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본질과 본능과 본성이 충만이 나타날 대로 나타나서 이 모든 것이 집을 짓는 공작으로 나타나서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영원히 표본으로 남겨둔 것이 지옥입니다.

만물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모든 피조물에게 환영받으려면 하나님 닮는 것입니다. 또 둘째 환영받으려면 모든 존재들에게 둘째 닮은 것입니다. 모든 존재에게 유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든 존재가 나를 환영하고 탐하고 나를 위하도록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는 도리가 무엇인가? 돈을 부릅니다. 돈을 부르고 지위와 권세 부르면, 모든 존재들을 내것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존재를 지위나 권세나 물질이나 향락이나 ?호출을 할까? 강제로 끌고 올까? 어떻게 할까? 모든 것을 부르는 유일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위와 명예나 권세나 내가 강제로 붙들어놓은 방법이 있고 그들이 나를 따라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붙드는 방법 있고 그들이 나를 찾아오는 방법 있으니 어떠한 방법 쓸까요? 모든 존재 끌고 올 때 어떤 방법 쓸까요? 내가 모든 존재 끌고 오는 방편과 단속을 할 때 나를 하나님 형상대로 만드는 데 노력하면 그것이 찾아오는 것이요, 내가 지위 권세 따라가려면 내가 그들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만 똑똑히 알아도 세상에서 실패자가 적습니다.

인생아 네가 돈이 찾아오도록 하라, 부귀 영화 지위 권세가 찾아오도록 하라, 와도 물리쳐라, 꼭 오려거든 받아들여라. 억지고 강제로 붙들어 놓으면 그들이 너를 때려서 상처 입힐 것입니다. 오지 않는 자 억지로 끌어당기지 말고, 오지 않는 자 억지로 붙들어 매면 죄를 저지릅니다. 돈도 붙들어 놓으면 죄를 저지릅니다. 돈이 무슨 죄를 저지르겠습니까? 돈이 그 집 아들 꼬여 망칩니다. 권세도 그러합니다. 인간의 70년을 전부로 보지 말고 자손후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반대자는 싫어합니다. 본질과 본성과 본능에 반대에는 안 됩니다. 그러면 누구와 ??을 맺을까? 하나님의 형상인 원형보고 살고 하나님의 형상인 당신보고 사는데 이 나라에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그 나라 깨뜨릴 수 없는가? 깨뜨릴 수 있습니다.

이제 딴 창조하면 깨뜨리지 그 나라 그 본질 본성 그 본능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여기 반대되는 존재들이 어찌 용납하겠는가? 여기에 반대되는 것 하나만 나왔으니 인간의 자율, 천사의 자율, 피조물의 자율이 어떻게 나왔을까? 하나님의 범위는 넓습니다. 하나님의 종적은 엄청 큽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인생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만물은 인생보다 먼 하나님의 능력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사람이 타락되기 전에 본 지위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 속에 악과 독이 가리워서 모든 정색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본성대로 되어지면 하나님의 진리대로의 사람이 되어지면 만물관이 달라집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 '하나님이 우리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두려움을 내어 쫓느니라'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나를 해하려고 하는 것도 없고, 순교자가 죽는 것도 해받지 않습니다. 6.25가 왜 났을까요? 순교자들 위하여 6.25가 났고 전국 목사 회개시키려고 났습니다. 이상 2가지 때문에 났습니다.

모든 전체가 성도의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움직이고 있으나 그때 사람을 알아주지 못하고 짓밟고 있습니다. 오늘도 동서양에 그들만 보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만 상대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만물의 비위를 다 알겠습니까? 일의 종류도 천 가지 만 가지가 아니요 많으니 어떻게 그 비위 다 맞추겠습니까? 모든 일에 대하여 바르게 하는 이치 가르치면 그것이 복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존재들에게 친목 가지게 되고 환영받게 하는 것, 자기 자체 후회 없이 바른 방편 가지는 것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합니까? 돈만큼 귀합니까? 금만큼 귀합니까? 땅 위에 보화의 가치가 얼마나 큽니까? 모든 것 바로 하고 옳게 하는 가치가 귀합니다. 심히 귀합니다.

