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세상의 소금이니”하신 것은 세상의 복음이라 그말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과 이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온 성령과 진리를 가리켜서 복음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소금 비유로 말한 이 직책을 우리에게 맡겨서 이 직책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 기독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기독자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세상의 소금. 세상에 있는 소금이 아니고 세상에게 필요한 소금, 세상을 위해서 있는 소금이라는 뜻입니다. 소금은 잘 아는 대로 어데든지 수분 있는 데 닥치면 녹아지는 것이 소금입니다.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데에 필요한 기독자들이라, 또 하나는 세상을 가치 있게 맛있게 만드는 기독자들이라, 또 하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힘을 돋궈 주는 기독자들이라 그런 뜻으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자기 현실에서 복음으로 녹아지지 아니하고 한 시간이든지 하루든지 지나간 다음 자기의 정력이 녹아졌다면, 이 복음으로 녹아지지 않은 것이 진리 없이 녹아진 것이요 맛없이 녹아진 소금인데 그러면 쓸데없습니다. 다시는 짜게 하지 못합니다.
짜게 할 수 없다 그말은 현실에 복음으로 하루해에 녹아지지 않고 자기 정력이 소모되어지지 않고 자기 생명이 소모되어지지 않았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 다시는 두 번째로 복음으로 녹아지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과거 내가 복음으로 녹아지지 못한 것을 다시 녹아지겠다 할 수는 없습니다. 중복은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는 복음 생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쓸모 없습니다.
한번 현실이라는 데에서 지나간 정력은 다시 그다음에는 그 정력을 쓰지 못합니다. 그 정력은 소모됐습니다. 없어졌습니다. 정력이 남아 있어도 그것은 그다음 남아 있는 정력이지 이미 현실에 쓰여진 정력은 두 번은 못 쓰여집니다. 다시 반복을 못 합니다. 다시 새로가 없어요. 새로 못 합니다. 한 번으로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오.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생명 세계에서 버렸기 때문에 지옥입니다. 지옥에 버려요. 피조물들에게도 쓸모 없고 창조주에게도 쓸모 없고 아무 데도 쓸모가 없어서 '밖에 버리워' 그는 유황불 구렁텅이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만물에게 밟혀 천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들에게 짓밟히는 것 천대받을 것밖에 없느니라.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천대받고 짓밟히고 모두 다 원망 불평 받는 그런 것밖에는 안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89073001/89073002)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세상 소금이라 빛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빛으로 살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세상 생활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은 어디서든지 어두움으로 살지 아니하고 빛으로 살도록 노력을 하고 또 빛으로 살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희생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불만이나 불평이나 혹은 원망이나 정당치 않는 환경이라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면 벌써 시험에 든 것입니다.
(8810160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라는 것은 생애 법칙을 표시한 것입니다. 뭐 수억만의 맛도 더있지만 짜운 맛은 소금만 가지고 있습니다. 자체가 희생되는 것은 그 한 맛을 가지고서 그렇게 자기는 살아서 녹아져서 희생한다는 그런 뜻으로서 이제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 그렇게 말해 놓은 것입니다.
(88081140)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말한 것은, 교회가 희생하는 희생이 아니고는 직책을 감당 못 하고 가치가 없어진다 해서 소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희생을 말합니다.
