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절은 한 절도 없습니다.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그 성경을 기록한 것도 다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사람이 기록했어.
사람이 기록했다 하면은 눈이 둥그럴 것인데. 녜.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렇게 말했는데도, 사람이 붓으로 기록했지 하나님이 붓 들고 기록하지 안했습니다. 전부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이런데 성경은 사람들이 기록했기 때문에 또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기록했는데 그 기록이 정확 무오하게 기록됐습니다. 정확 무오. 바르고 확실하고, 무오라 잘못됨이 없다. 그릇 오자 뭐 그릇됨이 없고 잘못됨이 없다. 정확 무오하게 사람이 기록했기 때문에 또 깨닫는 것도 정확 무오하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난해절이라 하는 이것은 왜 사람들이 난해절이 됐느냐? 난해절이 된 그것은 아직까지 도달할 데에 도달하지를 못하고, 이 등산하는 사람이 천 메타에 올라가면 환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을 구백 메타밖에는 안 올라가 가지고서 자꾸 이러니까 ‘이거는 없는 것을 공연히 한 말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무슨 기이한 소리를 해 가지고 제 인기를 끌라 하고 하는 말이지 이거는 실상 없는 일이다.’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은 네가 천 메타를 올라가야 볼 걸 천 메타를 올라가지 안했기 때문에 보지 못하니까 천 메타를 올라가도록 네가 애일랑은 쓰지 안하고 자꾸 이런 것은 없는 것을 공연히 말했다고 ‘어데 있느냐? 보라. 보라. 어데 있느냐? 보라. 보라.’ 암만 봐야 없습니다. 그거는 ‘네가 지금 아직까지 올라간 높이가 천 메타가 안 됐기 때문에 그런데 천 메타만 올라가면 보여진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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