네가 하는 일 중?한 일, 하나님의 형상대로 길러라, 그러면 ?본대로 맞는 일에도 맞고 다 맞으니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라, 너는 양심을 지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라, 이것은 모든 존재들에게 환영받는 것입니다. 자체에 조금도 손색에 없는 일입니다. 이것의 가치 알면 사람들이 기절할 것입니다. 사람의 본 지위는 어떤 지위인가? 에덴동산 지킬 수 있는 수직군이 우리입니다. 하나님이 본성대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벗은 몸으로 있으나 부끄럽지 않는 것이 인생의 본 지위입니다. 우리 기독교 구원을 별개의 구원으로 보면 안 됩니다. 기독교 구원은 하늘나라와 세상에서 다 성공입니다. 손양원목사는 하늘나라와 세상에서도 성공자입니다. 손목사님이 세상에 재산이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손목사님이 세상에서 권리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향락 누리지 못했습니까? 있었습니다. 꼭 같은 사람인데 하나는 실패자로 보고 한 사람은 성공을 봅니다. 그들의 관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일은 영도 육도 성공이요, 예수 믿는 일은 하늘나라는 성공이요 세상은 실패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일은 영육이 다 성공입니다.

성도의 지위가 어떤 것이 지위입니까? 모든 피조물을 소유할 수 있는 지위 가졌고 모든 피조물을 발등상 받은 지위로 가졌고 하나님의 모든 것 상속받을 수 있는 지위 가졌고 또 에덴동산 지킬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지위입니다. 에덴동산을 지킬 수 있는 권세 받았습니다. 에덴동산을 지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데 에덴동산을 지킬 때는 에덴동산을 지키면 무슨 영광이 있습니까? 모든 피조물 통치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무엇입니까? 에덴동산은 만들어져 있기를 무엇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거기는 세 가지 과실이 있고 그 주위에는 네 강이 흘러가고 있고 천사들이 지키고 있고(그룹들) 그밖에는 화염검이 둘러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에덴동산입니다. 그러면 에덴동산은 있는 위치가 어디입니까? 하나님과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위치 정하고 있는 것이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 위치 사이가 에덴동산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 통과해야 하나님 만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편이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은 뭐 하는 곳입니까?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피조물이 교제하는 곳인데 모든 피조물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교의 위치가 에덴동산입니다. 모든 피조물 대표하여 영교할 수 있는 위치가 에덴동산입니다. 이 에덴동산에만 있으면 모든 피조물의 통치권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그 동산 안에서 동산 떠나지 않고 있으면 에덴동산 밖에 있는 피조물들을 다스릴 권세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위치이니 그 자리가 존귀합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지키고 있고 보기 좋은 선악과 먹습니다. 생명과 먹습니다. 왕궁에 딴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면 이룬 권세가 있습니다. 동산에서 강이 흘러서 세계에 퍼칩니다.

이사야 2장 2절,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이 시온산 꼭대기에서 모든 것이 흘러내려 온다.' 에스겔 47장,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이 물이 성전 문지방에서 흐른다' 이사야 서에는 꼭대기에서 흘러내린다, 여기서 강 물이 흘러서 세계를 뒤집습니다. 그밖에는 화염검이 두르고 있습니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그룹들이 있습니다. 에덴동산 지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지위요, 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면 거기서 강물이 흘러서 세계에 넘칩니다. 거기서 율법이 나오고 거기서 일천척이 흘러내려 세계를 적시웁니다. 교회는 이 강물에 충만에 충만입니다. 여기 일천척이 흘러내리니 이 에덴동산내에 강이, 진리가, 권능이, 사랑이 흘러내리니 천상 천하의 것 날마다 소생케 하여 생명수 샘이 솟아나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광야의 성막이 성전이 되고 성전이 우리 믿는 사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은 어디 있습니까? 에덴동산에서 강물이 흘러나와 성전을 적시고 있습니다. 이 그룹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에덴동산지기 둘러싸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지기가 무엇을 하는 자입니까? 에덴동산에 혼자 갔습니까? 둘이 갔습니까? 아담이 에덴동산에 무엇 하러 갔습니까? 무슨 책임지고 갔습니까? 모든 피조물의 대리의 책임지고 갔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아버지 하나님의 제사장을 삼으시고 우리가 에덴동산에 들어가면 인류 대표만 아니라 천군 천사까지 대표입니다.