(88052901)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쓸데없어'
우리는 어떻게 살든지 녹아지기는 녹아집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결국은 저희의 건강이 다 녹아지고 생명도 녹아지고 마지막에는 죽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기독자가 바로 녹아지면 참 말할 수 없는 존귀한 자가 됩니다.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자가 되고 또 모든 것들에게 다 환영받는 자가 되고 또 자체가 심히 큰 가치를 마련하게 됩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없다, 밖에 버린다, 사람에게 밟힌 바 된다’ 그렇게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녹기는 녹습니다. 아무래도 늙기는 늙습니다. 자기가 무슨 사업을 하든지 또 안 약해지려고 체육에 전력을 기울이든지 또 자기는 참 장생불사할 그런 소원을 가지고 노력을 하든지 어쨌든지 사람은 녹기 마련입니다. 한정된 기간이 있어서 그 기간이면 다 녹아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안 녹으려고 애를 써서 별별 위생이나 방편을 취하는 그것도 다 헛된 일입니다. 또 녹아지는 정력을 가지고 이것저것 가치 있는 일 하겠다고 자기 나름대로 무대를 정해 놓고 일생을 바칩니다. 그러다가 기간이 되면 다 쪼글쪼글 해 가지고 아주 참 볼품없는 허무한 반송장같이 되다가 마지막에는 그만 송장으로 땅 속에 들어갑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없게 된다' 하는 말은 우리 사람들이 육의 일생이 다 녹아지기는 녹아지는데 소금의 간과 같이 주님의 대속으로 값 주고 산 주님의 구속을 인해서 구속으로 녹으면 그는 참 말할 수 없는 존귀한 가치가 되지마는 구속으로 녹지 않고 달리 녹는 것은 쓸모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타고 나온 자원인 정력을 가지고 세계에 유일한 정치가가 됐으면 쓸모 있는 줄 알지만 그도 영원히 쓸모 없는 인간 됩니다. 과학에다가 다 정력을 기울여도 그는 쓸모 없는 인간 됩니다. 도덕에다가 기울여도 쓸모 없는 인간 됩니다. 또 사회나 자기 가정에나 자기 행락에나 아무 데 기울여도 다 도매금입니다. 다 같습니다. 다 쓸데없는 인간 됩니다.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쓸모 없을 뿐 아니라 모든 것에 버림받습니다. 모든 것에 배척받습니다. 영원히 배척받습니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하는 그 말은 모든 존재에게 짓밟혀서 천대받을 것뿐이라 그말입니다.
성경에는 짝 없는 말이 없으니, 그러면 사람이 맛을 잃지 아니하고, 기독자가 기독자의 그 진미를 잃지 아니하고 참된 기독자로서 그 정력이 없어진다고 하면, 죽기는 꼭 같이 죽지마는 기독자가 기독자의 본질과 본성으로 늙어 죽어진다고 하면 그 생활 전부는 다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쓸모 있고 사람에게도 피조물에게도 마귀에게도 쓸모 없는 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가 다 쓸모 있습니다. ‘밖에 버리워’ 하는 반대로 전체가 환영받습니다. 모든 존재에게 우리가 환영받는 유일한 길이 뭐인가? 모든 존재에게 내가 없어서는 안 될 필요 있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지는 것이 길이 어디인가? 또 모든 존재에게 밟힘 반대 존대를 받는 그런 길이 무엇인가? 그 길은 소금이 맛 잃지 않는 것입니다.
(88052902)
'맛을 잃으면'
소금의 본질이 변하는 것입니다. 곧 성도가 희생치 않고, 또 진리를 가지지 않은 것이 변질입니다. 희생을 해도 진리대로 안함도 변질입니다.
(62042531)
맛은 우리가 가진 세 가지를 가리켜서 맛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이 공로와 대속의 공로로 인한 그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를 가리켜서 맛이라고 한 것입니다.
맛을 잃으면 다시 짜게 하지 못한다, 맛은 이 세 가지 공로를 우리가 입으면, 사죄를 입으면, 사죄를 입으면 사망이 없어집니다. 사죄를 입으면 마귀가 없어집니다. 마귀가 도망쳐 버립니다. 칭의를 입으면, 칭의를 내가 벗지 안하고 칭의를 가지고 있으면 영감과 진리가 내것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내것 됩니다.
