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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요약  
■ 성경:40마태복음04:12-17
 

*갈릴리 전도

갈릴리 가버나움에 거하심

마4:12-17. 막1:4-15, 요1:35-36까지를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시기 전에 유대에서 개인 전도를 하신 일이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없다. 이유는 공관복음의 전도는 갈릴리 전도를 예수님 의 성령의 역사. 聖力의 인격적 출발로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종교적으로 교만한 유대인보다. 겸손한 이방인의 갈릴리를 더욱 돌아보신 것이다.

해석
12절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를 물러가셨다가”
(1) 예수님의 수세 당시 11개월 후에 된 일이니 주후 27년 12월 28년 4월경에 된 일이다.
(2) 분봉왕 헤롯이 제수 취함을 책망하다가 투옥된 것이다. 눅3:15-19.
(3) 순교는 대소 죄간 다 좋고 일반이다. 적은 죄까지 용납 지 아니함으로 싸우는 것이 더욱 더 좋다.
※혹이 말하기를 세례 요한이가 이방인들은 아내를 3천명이나 가지고 있는데 자기 제수 얻은 것에 간섭하여 가치 없는 죽음을 할까하는 성질도 가지지만 이는 사소한 죄를 목 베이기까지 하면서 지적한 사람이다. ∴앞으로 우리가 시험 당할 때 너 예수님 안 믿는다고 하면 죽인다 하는 것에는 생명을 내놓아도 지극히 사소한일에는 예사로히 여기기 쉽다. 그러나 지극히 사소한 죄에도 용납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처음에는 똑똑한 진리로 시험하다가 나중에는 사이비한 것으로 시험하니 이 사소한 것이야 하다가 실패 당한다. 예수님과 동행은 단절과 견집에서 일을 끊고 나가메 굳게 잡아 나가야한다. 최고로 끊기 어려운 자리까지 나가야한다.
(4) 예수님께서 갈릴리 전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전에도 하셨다.
(5) 갈릴리 전도에 관하여 마태복음은 전체의 반 4:12, 9:1절까지 14장을 소비하고 있고, 마가복음은 전체의 반 1:14, 10:1까지8장을 소비하고 있고, 누가복음 조금 적으나 4:14-9, 51절을 소비하였으나 요한복음은 거의 승낙하였다.
(6)예수님이 피하심에 대하여
① 위험을 피하심으로
② 안일로
③ 비겁으로
④ 무협동의 냉정으로도 보여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하여 물러감으로
물러가신 이유
-동지의 동정보다 진리로 하나님의 뜻(마4:14)대로만 동정하시는 예수님이시다. 가시는 것이 예언 성취였다. 이 마4:14절은 이사야 선지에 예언 성취다. ∴동지가 귀한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귀하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박해도 안 당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죽기도 하고
-불필요하고 박해를 받을만한 때가 아닌 고난은 받지 아니하는 것으로 고행주의가 아닌 것을 보겠다. 하나님의 뜻 아닌 배고픔은 고생 받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아닌 배고픔은 고생 받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아닌 고생 당하는 것은 고행주의니 이단이다. 기독자는 하나님 뜻대로 그 계명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하나님의 계명 어기는 죄에 빠지는 데는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죄 되지 않은 입장이라면 충성하여야 한다(계명 아닌 순종).
-하나님의 뜻 아닌 것은 복음 방해인 고로 피하여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중심이다.
※하나님의 진리 아닌 충돌은 도리어 손해이다.
-옥중 요한이 보낸 사람 문답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또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 있도다.” 하신 대답은 순전히 지상에서는 천부의 뜻 복음 전파와 미래적으로는 승리하는 하늘에 복만 주장하시니
※우리는 땅위에 취미가 하나님 뜻 이루는 것이 유일의 취미가 되여저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워지는 것이 자기의 유일의 소원이다. 이 말 한마디들을 때 성도의 위로가 되며 성화가 되여져야 한다. 이 신앙 하나만 가지면 서양에서 이루워지던지 하나님의 뜻만 이루면 기뻐하는 것은 그 일에 나도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선지자 대접한 것이 내가 대접 못해서 기뻐하면 동참.
a. 땅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워지는 것으로 자기의 지상의 기쁨이 되여야 할 것. 그러면 통일될 때 그 복이 내 복된다. 우리에게 제일 큰 복 받는 것은 타 교회 부흥되는 것 보다 우리 교회 부흥만 타구역보다 내 구역만 부흥되는 것을 원하는 자는 복이 적은 것이다.
