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은, 비유가 잘 안 되겠지마는서도, 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집에서 있는데 내가 지금 몇시에 인제 돌아올 것입니다. 약속을 하고 고 시간에 돌아오는데, 반드시 돌아오는데 어데 외국에 갔다 지금 어데 갔다 돌아오는데, 약속을 딱, ‘고 시간이면 내가 요 대문에 내가 도착할 것입니다.’ 요래 놨는데, 대문에 와 가지고 문을 뚜드려도 벨을 눌려도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남편이 어떻겠소? 고 시간 딱 돼 왔는데 없으면 ‘이거 무슨 집에 사고가 났나’ 암만 벨을 눌려도 없으니까 '이게 무슨 어데 딴데 외출을 했나?’ 자꾸 그라면 연상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게 바람을 피우나 이게 어데 지금 뭐 하고 지금 무슨 재미에 빠져 가지고 이 시간 다 잊어 버리고 있느냐?’ 뭐 이거 돋칠 것 아닙니까, 이거? 그 부애가 돋칠 거라 말이지.
돋치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꾸 심히 뚜드리니까 문을 열어 주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부엌에서 남편 온다고 음식 만든다고 뭐 야단하고 그거 지금 보니까 딴거 안 하고 음식 만든 거는 분명하다 그말이오. 했지마는서도 분하다 그말이오. 그 남편이 어짜겠어? 거석한 남편 같으면 와 가지고 발길로 그까짓 거 음식이고 뭐고 발길로 다 차 버리고 다 깨뜨려 버리고 없애 버릴 것이라. 말이오. ‘이게 내게 무슨 필요 있어?’ 이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거 다 못 해도 딱 그 시간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 가지고 벌써 차가 우르르 하니까 문을 탈칵 엽니다. 그러면, 그거 볼 때에 ‘그 동안에 얼마나 수고했어요? 그래 얼마나 기다렸지요?’ 이라면서, 만족이라 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음식이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 뭐 그거야 없어. 왜? 자기 아내를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기 때문에 음식 없어도 아내면 만족이라. 좋은 부부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을 바라보는 거.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을 바라보는 거 이것을 당신이 제일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데, 사건으로서도 당신의 대속을 잊어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게 뭘 베풀어 주신 그것을 ‘어떻게 받았으며 이것을 생각하고’ 당신이 나에게 말씀해 주신 말씀은 ‘지켜 회개하고’ 말씀을 지켜 보니까 말씀에 회개하라 하는 거 회개하고 말씀을 지켜도 또 잘못 지켰으면 또 회개하고 이렇게 하면은 내가 나와 흰옷 입고 같이 다니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86021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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