왜? 의는 영감과 진리가 했기 때문에 의만 가지면 영감과 진리는 자기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화친으로써 하나님과 이렇게 연결되면은 전능자와 연결이니까 전능자 됩니다. 이거 사람들이 안 믿어 탈이지, 전지자와 연결되니까 전지자가 됩니다. 얼마나 연결되느냐? 그분은 머리이고 우리는, 하나님은 머리이고 우리는 몸이 되는 이런 밀접한 연결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기억하고 대속으로 살고, 영감과 진리로 살아 가지고 요 세 가지만 항상 기억해 가지고서 요렇게 살게 되면 우리는 참 쓸모있고 영접하고 사람에게 존귀받는데 이 맛은 잃으면 찾지 못합니다. 잃으면 다시 못 찾는 것입니다.
(86010504)5
마5:13 /신28:10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너와 계약의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는 것을 보고 세계 만민이 너를 두려워하리라. '아, 저 사람은 참으로 신구약 성경에 계약한 그 하나님이 계약대로 저 사람에게 하신다. 저 사람은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 저 사람에게는 참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이것을 모든 사람이 듣고 보고 한 사람 두 사람이 아니라 세계 만민이 두려워하리라. 예수 믿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이 그들이 알지 못해 그렇지 알고 난 다음에는 세계 만민이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이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때와 같이 여기고 자기에게 마목같이 여기고 자기를 천하게 만드는 문둥병같이 여기지마는 그것은 예수 믿어 하나님이 그에게 어떻게 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고 또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만 가지지 실상은 믿지 않는 그런 자들이 그렇게 여깁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서 사람에게 지끈 지끈 밟혀서 천하게 되는 것처럼 제가 입으로만 믿고 말로만 믿고 실상 예수님을 믿지 안 해서 다른 사람들이 천대하고 멸시하는 것입니다.
'과연 저 사람을 보니 성경에 기록한 것이 거짓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구나. 저 사람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저렇게 했다.' 그에게 함께 하는 신, 그 역사를 보고 바람은 보이지 않지마는 바람이 불어 그게 움직이는 모든 만물을 보아서 아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보이지 안 하지마는 그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행사가 이루어진 그것을 세계 만민이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 예수 믿든 건데 아, 예수 믿는 것이 천해지고, 자기가 몇십 년 그 직장에 있으면서도 예수 믿는 게 천해서 밥 먹을 때, 도시락 먹을 때 기도를 하려 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워서 기도를 못합니다. 안 할 수도 없고 하니까 눈뜨고 속으로 기도하고 밥 먹습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거는 천해서 예수 믿는 것은 사람들에게 말할 수가 없고 숨겨야 되고 가려야 되고 예수를 자랑하지를 못하게 되고, 그만 예수 믿는다 하면 다른 사람이 천대를 하고 멸시를 받고 왜 그러냐? 정말로 예수가 그런 예수냐? 정말로 직장에 가면 천대받게 하는 예수며 자기 위치를 천대받게 하는 예수며 자기 가정에서는 천대받게 하는 예수며 사회에서 경제적으로나 지위적으로나 권능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영광적으로나 모든 평강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멸시를 할 수 있는 예수냐? 아닙니다. 세계 만민이 보고 두려워하게 할 수 있는 예수입니다.
(79090160)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우리를 가리켜서 세상의 소금이라 빛이라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한 영감과 진리대로 내가 희생하여 진리와 영감이 없는 그곳에 그 사람들에게 진리와 영감으로 감화 되어서 사람을 진리화,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 도리 이 성경화 또 성신의 감화화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에서 녹아질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우리가 살 때에는 이런 사람은 이런 무슨 소욕을 위해서, 혹은 어떤 사람은 자기 가정을 위하는 것으로서 인생을 다 쓰고, 또 명예나 지위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문화 건설을 위해서, 어떤 사상을 위해시 그런 것들을 위해서 그저 오래 살든지 짧게 살든지 일생 사는 생활은 거기에 다 투자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다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이 아니고, 이래도 저래도 인간 일생이라 하는 것은 다 녹아지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건한 사람도 마지막에는 다 힘 없는 시체가 되고 말고 아무리 젊은 어린 사람이라도 마지막에는 젊음도 강건도 어림도 다 없어지고 마지막에는 다 시체로 화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가진 젊음이나 강건이나 지혜나 총명이나 온갖 기능이나 그 모든 것이 다 이래 없어지든지 저래 없어지든지 다 녹아지는 거는 일반입니다. 믿는 사람도 그렇게 다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것 때문에 다 젊음도, 강건도, 아름다움도. 지혜도, 총명도 다 녹아지고 없어집니다. 그것을 인해서 다 쓰여지고 없어집니다.