∴서양에서 큰 일한 것을 내가한 것같이 기뻐하면 그는 그 복에 동참한다.
∴오늘밤의 큰 복 덩어리 하나 마련했다.
b. 실족지 않은 자 복이 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실족지 않았다. 땅위에 하나님의 뜻 이뤄지는 것 누구를 통해 이루워 주든지 제일 기뻐하는 자 유일의 복이다. 마4:13, 13절 스블론과 납 달리
-이 성은 유대 지방에 있어 열국의 침략으로 전쟁의 침해를 많이 입었다.
-예루살렘에서 먼 곳이라 문화가 많이 뒤떨어졌고
-이방인으로 혼잡 된 곳이다.
-납달리 지방이 복음 전도에 발상지가 된 것은 야곱의 예언이 응한 것이다. 창49:21에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 같음이여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리로다.”라고 하였다.
해석
창49:에 보면 야곱이 12 자제를 놓고 예언한 것이 이루워진 곳이다.
“놓인 암사슴은” 복음을 가지고 험한 길에 가는 일에 대한 비유이다.
“아름다운 소리를” 복음을 가리킨 것이다(사52:7).
⑤ 이 예언은 1700-1800년 전에 야곱이 예언한 것을 기록을 3,400년 후(주전 1400년)에 모세가 기록하였다. 본 절에서도 계시기관은 여럿이나 원 계시자는 하나님 한 분이시니 표시되고 있다.
⑥ 또 예수님께서 마5:18절과 눅16:17절에 예언 필성을 말씀하신 그대로 여기서도 예언 성취를 볼 수 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자기의 비행에 대하여 떨리고 또 말씀 순종에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전도하신 기록이 납달리에서 첫 전도가 시작되였다. 우리는 무심히 보나 하나님께서는 납달리에서부터 복음 전파 될 것을 주전 1400년에 야곱이 납달리라는 자에게 손을 얹고 축복하기를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 같다고 하였는데 그 다음 예수님 땅위에 오시여서 복음 증거를 납달리에서가진 핍박이 있어도 험한 납달리에서부터 복음 전도가 된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 것은 하나님은 한번 선 파하면 이루워지지 않는 법이 없으니 그대로 이루워진다. 하나님의 사람 야곱의 일을 모세를 통하여서 몇백 년 후에 기록하게 하고 몇천 년 후에 예수님을 통하여서 몇백 년 후에 기록하게 하고 몇천 년 후에 예수님을 통하여 실시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포하고 그대로 실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님은 한번 말씀했으면 천인만인이 어떠타 해도 동요되지 않는다. 우리도 이 성경말씀에 말한 것이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조금도 동요될 것 없이 믿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기 몇 번 계시를 나타냈나 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계시니
a. 야곱을 통해서
b. 모세에게 기록으로
c. 예수님의 전도시 행함으로 예언 완성이 된다. 과거는 형식 그 다음은 문서 그 다음은 실행으로 되어져 있는 것이다.

가버나움
a. 이 땅은 갈릴리 호수서 북편에 있었던 공업도시였다.
b. 지금은 그 위치도 찾기 어렵다고 한다.
c. 이는 가버나움의 불신앙을 예수님이 꾸짖은 그대로 이루워 진 것이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 행하였으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노니 소돔 땅이 견디기 쉬우리라. 마11:23~24
d. 여기서 우리는 배울 것이 몇 가지 있다.
