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S 새로운 깨달음의 필요와 주의 (등재)
눅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문제였습니다. 삭개오가 주님 만나려고 아무리 따라가 봐도 사람들 뒤 꼭지만 보이지 주님을 만날 수는 없으니까 달음질을 쳐서 주님 가시는 방향으로 앞서 질러가서 뽕나무로 올라가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기다리고 있다가 만났습니다. 주님이 그 삭개오를 내려오라고 말하고 오늘밤에 내가 네 집에 유하겠다,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했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은 버리고 묵은 둥치 옛날 것만 자꾸 들어서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자랑하고 그것만 주장하는 것은 마치 유전 신앙으로 앞선 선배들의 신앙 생활만 가지는 것이고 자기가 깨달은 것은 증거하지 못합니다.그 생활을 붓으로 기록하려면 더 힘이 듭니다.
앞선 선배들이 실제 깨달은 것이 10이면, 문서로 기록한 것은 1쯤 되는데 문서로 기록한 그것만 거머쥐고, 그것만 외우고, 그것만 우상으로 삼고, 그것만 팔아먹는 일을 자꾸 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묵살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럴 때에는 그 시대에 해당되는 구원은 전진하지 못하고 그대로 침체돼 있거나 그리 아니면 후퇴해서 돌아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둥치에서 산 새움이 나야 됩니다. 올바른 교리라 신조라 말하는 것은 사회성과 역사성과 성경성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 성경대로라야 되고, 또 그것을 일시 한 사람이 깨달은 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다 공통된 깨달음을 가진 사회성이 있어야 하고, 또 이 시간에도 그렇고 백 년 전에도 그렇고 십 년 전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이후에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도 다 그대로 되는 역사성이 있어야 합니다. 공통성 역사성 성경대로의 권위성을 다 갖출 때 교리로 제정합니다.
우선 이미 교리로 되어 있는 그 교리를 기억하고 그다음 그 교리에서 탈선되지 안하고 그 교리에서 나온 새로운 깨달음, 다시 말하면 신구약 성경에서 나온 새로운 깨달음을 자꾸 숭상하고 북돋우고 자기가 가지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면 신앙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학자는 목회를 잘 못 합니다. 왜? 신학자는 새움이 없습니다. 신학자는 과거에 묵은 둥치, 그 책에 기록한 것을 외워 가지고 그것을 하나의 교안으로 삼아서 항상 그것만 되풀이해서 가르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가르치던 것만 가르치니까 작년에 가르치던 거 금년에 가르치고, 십 년 전에 가르치던 거 오늘에 가르치고 자꾸 그것만 가르치니까 자라가고 크나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목회라 하는 것은 사람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에 작년에 가르친 데보다 금년 가르친 것이 좀 더 또 새롭고 또 더 정확하고 더 구비하고 또 금년에 가르친 것보다 다음에 가르치는 것은 더 그래야 됩니다. 같은 설교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설교가 먼저 번에 들을 때의 그 설교와 오늘 할 설교가 영감도 더 달라야 되고, 깨달음도 달라야 되고, 또 얻어지는 힘도 달라야 되고, 소원도 달라야 합니다. 그것이 자꾸 자라 가는 것입니다.
새움이 없으니까 자라가는 일은 없고, 묵은 둥치만 가르치는 것으로는 항상 같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목회이기 때문에 그 교인들에게 성장은 없게 됩니다. 새로운 배움, 새로운 깨달음, 새로운 지식, 새로운 소원, 새로운 출발, 새로운 생애가 계속해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목회라 하는 것은 신학자로는 안 됩니다.
신학자는 자기가 맡은 과정만 가지고 가르치는데 그 과정을 모르는 1학년에게는 항상 그것 가르치고, 또 2학년이면 정해진 2학년 과정 가르치고, 4학년이면 4학년 것을 가르칩니다. 또 그 다음에 들어오는 새로운 1학년에게도 또 10년 후에 들어오는 1학년에게도 또 그것만 가르칩니다. 학생들은 새로 들어오는 학생이기 때문에 배우면서 은혜가 되고 필요하지만 만일 그 학생을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앉혀놓고 가르친다면 같은 것을 누가 들을라 합니까? 이미 아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또 새것을 원하고 필요성으로 느끼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배우고 깨닫고 믿고 실행하는 이 일을 언제나 계속해서 힘써 나가지 않으면 우리 구원이라 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구원은 무슨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인격을 만드는 것입니다. 인격이라 하는 것은 지정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꾸 새로와지고 자라가야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뜻이 있고 정서가 있고 또 자기의 욕망이 있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게 자꾸 자라가야 됩니다.
(8711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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