이 동산에서 쪼개나오지 않으면 영광스럽습니다. 그밖에는 화염검을 둘렀습니다. 성신의 검이 둘러 있습니다. 성신의 감화와 천군 천사들이 둘러 있는 그 안에 온 강물이 터져 흐르는 그 자리에, 먹고 안 먹고 지킬 수 있는 그 자리에 먹으라는 것만 먹고 안 먹으라는 것 안 먹는 것이 왕의 지위인데 아담은 그 지위가 무슨 지위인 줄 모르니 조심하지 않으니 뱀이 들어왔습니다. 거기는 뱀이 들어오는 자리 아닙니다. 인류의 대표자이니 뱀이 들어오면 다칠 수 있습니다. 아담이 뱀이 들어온 것 용납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악과 먹지 말라는 것 먹고 지위 다 빼앗겼습니다. 에덴동산이 오늘은 어디입니까? 나입니다. 나는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입니다. 에덴동산에만 있으면 대제사장권 있습니다. 모든 것 통치할 것입니다. 내가 안 할 것 하면, 유혹시켜 먹지 못한 것 먹으면 본 지위에서 쫓겨납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영교하는 위치이니 내가 어떤 범죄가 온데 있었으나 이제는 에덴동산은 인격이 없는 것이다 그것으로 관계하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과의 관계만 가졌습니다. 에덴동산은 자기의 계획도 뜻도 없고 순전히 자기 자율은 없고 하나님이라는 타율에서만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내 마음을 정돈하여 오늘 내 마음만 상대하여 하나님과 연결해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연결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상대하여 ??지 않는 것, 이 관계에서 내가 머물 때는 모든 피조물 대리하여 섬기는 데서 일이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하여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가지는 내가 하는 그 일에 피조물은 몰라도 나는 그때가 왕이요 제사장입니다. 그 자리 있는 그때에는 하나님의 대리권 가지고 중보역을 가지고 살 수 있고 모든 강물 흐르게 할 수 있고 모든 천군 천사가 나를 협조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그룹들 속에 영감 속에 들어 있는 때입니다. 이것이 은신처요, 피난처입니다.

거기서 아담 하와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 자리 들어가야 합니다. 거기는 ??입니다. 그 자리에서 첫째 할 일은 먹을 것 먹었습니다. 우리가 행사할 것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이니 진리와 행사를 먹습니다. 우리가 착한 일하고 진리 깨달으면 영이 배부릅니다. 그들은 진리 하는 선한 과실 먹었습니다. 먹으라는 것 먹고,

둘째로 할 일은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뱀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내 골방 안에, 내 인격 안에 못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 들어오거든 물리치고 내 마음에 내 생각에 들어오지 못할 것, 내 성질, 내 욕심에 들어오지 못할 것 들어오거든 물리쳐야 합니다. 내게 정상이 아닌 것 들어오면 물리쳐야 합니다.

물리치고 난 후에는 이제는 안 먹어야 하고, 행치 않아야 하며 들어오지 못할 것 물리치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 하지 말고 그런 다음에야 생명과를 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양식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내 양식이지, 예수님으로 내가 충만해져 예수님으로 커져 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에덴동산입니다. 이것 한번 느껴 보아야 합니다.

(61103122)


1. 에덴동산을 지키지 않음 - 착한 양심을 쓰지 않음.
2. 자기 잊어버림으로 뱀이 들어옴.
3. 사람과 뱀이 동등이 되어 싸움.
4. 사람이 져서 마귀의 종 됨.
5. 사람의 주격이 변해 짐.
6. 눈이 밝아져서 사욕이 생기고 선악과 먹음.
7. 하나님과 끊어져 외롭게 되니 갈급하여 사람을 취하게 되었고 후는 자타에게 추한 자       되었음
8. 물질 취하고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물질 속에 숨었음.
9. 벗은 몸을 알고 고한 것은(하나님께) 명령 어긴 실과 먹음
10. 사람과 하나님이 성글어졌음
11. 사람과 사람이 성글어짐.
12. 사람과 물질 사이가 성글어짐.
13. 동산에서 쫓겨남.
14. 고통받게 되고 사람을 사모하게 되었고 사람에게 다스림 받게 되었고 수고하게 되었다.
15. 스스로 살 권세를 잃었고 남을 희생시켜야 살 때가 되었다.
16. 하나님과 그룹들과 화염검에게 방해 받는 자가 되어졌다.


