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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무시하는 기도  
 

기도하러 암만 가도 가 가지고, '주여 뭐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내가 뭐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따위, 고것 내가, 그런 기도라 할 건데 그따위라 합니다. 그따위! 그따위 기도 암만 해 봐야 주님이 외면하신다 그말이오. 왜? 그것이 주님을 업신여기는 것이거든. 왜 업신여기는게 됩니까? 주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요, 또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요, 그분은 나를 고쳐서 바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시기까지 하셨고, 죽기까지 하셨고, 또 영원히 사람을 입은 부활까지 하신 이 애타 하시는 이 주님이신데, 아주 껍데기 말로 발라 맞춰서 아무 생각 하지도 안하고 '주여 내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그럴 때에 주님은 그에게 반문할 것입니다. 귀가 어두워 못 듣지. '너 뭘 잘못했지?' '그저 잘못했습니다.' '뭐 잘못한 것 깨달아?' '아. 잘못했다 해야 될 터이니까. 잘못한게 어디 있든지 있기야 있겠지요. 그러니까 뭐 잘못했다 했지요.' 그런 것이 애타 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멸시가 아니겠습니까? 전지자에게 대해서 얼마나 그를 어리석게, 어리석게 대우합니까? 얼마나 멸시하는 것이 됩니까? 사람도 똑똑한 사람, 아는 사람에게 그렇게 껍데기로 그렇게 하면 섭섭해 합니다.

'야, 좀 진실을 말해라. 네가 어떻게 말하는데 말 한 마디도 진실이 없느냐? 그 실상을 말하지 안하고 네 껍데기 껍데기로 그렇게 하느냐? 그럴 것 같으면 네가 생각하지 나한테 얘기할게 뭐꼬?' 상대방을 모르리라 하고 그렇게 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 상대방이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요구하고 관심 가지는데 대해서 그것을 모르고 그와 관련 없는 모든 행동을 해도 상대방을 무시히는 것. 상대방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이런 일이야 의논하나 안 하나 뭐, 이런 일이야 의논해 봤자 소용는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는가?' 그것도 무시하는 일.

우리가 기도하러 가도 그저 가 가지고 기도 안 된다는 것이, 가 가지고 들짱 하나님의 말씀을 잡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이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중보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우리에게 소개해 줍니다. '이런 분이시다.' 이 말씀에서 주님을 충분히 소개 받고 그대로 주님을 상대하면 대면이 됩니다. 이러니까, 말씀을 자기가 한번 생각하니 거게서 두려움도 나오고 사과도 나오고. 후회도 나오고, 소망도 나오고, 열심도 나오고, 기쁨도 나오고. 모든 좋은 것이 다 나오는데, 강단에서 하물며, 한번 말하니까, 자기 혼자 말할 때보다는 강단에서 말할 때는 성령의 은혜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왜? 사람의 수가 많은 데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더 많다고 말씀 했습니다. 이런데, 강단에서 한번 말씀하니 그대로 하니까 더 은혜가 되고, 두 번 하니 더 은혜가 되고 이럴 건데, 설교도 한번 듣고 두 번 들으면 듣기를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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