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정도가 시골이니까 시골 교회니까 무식한 정도에 있으니까 여기에는 설교를 좀 쉽게 해야 되겠다. 쉽게 해야 되겠다 하는 데에는 쉽게 해야 되겠다 하는 데에는 전부 다 실패입니다. 실패고 그저 어데든지 어제보다 오늘 더 하나님 앞에 가까운 설교를 해야 되겠고. 하나님과 가까운 설교를 해야 되겠고, 또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데에도 더 어제보다 속도로 나아가는 걸 했겠고 더 속도로 더 가깝게 더 좁게, 이 하나님이 지금, 예를 들면은 하나님이.
비유컨대 하나님이 저 동쪽에 있다 이러면 동쪽이라 하지만 동쪽이라 하는 것이 그 넓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동쪽으로 향하기는 했지만 동쪽에서 이게도 동쪽, 이게도 동쪽, 동쪽이지마는 차차 차차 가는 가운데에 하나님 만날라 하면 끝이 좁아져야 될 것 아닙니까? 동쪽 중에도 요리.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그 넓은 동쪽에서 좁은데 한 평 이내를 찾아가야 딱 들어 만날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어짜든지 자기의 증거하는 것이나 자기가 걷는 걸음이나 그런 것이 점점 좁아져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하되 하나님을 향하되 점점 좁아져야 되고, 또 점점 고속화 돼야 됩니다. 점점 속도가 빨라져야 되지 점점 그 하나님을 찾을라 하면은 그렇지 안해요?
예를 들면 그 뭐 그래 어려운 것이 아니고 이 뭐 세상에 다 지식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안 배워도 다 알아요. 서울 갈라 하다가 서울 갈라 했으면 서울 떡 갔다가, 서울에 갔지마는 서울이 그렇츰 넓은데 어찌 알겠습니까? 서울에서 그 사람 있는 데로 좁아져서 서울에서 무슨 뭐 구 무슨 구를 찾아야 되겠고. 많은 구 중에 한 구를 찾아야 되겠고. 또 한 구 중에 거기에서 많은 동리가 있는데 그 중 한 동리를 찾아야 되겠고, 한 동리 가운데서 더 좁아져 가지고서 또 어느 그 뭐 몇 가라 하는 그걸 찾아야 되겠고, 그 몇가 가운데서 번지가 많으니까 고 자꾸 좁아져 가지고 몇 번지를 찾아 가지고서 딱 문을 노크를 똑똑 해야 문 열면은 고 사람 만날 수 있다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이 넓은데 자꾸 좁아져야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걸음이기 때문에 점점 이와 같이 좁아져야 됩니다. 자꾸 우리 사색하는 거는 좁아져야 돼요. 이 찾는 것은 좁아져야 되고 또 걷는 걸음은 더 가속도로 속해야 되고 이런 건데 벌써 그 사람이 볼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점점 좁아지지 안하고 인간을 생각하고 점점 넓어지고 하는 그 한 마디 말을 들을 때에 저 사람이 방향을 지금 세상을 향하고 있다. 인간을 향하고 있다 하는 고 방향을 알 수가 있습니다.
(8504206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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