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안하는 그것을 할라고 애를 쓰는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3가지를 벗지 안할라고 애 쓰는 것이라 말이요.
(84013120)
'복'
그러면, 첫째 순서가 뭐이냐? "복 있는 사람은" 이 말은 사람들이 복 하면 그 복을 추접하게 생각하는 그런 못 된 관념이 우리 동양 도덕에는 있습니다. 동양 도덕에는 도덕이나 그런 것, 뭐 의냐 또 거룩이냐 또 의지냐 착하냐 뭐 그런 것만 지금 말하고 있고 복이라 하면 그만 추접한 것같이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왜 그렇게 가지게 돼는가? 복이라는 것은, 우리 동양 관념에는 물질이라 그렇게 보는 그런 못된 안된 어리석은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 좀 복을 넓게 말하는 사람은 오복이라 또 이래 가지고 조금 수다하게 종류를 넓혔습니다. 또 산상 보훈에는 보면 팔복이라 그래서 팔북산이라 하는 그런데를 따라서 다 그리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고하니, 복은 하나님이 그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이 되는 자가 그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복이 있고 또 내세에도 복이 있고 영과 육이 아울러 다 복 있는 그 복을 말하는 것이니까 여게 복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복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84051520) 3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그래서, "복 있는 사람" 네, 순서를 말합니다. 우리 신앙 순서는 벌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또 성경을 읽고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우리는 신앙 생활을 어디서부터 시작하겠다 고 시발점을 출발점을 어디다가 둬야 하느냐 하면 '악인의 꾀를 좋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안한다' 요것이 다 마음 문제입니다. 요게 마음 문제요 마음 문제.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한다 그말은 자기 중심의 경영을 자기 중심의 주장을 자기 중심의 말을 자기 중심의 계획을 자기 중심의 운동을 자기 중심이라 말은 개인 자기 중심이나 모든 피조물 중심은 다 그거 자기 중심이요 피조물 중심이기 때문에 악입니다. 뭐이든지 우리는 마음에 첫째는 활동이 있어야 되는데, 첫째 우리 신앙 생활의 순서는. 우리 마음은 '보자 이 말이 피조물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도 되고 피조물도 위하고 그라면 피조물 중심이 하나님 중심이요 하나님 중심이 피조물 중심으로 하나 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 될 때가 많고. 어떨 때는 피조물 중심 할려 하면 하나님 중심 버려야 되고 하나님 중심할려 하면 피조물 중심을 버려야 되고, 이 둘을 다 취할 수는 없고 둘 중에 어느 것이든지 하나만 취해야 되는 그런 때가 온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활동 이 신앙 생활에 제일 먼저입니다.
마음의 활동이 신앙 생활에 제일 먼저인데, 마음의 활동을 그러면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마음의 활동이냐? 첫째 마음의 활동은 이것이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이냐? 하나님을 빙자해 놓고 이게 실은 사람 위주요 사람 중심이냐? 그것을 찾을라면 찾을 수 있다 말이오. 낱낱이 찾아요. 낱낱이 찾을 수 있어.
그러면, 요새 지금 복음 운동이라는 운동은 많지만, 그 운동을 이렇게 살필 때에 이게 하나님 중심의 운동이냐 인간 중심의 운동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세상 중심이냐? 이런 걸 살펴 보면 그만 뚜렷이 나타나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무슨 중심의 꾀를 좇지 안한다 이거는 계획을 말 합니다. 피조물 중심의 그 경영이나 계획이나 그리 되면 그것을 자기는 좇아서는 안 된다.