<참고>
1. 독존과 의존 중에 어느 것이 복되었는지?
2. 자기 위한 것과 주님 위한 것 중 어느 것이 복되었는지?
3. 사람과 합하여 사람을 취한 것과 하나님과 합하여 사람을 취한 것 중 어느 것이 복되었     는지?
4. 물질과 합한 후 물질을 취한 것과 하나님과 합한 후 물질을 취한 것 중 어느 것이 복되     었는지?
5. 범죄의 선후 차이의 보응이 어떠한지?
6.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과 자기와의 관계가 성글어지고 친하게 되어지는 비결
7. 인생의 기로는 하나는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또 하나는 나뉘어 자기로     돌아가 독존함으로 모든 존재 중에 가장 천하게 되는 일


가장 간교하더라 = 민첩하더라. 이 아담 하와가 자기가 에덴동산을 지키라는 위임을 맡아서 지켰으면 뱀이 거기 들어오지 못합니다. 자기가 지키는 일 방심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놓은 지위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가 에덴동산입니다. 이 에덴동산을 지키지 않는 것은 오늘 하나님과 나와의 밀접한 관계 가진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영교를 등한히 여기고 예사로이 여기고 마음을 쓰지 아니함입니다.

이것은 착한 양심을 쓰지 않음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뜻과 마음을 연결해 있는 그 줄을 귀중히 여기지 않음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착한 양심 쓰지 않음, 하나님만 위하고 귀히 여기고 하는 일편단심 주만 생각하는 그 마음을 귀중한 연결을 쓰는 애쓰는 그 마음을 버렸습니다. 그것이 곧 착한 양심입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뜨거운 마음 가지고 일심 정력을 기울이는 그것이 착한 양심입니다. 그 마음을 버리니 이제는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 앞에 적당한 사람이라는 것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는 이 연결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이 연결은 돈이 부서지고 생명이 부서져도 하나님과 연결하는 연결줄 그것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것이 중생된 영입니다. 그것 계속할 때는 중생된 영이 날뛰나 그것 잊어버릴 때는 구습, 옛사람이 들어와서 영을 누릅니다. 나는 예수님의 피의 구속받은 내니 과거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착한 영이 되었습니다.

영은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관계 가지고 하나님만 욕심 가지고 그 연결 가지고 사는 그것이 에덴동산 지키는 때입니다. 벌써 그 연결이 끊어지면 온 천하 얻고 자기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연결 끊어지면 옛사람이 와서 자기 주관합니다. 그것이 끊어지면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뚫고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뱀입니다. 에덴동산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욕심이든지 안 된 성품이든지 들어오면 그것이 곧 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아무리 내가 존경하는 신앙가라도 주님과 나 사이에 끼워놓으면 안 됩니다.

바울을 사모하여 눈을 뽑아 줄 만큼 사모하고 그리스도를 사모한 만큼 바울을 사모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사모하여 밤낮 울었습니다. 신앙 선배 껍데기를 사모하되 신앙 선배 속에 계시는 주님을 사모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가 바울 사모하여 밤낮 웁니다. 중글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루터가 그 소리 듣고 기절했습니다.(개혁 동지) 그것만큼 모든 것이 밀접해져서 있습니다. 신앙은 모든 것이 연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이라도 뽑아주려고 했습니다. 또 바울이 로마에서 죽게 될 때에 자기들이 대신하고 그를 뽑아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내 생명을 대신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육체와 능력 있게 역사하는 주님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자기가 주님을 사모하는 것이나 바울은 주님 사모하는 연결시키는 것뿐입니다. 신앙 선배는 주님과 자기 사이에 사람을 끼워놓고 주님보다 사람이 가까우면 그것은 뱀이 되어집니다. 내가 주님 사모하니 신앙 동지 찾아갑니다.

