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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상  
 

여순 반란 사건 때,
여수 교회에 신자들이 있었고 손양원 목사님의 아들들도 거기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박구상이라는 청년이 한 명 있었습니다.
자기 형은 여기 00 교회에서 와서 집사로 있었고, 그의 부인은 00교회 찬양대 대원으로 있었고 거창 읍에서 신앙 생활했습니다.
그 사람은 순천이 고향입니다.

여순 반란 사건 때 그 사람의 동생이 반란군들에게 붙들렸습니다. 그런데 반란군 학생들은 그것이 뭣이지도 모르고 공산주의 꼬임 받아서 공산주의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그럴 때에 공산주의 유혹받은 학생들이 너희 따라다니면서 예배당에 다니는 청년들은 다 말해라 해서 교회 청년들이 여덟인가 일곱인가 같이 가는데 학생들이
" 이놈들 다 교회에 다니는 놈들입니다."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반란군들이 총을 들고 있으니까 어쩔 수 있습니까?
반란군이 죽일까 싶어 말하기를 “ 나 안 봤나? 내가 교회 공연히 다닌다. 그래도 내가 담배 안피더나? 내가 교회 참말로 다닌 줄 알았나? 그 껍데기로 교회 연애하러 다녔다" 하며 이놈은 이렇게 말하고 저놈은 저렇게 말해서 그 자리를 모면했는데,

박 구상은 암만해도
"예수 안 믿는다 할 수 없고 죽으면 죽었지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그래서 박구상을 감방에 가뒀습니다.  

그런데 아까 풀려났던 나머지 학생들은 교회다니고 신앙이 들어서인지 예수를 부인하기는 했지만 마음에 가책이 돼서 자꾸 인민군을 만나면 또 안 믿는다 예수를 부인해야 할 것이니까 이제 다시 인민군을 안 만나기 위해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반란군이 보고 피하는 자인 줄 알고 죽였습니다. 하수구로 들어가는 구멍에서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사흘 만에 진압이 되었습니다. 국군이 들어와 반란군을 싹 죽이고 완전히 진압을 했습니다. 국군들이 감옥을 조사하고 박구상의 자초지종을 듣고 풀려주었습니다.

그 분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려 신학교 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주님 배반하고 주를 위해서 생명 바친 사람은 살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나와 내 도를 위해서 생명을 버린 자는 살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8708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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