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있다가 '하나님의 심판은 공평되다' 계시록에 보면은 마귀들도 다 찬양을 했습니다.
(84051630) 3
*참고 : 쉬운문답의 질문과 답변
답변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그러기 때문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우리가 주님께 속하여 주님께 피동됨으로써 그런 것을 내가 다스리면. 그런 것을 내가 네게 대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을 그것들이 하든지 안 하든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때에 그들이 순종하고 안 하는 것은, 내가 하는데까지 순종시키고 못 하는 것은 내비둡니다. 순종을 시키는, 순종을 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선포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데 그것이 순종할 때는 그것이 구원 얻습니다. 순종할 때는 그것이 구원 얻고 순종하지 안할 때에는 그것이 멸망받고, 또 그것들이 순종하지 안하고 나를 대항해 가지고 나를 죽여 버립니다. 죽이면 내가 죽습니까? 죽이면 내가 죽지 아니하고 그로 인하여서 나는 더 주님과 더 떨어질 수 없는 결정을 지웠고 진리와 떨어질 수 없는 완전히 결정. 결의해 가지고 성공하는 결성, 결성을 완전히 이루었기 때문에 나는 튼튼해졌고 그것은 죽었고. 죽었는데 죽은 그것은 뭐이냐? 죽었는데 죽음 속에서 영원히 나를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 속에서 영원히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옥에 있는 것들 이 다 주라 시인해서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렸다 하는 것은 그들이 다 주님 반대하다가서 멸망을 받았지만은, 멸망을 받았지만 멸망받은 그것이 멸망받은 그것이 이제 주님과 시비해 가지고서 주님을 멸하고 그것들 이 승리했기 때문에 주님은 거게서 멸해지나 멸해진 것이 진리가 멸해진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연결이 멸해진 것이 아니고 생명이 멸해진 것이 아니고 그것이 더 튼튼하게 완성됐고, 완성됐고, 그것들은 주님을, 진리를, 생명을 옳은 것을, 하나님을 멸했기 때문에 그것은 멸망을 받습니다. 멸망을 받는데 마지막에 가 보니까 주님은 옳았고 저희들은 틀렸습니다. 이러니까 지옥에 가 있어도 '우리가 죄지었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대한 것은 꼭 우리를 구원하도록, 구원 얻도록 바로 말해서, 바로 대하고 바로 말하고 바로 인도 했는대 우리가 대항해서 우리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과연 구주입니다. 그는 옳고 바르고 참됩니다. 그는 모든 것의 구주요 옳고 바르게 인도 하는 존재인 것을 시인합니다. 하는 것이 주라 시인해서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84061440) 3
계5:13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본절은 생물과 24장로와 천군 천사가 그리스도의 구속을 찬송하였고 그들 외에 모든 피조물들이 어린양의 구속을 찬송합니다. 이들은 제 삼자로서의 찬송만이 아니고 직접으로 저들도 구속의 혜택을 입은 까닭입니다. 이 세 찬송은 각 단체입니다. 그리스도를 찬송함에 통일성을 보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의 대상은 성부와 성자에게 찬송함이니 선재 두 찬양대는 이미 성부 계속적으로 찬송중에 어린양을 찬양함으로 성부를 대상으로 나타내지 아니하였고 만물들은 성부를 대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 기억할 것은 천상 천하 지하에 그리스도의 구속을 협조와 찬양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만물에게 대하여 고독감을 가지지 말아야 할 신앙세계에서 살아야 하고 또 모든 피조물이 가령 버린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니 더욱 고독감을 가지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이종교에서 만물과 자기는 하나라는 물아동체, 곧 범신론에서 나온 사상은 아닙니다. 만물이 말한다 함은 다만 무언중에 호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뱀이 말함은 마귀가 시켰고 나귀가 말함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한 것뿐이니 이것은 다 이적입니다.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린다 함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택이 영영함을 받아 누리고 또 영원히 누릴 것을 바라보면서 찬송함입니다. (네 마디 사언의 해석은 13절 참조)
(570121/주해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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