그렇게 살던 우리들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는 말씀은, 짠 걸 말하는 것은 영감을 말합니다. 진리와 영감을 가리켜서 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 진리와 영감으로 우리의 젊음이 다 없어져야 되겠고, 건강이 없어져야 되겠고. 또 모든 지식과 지혜와 모든 것이 이 진리와 영감에게 쓰여져서 없어져야 되는 것이 우리 기독자들입니다. 그리 되면 우리가 이 진리와 영감에게 쓰여져서 없어지면 이 진리와 영감은 자기의 손길이 닿는 대로 어떤 사람은 한 가정에게.
어떤 사람은 한 단체. 어떤 사람은 한 민족에게, 어떤 사람은 조그만한 그 사회에.
또 한 국가에게. 한 세계에게. 한 시대에 이 진리와 영감을 그들에게 다 전파해 가지고 그것이 전파되어서 거게서 주님의 이 생명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84061330) 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성도들에게는 다 시간도 제한되어 있고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는데 자기의 가지 그것이 진리와 영감에게 쓰여져서 없어지는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것은 반복되지는 못합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진리와 영감에게 쓰여져서 진리와 영감을 자기가 건설할 것을 건설하고 확대할 것을 확대해야 되지.
오늘이라는 이 시기에 진리와 영감으로 자기가 희생되는, 다시 말하면 진리와 영감에게 쓰여져서 없어지는 요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자기는 진리의 건설은 못 합니다. 자기는 자기 자신도 진리화되지 못하고 영감화되지 못하고 또 자기는 진리와 영감으로 아무것도 점령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말은 우리 자체가 쟌리와 영감에게 쓰여짐으로 없어지는 그것은 다 진리화된 것입니다. 다 영감화됩니다. 자기가 하루 동안을 진리와 영감대로 살아서 하루 산 것이 그만침, 예를 들면 그 사람의 생명이 만일 천 날이 지금 남았다 하면 하루를 살았으면 천 날의 천분지 일이 줄었겠습니다. 천분지 일이 줄어서 구백 구십 구 일 밖에는 안 남있겠습니다. 그러면, 그 한 날을 진리와 영감대로 살아서, 진리와 영감에게 쓰여져서, 다시 말하면 진리와 영감대로 살아서 그 하루가 끝났으며 하루에 쓰여진 그 시간이나 정력이나 자기의 온갖 모든 것은 다 그것이 진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진리화됐습니다. 진리화됐는데, 요 기회를 놓치면 자신이 다시는 진리 될 수가 없고 영감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진리들이 가서 사는 곳이요 영감들이 가서 사는 곳입니다.
이라니까, 그 사람이 부활은 하기는 하지만 진리화된 것이 없고 영감화된 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기는 갔지만 지극히 작은 자가 될 것이요 또 자기의 그 활동할 무대나 세계는 아주 없는 거와 같은 그런 사람이 되어집니다.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 하는 이 말은, 오늘이라는 이 오늘은 우리 자신이 진리화되어서 진리는 아니지만 진리같이 됩니다. 마치 등을 만들어 놓고 그 등 안에 불을 켜지 안하면 그 등은 아주 깜깜하게 되어 있지만 그 안에다가 불을 켜면 그만 동은 불덩어리가 됩니다. 등은 불덩어리가 돼. 누가 봐도 등을 보고서 불이라 합니다.
