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6:9
'여기'
여기라고 한 것은 특히 빌립의 신앙을 부인하는 뜻입니다. 바깥에 갈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과 몸과 생명의 만족의 것, 곧 세상 것 아니라도, 오병이어와 예수 그리스도의 축사만으로 먹으려 하였습니다. 그러하나 부족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충족의 신앙을 가지지 못함은 자기 오병이어가 아니고 타인의 것인 까닭입니다.
오늘도 성도 중에는 몸과 생명과 이성 전부를 봉헌만 하면 보혈의 능력과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듯을 이루어 드릴 수 있고 여기서 신(神), 나, 타인의 영의 양식이 되어 이 방법으로만 몸과 생명, 이성 주장(주인)은 소거제(消去除)되고 그것은 도리여 식물이 되고 참 자아는 만족의 생활, 날쌘 능력의 독수리 생활이 롬8:31-39,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1:20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고후5:8 주를 떠나든지 거하든지, 이 모든 성구와 같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단 자신의 몸, 생명, 이성을 식물 하나처럼 가볍게 소유하여 봉헌자에게는 무한의 확신이 아이같이 있으나 이론적으로와 타인에게 권고하는 정도, 지식으로만 가진 정도에서 멈추고 실천에 옮기기 전에는 확신도 담대도 평강도 권능도 주 사랑도 희락도 일절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한 은혜가 유한하게 되는 자리를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식물의 종이 될 수록 더욱 궁핍함같이, 몸과 생명, 이성에게 종될수록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더욱 기갈, 궁핍을 느낀다. 이는 종은 주인을 섬기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이가 있어'
① 육다골세(肉多骨細), 자르는 자, 배우려는 자, 희망중에 사는 자, 새로운 것 찾는 자, 단순, 겸손, 낮은 자
② 오병이어 가진 자, 다수 생명있는 보리를 죽여 빻아 삶아 만든 덩어리 떡과 수중 자유 행동인 물고기를 잡아내어 죽여 구워서 가볍게 한 그릇의 식물로 가졌습니다.
다방면 많은 방법으로 살고자 하는 생명, 다방면, 다방법으로 이용하려는 몸 다 빻아 죽여 삶아 한 개의 떡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내 신앙 생활의 이용물로 자유 자제하도록 가진 자, 극기자입니다.
③ 주께 드리니 축사하시고 떼어 주니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명 먹고 남음이 12바구니였습니다. 이런 몸과 생명, 이성을 주께 봉헌하면 보혈, 말씀, 성령의 능력이 임재하사 붙들고 역사하실 때에 자아와 이웃이 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여 드리는 완전 성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한 사람이 살면 만인이 삽니다.
아이 혼자도 그 오병이어 먹지 못하면 이적 못 보고, 가지고 오지 않은 자도 또 제 것 되지 아니하였고 가지고 오지 않은 자는 아이 아니면 죽었을 것이요, (안 가지고 온 자는 영원히 제것은 못 되었다.) 아이는 바치니 주와 자신, 타인이 배불렀습니다.
떡이 양적으로 많아져서 12사도가 한바구니식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초자연의 이적입니다. 이는 완전 봉헌자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자아도 몸, 생명, 이성에 추호도 손해는 없고 더욱 풍성하며 한 개의 밀알이 썩으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같이 다수의 봉헌자가 일어나고 한 사람의 봉헌으로 봉헌하지 않은 수천수만이 산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큰 농지이며 불가형언의 추수입니다. 누가 이 농부가 되려는가? 고전15:42-49 심고 거두자.
부스러기를 주으라 하심은 이런 봉헌은 추호도 버려지지 아니하고 0*久年深할수록 풍성하여진다는 것입니다. 한 0*도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531118)
'물고기'
이러니까, '아, 이거 이거 마음에 틀렸는데 양심에 가책이 되는데 이거는 아닌데' 이러니까 내가 말씀을 보고 생각함으로써 양심과 일치되어서 양심이 말씀에게 복종하고 우리를 말씀에게 복종을 시키는 이 역사가 양심인데 그 양심을 찾아서 차차 차차 길러가니까 이제는 마치 물에 있는 고기를 잡아서 오병이어 도시락 속에 다 반찬을 삶아서 찌져서 딱 넣어 놓으니까 고기 그거는 바다 가서는 다시 살지 못하는 것처럼 이제 우리가 모든 세상에 할동하던 그 활동을 다 잡아서 도시락 속에 넣어놔야 이제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오. 이러니까 자기의 주관이나 수단이나 뭐 다 있지만 과거에는 세상 그까짓 거 이렇게 말 한마디만 휘뜩 뒤비트리고 이라고 저라고 그런 거 있지만 이제는 그놈을 잡아서 찢어서 다 볶아 놨기 때문에 이건 세상에도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어. 이렇게 양심이 주장을 하고 양심에 거리끼는 모든 죄악을 죽여서 다 양심이 자기 마음을 통일화시키고 자기 마음을 다 지배하도록 양심을 길러서 양심이라는 이 대장 밑에 대장의. 슬하 밑에 들어차 가지고서 이 양심을 앞잡이를 세우고 이 양심을 선봉장을 세워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이렇게 갈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이것이 영감인 것입니다.
(8406100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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