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비방과'
남한테 자꾸 비방을 받습니다. 자꾸 헙니다. 이런 비방 저런 비방을 자꾸 듣고
'환난으로써'
비방당하고 환난당합니다. 뭣 때문에 당하는가? 주님 때문에 비방당하고 환난당합니다. 똑 주님 때문에 당합니다.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똑 노리개 모양으로 놀리고 구경합니다.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됩니다. 예수 믿으면 다 이런 걸 받게 됩니다. 구경거리가 됩니다. 주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요물같이, 괴물같이 구경거리가 된 사람들 많습니다. '구경거리가 되고' 이렇게 주를 위해서 매도 맞아야 되고, 구경거리도 되고, 고난도 받아야 되고, 업신여김도 받아야 되고, 비방도 받아야 되고, 훼방도 받아야 되고 이런 꼴을 당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고난받는 것보다 더 깊은 연애가 있습니까? 더 좋은 게 있을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가 자기 때문에 고난받은 그보다도 더 깊이 뜨거워지는 거는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전우가 서로 사랑합니다.
주를 위해서 고난당했지, 주님 위해서 훼방당했지, 주님 위해서 매 맞았지, 주님 위해서 갇혔지, 주님 위해서 멸시당했지, 주님 위해서 구경거리 됐지 이러면 주님 앞에 가면 그게 후회가 되겠습니까 좋겠습니까? '나는 주님 믿어도 고난 하나도 없고 잘 먹고 잘 입고 모두 칭찬받았다' 이랬으면 주님 앞에 나가면 그때도 좋겠습니까? 우리는 그 나라를 생각하고 살아야 됩니다.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자기가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아도 이런 꼴 당하는 사람을 어쩐지 사귀어져서 그 사람에게 가고 싶고, 그 사람이 그 어려움 당하는데 피해 가기 싫고, 그 사람이 어려움 당하는데 눈물은 내가 나고, 그 사람이 어려움 당하는데 기도는 내가 하고, 그 사람이 어려움 당하는데 동정이 가고 마음이 가고 자꾸 그 어려움 당하는 그 사람의 친구가 되고, 그 사람에 동정이 가고, 그 사람의 벗이 되고, 그 사람과 나와 점점 가까워집니다.
(87050632)
'혹 비방과'
33절에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비방 받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잘못해 가지고 비방 받는 일도 있지만 또 잘못함이 없이 비방 받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함이 있어서 비방 받을 때에는 그 비방을 인해서 즉시 고쳐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안 고치면 자기는 원수의 탄환에 맞아 상합니다.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고 혹은 좋은 말로 지적하든지 혹은 냉정스러운 말로 지적하든지 과격한 말로 지적을 하든지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때에는 우리는 귀한 치료의 그 의사가 온 줄 알고 즉시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깊이 냉정스럽게 자기와 자기 행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 가지고 잘못된 그런 점을 즉시 고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악령은, 우리에게 잘못된 그것이 죄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거기는 화살을 가지고 쏩니다. 쏘면 그것 때문에 내가 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즉시 주님의 피에 고해 가지고 회개하고 그것을 고치면 악령의 화살은 내게 올래야 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비방이 있으면, 자기를 비방하거든 고칠 것이 있으면 즉시 고치고 참 비방하는 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선지자요 선생님이요 나를 구원하는 자이기 때문에 진정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고쳐야 되지 비방 받을 만한 잘못이 있는데 고치지 안하고 나를 욕한다 나를 해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 사람은 무슨 사람이냐? 그 사람은 옛사람이요 새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남이 나를 비방할 때에 듣기 싫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 사람이 바로 내 원수요 나 아닌 내인 줄 알고 그것을 우리는 죽이는 데에 아주 뿌리뽑는 데에 힘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그것이 내인 줄 알고 그만 '아 나를 비방하고 나를 욕한다.' 해 가지고 섭섭하게 이래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순전히 자기 마음과 몸을 악령. 악성, 악습에게 뺏겨 가지고 악령의 사람이 되어 스스로 자기가 자멸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진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만일 잘못이 없는데 비방이 있으면 그럴 때에는 그걸 가만히 참고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큰 축복이 됩니다. 그런 잘못이 없는데 비방을 받고 주님을 위해서 참고 있으면 그것이 큰 복이 되고. 또 잘못이 없는데 주님을 생각하고 참는 것도 있지만, 또 상대방이 몰라서 그런 것이니까 상대방에게 내가 억울하게 비방받는 것을 만일 내가 대적하고 하면 나를 억울하게 비방한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되지 안하고 도리어 믿음에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잘못이 없으면서 참고 있다고 하면 그거는 더 아름다운 것이요, 그건 주님을 섬기는 일이요. 형제를 사랑하고 구원하는 일이 또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믿으면 비방이 옵니다. 예수 믿으면 비방이 오는데 안 믿을 때보다 많은 비방이 옵니다. 많은 비방이 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깨끗게 하시기 위해서 안 믿을 때는 그보다도 더 많은 흠점이 있어도 그저 네가 나나 똑 같다 하면서 그냥 지나가지만 하나님이 믿는 자는 깨끗게 하실려고 하기 때문에 비방거리가 있으면 그것을 낱낱이 드러내서 비방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깨끗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마태복음 5장에는 말씀하시기를 '산 위에 세운 동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산 위에 세운 동리이니까 밑에서 보면 환하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주목거리가 되도록 많은 사람이 우리의 그 비(非)를 보고 그것을 흠 잡을라고 또 찾을라고. 또 좋게 말하면 본받을라고 어짜든지 수많은 사람들의 상대가 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치기 위한 비방도 우리에게 있고 또 우리의 그 비방받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마련하기 위해서 비방도 오는 일이 있고, 또 거기에서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참 참고 견딤으로 형제에게 아름다운 덕이 되어서 믿음의 도움의 양식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비방도 옵니다. 그러기에, 믿고 난 다음에는 비방이 온다는 이것을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에 비방이 오면, 이 비방을 그만 속단적으로 우리가 옛사람이 내가 되어 가지고 날뛰는 그런 일을 하지말고 거기에서 옛사람을 잡는 것이 중요하고. 옛사람을 잡고 난 다음에는 새사람으로 살아서 고칠 것 있으면 감사히 고칠 것이고. 고칠 것이 없으면 주를 위해서 참을 것이고, 고칠 것이 없는데 억울하면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참고 견딜 것입니다.
