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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일도 금석가토  
 

어제 아침에 말한 대로, 그 후란시스 제자들이 산에  기도하러 가 가지고서 그 선생님은 어떻게 기도하는고 보자 하고서 엿들어서 한 달 동안인가 엿들으니까, 늘 기도하는 것이 항상 같은 기도를 하더라고서. 무슨 아주 구비한 무슨 기도를 할 줄 알았는데, 단지 기도하는  것이 이날 아침에도 들어 보니까 그 기도, 낮에도 들어보니까 그 기도, 밤에도 들어보니까 그 기도, 내일도 들어보니까 그 기도, 무슨 기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렇게 말해 놓고 난 다음에는, 그저 한나절도 지내고 하루도 지내고. 그라면서 자꾸 이래  눈물만 흘리고 그라고 있으니, 저게  무슨 기도인가? 제자들이 그것을 이해를 못 했다 그거요. 못 하고 그 전기를 기록할 때에 '그렇게 기도하더라' 이렇게 기록했는데, 그것을 많은 신앙가들이 그 전기를  읽는 가운데서 다 깨닫기를, 그는 '예수님' 할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다. 예수님이, 예수님이 근본 어떤  분이시다하는 것을, 이렇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해 놓고, 예수님이  근본 영원 자존하심에서부터 그가 어떠하신 분이라 하는 그분의 지극히 크고 영광스러움을  자기가 이렇게 명상하니, 거게는 두려움이 나올 수 밖에 없고, 또 그분이 모 e 것을 희생해서 사람되어 창조주가  사람되어, 우리가 아무리 해도 우리 손으로 만든 것,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 그거와 같이 제가 되어진다는 것은 그게 얼마나 천해지는지, 여러분들이 부인들로 말하면 요리를 만들지 않습니까? 요리 만든 식물 그와 같은 그와 같은 가치의 것이 되어진다는 거는 얼마나 그게 천해  지고, 얼마나 낮아지고 얼마나 아주 그렇게 무가치하게 되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되어 오셨다' 그분의 사랑이 어디까지, 넓이가  어디까지 며, 깊이와 높이와 길이가 어디까지인가? 그분의 사랑의 그  광대하심을 자기가 십자가에 대속했다.  뭣 때문에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지, 또 인성을 입어 신성. 인성, 신인 양성이 꼭 언제든지  너는 피조물이고, 나는 창조주고 이래 가지고서 신성은 신성으로, 인성은 인성으로 이렇게 계실 수 있고 행동 할 수 있는데 신성 인성이 한 겨위를 이루었는가? 뭣  때문에 그렇게 하나님이 사람되셨는가? 또  사람이면서 또 하나님이셨는가? 여게서 하나님과 원수되어 끊어진  인간을 대속해서 하나님과 인간이  결합되는 그 결합을 하나님과 사람이 그저 친밀해지는, 또 화합해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안하고. 한 격위를 이루는 거기까지에 그 결합을 원하셔서, 양성 일위를 가지신 것, 또 대속하신 것 영원한 창조주가 피조물로 부활하신 것. 이렇게 후란시스 자기를 위해  역사하신 그 주님을 하루 생각해도 모자라고, 이틀 생각해도 모자라고, 그 분을 생각하니 그분을  위해서 죽어도 모자라고, 그 분을 위해서 여생을 살아도 모자라고 이러니까 그 분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하고는 그 한마디 하고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저 눈물만 줄줄 흘리고, 또 벌벌 떨고  또 나도 주를 위해서 어떻게 죽어 영광스럽게 된다면 죽어 영광스럽게 하겠고 살아 영광스럽다면 살아 영광스럽게 하겠고,  이런 일. 저런 일 어떤 일을 해서라도 그분을 위함이  된다면 나도 모든 것 애낌없이 다  기울여서 하겠다는 자꾸 그 사람으로서 자기 주관이 변화되고 변화 되고하는 그 일을 생각하고 명상을 한 것이 후란시스였습니다.
그라다가 며칠 후에는 또 가 보니까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하고서 또 그렇게 못 견디어 하는 그런 것 같다가 '그랍니다.' 이라다가 '주님이 나 위해서 십자가에 못을 박혔었으니 그 고통이 어떠합니까?' 이라고 나서 얼마동안 있었는데. 보니까  아무 것도 창으로 찌르지도 안했는데,  보니, 나무에 이렇게 걸쳐 가지고 나무에 걸쳐 가지고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어떠합니까?' 이라고 얼마동안 있다가서. 나중에 그 나무에서 내려 왔는데 가 보니까 양쪽 손에 구멍이 뚫려서 상처가 생겼고, 다리에 상처가 생겨서 그 후란시스는 양 손에 주님이 못 박히신 그 자리에 못 자욱이 있고, 다리에 그 못 자욱이 있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얼마나 주님의 그 십자가의 고난을 명상하고 명상하고, 느끼고 느끼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와 가지고 자기에게 구멍이 뚫려서 못 자욱이 됐고, 그렇게 됐을까? 그가 얼마나 그 주님의 고난에 대해서 실감 실감으로서, 그것은 자기의 그 정신의 사모의 힘으로도 그런 것이 되어지는 그런 성질의 역사가 있을 수 있고, 또 주님이  그에게 하도 원하시니까 당신의 그 십자가의 아픔을 그이에게 알려주시는 그 하나님의 능력의 알려 주심으로서. 실제로 그와 같이 못 자욱이 있기까지 그렇게 되었던 것이라고 다 생각을 합니다.

'정신일도 금석가토'라고서 '사람의 정신으로 가지고서 바위를 뚫는다'하는 것 그런 말과 같이 그렇게  주님에게 대해서 허술하게 그렇게 생각지를 아니하고,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느끼고 느끼는 가운데서 자신은  자신도 모르게 고만거게 합당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에게 합당한  사람으로 자체는 변화될 수 밖에 없는 이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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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참 ‘정신일도 금석가투’라고서 이제 사람의 그 정신이라 하는 것은 돌도 쇠도 꿰뚫을 수 있다, 손 대지 안하고 뚫을 수가 있다 하는 것처럼 그 사람의 정신력으로 그래 된다.

이 세상에서 차력이니 최면술이니 하는 그런 것 다 인적 요소를 연단시키고 집중시켜 가지고서 되어지는 그런 것을 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고 또 다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기독교도 일종의 그런 것으로 되어진다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분석을 할 만큼 하나님을 믿는 것, 바라보는 것, 또 자기가 그 일을 성취시킬라고 역사하는 것 이런 것이 인간의 힘만으로도 이것은 된다, 이것은 순전히 인간의 힘으로 됐다, 자기가 해 놓고서 이것은 내 힘으로 됐지 내 노력에 내가 열심히 하고 내 노력으로 이와같이 이게 된 것이지 이거 무슨 객관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다 여길 만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방편의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는 다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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