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7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나리라.'
왜 하나님이 정죄하였습니까? 하나님은 알리지 않은 것을 정죄한 일 없습니다. 짐승의 껍질 입혀서 내어보낸 것 보면 피의 구속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여 한 것입니다. 가인은 자율을 따라 했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니 농작물로 하면 된 것입니다.
농작물로 한 것이 자기 세상에게 끌려 한 것입니다. 아벨은 양을 먹이니 자기 세상을 믿음으로 이용한 사람이요, 가인은 믿음을 버려 자기 세상에게 이용당한 것입니다. 자기 형편 사정을 내가 극복하여 살지 못하면 안 됩니다. 민심도 진리도 자기 세상에게 이용당하면 안 됩니다. 노아 시대도 멸망 받은 용사가 많았습니다. 잘난 영웅, 열사 다 멸망받았습니다. 구원 얻은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650100)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범죄한 후에 등골에 땀이 차도록 일하게 하는 이 직책을 줬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요 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자기가 할 옳은 일을 하지 안하면 죄가 자기 문밑에 엎드려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이 어쩌든지 쉴 새 없이 자기 할 일을 충성되게 하면 또 그 일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또 할일을 가르쳐 주시요. 사람이 마땅히 자기가 해야 될 이 일을 하지 안하고 게을리 하면 거게서 안된 사욕의 생각이 나옵니다. 사욕의 마음이 나옵니다. 사욕의 마음이 나오면 그만 그 마음 가지고서 자기는 그만 전멸되는 것이요
(80011153) 5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죄가 자기에게 와 가지고 역사할 때에는 자기 양심과 대립이 됩니다. 자기 양심에 거치게 됩니다. 자기가 이성으로 비판해 가지고 `이것은 삐뚤어진 일이다. 이것은 죄다.` 이렇게 판정을 짓기 전에 자기 속의 양심에 확신이 없어지고 불쾌해집니다. 자기 양심에 아주 확신과 쾌활함이 없어집니다. 양심의 쾌활함이 없어지면 벌써 그때에 죄가 와 가지고 자기를 침노하고 억누르고 있는 때인 것입니다.
낯을 들지 못하는 것은 양심 작용인데 “네가 선을 행하면” 네가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였으면 네 양심이 쾌해서 참 펄펄 뛸 터인데, 네 양심으로 말미암아 한량없는 그런 기쁨과 용기가 생겨질 터인데, 너희에게 기쁨과 용기가 생겨지지 아니하고 네 기쁨이 억눌려지고 네 용기가 억눌려지게 되는 그것은 네가 벌써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82010410) 8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행은 계속할 때는 죄가 침노하지 못하고, 선행하는 것을 피곤하게 여길 때부터 쉴 때까지는 움직이는 것은 전부가 죄가 됩니다. 회개할 기회는 양심에 가책이 될 때요 이때에 회개하면 벌이 없고 그 후에는 회개해도 벌이 있습니다.
(주해 공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