'아 저기 불빛이 있네. 저기 밝은 불이 저기 있다.' 이러나. 그 등은 불이 아닙니다.
불이 아니지만 등 속에 불을 켜면 그 등이 그 불의 빛을 받아 가지고서 그 빛이 등을 통하여서 나오기 때문에 그만 등도 그만 빛이 되고 불이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리와 영감으로 쓰여짐으로 없어지면 쓰여짐으로 없어진 그것은 진리화됐고 영감화됐기 때문에 영원히 진리로 살고 영원히 빛으로 살게 됩니다. 그 안에서 진리와 영감이 영원히 역사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진리의 덩어리요 빛의 덩어리요 그 진리가 능력 가진 그 능력을 그 사람이 가지고 있고 영감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그 사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제삼자에게는 진리 노릇을 하고 영감 노릇을 하고 제삼자에게는 하나님처럼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오늘 우리 자신을 진리로 만들 수 있고 영감으로 만들 수 있다, 진리화시킬 수 있고 영감화 시킬 수 있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못 하는 것입니다.
'후에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 다음에는 그러면 어찌 되느냐? '쓸 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비유입니다. 모든 존재에게 천대를 받게 된다. 그러면 세상에서도 천대받게 되고 또 무궁세계에서도, 거게는 불신자는 없고 다 택자들 뿐인데 택자 중에 천대받습니다. 지금은 신불신자에게 천대받고 무궁세계 이는 택자들 가운데에서 천대를 받게 됩니다. 그거는 아무 데도 쓸 데가 없다고 다른 말씀에 보면 '거름에도 쓸 데 없다' 아무 데도 쓸 데없다 거름에도 쓸 데 없다. 그거는 이용 가치는 하나도 없습니다. 불택자들은 거름으로 쓰여집니다. 불택자들은 사람을 왜 만들었느냐? 하나님이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마치 식물의 거름이 필요한 것처럼, 거름이 들어서 식물을 무성하게 하고 결실하게 하는 것처럼 이렇게 불택자들은 신자들의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그들이 구원 이루는 데에 이용을 당하는 것이지만 택자들은 거게도 이용 못 당하도록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소금으로만 이용될 수 있는 것이지,
(84061330) 3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을 가리켜서 맛 잃은 것이라고 이렇게 비유했는가? 소금이 녹아지지 않는 것도 맛 잃은 것이고, 또 소금은 짠 건데 짜지 않는 것도 맛 잃은 것이라 이렇게 생각을 해 나왔고 또 복잡한 것을 가져서 우리에게 실효를 많이 제감시켰습니다.
우리는 소금이면 다 짜운 것으로 이래 보지만 소금 중에는 바닷물로 만든 소금도 있고 또 산에서 캐내는 소금도 있고 많이 있는데 여기 맛 잃는다는 것은 간을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소금은 짜운 것인데 소금이 변질된 걸 말합니다.
그러면 맛은 뭣을 비유하는가? 우리는 사람 중에 예수님의 이 구속을 입은 우리들입니다. 아주 좁혀서 말하면 사죄와 칭의와 화친으로 해방됐고 또 이것으로서 다시 살아난 우리들이요 그것을 좀 구체적으로 깊이 말하면 열한 가지를 말할 수 있고 더 세밀히 말하면 열여섯 가지 구속을 말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어릴 때에는 세 가지, 사죄와 칭의와 화친 세 가지를 기억하고또 조금 장성하면 그만치 장성하기 때문에 생활이 회개에 대해서 조금씩 더 구비하고 성장돼 나가기 때문에 열한 가지를 생각하고 또 좀 더 장성하면 열여섯 가지를 생각해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여게, 소금이 녹는 것은 이것은 자신이 점점 소모돼 나가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데 우리에게 시간도 소모돼 나가고, 또 건강도 소모돼 나가고, 또 우리의 생명도 소모돼 나갑니다. 이거는 뭐 안 나갈래야 안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녹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녹습니다.