예) 내가 기동 찾아가고 저 사람도 기동 찾아옵니다. 그러면 피차 기동 찾아오니 가까워졌습니다. 내가 주님과 가까우니 사람과 가깝고 원수까지 가깝습니다. 내가 주님 찾아가고 저 사람도 주님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둘이 옆으로 가깝습니다. 자기와 신앙 선배와는 따라갑니다. 이 방식 바로 깨닫지 못하면 신앙 선배 사모와 동지 사모와 다릅니다. 바른 깨달음 가져야 합니다. 신앙의 동지는 참 귀합니다. 그러나 신앙 동지와 마주 붙으면 안 됩니다. 인간과 인간 둘이 붙으면 안 됩니다. 사람하고 사람과 가까워지고 주님과 멀어지니 안 됩니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러기가 쉽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신앙 사상과 배치되는데 사귀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도 붙들고 하나님도 붙들어야 하니 기가 막힙니다. 한 분을 동지로 붙들려고 해도 자기 비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 비위 맞추면 인간이 따라올 일입니다. 내 옆으로 따라올 사람이면 따라올 것입니다. 내 뒤에서 따라올 사람이면 뒤에서 따라올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비위 맞추는데 사람은 뒤로 돌아보라고 합니다. 돌아보면 안됩니다. 주님 앞으로 감으로, 주님과 가까워짐으로 그와 가까워지고 진리적이 아니면 그와 관계가 멀어집니다.

그러므로 신앙만으로 주님 위함으로 그를 사모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하되 주님을 존경함으로 해야 합니다. 그 속에 있는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온전한 것만 취합니다. 온전이요 깨끗이요 사랑인 그것만 취합니다. 그 속에 있는 주님 취하지 않으면 뱀이 됩니다.

사람끼리 사귈 때 주님과 나 사이에 다른 것이 끼어들까 주의해야 합니다. 자기 잊어버리면 그 사이에 뱀 들어옵니다. 주님만 사모하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주님께만 욕심 생겨지면 그로 인해 사람도, 돈도 사모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위하고 살고 주님만으로 살고 싶고 이것 때문에 사람을 위하는 것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주님을 위하려고 하니 이것을 위하게 되어집니다.

타인 보기에는 사람을 위하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주님만을 사랑하다가 보니 저절로 주님의 형상이 인간에게 있으니 행사가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집니다. 주님이 사람 안에 계시고 지극히 적은 자에게 대접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 되어집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욕심이 병이 나고 보니 껍데기는 사람을 사랑하나 실상은 속은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의 사랑에 불이 붙으니 나병자 냄새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 병자 냄새나는 이것이 주님과 나와 만나는 도구입니다. 밀실입니다.

