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바울이 말하기를 사망은 내게 와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에게 역사한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뜯어먹고 나를 죽이는 그 역사하고 나는 너희를 살리는 역사를 한다, 이것이 복음의 성격이라는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89010650)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이 말씀은, 바울은 상대편에 자꾸 생명만 주는데 상대방은 자꾸 바울에게 사망만 줍니다. 마치 쇠를 불에다 달구면 풀무에서는 열이 자꾸 쇠로 가고 쇠 밖에서는 자꾸 차가움이 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서는 생명이 나가서 자꾸 저쪽에 비취고 저 밖에서는 자꾸 사망이 들어오는 그것이 필연성이다 하는 말입니다.
(87061511)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세상은 우리에게 이리가 되게 하시고, 우리는 세상에게 대해서 뭐이 되게 하셨는가? 우리는 세상에게 대해서 그들의 구원이 되고, 그들을 건지는 사람이 되고,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그들을 보호하는 사람이 되기를 마치 주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이와 같이 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역사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도록 돼 가지고 있고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도록 돼 가지고 있고,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려고, 가까이 접촉을 해서 구원하려고 애를 쓰는 우리가 되도록 하시고 또 세상은 또 우리를 자꾸 멀리 떠나려고 애를 쓰도록 그렇게 주님이 만들어 놨습니다. 그러니까 이 뜻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실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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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으로 더불어, 자기 신앙의 후배로 더불어, 자기보다 신앙이 낮은 사람, 어린 사람, 신앙의 후배로 더불어 정이 붙는 것은 죄악입니다. 정이 붙는 것은 그것은 뭐인가 잘못 돼 있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거기 주님에게만 정이 붙고,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믿을 수 있고, 주님에게만 맡길 수 있고 그렇지, 자기보다 신앙 낮은 사랑에게 주님으로 더불어 관계 가질 그 관계가 가져진다고 하면 뭐인가 잘못될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너희는 나에게 사망을 주고 나는 너에게 생명을 준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양이 목자를 보고 눈이라도 빼줄 만치, 사도 바울을 보고 눈이라도 빼줄 만치, 또 천사와 같이, 주님과 같이 대접하니까 얼마나 목자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목자를 사랑하지만 목자가 그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이 목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목자를 죽이는 일이요, 목자를 삼키는 일이요, 목자를 망치는 일이요, 목자를 사망하게 하는 그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그것을 깨닫고, 그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허허 하고 좋아하고 이래 하는 것이지 거기서 오는 것은 전부가 다 사망밖에는 오는 것이 없다 하는 요것을 똑똑히 자기가 구별해서 느끼지 않으면 그것은 벌써 목자가 주님을 향하지 않고 거꾸로 돌아섰기 때문에 그다음에 결과는 좋지 못한 결과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84051410)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백 목사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백 목사는 지금 그게 손해요. 귀중히 여기는 것은 백 목사를 죽이는 일이 돼. '너희들은 나에게 사망을 가지고 향하고 나는 너희에게 생명으로 향한다'는 그것입니다.
(8406063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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