시공세계의 존속도 하나님의 말씀의 합치됨에 있는 원리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지금은 그 존적까지 어데로 갈지 모른다고 한다. 이것 보니 망한 지가 오래 되였다. ∴우리는 여기서 배울 것이 무엇이요.
e. 또 진리에 불합치 된 것은 한번 진리로 경고시키기 위하여 있는 이유도 볼 수 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셨는데 한번 기회를 주시어서도 안 들으니 진멸하였다. 너희가 하나님에게 복종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여부를 알고 난 다음에 복종하지 않으면 멸망시킨다.
f. 하나님이 권고하실 때에 불성 범죄의 것은 물 인을 막론하고 조만 세상 멸망과 우 하나님의 공의 심판 결정의 형벌이 있는 이유를 보인다. 이는 범죄 한 인생이 첫 죽음, 둘째 죽음 있는 교리와 동일한 것이다.
※예수님 말씀하신 것이 가버나움아 네게 행한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심판 때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악한 고로 정죄심판이 결정된 것이다.
g. 우리는 이 예언성취에서 오늘 사람이 무시하는 성경말씀 그대로 최후에는 통일될 때에 인생들은 다 놀랠 것이다. 의인들도 죄인들도 다 놀랠 것이다. 의인들도 죄인들도 다 놀랠 것이다. 마25:37-44. 거기 보니 의인들도 죄인들도 다 놀랬다. 전체는 말씀 하나도 이루워진다. 천지도 없앨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한 획도 없앨 수 없다. 천지는 파괴도 건설도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이 말씀은 획 하나도 없앨 수 없는 권위 있는 말씀이요 불변의 말씀이다. 우리가 은혜의 축복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변의 말씀으로 성취되심이 큰 은혜이다. 만일 이 말씀이 틀리고 어 누리가 있다고 하면 누구를 의지하며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그러나 이 반석같이 든든한 이 말씀은 아름답다. ∴이 말씀에서 있다면 있는 것으로 산다. 사는 것으로 복되리라 복된 것으로 믿는 것이 복자라. ∴이 말씀의 신실 성 권위성 아는 것 만치 믿는다. 이 말씀은 하나도 여지없이 이루어 나간다.


마4:14-17. 회개에 대해서.
회개는 무엇인가. 빨트는 말하기를 회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최고의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초보의 역사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대하여 아무런 자의식이 없는 기계적인 것을 말한다. 우카이프 박사는 말하기를 구약의 회개라는 원어(수비)라는 말은 70번은 사람의 행위로 기록했고 16번만 하나님의 행위를 기록 되였으니 회개에는 사람에게 대한 것이 많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것인가. 회개는 유기적과 같다.
∴회개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요 그 회개케 하시는 은혜를 받아서 회개하는 책임은 나에게 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전체 회개역사를 자기에게는 노력이 없이 기계적으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한번만 우리에게 감동과 능력을 주시면 한번 받은 은혜와 능력으로만 생각해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에게 주는 시식과 선천적인 의식으로 내가 스스로 깨닫게 하시는 것 인고로 외부적으로 볼 때에는 자기혼자 회개하는 것같이 보이고 또 그 회개의 원동력은 순전한 은혜로 되여지는 것이다. 엡2:1에 보면 우리에게는 의가 터럭만치도 없는 것을 보인다. ∴회개는 자기의 노력을 통하여 하는 것 같이 보여진다. ∴우리는 그런 은혜가 없던 것이 하여지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내가 받은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회개를 하는 것이 내가 받은 은혜를 보장하는 것이요 감당하는 것이다. ∴먼저 회개에는 지식적으로 그 불의함과 의로움에 양면을 발견하여야 하고
① 자기와 하나님을 발견하고
② 하나님의 행위와 자기의 행위 발견하고
③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와 자기의 계획과 목적을 발견하여함을 올바른 지식과 비판을 가져 자기의 계획과 목적보다 하나님의 것은 참되고 올바른 것을 발견한 자 되야 한다. 그 다음에는 우리의 감정이 필요하다. 지식으로 깨달은 것이 마음으로 탄식이 되고 범죄 한 것이 미워서 못 견딜 수 있게 되여야 한다.