하루 지내면 그만치 내게 해당된 시간도 그만치 줄어졌고, 또 생명도 줄어졌고, 내게 있는 모든 그 온갖 정욕도 다 줄어졌습니다. 이거는 늙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녹는 것은 늙는 것이라. 늙는 것은 다 늙지 그뭐 안 늙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소금이 맛을 잃으면" 하는 것은 곧 우리의 구속하나만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가 희생하지 안하면' 하는 그런 말은 여게 덧붙여서 도리어 어지럽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희생 하나 안 하나 자기라는 것은 그만치 줄어집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땅위에 한 시간 살면 한 시간 산 것만치 벌써 녹아졌습니다. 제가 의를 위해 녹아지든지 악을 위해서 녹아지든지 자기행락으로 범죄에서 녹아지든지 믿음을 지켜 녹아지든지 녹아지기는 하루 지내면 하루 그만치 녹아지고 한 시간 지내가면 한 시간녹아지고 이라기 때문에 녹아지는 거는 그거는 다 자동적으로 다 녹아지게 됩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예수님의 주시는 열여섯 가지 구속으로 살아 녹아지는 거 있고, 간이 없이 녹아지는 것 처럼 변해서 구속을 잊어버리고 구속은 자기와 상관 없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그렇게 녹아지는 것 있습니다. 옛사람으로 살아도 그만치 녹아지고 새사람으로 살아도 그만치 녹아집니다.
옛사람으로 살아서 녹아지는 것과 새사람으로 살아 녹아지는 게 있는데 옛사람으로 살아 녹아지는 것은 이 구속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는 맛 없이 녹아지는 것입니다. 녹아진다면 늙어진다 말입니다.
어린 아이도 두 살 먹는 아이와 세 살 먹는 아이를 눈으로 자세히 보면 벌써 세 살 먹는 아이는 그만치 녹아졌습니다. 작은 것이 커지니까 자꾸 커지는 줄 알아도 그것도 늙어졌습니다. 벌써 자기에게 있는 생명은 세 살 잘 먹으면 벌써 삼 년은 없어졌다 그말입니다. 네 살 먹으면 사 년은 없어졌다 그말이오. 이 구속으로 늙어지는 것은 맛 있는 소금이고 구속 없이 녹아지는 것은 맛 잃은 소금이라. 사람이 주님의 이 구속을 입어서 이 구속으로 늙어지느냐, 이 구속 생활로 늙어지느냐? 구속 생활 하지 안하고 옛사람 생활로 늙어지느냐? 그것을 여게 가리켜 말합니다.
"맛을 잃으면" 구속 생활을 잊어버리고 옛사람으로 늙어지면하는 말입니다.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이것은 잘못 늙어지면 다시는 고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한 번 자기는 새사람으로 살아 늙어지지 안하고 옛사람으로 살아 늙어졌으면 이것은 고칠 수 없다 그말이오. 고칠 수 없습니다. 옛사람으로 살아서 한 시간 늙어졌으면 한 시간 그거는 완전히 죽어버렸지 그것을 어떻게 살려낼 수는 없습니다.
