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첫째 순서가 뭐이냐? "복 있는 사람은" 이 말은 사람들이 복 하면 그 복을 추접하게 생각하는 그런 못 된 관념이 우리 동양 도덕에는 있습니다. 동양 도덕에는 도덕이나 그런 것, 뭐 의냐 또 거룩이냐 또 의지냐 착하냐 뭐 그런 것만 지금 말하고 있고 복이라 하면 그만 추접한 것같이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왜 그렇게 가지게 돼는가? 복이라는 것은, 우리 동양 관념에는 물질이라 그렇게 보는 그런 못된 안된 어리석은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 좀 복을 넓게 말하는 사람은 오복이라 또 이래 가지고 조금 수다하게 종류를 넓혔습니다. 또 산상 보훈에는 보면 팔복이라 그래서 팔북산이라 하는 그런데를 따라서 다 그리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고하니, 복은 하나님이 그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이 되는 자가 그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복이 있고 또 내세에도 복이 있고 영과 육이 아울러 다 복 있는 그 복을 말하는 것이니까 여게 복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복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 중에 특별히 우리 한국 교회에서 재건 교회에 최덕지 선생님이라는 그 여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왜정 말년 때에 신사참배에 그렇게 탄압이 있었지만 사람 보기에는 털끝 만한 것도 그들에게 숙인 일이 없었습니다. 신사참배를 안하고 들어간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거기서 신사참배 때문에 처음에는 시험이 있다가 나중에는 이제 황거 요배. 일본 천황 폐하가 저 동경에 있는데 그 천황을 향하여서 여기서 절을 해라 하는 황거 요배라고도 하고 또 동방 요배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하라 이랬는데 그때에 다른 사람들은 거의 다 했습니다. 왜? 너무 탄압이 많기 때문에, 그러나 최덕지 선생님은 그걸 안했습니다.
그게 죄다 하고 왜? 사람인데 벌써 수천 리 밖에 있는 사람에게 절 한다는 것은 벌써 그 사람을 신격화됐기 때문에 그게 우상된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래 가지고 내나 신사참배나 그거나 뭐 같은 일이다 이래 가지고 반대를 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고문을 많이 받고 고행을 많이 받았는데 그들은 감옥에서 나을 때까지 고랑을 차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고랑을 차고 있고, 다른 사람은 고랑을 벗고 갇히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고랑을 차고 있을 때에 여름에는 이게 썩으니까, 온 팔에는 구더기가 자꾸 득실 득실 이래쌓고 쑤시고 이렇지만, 그 뭐 누가 그걸 이 손이 이 손을 도울 수가 있겠소 이 손이 이 손을 도울 수가 있소? 그대로 썩어 나가면서도 신앙의 정조를 굽히지 안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분의 표어는 그겁니다. 복입니다. 복. 어짜든지 하나님 앞에 복 받는 자 되자. 영도 복, 육도 복, 그 심령도 복 이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당신이 성도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주고자 하시는 것은 내가 다 받는 사람 되겠다 하는 그것이 그분이 복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그는 언제든지 말이 표어가 그만 복이요. 이러면 복 못 받는다. 이래야 복 받는다. 이게 복 받는 길이다. 그 복 하나로 해석을 다 해 버려요.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을 받는 그것이 복이다 그렇게 해석했기 때문에 그분은 그랬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분이 재건 교회를 창설했는데 그분이 여자다 보니까 아무래도 좀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범위 넓게 생각지를 못하고 치우치는 점이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치우치는 점이 무슨 점이 치우쳤느냐 하면 제일 많이 치우친 것은 이는 신사참배한 사람들은 다 이것은 정조를 판 자들이 요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기 때문에, 성경에 그런 자를 인사도 하지 말아라 하는 고 성구를 가지고 고린도전서에 있는 고 성구를 가지고 그만 절교를 했습니다. 말을 안 합니다. 일반 교인들과 말을 안하고, 불신자들 하고는 말하지만 신자로서 믿던 사람이 신사참배한 사람, 또 이거 동방 요배한 사람 그 사람과는 말을 안 했습니다. 절교를 했소. 그것이 그들에게 제일 단점이었습니다.