∴이런 순서로 지식으로 깨닫고 마음으로 탄식하고 감정으로 원통히 여기며
∴우리는 가슴치며 마음을 찢는 고통 가져야한다. 벌써 감정에서 지식에서 회개를 가지고 감정에서 회개 가져야한다. 회는 자기의 지식적으로 잘못된 것을 알고 개는 이것은 옳다 하고 우 자기 감정으로 회개 이러야 한다. 자기 감정에서 어느 것은 미워하고 어느 것은 기뻐하며 나를 미워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어서며 자기는 던져버리고 하나님을 소망하는 가운데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이 진로가 빨라야 한다. 어떤 이는 회는 빨리 하고 개는 오래 동안 안 하는 이가 있다. 회도 개도 빨리 해야한다. 그것이 분립 될 수 없다. 그 다음은 의지로 나가야한다. 감정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1년이고 2년이고 의지의 그릇에 담겨있어야 한다. 이렇든 자이니 위험하고 이렇든 자이니 더럽고 위험천만한 자라 동시에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깨끗해졌고 살았고 서있는 그 행복을 기억하고 있어야한다. 바 울은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하노라 나로 충성되게 한 은혜를 감사하여 자기의 과거는 이렇든 자인 것을 회는 끊지 않고 과거의 회를 잃지 않은 자리에서 도로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함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하여 내가 이제는 회와 긍휼로서 합하여 새 출발로 나가서 개된 데서 교만하지 아니하고 회와 개와 합작하여 감사함으로 걸어간 것이 바울의 신앙이다.
∴ 17- 우리들의 긍휼과 사랑이 넘치도록 주셨다고 하셨다.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먼저 믿게 하시고 은혜주시고 열매 맺게 하시고 모든 의의 원천이 되는 그 원천으로서 얼마든지  모든 인에게 수도 철관으로 줄 수 있는 것 말했다. ∴우리는 의지에 그릇에 담아놓고 현재라는 구멍으로 통과시켜야 한다. 우리는 과거는 따로 두고 미래도 따로 두나 회와 개도 따로 두어 회는 과거의 개는 미래에 두고서 희망하면 아니 된다. ∴언제든지 회개는 행으로 행함은 현재의 것이다. ㄴ. 회개는 현재를 통하여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 기억하고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기본적 회개는 이미 하였지만 성화 적 회개는 평생 하여야한다.

마4:17
회개는 자기에게 속한 것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을 찾아서 자기에게 불의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로운 것을 바꾸워 가지는 것이 회개이다. ∴회개는 한말로 말하면 그 목적과 방편이 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은 소극적 면과 적극적 면이 있으니 하나님에게 대적이 되여 있는 그것을 꾸어버리고 있는 그것이 소극적의 회개요 하나님과 합치되어 있는 것이 적극적 회개이다. 예. 하나님은 흰데 나는 검으니 이것은 검은 것을 끄는 것이 소극적 회개요 하나님의 흰 것같이 내가 히 여 지려고 하는 것이 적극적 회개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다른 점을 찾는 것이 회개의 지식이요 하나님과 같은 점을 찾는 것이 회개의 지식이다. 진리와 성신으로 중생 되지 않은 사람과 중생 된 인은 구별 있다. 중생 되지 아니한 인은 그 깊은 속까지다. 부패하여 있기 때문에 불의 한 것으로도(하나님 뜻에 만족지 아니한)기쁨을 누리고 살 수 있다. 예, 중생 되지 아니한 사람은 돈만 가지고도 권세만 가지고도 어느 동안은 인간적 행락 가지고 자기 깊은 속까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중생된 사람은 아주 다른 것은 진리와 성령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과 자기와 가까워지는 것으로 평강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과 자기와 딱 들어맞을 때 그 속에 기쁨과 평강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이 생겨진다. 어떠한 높은 자리에 나가도 두려움만 생긴다. 중생 되지 않은 사람은 자기에게 유익 되는 일과자기의 높아지는 것으로 평강이 온다. 그러나 중생된 자는 자기에게 손해 가고 자기가 낮아지는 것을 원하고 또 주만이 높아지고 주만이 유익 되게 하는 것이 중생 된 자의 본성이다. 우리가 불의 한 세상 것으로 높아지는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만으로 행하여 의로운 일로서 높아지는 것도 이것이 당연하지만 외부에는 기뻐도 내부에는 자기 심령 속에 눌림을 받는다. 의로운 일을 하고도 주로 거기서 그 의로 높아지고 자기는 낮아질 때 깊은 속에서 평강이 온다.
