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또, 여게 말씀하시기를,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다른 보혜사를 준다 그 말은 무슨 말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예수님도 삼위일체 중에 제이위인 하나님이시요 또 다른 보혜사는 내나 제삼위가 되는 성령이십니다.
그러면, 한 하나님이시지만 십자가의 대속을 책임 맡으신 이는 성자 예수님이시요.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어 놓은 그 대속을 사람들에게 완전히 적용을 시켜서 사람들로 그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허락된 그 은혜를 우리에게 끌어다 줘 가지고 그 은혜를 우리가 받을 수 있고 은혜를 누릴 수 있고 은혜 생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그 일을 책임 맡으신 하나님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면, 한 하나님이 이 면 맡고 저면 맡고 하기를. 비유는 잘되지 안하지만 한 사람이 한 사람이지만 호주의 의무를 맡고 또 남편의 의무를 맡고 또 아버지의 의무를 맡고. 그러면, 한 사람이지마는 그렇게 의무가 각각 다를 수가 있다 그거요. 아버지 의무를 맡았을 때에 그때 남편의 의무를 하면 안 된다 그거요.
아버지의 의무를 맡은 그 아버지가 자녀에게 대해서 남편의 의무를 맡을라 하면 그거는 큰 죄가 된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한 하나님이시지만 성자의 대속의 일을 하 시고 난 다음에 다른 보혜사를 보낸다 그 말은.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요 성령님도 하나님이신데 내나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신다는 그런 뜻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른 보혜사를, 보혜사는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에게 온갖 은혜를 끼쳐 주시고 또 우리에게 모든 것에 대해서 선생님 노릇을 해 주시는, 보혜사, 도울 보(保)자 은혜 혜(惠)자 또 선생님 사(師)자, 스승 사(師)자, 선생님 사(師)자. 성령님은 우리를 안보해 주시고 또 우리에게 온갖 은혜를 우리가 받아 가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시고 또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라 말이오. 그래서, 보혜사라 그렇게 주님이 이름을 붙여서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는 내나 성령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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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성령님의 이름을 보혜사라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성령님이라면은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이름을 보혜사라 이렇게 했습니다. 보호할 보자 은혜 혜자 선생님 사자, 스승 사자.
그러면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주십니다. 필요한 것은 뭐인가? 예수님이 다 대속으로 해 놓은 것입니다. 대속으로 다 해 놓으신 완전한 것인데 이 완전한 것을 우리에게 실상으로 내가 받아 가지고 입을 수 있도록 그렇게 역사해 주시는 이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은혜라, 보호라. 그러면 이 은혜받은 이 은혜를 다른 것들이 해하지 못하게 잘 보호해 가지고 이대로 보존하고 유지하도록 하시는 이가 성령님이시라. 또, 스승 사자라 말은 우리를 바로 인도하고 가르치고 지도하시는 분이라 그말이오.
우리 선생님은 하나님이 우리 선생님이요, 우리를 보호하는 이는 하나님이시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짜로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요, 공짜로 주는 것은 가치가 없어 공짜로 주는 게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도 가치가 되지 못하는, 우리로써 가치 댈 수 없는, 우리는 완전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완전치 못한 것으로써는 가치가 되지 안하고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으로나 받지 그뭐 댓가는 낼 수가 없는 아주 높은 차원의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이러기에 성령의 이름은 보혜사라.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우리가 생각하고, 또 주님의 그 선포해 놓으신 말씀을 생각하고, 또 대속을 자기가 생각하고 말씀을 생각할 때에 더 우리에게 똑똑히 깨닫게 해 주시고 확실히 믿게 하고 더 명확하고 정확하게 하시는 그 역사가 누구냐 하면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피와 성령과 진리는 하나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이 주님의 대속에 대해서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대형을 해 가지고서 내 죄에서 해방시켜 자유 주셨고, 대행해 가지고 하나님의 공심판에 의로 통과해서 자유 주셨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화친되는 이 생명을 주셨어.
이렇게 주신 이 일을 우리가 생각하면,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면, 대속을 생각하는 것, ‘주님이 나를 대속하셨다’ 그러면 자기가 다른 것 이 세상에 돈도 생각할 것, 뭐 사람 생각할 것, 일 생각할 것 그런 게 많은데 모든 생각할 게 많은데 그때에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면, 대속을 생각케 하는 이가 누구냐 하면은 이 보혜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귀란 놈은 ‘네가 너 혼자 생각한 것 아닌가?’ 이렇게 합니다. 우리가 바쁘다가도 ‘주님이 나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 대속하셨다 이 껍데기, ‘주님이 나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 이래도, 대속하셨다 그렇게 생각나게 하는 것이 누구냐? 성령님이라 그말이오. 그게 영감입니다.