껍데기는 문둥이 집에 와서 예배 보는데 그 속은 주님과 나와 사귀는 밀실입니다. 보이는 형제 사랑치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주님 좋아하는 일 자기가 하고 그러다가 보니 인생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만물 중 인생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 형상 많이 닮은) 에덴동산을 지켜야 된다는 그 일에 대하여 조심해서 가지지 않으니 자기는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동산지기가 동산을 지키지 않으니 자기 잊어버렸습니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나니 뱀이 들어왔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주님 만나고 주님만 믿고 주님만 위할 자기 잊어버렸습니다. 자기 잊어버리니 뱀이 들어왔습니다. 사람도 뱀 되고 가족도 돈도 뱀이 됩니다. 주님과 나와 연결 사이에 무엇이 끼었습니다. 처음에는 뱀을 지배할 수 있는 왕입니다. 이 뱀이 에덴동산에 들어오고 난 후 뱀과 아담과 동등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지위는 뚝 떨어졌습니다. 뱀과 아담과 이야기합니다. 서로 대화적으로 의논할 수 있는 동등이 되어졌습니다. 뱀은 인생을 정복하기 위하여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모릅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들어오면 그것이 내가 주님과 대상됨과 같이 그것이 대상되었습니다. 뱀이 들어와서 하와와 동등 되었습니다. 들어오기 전에는 명령일하에서 움직일 것뿐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들어왔을 때 아담이 '뱀아 어떻게 네가 여기 들어왔느냐?' 호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뱀아 왜 들어왔느냐? 들어오고 싶어 들어왔습니다. 뱀을 에덴동산에 들어올 수 있는 지위를 주었으니 인생이 자기 지위에서 떨어져 뱀과 동등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상대성을 가진 자기가 뱀과 상대성이 되었습니다. 뱀이 꾀를 씁니다. '너희더러 동산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냐?' 이렇게 한 것이 반항하는 것같이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보태어서 반거짓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담 하와 잡아 넘기려고 꾀를 쓴 것입니다. 그 시 아담 하와가 동등되어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라 했으면 뱀과 말한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눈을 뜨고 지키지 않은 것은 죄입니다. 뱀과 둘이 씨름하다가 하와가 졌습니다.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였느냐? 감했느냐? '동산 가운데 나무 만지지도 말라, 정녕 죽으리라' 했으니 더하고 뺐습니다. 또 뱀은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더냐' 뱀도 더했습니다. '결코 죽지 않으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뺐습니다. 뱀도 하와도 더하고 뺐습니다. 누가 먼저 더했습니까? 뱀이 먼저 더했습니다. 하와도 따라 더했습니다. 뱀이 뺐습니다. 하와도 따라서 뺐습니다. 뱀이 하나님 말씀 더할 때 하와가 따라서 더했으니 벌써 뱀에게 졌습니다. 졌으니 하와가 종노릇해야 합니다. 종노릇하자니 말씀에 대하여 또 감한 노릇했습니다. '죽을까 하노라' 했습니다. 그 다음은 뱀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결코 죽지 않으리라.' 그 사상을 받아 들여 완전히 안 죽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나 사이에 무엇이 들어와서 주님만 생각지 않고 내게 들어온 그것만 상대 삼아서 생각하는 때가 그때가 어떤 때입니까? 뱀과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끼어 있는 이것만 생각합니다. 돈을 어떻게 벌까, 가정을 어떻게 바로 해 볼까 하는 것이 뱀이 끼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내게 있는 대상이 되는 것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두고 뱀의 말만 나왔습니다. 뱀의 말이 나오니 사람의 말이 나왔습니다. 뱀의 말이 나오니 사람의 말이 졌습니다. 그와 같이 나와 주님 사이에 무엇이 끼어 그것만 보여집니다. 보여지고 난 후에 뱀의 말이 나옵니다. 돈이 들어왔습니다. 돈만 보입니다. 그때는 무슨 말이 나옵니까? 뱀 말과 하나님의 말과 같이 나옵니다. 주님과 나와 둘이 마주 섰는데 무슨 말 나옵니까? 돈 말과 하나님 말씀과 섞여 나옵니다. 하나님 말씀 사용하면서 하나님 뜻만이 아닌, 돈 때문에 쓰는 그 방편이 나옵니다.

예) 성경에 엄금하지 않은 방편을 나타냅니다. 성경에 하지 말라 말 없으니 죄가 되겠습니까? 벌써 인생이 물질에 유혹받아 성경에 엄금한 말 없는데 이 법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벌써 패전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의 명령 어기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내가 성경 말씀에 대한 확신이 죽어집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감동이 적어집니다. 감동이 적어지면 많이 주격이 바꾸어졌습니다.

왜 감동이 적어지느냐? 내게 감동시키는 성신이 떠났습니다. 자기에게 격이 바꾸어졌습니다. 속에 마귀가 주격이 되고 영이 죽었습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다' 생각을 해도 생각을 잘못하겠는데 실지의 생활을 어떻게 할까요? 논리하기에 심히 구별을 해야 하는데 이 구별이 심하고 강하고 강해서 이 실지의 힘이 강해서 신앙 생활이 되어집니다.

몸에 행동이 어려울까요? 복잡합니다. 마음의 행동에서 마음을 써서 껍데기에 나타나는 것이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행동은 전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귀는 간교합니다. 옆에서 당기고 앞으로 밀고 꾀를 씁니다. 마귀는 안 먹어 죽고 먹어서 죽고 취하면 다 취하고 안 취하면 다 안 취합니다. 칼빈이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머물러 있는 곳에 머물라 했습니다.

죄 뭉텅이 속에 뱀이 들어왔다 = 뱀을 용납했습니다. 이놈이 하나님 말과 뱀 말을 섞어서 합니다. 하와도 하나님 말과 뱀 말 섞어서 하니 삼켰버렸습니다. 뱀이 하나님 말과 사람의 말을 다 깨뜨립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과 사람의 말도 다 깨어집니다. 동산에서 하나님의 권위가 깨어졌습니다.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죽지 않으리라 했으니 하나님의 권위 깨어졌습니다. 하와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따라 갔으니 자기 권위 깨어졌습니다. 인생이 하나님 권위 깨뜨렸으니 자기 권위도 깨뜨렸습니다. 그러면 하와가 하나님과 연결을 하여 있으면 뱀이 못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미 뱀이 들어왔으면 어떻게 할까? 쫓아내어야 합니다.

