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03:00
(모세가 부르심을 받음)
1. 가시덤불 속의 하나님 (구원도리의 성격)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율법을 베푸시고 다스리지마는 정죄받은 죄인들을 멸하시는 것이 아니고 긍휼과 은혜를 주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율법으로 택자들을 정죄하지만 멸하려 함이 아니고, 구원하시고자 함이니 하나님의 구원하시고자 하는 기간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긍휼함을 받으나 이 기간이 지난 후에는 정죄받아 멸하여집니다.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심이 아니고 은혜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원자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주님을 피하면 죄의 값을 받고, 죄로 인하여 주님을 접촉하면 죄의 값을 받지 아니합니다. 죄인이 하나님과 접촉하면 하나님이 멸하실 것 같으나 하나님은 멸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이는 가시덤불에 불이 붙었으나 가시덤불이 타지 않음과 같은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못하면 고범죄를 짓게 됩니다. 고범죄는 사함이 없습니다.
자기가 범죄할 때에 사함 받을 것을 생각하고 사함 받는 도리를 속된 것으로 생각하여 죄 짓는 마음을 더욱 담대히 하는 것은 사함 받을 수 없는 고범죄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은 죄를 다스리고 멸망시킬 것 같으나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는 복음의 앞잡이로 있고, 지금의 시기가 지난 후는 정죄받아 율법으로 나타납니다.
2. 죄인이 하나님을 접촉하나 멸망받지 아니하는 것은 구별된 세계이니 '신을 벗고 구별되게 서라'고 하는 것은 형식계시요 상징계시인데, 옛사람의 길에서 돌아서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도리는 죄인이 접촉해도 망하지 아니하는 구별된 특수세계이니 지금껏 살아온 세계는 회개하면서 돌아서야 하는 것이요, 다시 말하면 죄인의 길에서 돌아서라는 말씀입니다.
3. 출3:11절에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은 모세가 구원자로서 일할 수 있는 바탕이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애굽왕 바로의 궁전에 있을 때에는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보고, 이스라엘의 난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렵다는 것을 몰랐고, 상대방의 세력을 몰라서 함부로 날뛰었으니 최후에 맺은 결과가 광야로 행한 결과밖에 없었습니다. 자기에게 대하여, 사람에게 대하여, 일에 대하여 무식했던 사람으로 도망치지 아니하고는 견디지 못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연단 받은 결과 자기에게 대하여, 사람에게 대하여, 일에 대하여 바로 아는 유식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출3:11절의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자기를 모르는 자를 도와주면 점점 교만하여 자기가 하나님 되려고 하므로 멸망자가 되고, 일을 모르는 자를 도와주면 비뚤어진 것을 잡고 옳다고 생각하므로 점점 무식자가 되고, 사람을 모르고 날뛰면 사망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나, 자기나, 일에 대하여 바로 알면 하나님이 미리 예정하심을 보여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로 알아 결합하면 그 일을 성공시켜 주십니다.
(주해공과 - 강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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