∴고후11:23에 바울이 저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다.
19절에 너희는 지혜로운 자들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쁨으로 용납하느냐.
30절에 또 말하기를 내가 부득불 자랑할건데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이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주 어리석음이요 정신없는 일이요 그는 아주 미련한 일이 되여지는 것을 바울은 말했다. ∴자기의 장점을 생각하여 높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자기에게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지혜 있는 일이 되겠다. 이것은 바울이 체험에서 증거한 말이다. 그럼으로 옳은 일을 하고도 자기를 유익하게 하며 높일 려 는 그 심령 속에 평강이 없어지고 불의한 일을 할 때와 의로운 일을 할 때 자기를 높이고 평강 있는 것이 중생 되지 않은 자들이니 왜 어떨 때는 평강이고 어떨 때는 불안일까? 중생 된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닮아서 중생 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 꼬목을 들기 어려우나 그 원리를 들어서 왜 어떤 때는 평강이 오고 어떤 때는 불안이 오느냐 이는 하나님의 진리로서 하나님과 배치되는 것은 흘러버리는 그 원리에서 이두가지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 세밀한 것은 자기에 심령으로는 확실히 지적을 하여 어떤 때는 그 혼이 불안을 느끼고 어떤 때는 평강을 느낀다. ∴우리의 지식보다 영혼은 영리하다. ∴내 지식이 평가하지 못하나 내 영혼은 이해한다. ∴내 영혼이 평안한 때는 하나님과 나와 합해지는 자기를 위함이고 영혼 평안은 하나님을 위할 때이다. ∴중생 되지 않은 영혼은 자기를 삣고 헐고도 평안하고 중생 된 자는 자기를 높이고도 평안한때도 있다. ∴이 중생 된 영은 순결하고 참된 것이 본성인데 우리는 너무도 뒤숭숭하여 마구잡이로 끄으러다 맞추는 고로 우리 심령은 눌린 곳에 있게 된다. ∴우리가 내 심령의 평강과 자유로 걸어가는 데는 어데 까지냐 진리와 성령으로 합해지는데 까지 여기 나가는 데는 자기를 끊어버리고, 희생의 길로 나가는 자리까지 이 길은 죽는 길이다. 자기도 끊어버리는 자리에 나가야 중생 된 자는 기뻐 뛰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먹고 나니 자기 일을 자기가 하고 염려와 수고가 생겨졌으니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을 다. 빼 끼 고 이제는 자기가 자기 기쁨 평강을 구하여야 되나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 다 벗고 오라고 했다. ∴우리가 이제껏 자기가 이 하나님의 진리와 성령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중생 자는 불안 온다. 삼상7: 참조, 하나님 말고 대신 위하는 것이 무엇이뇨?   요일5: 끝에 여자들아 너희자신을 지켜 우상을  면하라 ∴자기를 이기고 나오면 내가 이기게 하겠다. ∴제일 어리석은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여 노고도 그 옳은 일을 한 것 말할 때는 정당히 말하되 자기를 위함이냐 하나님을 위함이냐 이제 하나님을 위함이면 그 영혼이 뛰놀고 자기를 위함이면 그 영혼은 저 밑에 떨어진다. 또 이 영혼은 즉시 하나님에게 매를 맞는다. 내 중생 된 생명에게 하나님은 욕을 하시니 내 심령 속에서는 불안을 가지게 된다. 역하7:13. 그 길을 돌아설 때 비로소 영혼이 되였고 제할 수 있다. 시34:18 마음이 상한 자도 가까이 하시고 구원하신다. 그 말은 소극적 회개이다. 자기가 범죄 하여 하나님과 다른 것 하나님은 흰데 자기는 검었다. 