'후에 아무 쓸데없어'
녹아지고 난 다음에는 그 뒤에는 다시는 아무 소용 없는 쓸모없는 것이 돼진다. 아무데도 쓸모 없는 게 돼진다.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자기 있던 위치에서 더 천해진다 말입니다. "밖에 버리워" 그러면 자꾸 방 안에 있는 것을 마당으로 내버리고 마당에 있는 것을 대문 밖으로 내 버리고 자꾸 이래, 말하자면 폐기된다 그말이오. 자꾸 버리워진다. 자꾸 천해져 버린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인간에게 점점 천해지게 된다.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도 그러하고 무궁세계에서도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아주 사람에게 밟히고 천대받고 그렇게 될 것뿐이니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87091630) 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우리 기독자는 안 믿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야 올라갑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죄로 올라가는 것이오. 죄실력으로 잘사는 것이오.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삐풀어진 일을 해서 잘 삽니다. 김일성씨도 하나님의 일에 삐뚤어진 하나님 없다는 그런 주장을 내세우고 예수를 팔았기 때문에 저렇게 왕노릇 하고 삽니다. 기독자는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기독자 가운데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성전 밭마당이 있고 하나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 이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간섭 안 하는 신자 있고 간섭하는 신자 있고 둘 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에는 간섭하다가 안 들으면 아예 그걸 간섭하지 안하고 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내버린 그런 신자들이 십분지 한 칠이나 팔이나 됩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끝끝내 간섭하는 사람은 불과 한 십분지한 이삼, 한 두서넛 됩니다. 이래서 얼마 동안 간섭 안 하고 았다가 또 간섭하기 시작하는 그런 사람도 있고, 간섭하다가 안 되면 그만 방임해 내 둬 버립니다.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죄를 지어도 되는 사람 있는 그런 것은 혹 불택자, 그러면 택자로서는 아주 버림을 받은 사람, 그런 사람인데 정상적인 믿는 사람은 자기가 점점 존귀해지는 방법이 뭐이냐?소금으로 녹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속으로 늙어지는 것입니다. 하루도 하루 생활이 구속으로 늙어지고, 이틀 생활이,한 달 생활이 구속으로 늙어지고, 점점 구속으로 늙어지는 그것이 자신이 점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이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지면 점점 안으로 영접함을 받습니다. 쓸모 없는 사람이 되면 자꾸 밖으로 나옵니다. 떨어져 나온다 말이오. 밖으로 자꾸 떨어져 나와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자꾸 중요한 자리로 자꾸 영접해서 점점 중요하게 쓰이게 됩니다.
(87091740) 4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이말은 다시는 짜게 할수 없다. 절대 다시 짜게 할 수 없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소금은 녹아지는 것이 직책인데 이 녹아지는 데 대해서 희생이라는 그런 것을 저도 과거에 말했는데 그것은 도리어 방해하는 그런 해석이었습니다. 전부 주석들은 다 그래 돼 있는데 처음에는 그래 깨달았지만 그분들도 나중에 깨달으면 달리 깨달아질 것입니다.
녹아지는 것은 안 녹아지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 녹아집니다. 열여섯 가지 이 구원으로 자기가 녹아지든지, 돈을 위하여 녹아지든지, 자기 욕심 차리다 녹아지든지, 그리 안 하면 자기는 뭐 행락 취하다 녹아지든지, 뭘 하다가 녹아지든지 녹아지기는 한 살 지냈으면, 일 년 지내면 그만치 녹아졌지 사람들이 `그 사람은 뭐 아주 열 살은, 십 년은 젊게 보인다. 이십 년은 젊게 보인다.' 그 우리 눈이 볼 줄을 몰라서 그렇지 똑똑히 보는 사람은 일 년도 못 속입니다. 다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잘못 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사십 세라 하는데 스무 살 같더라' 이래 보는 거 우리 보는 눈이 어두워서 똑똑히 못 봐그렇지 잘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이 스무 살이면 스무 살 딱 알지 뭐 열아홉으로 보지도 안하고 스물하나로 보지도 않습니다. 자꾸 늙어진다 그말이오. 자꾸 줄어져. 녹아지는 거와 같이 자꾸 감소돼져.