(84051520) 3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하는 이것도 다 다른 사람이 하는 운동을 말합니다. 하는데,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한다 그말 은 번연히 현저히 성경 말씀에 위반된 그 일을 따라 가지 않는다 말이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말은 번연히 현저히 성경에 위반된 그 일을 쫓아 가지 않는다 말이오. 아무리 친근하고 내가 이제까지는 아무리 존경을 하고 했다 할지라도 성경에 위반된 일이면 나는 그걸 따라가지 않는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그 길은 아예 그 자리 서지를 안한다 말이오. 성경에 현저히 명문되어서 성경에 이거는 위반되다 할 때에는 아무리 친해도 아무리 사정이 딱하고 아무리 그 사람이 내게 거석하고 아무리 자기 욕심에 뭐 해도 요것은 성경에 위반되다 할 때에는 고게서 딱 중단하고 가지 않는 요것도 마음의 행동에 지금 따른 것이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이것은 자기가 어디까지 갔을지라도 어디까지 갔을지라도 이제 나는 할 만침 했다. 이제는 할 만침 했다 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큰 시험입니다. 자기는 뭐 기도를 하든지 무엇을 이래 하든지 하면 그만 이제는 할 만침 했다 이래 가지고 자꾸 그만 자기는 오만이라는 말은 자기는 벌써 그 한 일에 대해서 무엇의 반대인고 하니 '나는 부족한 자입니다.' 하고 갈급. 갈급과 가난, 갈급과 가난과 반대되는 것이 오만입니다. 갈급과 가난에 반대되는 것이 오만이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해야 된다. 요것도 그 마음의 행동이요, 또 몸의 행동까지 나오게 됩니다. 요 세 가지가 합해서 행동입니다.
(84051520) 3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자기 중심 자기 위주,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 그 위주에 유혹받아 따라가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유혹받아 따라가지 않는 것. 요게 제일 심합니다.
자기 중심이나, 가정 중심이나, 사회 중심이나, 국가 중심이나, 과학 중심이나, 또 인류 중심이나 그것이 다 악인의 꾀입니다. 악인이 계획한 악인의 계획을 네가 좇지 마라 따라가지 말아라. 따라가지 안하면 인간 정리가 됩니다. 인인 관계가 솔직하게 됩니다. 인인 관계가 단순해집니다. 인인 관계가 단순해지고 솔직해지고 아주 인인 관계가 단일로 딱 됩니다. 인인 관계가 자꾸 단일화 돼 버립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속화되지 않습니다. 퍼지지 않습니다. 물들지 않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죄인이라 말은 삐뚤어진 걸 말합니다. 삐뚤어진 것도 사회주의에 삐뚤어진 것도 있고, 대한민국 국법에 삐뚤어진 것도 있고, 또 육법전서에 삐뚤어진 것도 있고, 강도들 그 단체법에 삐뚤어진 것도 있는데 그런 것 다 치워버리고 하나님의 이 신구약 육십육 권 이 도리에 삐뚤어진 것을 가리켜서 여게 죄라고 말합니다. 여게 삐뚤어지지 안한 건 죄가 아닙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하는 것은 하나님의 육십육 권 도리에 삐뚤어진 그 주장이나 그 계획이나 그 단체나 그 운동이나 그 시발이나 그 협동이나 이런 것을 “서지 아니하며” 거게 참가치 아니하며, 따르지 아니하며.
이럴라 하니까 어찌 됩니까? 사물에 대해서 흐리멍덩한 것이 다 없어지니까 사물에 대한 결백이 이루어집니다. 사물 결백이 이루어집니다. 일에 대해서 결백해지고 물질에 대해서 결백해지고 이 사물 결백, 사물 단순, 사물 솔직, 사물 단순, 사물에 결백, 이러니까 사물에 대해서 모든 것이 다 아주 단순해집니다.
왜? 할 일이 많은데, 자기에게 부딪혀진 일이 열 가지, 이 일도 있고 저 일도 있고 다 이 일이 많은데 이 일을 다 하려고 사람들이 하다가 죽는 날까지 일 다 하고 죽는 사람이 없고 자꾸 분주해집니다. 분주해지는데, 이 사람이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이러니까 성경 말씀에 위반된 것은 척척 척척 빼 버리니까 하루 종일 할 일이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에 위반된 거게 참가하지 안하고 보니까 할 일이 없습니다.