여게 OO교파에 있는 OOO목사님 OOO목사님 다 이런 목사님들이 그분을 존경하고 참 그분 앞에서는 말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분은 뛰어난, 그 고문과 고행을 당해도 신앙을 굽히지 안했는데. 자기네들은 그 고문과 고행 때문에,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처음에는 동방 요배 안할라고 이래 반대를 했지만 너무 고문과 고행이 심하니까, 그뭐 이것을 꼭 이것 때문에 이렇게 형벌을 당할 게 뭐 있냐 하는 것을 이렇게 은연 중 생각도 하고 의논도 하다시피 하면서 그 뭐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산 사람에게 거리만 좀 먼 것뿐이지 뭐 딴거 뭐 있겠느냐 이렇게 해석을 해 가지고 동방 요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 분은 어떻게 사람은 사람인데 서로 마주 보고 볼 수 있는 사람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인사를 하는 것이지 볼 수 없는 수천 리밖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벌써 그거는 다 우상성을 가지고 신성화한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 그래 가지고 했는데 그리 다 존경을 했습니다. 존경을 했는데 그분들이 처음에 나와 가지고 차차 차차 절교하는 일을 그 일을 더 심하게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재건 교회 다니는 사람은 일반 교인들 하고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교제를 끊는 그 절교를 했습니다.
이라니까, 거기서 이 동방 요배한 하나님의 남녀 종들이 '아, 저게 너무 좀 치우치지 않느냐' 하는 데서 그분들을 좀 깔봤습니다. '치우치지 않느냐?' 만일 그걸 안하고 이래 나갔으면 그분들 앞에는 머리를 들지 못할 것이고 그분들이 모두 다 주도권을 쥐고, 뭐 OO교파에 만일 그분들이 OO교파의 일 했으면 OO교파로 갈 것이고, 그분이 무슨 재건 교파라 하면서 재건 교회로 다 따라갔을 것입니다.
이랬는데 그렇게 지나친 고 흠점이 있어서 고게서 위로를 받고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저거 너무 지나치게 치우쳐 간다 그렇게 됐었고. 고라고 난 다음에 이제 우상은 다 도말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그때 지금보다는 시골에서는 미신을 많이 섬기기 때문에 그 구정, 음력 정월 말이오. 음력설에는 되면 정초에 모두 다 동리마다 조산이 있고, 또 섬기는 저거 뭐 동신이니 뭐 산신이니 하면서 제단이 있고, 또 거게는 금계(禁界)줄을 쳐 놓습니다. 새끼를 원 새끼로 이렇게 꼬아 가지고 거게다가 미역도 달고 또 숯도 달고 고추도 달고 또 인제 소나무 가지도 달고 이래 주렁주렁 달아 가지고 금계줄을 쭉 쳐서 이래 놨는데 그 금계줄 쳐 놓은 그걸 하필 그 동리 사람들 통과하는 그 길에다가 딱 이래 커다란 높으게 사람들이 손도 대이지도 안하는 한 두 질이나 되도록 높다랗게 이래 딱 쳐 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금계 줄 밑으로 가야 된다 그거야. 그 금계줄을 본 사람 손들어 봅시다.
그래도 언간히 봤습니다. 좀 있으면 이거 다 뭐 이건 다 옛날 얘기 같은 이야기이지 모를 거야. 그분들은 그 아래로 통과를 안 할뿐 아니라 거석한 사람은 통과를 안 했습니다. 통과를 저도 그 밑으로 통과를 안해 가지고 길도 아닌데 삥삥 둘러서 그래 갔었습니다.