* 마5:14 :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환난으로써'
또, 환난도 옵니다. 환난 온 것은 예수님만 내놓으면 환난이 대번 중지될 환난, 진리만 어기면 그만 중지될 환난, 죄를 지으면 중단 될 환난 하나님의 어겨진 그 사람들에게 내가 속하고 세상에 속하고 사람들과 하나 되면 당장 그 환난이 없어질 환난인데 내가 주님과 진리와 신앙의 양심을 버리지 못하다 보니까 그렇게 환난이 오고 끊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런 환난이 올 때에 내가 과거에는 나를 지금 환난 되게 하는 그 사람들과 같이 나도 거기에 속해서 옳고 바른 것을 대적하는 옳은 자에게 환난을 주던 그런 자인데 이제는 거기서 나와 가지고 그런 악의 세력에게 환난을 당하게 되니까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입장이며 얼마나 귀중한 입장으로 옮겨 선 것인 것을 생각해서 먼저 기뻐하고 감사하고, 또 그 환난도 한가지입니다. 그 환난에 그로 인해서 우리는 고칠 걸 고치고, 참 환난은 귀중한 것입니다. 환난이 오면 회개가 됩니다. 환난이 오면 자기에게 대해서 냉정스럽게 자기를 살펴서 조사하게 됩니다. 환난은 자기를 깨끗게 하는 아주 좋은 양약입니다.
그래서 환난에서 참 자기가 평소에는 뭐 강퍅하고 담대해서 그 까짓 쯤이야 이랬지만 환난이 오면 자기가 겸손해지고 헛된 간도 없어지고, 자기가 참 약한 자가 되어지고, 자기가 못난 자가 되어지고, 자기가 간 작은 자가 되어지고, 이렇게 됨으로써 자기가 깨끗해지는 이런 유익을 보게 되고, 그런 환난에 주님을 보고 참으면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주님을 아주 기쁘게 대접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 환난은 귀중한 운동인 것입니다.
또 그 환난이 일 때는 반드시 내가 그 환난을 당할 때에 내가 그 환난을 참으면 나에게 환난 주는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이 인생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안 죽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했더라면 우리는 다 멸망받고 말 것인데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님에게 환난이 부딪힐 때에 주님이 가만히 참았으니까 우리에게 구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환난이 올 때에 나를 환난 주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는 방법이 뭐인가? 나에게 환난 줄 때에 내가 그 환난을 주를 생각하고 그 형제들의 구원을 생각하고 참고 견디면 주님에게는 영광이 되고 나에게 환난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되어지고. 또 나에게는 한없는 믿음의 성화가 되고 심신의 기능의 아주 부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환난도 우리가 속단하면 안 됩니다. 이 환난 속에는 한없는 보배가 들었기 때문에 이 환난도 그렇게 무가치하게 생각하다가는 큰일납니다.
'구경거리가 되고'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그러면 사람에게 구경거리, 우리가 이것을 의례히 자동적으로 옵니다.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물에 있던 사람이 물에서 나오면 물이 마르는 것 아닙니까? 물에 있던 물벌레가 나오면 물이 마르는 것 아닙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 갈수록 세상 사람에게는 조롱거리가 됩니다. 구경거리가 됩니다. 왜?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구경거리가 됩니다. 그러면 세상에게 구경거리 되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칭찬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내가 이런 일을 당하고, 내차 이런 일을 당할 뿐만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을 직접 당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할 때에. 나는 그런 일을 안 당했지만 다른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할 때에 나도 그와 같은 입장이 되고, 그와 같은 사상이 되고,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그들의 동무가 되고, 그들의 동질, 동성, 동 사상, 동 견해, 동 평가. 이해가 돼서 그 사람과 나와 같이 되는. 내가 그런 일 안 당해도 당한 그 사람과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그것을 자기가 알 수 있어서 그이들에게 사귐이 되고 그들과 한 가지 된 그 사람 된 이것을 우리는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을 불행이라 하지말고 내가 직접 그런 일을 내가 당하지 안했다 할지라도 그런 일 당한 사람과 나와 행동과 사상이 꼭 같이 되어 있다는 그것은 안 당해도 나도 그이 당함으로 인해서 내가 상급이 마련되고 내게 구원이 되어지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악의 편에 서지 안하고, 내가 악의 편이 되지 안하고 악의 편에 서지 안하고 의의 편에 자기가 서서 있게 되었다는 이것을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무슨 의로 인해서 당하는 어려움을 직접 당하지 안해도 자기의 생각이나 성질이나 견해나 모든 정신이나 그런 것이 어짠지 그 일 당한 그 사람과 나와 한편이고 그 사람과 나와 한 편이고 그 당하는 그 사람에게 나도 대적하는 거와 같은 그런 편이 아니고 옳은 사람을 대적하는 편이 아니고 옳은 사람이 대적을, 박해를 받는 그 사람의 편이 내가 되어 그 사람과 같은 사람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한없는 기쁨을 깨달아야 복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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