자기의 생명 기간도, 생명의 수명도 자꾸 줄어지고 자꾸 자기의 정력도, 암만 힘이 세어지는 것 같아도, 어린아이가 한 살 먹는 것보다도 열 살 먹는 아이라면 그 아이는 힘이 많아지는 거 같지만 실은 우리가 볼 줄을 몰라 그렇지 많아지는 것이 아니고 벌써 그 아이의 힘이 백 근이라고 하면 벌써 열 살이 됐으면 그것은 그만치 줄었고 또 한 살 먹는 거는 그만치 적게 줄었고 준 것은 그만치 많이 줄고 적게 줄었다 그말이오.
다 늙어지는 거 그거는 돈 위해서 늙어지는 사람, 명예위해서 늙어지는 사람, 행락 위해서 늙어지는 사람, 또 자기 나쁜 악을 인해서 늙어지는 사람, 고집 위해서 늙어지는 사람, 또 시기 위해서 늙어지는 사람, 분노 위해서 늙어지는 사람, 늙어지는 것은 뭐이든지 늙어지기는 늙어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방 안에 가만히 드러누워서 평안하게 있으면 안 늙어지는 줄 알아도 그것도 늙어집니다.
녹아지는 건 다 녹아지는데 이제 소금이 간을 가지고 녹아지는 거와 같이 사람들이 기독자의 열여섯 가지 구원 본질과 본성과 본분 이것을 하면서 늙어지느냐 이것을 떠나고 늙어지느냐 하는 그것이 이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잃으면 다시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다시 짜게 하지 못한다.자기가 열여섯 가지 구원을 버리고 이 세상 것 위해서 살다가 늙어졌으면 그것을 어떻게 다시 복구하겠습니까? 복구한다면 어제를 오늘로 만들어야 되는 건데 그거는 인간도 못 만들고 하나님도 못만드는 것입니다. 지나가면 지나간 것은 다시 그거는 앞으로 돌아오게는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후회된 그것은 앞세우지는 못 합니다. 지나간 것은 자기 앞에 두지는 못한다 말이오. 지나간 거는 지나가 버렸지 지나간 그것을 자기 과거 된 것을 미래로도 둘 수 없고 현재로도 둘 수 없다 그말입니다.
'후에 아무 쓸데없어'
기독자 제가 인간들이 말할 때에 이 문화 운동 한 사람은 그 사람은 노벨상을 받았다. 또 무슨 정치 운동 한 사람은 세계에 손꼽는 첫째 둘째가 됐다. 뭣을 했든지 기독자가 이 세상에 와 가지고 열여섯 가지 구원 이것을 버리고, 이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걸로 살았으면 그 사람은 다시, 하늘나라에서는 이것으로 산 것만 간추려지기 때문에 이것으로 살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산 그것은 몇 해를 살았든지 다시 그거는 복구할수 없다. 회복할 수가 없다. 못 하면 어찌 되느냐? 그것은 쓸모 없는 일이 된다.
사람들은, 노름꾼은 노름꾼의 그 면으로는 쓸모가 있어지지요. 또 이 체육을 하는 사람은 체육면으로서는 쓸모가 있어지지요. 남의 돈을 쓰리하는 도적질 하는 거 훔치기 하는 그런 사람은 훔치는 데는 쓸모가 있지요. 그러나 그 쓸모는 언젠가 없어집니다.
여게 "쓸데 없다" 그말은 하나님께 쓸데 없다 말이요 또 참 옳고 바르게 쓸데 없다 말입니다. 삐뚤어지게는 자꾸 쓰여지지, 그 연습하면. 이렇지만 참 하나님에게 쓸데가 없다. 참으로 인류에게 쓸데가 없다. 만물에게도 쓸데 없다. 죄밖에는 쓸데가 없고 마귀에게 밖에는 쓸데가 없다. 그거야 암만 쓸데 있는 게 무슨 좋은 겁니까? "쓸데 없게 된다" 그러면 어찌 되느냐? 밑에 말해놨습니다.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버림 받는다. 버림 받는 것도 하나님께 버림 받는 걸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또 이 인류에게 버림 받는 거 말하는 것이고 만물들에게 버림 받는걸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거는 천대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8709185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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