그놈을 다 할라 하니까, 해 봤자 죽을 일인데. 신구약 성경에 위반된 일은 안 하고 신구약 성경에 하라는 것만 떡 할라 하니까 어떻게 단순해지는지. 이것이 그 사람의 사물, 행위 결백이 됩니다.
이러니까 꼭 해야 될 일만 하고 하나님의 축복받을 일만 하고 저주받을 일은 다 하지 안합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사람이 대개는 이 일해 놓으면 자기 공로를 몰라 준다고, 자기 수고를 몰라 준다고, 또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보고서 ‘내가 이런 일 했다 저런 일 했다’ 이래 가지고 자꾸 자기에게 잘한 일, 또 공로 있는 일, 자기의 좋은 점, 자기 수고한 점, 자기가 뭐 봉사하고 선한 일 하고 충성한 점, 자꾸, 이래서 사람이 자기의 행사에 대해서 자기가 잘한 것만 따져보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오만한 자라 이랬습니다. 자기의 잘한 점을 자꾸 살펴 ‘내가 이 점을 내가 요번에 내가 공로가 있다 수고를 했다’ 그게 오만한 자인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에게 장점이나 또 잘한 점 그 점을 찾는 자가 되지 말고 자기에게 잘못된 그점을 찾는 사람이 돼라 그 말이오. 자기에게 잘못된 그점을 찾는 사람이 돼라.
잘못된 점 보니까, 먼저 자기가 해 놓고 모든 선지 사도를 떡 살펴보니까 그 선지 사도와 자기와 비교해 보니까 자기 한 것이 아무 자랑할 것이 없고 너무 부족합니다. 선지 사도를 비교해 봐서 사도 바울과 자기와 비교해 봐도 ‘사도 바울보다 나는 더 충성했다’ 이러면 그 사람은 그때에 오만한 자리에 앉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을 만일 비교해 가지고서 자기는 사도 바울보다 나았다고 하면 그때는 주님과 자기를 비교합니다. 주님과 자기를 비교하면 자기는 모든 피곤이 물러가고, 피곤이 물러가고, 하나님께 쫓겨날 수 있는 교만이 물러가고, 자기에게는 만족이 물러가고, 의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어지니까 그 사람은 영감과 진리와 구속으로 배부를 수밖에 없게 돼 버리지.
이러니까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너는 선지 사도들을 보고 그와 너와 비교해 보고, 이것도 성경이 아니오.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 하는 것은 바울이 영감으로 할 때 영감을 본받으라 그 말입니다. 바울이라는 사람 본받으라 말 아니오.
이러니까 우리를 구속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 “주의 어떠하심같이 너희들도 그러할지어다” 했으니까 이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은 자기 행위와 주님과의 비교해 보는 그 자리에서 살아라.
(87092553) 4
'복'
우리가 복이라고 하면 그저 재산이나 넉넉하고 몸이나 건강하고 또 자손이나 흥성하고 모든 출세나 하고 그라면 그런 것만을 복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좁은 범위에서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 복 있다는 이 말씀은 매우 복 있다는 말씀인데 금생과 내세, 영과 육 전부가 다 복 있다는 것을 가르쳐서 복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하다 말하는 것은 '이제 내가 이만치 믿었으면 됐다' 하고서 자기가 교만을 가지는 것이, 자만을 가지고 교만을 가지고 '이제는 됐다' 하고서 게을을 부리고 주저앉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오만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89031053)
'악인외 꾀를 좇지 아니하며'
이걸 뽑고, '악인의 꾀를' 악인이 많아. 자기 속에 꾀우는 꾀가 악인의 꾀가 자기 속에 옛사람 그놈이 제일 악인의 꾀로 가지고 날 꾀우는 그놈이, 또 내 몸 밖에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 가까운 가족 가까운 가족 가까운 친구, 그러기 때문에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마10:36) 자기와 제일 가까운 그 사람이 자기로 하여 금 자기 중심으로 살도록 그렇게 했다 그 말이오.
