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이렇게 대영(對靈)관계를 하라. 이렇게 하나님을 대하는 관계를 하라. 하나님과 사귀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만 유일하신 자존자로 홀로 한 분만 계신 원인자로 우리들도 인식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이런 행동을 가지도록 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 되는 유일자 지성자 이런 자이심을 우리들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사 이렇게 대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함입니다. 이것이 주기도문에 일절입니다.
(7805202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이 주기도문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가 주기도문을 예배 순서에도 같이 외우고 이렇게 합니다. 이러면 주기도문에 간단하게 가르쳤지만 주기도문의 이 뜻을 깨달아서 순서도 그 순서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순서로, 또 주님에게 기도하는 그 종류도 그대로, 순서도 그대로 종류도 그대로 또 기도하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 그대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님이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다 이 말씀은 저 영계에 계시는 아버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다 말은 지극히 높으신데 지존하신 데 계시는 아버지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이 없는 지극히 존귀한 위치에, 또 지극히 큰 그 전능의 위치에, 전지의 위치에, 대주재의 위치에, 창조주의 위치에, '하늘에 계신다' 말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과 높으심을 표시해서 이렇게 '하늘에 계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 아버지라 말은 여기 복수인데 우리 아버지라 말은 내 개인 아버지는 되지 아니하고 이렇게 우리 아버지로 복수의 단체의 아버지로 이래 하는 것은 주님과 나와의 한 덩어리가 돼야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되지 주님과 끊어지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대하면 멸망 받지 아무것도 은혜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하는 것은 우리의 대속주, 우리의 구속주, 주님과 나와의 하나 된 이 복수를 가리켜서 여기서 ‘우리’라고 그렇게 표시하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예수님의 대화친으로 아버지가 됐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할 때에 기도는 서로 대화하는 것인데 서로 상대해서 말하는 것이 그게 기도인데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제일 먼저 누구를 상대할 것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상대해서 기도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 지극히 완전하신 분, 모든 면이 완전하셔서 지혜도 그 이상이 없는 완전하신 지혜, 완전하신 능력, 완전하신 성결, 완전하신 공평 이렇게 이런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먼저 깨달은 것만치 기도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바로 아는 것만치 그 기도할 자격은 있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암만 해 봤자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래서,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그 기도의 대상, 우리가 서로 대화하는 우리의 대화자가 되는 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지존하신 분인 것을 깨닫고 이 지존하신 분을 상대하는 것으로 상대해야 되지 지존하신 분을 상대하면서 아주 저거 동무 상대하듯이, 얼러키운 호로 자식이 부모에 만만하게 대하듯이 이렇게 버르장이 없이 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래서, 기도할 때에 함부로 입을 벌리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가 구하는 상대, 이 하나님은 이분은 어떤 분인 것을 자기가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만치 자기는 기도를 하게 되고 또 조금 알면 조그만 기도할 수 있고 많이 알면 많은 기도할 수 있고 다 알면 다 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어떤 분인 것을 내가 믿는 거기에서 하나님도 내 기도를 들으실 수 있고 나도 또 하나님에게 정당한 기도를 하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도 모르고는 기도해 봤자 그거는 여기 미신 자들이 그저 돌팔이 점쟁이들이 귀신에 소리 하는 것 모양으로 그런 것이지 그거 소용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아야 된다 하는 것을 주님이 가르쳤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이거 멸망 받을 인간인데 우리 구속주 예수님과 나와 합할 때에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된다 하는, 주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은 내 아버지 된다. 하나님과 나와는 이렇게 친밀하고 밀접한 바로 부자간 된다. 육신의 부모는 부정모혈, 부정인데 나는 부종이라 해, 아이들 주일학교 할 때는. 종자라고, 정이라 하면 아이들이 잘 몰라요. 부종, 아버지의 종자와 어머니의 기름의 피 그래 이제, 부종 모혈로 났지만 이 하나님 아버지 아들은 예수님께서 흘려주신 피공로, 또 영감, 진리 셋으로 났습니다. 부종과 같이 예수님의 대속의 종자로, 모혈과 같이 영감과 진리로 이제 대속을 우리에게 충만 시켜 줘 가지고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이 관계가 맺어진 것입니다.