그라고 여게 저 수원지 가면 도리라고 내나 이래 쭉 이어 놓고 이래 나무 걸쳐 놓고 수원지 입구에 그래 해 놓지 안했습니까? 수원지 저 위에, 그거 봤어요? 수원지 저 산에 올라 갈려 하면 그 길에다가 나무 큰 걸 이래 쭉, 나무 큰 걸 한 개 이래 떡 이래 밑에 기둥 두 개를 가지고 이래 떡 해서 사람 들어가는 길 반이나 위에 되고로 해서 이래 떡 해 놨습니다. 해 놨는데 한 번도 그 밑으로 들어가 본 일은 없습니다. 갈때는 다른 사람 말은 안해도 가면서 그 기둥 밖으로 해서 요리 가지 그 밑으로는 가지를 안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분들은 그 밑으로 안 갈 뿐만 아니라 가 가지고 기어고 조사지만 어디든지 올라 가 가지고 그놈을 당장 뜯어서 그만 치워 버립니다. 동리 사람들은 지금 공 들인다고 해 놨는데 가 가지고 그걸 그만 뿌질라 버리고 새끼를 뜯어 가지고 전부 새끼를 태워 버린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암만 바빠도 그거 태우고 가야 되지 뭐 그냥 가지는 안합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만 동리에서 핍박이 있어 가지고 뭐 많이 맞았습니다. 여기서 그라다가 맞고 맞아도 그분들은 그런,거는 겁내지 안하기 때문에 맞고, 또 저 동리 그라다가 맞고, 이라니까 그게 일어나 가지고 공연히 그거는 뭐 자기 피하면 되든지 그러면 그리 안 가고 피하면 될 터인데. 그걸 뜯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또 절에 가면 만일 절에 갔다고 하면 부처 다 절단 냅니다. 부처 그만 들어서 내던지고 막 또 이랍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공연히 지나쳐 가지고 핍박이 있어서 복음 전도에 많은 지장을 일으킨다.
이러니까, 그분 내나 하는 일이 하나 틀려 둘 틀려, 뭐 좀 지나치게 틀리는 것이 하나 둘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 동방 요배 안 한 것이 만일 잘한 일이고 좋은 일 같으면 저분들과 같이 해서 그분들이 저렇게 실수하지 안 할 터인데 그거는 우리가 한 것이 괜찮다' 이렇게 위로를 받고 안심을 했고, 그러나 동방 요배한 것이 잘못입니다.
또, 저는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동방 요배 처음 들었는데 교회 가니까 그 교역자가 예배 볼 때 뭐 한다고 '다 일어섭시다' 이래서 그때 일어섰습니다. 일어서니까 동쪽으로 돌려 향합시다 그 좀 이상하다 그거야. 이상해서 그러나 돌려 향하지 안하고 이래 섰다가 앉았습니다. 보니까 일어서라 말은 뭐할라고 하니 일어섰지만 동쪽으로 향하라 하뉼 것 보니까 이거 뭐 아무래도 이거 뭐 필요 없는 일 하라 하는 거니까 교역자가 필요 없는 일 하라 하니까 나는 그때 앉았었습니다. 앉았는데, '그때 설명을 하면서 '동방 요배 안 하고는 예배 보면 다 우리가 취체(取締)를 당하기 때문에 그래 뭐 큰 죄가 아닌데' 말하기를 '옥중에 나오는 모든 목사님들도 옥중에서도 다 하고 있고 소식을 들으니까 이거 뭐 그럴 필요가 뭐 없다 해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앉았습니다. 안하고 앉았습니다. 안 하고 앉았는데 그때 그 교회에 동방 요배 안 한 사람이 혹 저 하나 뿐이든지 아마 저하나 뿐이기 쉽거나 그리 아니면 혹 몇 사람 있을 거나 그럴 것입니다. 그 뒤에는 어디든지 안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래서 그만 그 권위가 떨어져 버리고 나중에 가서 이것 너무 지나쳐서 아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깃발을 들고 나가는 이 깃발이 옳다 이래서 OO교파가 자신만만하게 그때 나갔습니다. 만일 그들이 치우치지 안했으면 그렇지 안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옳은 길을 걸었다 할지라도 거기서 잘못된 점이 하나씩 둘씩 나타나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 옳은 길을 따라 오는 힘이 빈약해지고 또 반대되는 그 길을 걸을 때에 그 길을 걷는 용감이 생겨집니다.
....
그분은 이 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복을 생각했습니다. 그저 이라면 복을 받나 못 받나? 그 하나라도 복을 생각하니까 그 복이 어디까지 나갔느냐 하면 황거 요배 그것도 안 하는 데 까지 나갔어요. 황거 요배를 하면 이거 복을 받겠나 안 해야 복을 받겠느냐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말씀이든지 한 말씀을 붙들고 자꾸 나가면 그 다음에는 많은 말씀이 다 관련이 되고. 하나가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84051520) 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