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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과 하나님의 책임  
분류:교리
 

③ 하나님의 주권에는 필연 예정이다. 이에 대해 폐단 두 가지 있으니
   첫째, 예정을 믿는 자로 인간 노력을 무시하는 일
   둘째, 인간 노력을 강조하는 자로 예정을 무시하는 일, 이들이다.

④ 하나님의 모든 예정은 건설과 파괴와 유지(遺持)이다. 건설은 순종하는 인간 노력을 통하여 되고 파괴는 거역하는 인간행위를 통하여 하시고 유지는 순종 불순종의 인적 행위의 무소속의 것을 통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 여하가 즉 하나님의 예정 여하의 표시이다. 그러므로 순종이 그 자체로 귀하지만 그보다 그 순종의 근거가 하나님의 예정에 있음이 더욱 귀하다. 롬9:1-33, 엡1:4-23, 마5:36, 창1:1-

⑤ 기독교는 건설에 속하고 이방은 파괴에 속한 것으로 예정된 것이다.

⑥ 기독교 구원이 절대예정이라면 인적 노력을 강조한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겠다. 옳다. 인간 노력이 필요하나 순종적 노력과 피동적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적 그것의 노력과 보은인 노력 곧 은혜 자체가 활동하는 것만이만 기독교에는 필요하다. 예정대로 주권적으로 성립된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능동적 행위같이 보여지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립 전부는 완전 무결한 천국에 영존할 것이기 때문에 역사(役事)가 다 완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자의 소원이나 갈망 갈급이나 노력이나 그 무엇이나 옳은 것 곧 천국에 소속한 것이라면 다 예정대로 하나님이 섭리하여 은혜 입은 그것이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전생활은
 첫째, 시은(施恩)
 두째, 사은(謝恩)
 세째, 보은(保恩)
 네째, 은혜 그 자체 활동
 다섯째, 은혜가 잃은 은혜를 다시 찾고
 여섯째, 은혜가 은혜 다시 구하여 새것 얻고
 일곱째, 은혜 받지 못한 근심도 은혜 받게 돈 그 자체가 근심함이다.

그러므로 주의할 것은 주권과 종권, 능동과 피동, 시은과 피은, 창조와 피조, 명령과 순종 등의 전자와 후자로 된 기독교니 하나님은 전자에 속하고 성도는 후자에만 속한다. 전자는 불가침이다. 예. 기도하라고 교훈하면 그 능동은 하나님이요 피동은 교훈자다. 그 교훈 듣고 능동한 기도의 맘이나 행동이 있다면 그 능동자는 하나님이요 피동자는 인간이다. 또 이가 예정대로다. 이가 기도만으로 예정이면 성립은 없을 것이요 성립까지 예정이면 또 성립까지 된다. 이것이 다 은혜 입은 것이다. 그러면 간구할 필요가 있느냐 하겠다. 어리석은 자야, 하나님이 능동적으로 하시면 사람은 불피동 불가능자이다. 또 능동적으로 시은치 아니하면 시은 아니되었으면 간구심이나 노력할 자도 전무한 것이다.
그러므로 듣고, 알고, 느끼고, 간절, 실행, 성립 이것이 각각과 은혜 입은 그 자체의 생활이다. 이 피조된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함이다. 단,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유기적 구원을 주시기 때문에 능동같이 보여지는 것 뿐이다. 더욱 감사할 것 뿐이요 전적 은혜를 훼손함은 배은이다.

⑦ 그러면 멸망자에 한하여 범죄책임과 불의가 하나님에게 있지 아니하냐 한 난제가 착수되겠다. 과연 하나님은 인생의 선택을 예정하셨고 모든 전개될 것들을 전부 예정하시고 섭리하셨다. 그러므로 인생 타락도 예정된 것이며 또 예정된 대로 성립된 것이다.(엡1:9-10, 마5:35) 그런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없다고 하셨다.(롬9:14)
범죄까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이면서 하나님은 무죄하신 일에 대하여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첫째, 성경이 무죄하시다 함으로 확실하고
 두째,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는 지위 차이가 무한한 고로 그러하다. 사람이 초목을 연료로 한다고 침해죄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는 비교 못한다. 당신 영광 위해서는 피조물을 맘대로 하나님이 규범을 내시고 악인이 죄를 짓도록 예정하시고 그 범한 죄인을 벌함은 권선징악의 자신의 속성을 나타내 보임이나 결코 하나님의 침해나 규범의 파손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타내심이요 규범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예. 화가가 범죄행위와 의의 행위를 그려놓고 범죄행위의 그림을 악이라 하여 불로 사룬다고 정죄할 수 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섭리는 인간에게 대하여 당신 자유 자제(自制)로 하신다고 정죄하지는 못할 것이다.
 세째, 정죄는 규범을 전제로 하는데 신인간의 규범인 성도에는 하나님의 소망 정죄를 규정한 것이 없기 때문에 죄가 성립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규범이요 또 규범의 주인이니 규범에 의하여 평가될 차위(次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규범과 모든 행위가 하나님에 의하여 또 하나님을 위하여 평가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주권적인 고차원적인 근본이시다. 시원(始原)적 存成**을 가지신다.
 네째, 또 죄를 창조주와 창조물과의 관계로 성립될 수 없다. 마치 사람과 풀 사이에 풀의 살상이 사람에게 범죄로 취급되지는 않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화가가 자기의 예술혼과 투지를 발현하여 강도가 부녀를 살해하는 작품을 그린 나쁜 그림과와 거지에게 자선을 하는 그림을 그려놓았다 하자. 혹자가 말하기를 그림 속의 살인의 책임은 화가에게 있지 그림 속의 강도에게는 없다고 함과 같다. 화폭의 그림 속 살인은 화가에게 있지 않다. 이러한 사고는 옳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 작업의 화폭 속의 살인을 죄로 운운함은 정신이상이나 싱거운 일이다.
 다섯째, 하나님 예정을 성취하실 때 직접 섭리하심으로 이루는 일들도 있고 손대지 아니하시고 책임을 버려 두심으로 되어지는 일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직접 역사, 책임 버리심, 시상 형벌 등으로 예정을 이루신다. 인생의 범죄는 하나님이 책임 버리시대 범죄되었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하심 안에 있는 것이나 하나님께서 그를 범죄하도록 그 역사를 하나님이 직접 하심은 아니다. 그러므로 위치적으로나 행역(行役)적으로나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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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51800 - 설교안 제 19 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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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9 신앙    전도인의 위치 세상에 부러운 것이 있으면 전도자의 자격은 없습니다. 이 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3428 신앙    보이는 복과 저주는 인간 보기에 복 얻는 행위가 있으면 반드시 복이 있고, 저주 받을 만하면 저주를 받는데 
3427 교리    예정과 하나님의 책임 건설과 파괴의 두 면이 다를 뿐이지 하나님의 예정이며 하나님은 위치가 다르므로 멸망에 무책 
3426 교훈    정의란 도덕 규율적이니 주장과 계획에 관한 것이며 바르고 옳은 것으로, 지식 지혜 양심의 산물 
3425 교훈    공평이란 판단이 바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주권으로 사람을 바르게 상대하는 것 
3424 교훈    진실이란 의무와 책임 면을 가르쳤으니 진리적이며 실지적인 인격 
3423 신앙    성도의 인격 옳으면 몇 번이든 즉시 고치고, 옳은 것은 끝까지 가는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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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1 죽음    불신자와 신자의 죽음 불신자는 죄를 지을 대로 다 짓는 것이, 신자는 죄를 짓느냐 의를 행하느냐 하는 기간이 끝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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