이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도, 부르기야 얼마든지 자유로 부를 수 있지요. 불러도 저 혼자 부르지. 대답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자임을 모르면 그 사람의 행동한 것이 자연히, 아버지가 만일 그 사람 만날라고 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모르고 하는 행동이라면 그 행동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오시면 벌 받아 죽을 일이라 그 말이오. 빛이 오는데 빛을 청하는 것은 어두움이 빛이 와도 녹아지지 안할 수 있는 게 돼 가지고 이를 청해야 되지 어두움 그것이 빛을 청하면 빛이 오면 어두움은 소멸돼 버리고 말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분을 모르면 암만 불러도 대답도 못 하고 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과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밀접한 관계가 됐다. 됐는데,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됐는데 곧 아버지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실제로 와 가지고 우리가 생겨졌다. 육신의 부모는 부종모혈로 우리의 부모가 됐고 우리의 영의 아버지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의 아버지 됐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야고보 1장에는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를 낳으셨느니라' 이랬어. ‘너희를 출생하셨느니라' 말씀했어. (*야고보서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
이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는 기도의 상대방이 되는 하나님을 똑똑히 알고 또 그와 나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맺어져 가지고 있는 걸 알고 또 이 관계는 하나님 대 나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됐다하는 이런 인연을 똑똑히 알아 가지고 믿음으로써 이제 기도의 대상을 바로 찾아라 그 말이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여게까지는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상대를 바로 알고 바로 상대하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위에 한 데는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를 찾아가지고 기도해라 하는 그 말이나 꼭 같은 그 뜻을 가졌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그 자체, 하나님 자체, 하나님 본체, 내나 위에 말한 대로 '하늘에 계신' 말씀한 대로, ‘이름이’, 이름이 하는 것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라. 지극히 크신 분이시라. 완전하신 분이시라.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라.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라. 지극히 거룩한 분이시라. 불의를 용납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라. 이것도 이름입니다. 또 이분이 어떤 역사를 하는가? 이분의 자체와 이분의 역사 이것을 가리켜서 ‘이름이’, 이 이름은 이 하나님 자체의 어떻게 그 크심 또 그분의 역사의 어떻게 크고 세밀하고 충만하심, 그 자체와 하나님의 모든 역사, 역사를 통틀어 한마디로 말해서 이름이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거룩히 여김’이라는 것은 구별하고 구별해서, 거룩이라 하면 여러분들이 오랫 동안 공부했는데 거룩이라 하는 것은 많은 것 가운데서 구별하고 구별하고 또 구별해서 또 거기서, 선별하고 선별하고 선별해 가지고 나중에 완전에 도달하는 그것을, 과정과 완전에 도달한 그 결과, 과정과 그 결과를 합해서 거룩이라 그렇게 공부했습니다.
(32:45)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면 하나님 자체와 하나님의 역사를 구별해서 대우하는 그 대우를,
구별해서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자체와 하나님의 역사를 구별해서 상대하고,
구별해서 그분과 관계를 가지고,
구별해서 상대함을, 곧 '거룩히 여기심을', 구별해서 상대함을 받으시오며,
구별해서 상대하는 우리가 되게 하사,
구별해서 상대하는 것이 구별만 해서 상대하는 게 아니고,
구별해서 상대한 그것이 ‘하나님이 구별해서 상대하심을 받으실 수 있는’ 그런 구별을 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제 여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분과 나와의 어떤 관계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맺어져 있다 하는 이것을 먼저 언제든지 기억하고, 맺어져 있는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뜻은 “그분 자체를 그분 자체로 상대하고 대우하고 또 그분의 모든 행사와 이력을 또 이력대로 대우하고 상대하고 이렇게 상대하는 생활이 우리가 되도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우리가 알고 거게 대해서 합당하게 정당하게 대우하고 상대하고 이렇게 하는 우리 생활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하는 우리 생활이 되는데 상대해서 생활하는 이 생활을 당신이 “오, 됐다. 과연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두려워함을 그렇게 나를 두려워하니 내가 너한테 욕보는 게 아니고 네가 나를 정당하게 두려워한다. 또 네가 나를 인식하기를 이렇게 인식해 가지고 인식을 하고 하니까 그 인식이 내게 대해서 바로 인식을 했다.” 해서, ‘받으시오며’ 이거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래 내가 아까 좀 전에 '이름을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했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했나 하니까 '이름을' 해. 그래서 내가 '저것도 벌판이로 외우고 돌아다니는구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러면 여러분들이 자꾸 이래 새겨 가지고 깨달아라 그거요. 이것이 우리 기도하는 데에 제일 첫째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것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제 일 호 기도라 그 말이요, 일 호 기도.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는 분이신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도록 해 달라는 이것을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일호 속에 든 기도요, 또 그분이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맺어져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을 실상을 알아야 될 대로 알도록, 그러면 다 알고 간 사람이 있느냐? 다 알고간 사람이 없습니다. 영원히 알아도 부족합니다. 여기 대해서 바로 알도록 이렇게 아는 자 되도록 하는 것이 일호 속에 들었고,
그런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면, “그 본체와 그 자체와 또 그분의 모든 하는 역사가, 구별해서 바른 데에 도달, 구별해서 정확히 알아 정확한 대우를 우리들이 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하는 이 기도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심을 우리들이 알도록 무한하심을 우리가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은 정확 무오하고 진실하시니 그분은 거짓부리나 삐뚤어진 것을 하나도 용납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 기도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거와 같은 말입니까 다른 말입니까?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해 주옵소서”하는 기도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는 기도와 그 기도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하나 예를 들면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이심을 우리들로 하여금 알고 지극히 크신 분으로 대우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와 “지극히 크신 분으로 대우함을 받으시도록 하게 하옵소서” 하는 거와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같소, 다르요? “거룩히 여기게 하옵소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거와 같은 말인지? 다릅니다.