만일 정복을 당했으면 (결코 죽지 않으리라) 어떻게 할까? 아담 찾아갔으면 좋으련만 기어코 선악과를 먹기까지 했습니다. 하와가 물리쳤으면 하와는 죄의 입문이었습니다. 계약 상대자는 아담입니다. 죄가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나님과 계약했습니다. 하와는 범죄 했으나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승리했으면 하와는 어떻게 될까요? 법이 없을 때는 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죄가 안 됩니다. 나와 계약 체결했으면 타인과 계약 범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이 하와가 아무리 선악과 먹어도 아담이 꾸중하고 먹지 않았으면 죄는 범하지 않았습니다.


(타락 순서)
에덴동산 지키지 않은 것이 첫 순서입니다. 에덴동산의 위치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 그 위치는 하나님과 연결하는 위치, 에덴동산을 지키지 않는 것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첫 순서입니다. 하나님만 보고 위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내 생명이 하나님께 기울어지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합니다. 그 동산 지키면 모든 피조물 사이에 내가 제일 높고 '이기는 자는 내 보좌에 앉히리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 있는 곳입니다.

선악과도 제것이요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것 생명과도 자기 것입니다.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것은 자연 은총입니다. 이 자연계에 움직이는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있고 내게 이용당할 과실입니다.

일정시대 손양원 목사님은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인민군이 없으면 손목사님 성공 못 했습니다. 얼마든지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것입니다. 선악과도 아담 하와의 것입니다.(지키라고만 했으니) 선악과는 하나님의 법률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인생의 것이 되었습니다. 인생이 지킬 것이 되었습니다. 개에게 율법 주지 않았습니다. 개에게 마음, 뜻, 성품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는 말 주지 않았습니다.

생명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 생명과는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양식은 나를 현상 유지하고 나를 자라게 하고 나를 힘있게 합니다. 예수님만 나의 양식입니다. 그러니 과실 소유하니 좋습니다.

천하만국의 강물 흘러내리니 좋습니다. 에덴동산 통하여 내려갑니다. 창세기 3장 16절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 통과하여 모든 세계를 적십니다. 에덴에서 발원하여 하나님의 은혜 세계에서 내려와 하나님의 연결된 그 사람 연결 통하여 천하만국에 퍼집니다.

그룹들이 옹위하고 있습니다. 성신(화염검)의 진리 세계가 이 사람을 지키고 있습니다. 진리는 성신의 말씀, 영감 = 빛, 빛 가운데 있으니 어두움이 없습니다. 항상 낮입니다. 빛만 있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같습니다. 에덴동산 지키기 힘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지켜야 하면 염세주의자 될까? 에덴동산 지키면 돈에도 나오고 사람에게도 나오고 공부에도 나오고 모든 것이 다 나옵니다. 우리의 모든 직장이 에덴동산이 있는 곳입니다. 서울을 찾아가려면 에덴동산을 찾아가야 만납니다. 바울이 에덴동산이 있는 위치입니다. 치우치면 안 됩니다. 기독교는 염세주의 같은 염세주의 아니요 세상주의 같은 세상주의 아닙니다.

동산을 지키니 지키고 있으면 좋은 것 무엇입니까? 왕의 위치 차지하고 자연은총 소유, 선악과 지키고(율법) 생명과 먹고 강물 흘러내리고 그룹 지키고 화염검 속에 살고 그러니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입니다. 에덴동산 지키면 모든 소유가 자기 것입니다. 에덴동산 지키면 왕의 지위입니다. 왕의 지위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과 연결해서 사니 친구도 가족도 동지도 더 좋습니다. 더 재미가 있고 모두가 다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이리저리 치우치지 않습니다. 인생에게 자율 주고 율법 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에덴동산 지켜야 합니다. 타락이라는 것이 조금씩 타락하니 교묘합니다. 그러므로 모릅니다. 에덴동산만 지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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