그랬는데, 그러면, 우리 믿음의 조상 가운데에서 악의 중심으로 자기 중심으로 산 자가 누굽니까? 롯. 이건 늘 기억하고 있어야 돼. 롯은 자기 중심으로 사는 모든 신자들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모든 신자들의 조상입니다. 요새 언제, 어제 아침에 나 사람은 잊어 버렸어, 그랬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어디로 뭐뭐 이사를 간다든가 뭐 그러기 때문에 그래 내가 있다 말했어. '뭐 그것은 가도 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롯의 걸음인가 아브라함의 걸음인가 똑 두 길만 구별해 가지고 롯의 걸음이면 가지말고 아브라함의 걸음이거들랑 가라' 그렇게 내가 말하고 그만 말아 버렸어요.
아브라함의 걸음이거든 가고 롯의 걸음이거든 가지 마라 그 말은 무슨 말인가? 롯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 다음에는 가족 위주, 그 다음에는 물질 위주 그래 가지고 망했다 그거요 뭐 간단한데, 예수 믿는 거는 간단한데, 제일 뭐이냐? 진실이 없고 원수는, 자기 속에 내라는 고놈이 들어서 자꾸 우리를 망치고 있기 때문에 그거는 내가 아니라.
나를 죽인 원수인 나, 나 아닌 나,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나, 자기 중심으로 산 타락한 그 악령,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 인간 의 원죄, 또 자기 중심으로 행동한 모든 악습 이런 것들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이런 것을 다 피하고.
(85062630) 9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악인들이 행동하는 것과 주장하는 것과 하는 거게 대해서는 찬성하고 협동하고 따라가지 안한다 말이오. 그게 신자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이라 말은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된 행위가 다 죄인의 길입니다. 어디에 삐뚤어진 것? 대한민국 헌법에 비추어 가지고서 삐뚤어진 것? 아니오. 그거야 삐뚤어진다 해도 오히려 삐뚤어지는 게 잘 되는 것도 있습니다.
(88102151)
'복있는 사람은'
복관에 대하여 먼저 말하는 말씀입니다. 복관이라면 무엇을 복으로 보는가 라는 것을 말합니다. 복 福자 볼 觀자. 또 인생관이라 말은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인생을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물질관. 그 사람이 물질에 대해서 물질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그런 걸 그래 관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성경에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자기 중심의 운동들에 따라가지 않는 것, 자기 중심으로 하는 그 사람의 주장에 따라가지 않는 것이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것입니다. 악인은 자기 중심의 사람이 악인입니다. 자기 중심의 계획, 자기 중심의 뭐 감언이설, 자기 중심의 이런 친절, 자기 중심의 사교, 자기 중심의 봉사,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해서 사람들을 매수하려고 유혹시키려고 또 이용하려고 하는 등 온갖 것이 있습니다. 어쨌든지 자기 중심의 인간을 좇지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은 성경에 위반된 길을 가는 사람, 성경에 위반된 주장과 행위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 것. 같이 가다가도 성경에 위반된 행위하면 그만 그 사람은 가든지 말든지 저는 성경대로 가 버리고 맙니다. 성경에 위반된 행위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을 복 있다 이랬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만하면 됐다' 하는 교만한 자, 그만 무엇이든지 제가 어떻게 했든지 자기를 과대평가 해 가지고서, 자기의 장점이 있다 할지라도, 장점 좋은 점 그게 있다 할지라도 이만하면 됐다 하는 그런 자와 가까이 안 해야 됩니다. 자기 의가 많아도 그저 늘 부족하고 마음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라야 되어져야 하지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88081953) / (85062630) 9
'복있는 사람은'
이 말은 형통한 사람은 그 말입니다, ‘모든 일에 형통한 사람은’ 형통한 것은 세상 일이 잘되는 형통, 그보다 더 나은 것은 또 신앙 생활에 하나도 막히지 안하고 닥치는 것마다 다 승리로 통과하고 성공으로 통과하는 것이 다 형통입니다.