하나는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지극히 거룩하게, 거룩하다 말은 하나님은 구별이 “이 우주에 삼라 만상의 만물이 있다. 그거는 지음 받은 것이요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또, 이렇게 모든 인간들의, 요새 세계가 강대국의 대원수라 하면 자기네들이 지금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듯이 그 나라의 제일 머리되는 사람하고 머리되는 사람하고 지금 정상 회담, 정상 회담 그래쌓는데 그 사람들에게 권리 있는 것 같은데, 그 정상 회담하는 세계의 머리되는 사람들 회의가 있는데 그 사람 머리되는 사람들의 회의하는 회의와 우리 하나님과, 거룩히 여기는 것은 우리 하나님과 그와는 구별해서 ‘그거는 피조물이라 오늘도 그분이 숨 딱 끊으면 다 쭉 뻐드러져서 송장되고 그분이 없게 하면 없어지고 있게 하면 있게 하는 그분이다.’
이제 그와 피조물과 창조주의, 피조물의 역사와 창조주의 역사를 구별하고 구별하는데, 구별하는 데에 정확히 구별하는 사람, 조금 구별하는 사람, 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구별하는데 이렇게 똑똑히 구별해서 하나님 섭섭지 않게, ‘큰 거는 크다 작은 거는 작다.’ 이래서 하나님과 모든 데 대해서 이렇게 구별하는
‘이 구별을 정확히 하도록 해 주옵소서’ 하는 그 말과 ‘정확히 함을 주님이 받으시도록 해주옵소서’ 하는 거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다. ‘받으시오며’ 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해도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불합격이 많다 그말이요, 불합격이 많아. 불합격이 많은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님을 구별하고 구별해서 하나님 본체와 하나님의 그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구별하는 것은 혼자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둘을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둘을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하나만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구별은 어째요? 구별은 둘 이상이 있어야 구별이 됩니까 하나만 가지고 구별이 됩니까? 이것보다 이게 둘 이상이 있어야 구별이 된다 말이오.
구별하는 것을 여기 뭐 모든 수많은 피조물 있지 않습니까? 모든 수많은 피조물들이 있는데 이 피조물과 하나님과의 언제든지 내가 보고 접할 때에는 여기서 구별해서, 아무리 불미 속에 집어넣어 죽인다 이래도 거기서 구별해서 ‘죽이는 것은 불이 죽이지도 못하고 느부갓네살 왕이 죽이지도 못하고 죽이는 권리는 주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는 그것은 거룩히 여기는 것이라 말이오. 거룩히 여기는 것인데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면 거룩히 여겼는데 거룩히 여긴 그것이 합격이 됐는지 안됐는지 모르겠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은 합격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말이오. 여게 까지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이니까 주기도문이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제 일 호 기도가 이겁니다.
그러면, 일호 기도가 하나님께 대한 기도인데 그 일호 기도가 돈달라는 기도입니까? 뭐 권세 달라는 기도요, 병낫게 해 달라는 기도요? 그 기도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을 나로 하여금 똑똑히 아는데 내가 아는 것을, 내가 똑똑히 아는 것을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실 수 있도록 똑똑히 알게 해 주옵소서. 또 모든 거와 구별할 때에 그 구별이 하나님 보실 때에 ‘오, 네가 바로 구별했다.’ 당신이 인정할 수 있는 구별에 도달하게 해 주옵소서.
이러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에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대우해야 되나? 그분을 어떻게 대우해야 되나? 크신 분을 크신 분만치 대우 못 하면 그 모욕 아닙니까? 기독자의 신앙생활이 짜다라 연보하고 뭐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이 사람은 아무리 땅 위에 큰 것도 복잡한 것도 찬란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모든 것이 있지만 거기서 이름을 거룩하게 자기가 구별하는데, 그분의 크심과 그분의 역사를 구별하는데 구별하면 저도 '내가 이렇게 구별해서 하나님을 대우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하는 게 아니라 구별해서 대우하는데 이 대우한 이것이 과연 그분이 보실 때에 '됐다' 이렇게 하시나 나는 구별한다고 했지만 그분이 보실 때는 도리어 걱정거리가 됐나?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지만 이렇기 때문에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설 걸 생각하니까 항상 두렵고 떨리는 것뿐이다' 말한 것이라 말이오. (*고전 4: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이래서, 뭐 이렇게 뭐 하나님 섬기는 것도 그거 좋기는 좋지만 우리가 어디를 대하든지 무엇을 대하든지 하나님과 그거와의 관계를 똑똑히 판단해 가지고 그분을 그분으로 대우하는 것을 이것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합니다.
이래서, 시편 91편 14절에는 보면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서 바로 대우하는 그것이 피조물 위에 뛰어 올라가는 거라. 그러면 그 사람에게 얼마든지 줄 수 있지 주지만 이것이 아주 버르장이 없는 거 모양으로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날뛰는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줘 놓으면 저 망하고 말지 유익되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시 9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 88011553설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함, 주해사전 마태복음06:09-11에 전체 내용을 입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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