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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 목사님의 충성  
 

또 그 사람이 이미 떠날 사람은 떠날 사람인데, 그 사람이 떠날 그 시간까지 강건하게 있다가 떠나면 언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할 터이니까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줘 가지고 고통으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그런, 회개를 안할 수 없이, 고통을 인해서 세상 인연도 고만 죽기 얼마 전에 고통 때문에 '아이구 나는 이제 죽는다' 하니까 세상에 미련을 다 끊어 버리고 하늘나라에 소망만 생각하고, 또 세상에 그동안에, 건강하면 배짱도 내고 이랬는데 죽을 판이니까 죽을 지경이 됐으니까 '나는 이제 죽는다.' 생각하고 보니까 겸손히 회개할 것도 회개하고. 남하고 타협할 것도 타협하고, 양보할 것도 양보하고, 남에게 사과할 것도 사과하고 이렇게 해서 모든 죄에 대한 준비를 하게 되지, 또 하나는 그 사람이, 예를 들어서 일 년을 일을 할 건데. 일 년을 일을 할 건데 건강해 가지고 일을 하면 그 사람에게 있는 힘의 그저 반은 달리 쓰고 반 가지고만 해도 그 일을 하게 될 터이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반은 딴 데 허비를 하고 반만 하나님께 바쳐서 그 힘을 나누고 정신을 나누어서 그와 같이 할 것인데 그 사람에게 병이 들어 놓으니까 반 가지고는 그 일을 하지 못하니 있는 힘을 거게다가 다 기울여도 될까 말까 이러니까 그 사람이 병으로서 반은 줄어졌고 남은 힘 다 가지고 주님에게 바치게 되니까 그 사람은 다 바치게 된다. 그 사람을 주님에게 다 바쳐서 주님에게 일하게 하는 데에는 병으로 조절해 가지고 그 사람이 반은 허비 낭비할 것이고 반만 하나님께 바칠 사람을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바치도록 하나님이 조절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제가 그 사람에게 권유한 일이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 홍순철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그 목사님에게 대해서 제가 그때에 제가 밝히 깨달아지고 느껴진 것은 그분이 그 병으로 말미암아 병이 아니면 그렇츰 어디, 그렇츰 사람이 있는 힘을 다 기울이고 할 수 있습니까? 목회하고 설교할 때에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끝까지, 끝까지 설교 듣고, 듣는 것도 다른 사람은 뭐 힘의 십분지 일만 가지고도 듣는데 이분은 들을 때에 전력을 다 기울이지 안하면 그 설교를 듣지 못합니다. 또 있는 힘을 다해서 끝까지 필기를 하다가 힘이 없어 못 해도 합니다.

이래 가지고 마지막 설교할 때에 그저 고게서 설교하다가, 얼마나 설교를 하다가, 그저 설교할 힘이 없는데 나와서 겨우 강단을 붙잡고 설교하고 또 나중에 앉아서 설교하고 이래하다가 마지막에는 설교하다가 설교를 다 끝마치지 못하고 힘이 없어서 고만 힘이 없어서 거게서, 강단에서 아주 기진해 가지고 힘이 없는데 이렇게 사람에게 들려 가지고 자기 사택에 가 가지고 고만 세상 떴소. 이러니까, 그렇게 병이 아니면 그렇게 충성할 수가 없고 그렇게 힘을 다 바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거는 참 하나님 앞에 만점의 충성일 거야. 남는 것 하나도 없이 있는 것 다 기울여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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