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죽기를 두려워하면 일을 못 합니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죽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무슨 일이라도,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생명을 바치지 못할 자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아무 것도 못 합니다. 큰 일이고 작은 일이고 못 해요. 그 하는 일이 다 생명에 속해 있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지 못하면 어떤 일도 못합니다.
이 세상 권세가 우리 생명을 거머쥐고 잡고 흔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지만 우리 아버지가 허락지 않으면 한 마리도 땅에 안 떨어진다 했습니다. 암만 죽고 싶어도 못 죽습니다. 사람은 죽을까 겁을 내고 뻘뻘 떠는데, 어리석습니다. 아무리 죽고 싶어도 하나님이 정한 기한 전에 못 죽습니다. 천하 사람이 다 달라 들어서 살리려고 해도 못 살립니다. 천하 사람이 다 달라 들어서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죽게 하셔야 되지 죽이지 못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이 죽으라 해야 죽지 불이 나를 죽일 줄 아느냐!'고 했습니다. '이놈아. 불 속에 넣어도 안 죽는다 말이냐. 네 이놈 타 봐라!' 불 속에 넣어 벌겋게 달궈 가지고 태웠지만
불 냄새도 안 나고 살아 돌아다녔습니다. 불과 같은 어떤 혹독한 속이라도 주님이 허락지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을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너희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 마10:29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 단3:17 :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88061902)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계20:6에‘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이 복이 있지 첫째 부활에 참여 못 한 사람은 복이 없습니다.
부활이라 하는 것은 죽어야 부활이 되지 죽지 않으면 부활이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죽고 부활하는 기독교라는 이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죽기 싫은 사람들이 '안 죽고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는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쉬우니까 그런 유혹에 빠지지 말고 확정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지금은 이렇지마는 앞으로 환난이 자꾸 심해 오면, 지금 환난은 전부 죽이려는 환난이기 때문에 죽지 않고 구원 얻을 수 있는 그런 길을 모든 사람이 택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 마구 기울어질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죽인다 하면 종노릇합니다. 무슨 죄라도 죽인다 하면 그만 범죄합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져야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영생도 안 믿는 사람이요 부활도 안 믿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 고전15:36 :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 계20:6 :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88052310)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그러면 세상은 아무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어 돈으로도 못막아, 권세로도 못막아, 안일로도 못막아, 가족으로도 못막아, 가정으로도 못막아, 어떤 평안이나 쾌락으로도 못막아 온 세상으로도 막지못해 마지막에 강한 자의 방어가 이것이 죽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동안 종노릇 되어서 어떻게 강한자라도 죽인다 하면 죽음 앞에는 꼼짝을 못하고 죽음에게 인생이 다 붙들리고 가로막혀서 자기 길을 다 거게 붙들리고 메여서 가지를 못하고 있는 그 자들을 해방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일생동안 죽기를 두려워 함으로 종노릇 하는 자를 놓아 주기 위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죽음에게 붙들리지 않는자 죽음의 공포가 없어진자 죽음의 위협을 당하지 않는자 죽음에게 머리 숙이지 않는자 죽음에게 굴복하지 않는자 이 자 만들기 위해서 주님 오셨습니다.
택한 자가 많고 부름을 입어 중생된 자가 많아도 이 수많은 무리 가운데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죽기를 두려워 함으로 일생동안 종되는 그자를 놓아주기 위해서 죽음을 초월하는 자, 죽음을 밟은 자, 죽음을 호령치는 자, 죽음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통과하는 자, 왜 여게서 하나님의 나타납니다. 여게서 하나님은 증거되고 하나님은 나타나고 여기에서 하나님은 초인간적인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비로서 초인간의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여게서만 비로서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서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도 하나님의 권위도 하나님의 구원도 여게서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82030220) 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