자기의 더러운 것 상한 것 찾아 가지고 나설 때에 하나님은 가까이 하신다. 시54:10도 그 말씀이다. 147:3도 여전히 그러하다. 상한 것을 가지고 온 자에게 고쳐주신다. ∴한말로 결론을 지을라고 하면 자기에게 하나님과 대립되는 그 더러운 것 그것을 하나씩 찾아서 자기의 가치를 떨어트려 자기 가치를 바로 평가하여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 계명 순종하기 위해 자기를 흘러버리는 것이 중생 된 자가 자유 할 수 있다. 말씀이다. ∴중생된 우리는 나를 북돋우고 호위하고 높이는 것이 평강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을 들어내고 하나님만이 높이는 것이 우리의 평강이다. 하나님만이 자존자인데 하나님만이 높이는 것이 우리의 평강이다. 하나님만이 자존 자인데 하나님 한 분 외 하나님과 대립될 나는 다른 것이 설라는데 해와가 죽었나이다. 하나님 한 분만이 중에 서지고 그밖에 섯는 것이 하나님의 일원론인데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개립으로 설라다가 하나님 앞에 죽임을 당했다. ∴모든 것은 돌아가는 것이다. 일원론으로 진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중생 된 자는 하나님께 배치되는 것은 깨트리고 나도 헐고 나야 평강이 온다. 하나님 뜻대로 세워야 평강이 온다. ∴여기는 하나님의 계명으로 자기를 심사하여 자기를 헐고 깨트리고 나야 평안 오니 그 속에 하나님의 진리로만이 기쁨 온다. 마치 계란의 생명은 보이지 않으니 그 보이지 않은 생명에게 그 계란이 완전히 삼키어야 병아리가 된다.
∴0(?)볼 수 없는 나, 즉 중생된 자에게 완전히 삼키워야, 거기서 평강이 온다. ∴ 한 말로 말하면 불신자는 저 잘난 재미로 살고 신자는 저 못난 재미로 산다. 불신자는 어쨋건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위하는 것으로만 평강인데 신자는 자기를 헐고 깍고 세우는데 평강이 온다. 악령은 어떤 대상에도 그 사이에 끼우나니 자기가 어떻게하여 볼까 할 때에는 악령에 사로 잡히는 것이다. 악령에 감화는 먼저 기쁘고 후에 불안이요 현재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먼저 불안하고 나중에 기쁘고 영원에 속했다. 말씀이다.∴옳은 일을 하고도 그 심령이 하나님을 높이지 않았으면 그 심령은 불안 온다. 심지어 죄를 지어놓고도 주의 의로 맞추려 할 때는 평강 온다. 불의 한 것을 말씀하여도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면 평강 오니 이 자기 속에 상한심령 부패한 심령을 캐낼 때에 평강 온다. 말씀이다. ∴성령은 언제나 나와 같이 계시니 언제나 신자는 자기 헐어버리는데서 평강이 온다. ∴단둘이 만나는데도 어찌하여 나는 낮아지고 헐어지고 하나님만이 유익하고 높아질까 하는 이것이 평강 오는 것이다. 이제 자기를 한번 헐어 봅시다. 언제든지 저 잘난 자로 살지 말고 내가 얼마나 간교하고 독하고 이기주의자이고 저만 높이는 자인지 발견하라. 자기가 자기를 바로 볼 때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이 겸손한 자이지 공연히 자기를 의로 하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겸손에 껍데기 가지고 나오는 자는 교만한자이다. 이제 자기를 들고 나오면 얼마나 자랑할 것이 있는지 내 영혼이 머리를 들지 못하니 세상 애착을 끊지 못하고 하나님께 마음이 없는 자이다.  

(58년 주해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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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4 40마태복음04:0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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