또 예수님이 나를 대속하신 데 대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도성인신, 사람되셔 가지고서 양성일위로 대형, 대행, 사활의 대속을 하셨다.’ 이 차차 차차 더 깊이 들어 가는 것은 그거는 우리의 지식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우리의 총명으로 들어가는 아니라. 우리에게는 사망한 것뿐이지 그런 게 없습니다. 없는데 그거는 다 생명이요 완전이요 영생이기 때문에 영생의 운동이 영생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다 그것은 보혜사가 지금 우리에게 그와 같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고, 대속을 생각하다 보니까 대속을 똑똑히 가르쳐 주고 있는 진리를 생각하고, 진리를 생각하고 또 그러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내가 더 성령의 감화를 받고 영감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그 생각을 가지는 그것이 점점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자기가 대속을 생각하든지, 현실에서. 또 자기가 하나님의 ‘진리가 뭐이냐?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든지, 자기 마음 중에 제일 깨끗하고 좋은 것은 양심인데 양심보다 더 성신의 감화를 받고자 하는 그 소원을 가지게 하는 그거는 전부 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를 소멸하지 말라 그말입니다.
그 역사가 내게 소속한 내 인적 요소로 내게 소속해서 내가 그런 생각 저런 생각 가진 그 인적 요소가 아니라. 나를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신적 요소라 말이요, 그것이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내가 그 생각 가진 것을 내 생각, 내 인간적인 인간의 요소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벌써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서, 신적 요소, 하나님이 오셔 가지고서 이 둔탁한 인적 요소인 나를 붙들고 그렇게 역사하시느라고 힘이 들었다 말이오.
내가 예수님의 그 대속을 생각한다는 것은 복잡한데 돈 생각하고 뭐 과학 생각하고 하는 것 하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한다는 그것은 인간 생각이 아니라 창조주, 주재자, 전지 전능자, 하나님이신 이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그 생각을 일으키느라고 힘들었다 말이오.
일으켰고, 또 거게서 좀 더 나가니까 이제 예수님의 대속을 더 구비하게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난 다음에는 또 자기가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좀더 더 알고 싶어하고 더 살고 싶어하는 그게 뭐이냐? 그게 보혜사가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버리지 안하고 그 마음 보호 아래, 그 마음은 제 마음이 아니라 성령님이 내주하셔 가지고 그와같이 하게 하시는 것이니까 그분을 모시고 그분 슬하에 있으면은 자꾸 내게 오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세 가지가 옵니다.
하나는 은혜가 와. 자꾸 생각하니까 주님의 대속이 좀 더 알아지고 더 알아지고, 더 느껴지고 더 느껴지고 더 예수님의 하신 그 실지의 사랑이 더 알아지고 느껴지고 그분이 사랑으로 고생한 것이 느껴지고 나한테 그 대속을 주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것이 자꾸 느껴지고 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누가 줍니까? 보혜사 선생님이 주신 것입니다..
선생님이 주시고 그래 가지고 하는 일은 죽음이 없습니다. 그거 한 그래 생각한 그 생각도 죽지 안하고, 정신도 죽지 안하고, 마음도 죽지 안하고, 뜻도 죽지 안하고, 신경도 죽지 안하고 그런 거는 다 생명에 속해 있어. 그렇게 은혜를 주고 우리를 또 거게서 보호하고, 그러니까 보호는 뭐이 보호냐 하면, 사도행전 16장에 보면은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가 가지고서 귀신들린 자를 쫓아내고 난 다음에 실컷 뚜드려 맞고 이제 감옥에 갇혔어. 감옥에 갇혔는데 갑자기 감옥에 갇힌 옆에 죄수들이 보니까 뭘 소리가 나는데 찬송 부르자 또 지진 났습니다. 찬송 부르자 지진 나고 지진 나자 모든 결박이 다 풀어지고 그래 돼 버렸어. 결박이 풀어지고 자기네들 뚜드린 그 일대 원수, 뚜드려서 감옥에 착고로 채워 가지고 이제 가둔 그 옥사장, 옥사장이 와 가지고서 자복하고 회개하고 그날밤에 예수 믿었다 그말이오.
이게 뭐이냐? 이게 보혜사 역사라. 보혜사 역사인데 그 보혜사 역사가 뭐냐 하면 저희들이 이렇게 자기 속에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고ㅡ다른 것 없었어요, 바울도.ㅡ예수님의 대속 생각하고 또 대속 입은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선포해 놓으신 그 교훈의 말씀을 생각하고 자꾸 생각하니까 그만 찬송이 터져 나왔어.
찬송 터져 나오게 하는, 찬송을 터져 나오게 한 그 능력이 지진 일으킨 그 능력이요, 지진 일으킨 그 능력이 모든 결박을 다 해방시킨 그 능력이요, 해방시킨 그 능력이 유일한 원수가 자복하고서 예수 믿게 한 그 능력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면 안 됩니다. 소멸해서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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