육의 형통도 있고 믿음의 형통도 있는데 육의 형통 있는 사람이 믿음의 형통 있고 믿음의 형통 있는 사람은 다 육의 형통을 통과해서 초월해 가지고서 그렇게 형통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일반적으로는 육의 형통이 먼저인데 그 사람이 그 형통을 받아 가지고서 제가 능하고 제 무슨 노력으로 형통했다고 생각하고 하는 자는 스스로 섰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망해버리고 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처음에 조금 믿고 난 다음에는 조금 잘 되다가 망하는 것은 그 조금 잘된 것을 자꾸 더 잘되구로 해 놓으면 그게 더 제가 잘나 가가지고 그와같이 했다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교만해져 가지고서 더 망할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육을 망하고 영을 구원하는 게 낫기 때문에 육을 하나님께서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육의 형통이 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육의 형통은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 감사하지마는 이것은 가치가 적다. 육의 형통은 암만 형통해 봤자 그것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것도 아니고 다 하늘나라에 무슨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가치가 적다.’ 이러니까 육의 형통 받은 그것을 전부 하늘나라 구원을 위해서 마구 투자합니다.
또 투자 안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은 투자를 안 하고 ‘주여, 내가 육의 형통 이것은 내가 원치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원치 않습니다 하고서 다 집어던져 버리고 영의 형통으로 빨리 바꿔 주기를 바라는 이런 사람으로서 육의 형통을 초월해 가지고서 영의 형통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육의 형통을 안 주고 영의 형통부터 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별로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그 베드로도 육의 형통을 먼저 주고 난 다음에 이 형통을 자기가 받고 영의 형통 받지 못한 데 대해서 참 두려워 떨면서 ‘나는 죄인로소이다 주여 나를 떠나시옵소서’ 할 때에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로하시면서 ‘베드로야 네가 이제는 영의 형통인, 이 없어질 물질 축복의 수입을 받지 안하고 이제는 영의 형통 영의 축복을 네가 받으리라.’ 이랄 때에 베드로는 배도 그물도 고기도 다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악인외 꾀를 좇지 아니하며'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은 제가 들어서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보다도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자꾸 자기 중심으로 살게 만듭니다. 악인이 자꾸 주장하는 거기에 미혹받아 가지고서 자꾸 그 길 걸어가기 쉽습니다. 옆에 가족들이 악인으로 살도록 악인의 길을 취하도록, 가장 친한 자들이 들어서 악인의 길로 가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악인이 먼저 걸어가면서, 악인 따라가지 말라 그 말이오. 좇지 말라 말은 악인 따라가지 말아라. 네가 사람을 접촉할 때는 그 사람이 너로 하여금 악으로 판단하고 악으로 주장하게 해 가지고서 나아가지 않도록 그렇게 해라.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말은 이것은 유혹이 적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생활 하는 것은 제가 스스로 어기는 생활 하는 일이 많습니다. 죄인은 성경 말씀을 어기는 생활이 죄인인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제가 서야 돼. 하나님 말씀을 제가 어기는 그거는 제게 담당이지마는 악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피동되기가 쉽기 때문에 이걸 말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 말은 자기를 자꾸 자기를 만족하게 여깁니다. 자기를 됐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 볼 때 자기는 한 삼점이나 사점밖에 안 되는데 저는 백점으로 보고 있다 그 말이오. 이것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만한 자리에 앉는 것이라.
(87092220) 4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요것은 해 봐야 알지 그 전에는 몰라요. 이 말은 자기 중심의 사람들, 또 피조물 중심의 사람들, 꾀라 말은 정식 방식이 아니고 합법적인 진리적인 방식이 아닌, 옳은 방식이 아닌 삐뚤어진 방식을 다 가리켜서 꾀라 요렇게 말합니다. 삐뚤어진 방식을 가리켜 꾀라 요랍니다. 거게는 속이는 것도 있고, 거게는 기만도 있고, 거게는 허욕도 있고, 허영도 있고 어째 바르지 못한 방편입니다. 꾀라 하는 건 그것이오.
(8709266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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