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실에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는 것은 뭘로 입습니까?
믿음으로 입습니다. 믿음으로 입습니다.
믿음으로 입는 것은 믿음은 세 가지로 되는 것인데,
한 가지는 예수님이 나를 대속한 것, 이 형벌에 대해서, 순종에 대해서, 화친에 대해서, 형벌은 원수된 형벌, 불의라는 것은 하나님 법을 어긴 것이 불의가 아니고 자율적으로 산 그게 불의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 법을 어긴 것이 죄입니다.
이 세 가지 형벌을 대신 한 것이 예수님의 공로요, 대신 순종한 것이 예수님의 공로요, 대신 화친한 것이 예수님의 공로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공로를 입으라.’ 하는 이것을 지식으로 압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속하셨다.’ 하는 이것을 지식으로 알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 대속하신 것을, 대속하신 것을 자기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했기 때문에 내게는 예수님이 의를 입혀 주셨다. 나에게는 또 죄를 없애 주셨다. 나에게 화친을 주셨다.’ 하는 이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실제로, 실제로 입는 것입니다. 실제로 알고 인정하고 실제로 입는 것, 입는 것은 입으면 예수님의 사죄를 실지로 입는 것입니다. 실지로 벗어놓지 않고, 알고 인정하고도, 이 사죄함을 입혀 줬는데 다시 이 사죄를 벗습니다. 사죄를 벗는 건 제가 죄를 범할 때는 사죄를 벗는 일이 되겠습니다. 불의 행하면 의를 벗는 일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나눠져 있는 것은 화친을 벗는 일이 되겠습니다.
또 자기가 이렇게 입는 것, 입는 데는 주님이 나를 대신 했기 때문에, 주님이 대신 했기 때문에 주님의 죽으심은 나의 죽으심입니다. 나의 죽음이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대신 죽은 자 되는 것이 이것이 입는 것입니다.
(82012360)
/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자꾸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는 통에 다르고 또 입는다고 해도 실은 그 주관적으로 입고 하나님 보실 때에 합당하게 이치에 맞게 그렇게 합리적으로 입은 양이 적기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것이지 입은 것만치는 효력을 납니다.
입는 것을 뭘로 입는가? 입는 것은 내나 우리가 다른 것 들 것 없고 믿음으로 입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대속하신 것을 알고 인정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이 대속은 자기를 위해서 대속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은 내것이요, 나를 대신 해서 대속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것이라.
우리의 구원은 어떤 것이 우리 구원인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내가 입은 것만치 그것이 내 구원이요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것만치 영감을 받을 수 있고 또 영감을 받은 것만치 진리를 알게 됩니다.
(87072340) 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