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 석가가 불교를 만들게 된 배경
그러니까, 인생이 좀 심령이 불신자라도 밝아서 오늘 한 것은 그 보응이 내일 옵니다. 또 젊어서 한 것은 그 보응이 늙어서 옵니다. 또 일생 동안 한 보응은 죽을 때 옵니다. 그러니까 그 뭐 마지막 인생 걸음 다 걷고 난 다음에 보응 올 때 그때 깨달을 게 아니라 좀 그 지혜로운 사람은 그만 하루에 깨닫습니다. 오늘 한 일이 내일 보응이 온다. 오늘 한 일로 써 내일 보응이 왔는데 그 일이 가치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돼서 가치적으로 허무하게 됐다. 또 그 기쁨도 평가해 보니까 허무하다. 이렇게 해서 얼마 동안 살아 보고 난 다음에는 인생을 설정하는 사람 있습니다. 아, 이것은 허무하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것만 보고 살수가 없다 해가 지고 그 사람이 도덕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권세나 이런 것 보고 살던 사람이 명철한 사람은 그만 이것보다는 도덕이 가치야 하고 도덕으로 들어갑니다.
도덕으로 들어가 봐도 도덕 그것도 허무하다는 걸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종교로 들어갑니다. 종교로 들어가 가지고 헤매다가 또 자기가 철학으로 한번 또 헤매 봅니다. 철학은 종교보다도 더 허무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종교로 갔다가 이 종교에서 저 종교에서 들어가 보니까 잠깐 들어가 보고 난 다음에 이것은 아니다 하기 때문에 그 종교를 버리고 어디 종교를 찾아서 이 종교 저 종교 찾아 가지고 이 종교로 개종해 보고 저 종교로 개종해 보고 몇 번이나 종교를 개종해 보고 다시 아니라고 해가지고 헤메이다가 택자가 아니면 세상을 마친 사람 있고 또 자기가 종교를 찾아서 헤매이다가 아무 종교도 따라 갈 만한 종교가 없으니까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다가 그만 자꾸 생각 하다가 깊이 들어갔다 말이오.
석가 같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깊이 들어가 보니까 과거에 철학이나 모든 도덕이나 모든 그 종교들이 있지만 까짓 것 볼 것이 없고 도무지 너무 아무것도 거짓부리이기 때문에 제가 자꾸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 불교를 생각한 것입니다.
불교를 생각하고 난 다음에 그분이 말한 것은 이렇다 하는 확정짓는 말은 불교에는 없습니다. 다 그러리라. 그러리라. 자꾸 이렇게 추측 추론을 했지 요렇다 확고부동의 말은 한 일은 없다 그 말이오. 그게 좀 양심가요.
이러나 자기가 그래 가지고 다른 길을 암만 찾아도 없으니까 없으니 이 길도 속이는 길이지만 이 길도 그래도 사람을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데에는 그래도 모든 종교보다 이 종교가 낫다 하기 때문에 소망이 없지만 거짓부리 그 소망을 줘 가지고 사람을 권선징악의 도로서 둔 것이 그것이 불교입니다. 실은 석가모니는 무슨 극락이라 하는 그런 것을 확실히 믿는 게 아니고 권선징악의 종교로 그와 같이 둔 것인데 그만 그 뒷사람들이 심령이 어두워 놓으니까 자꾸 과장하고 과장해 가지고 극락이 확실히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창세기서부터 인생의 영원을 말했고, 또 부활을 말했고, 또 조물주를 말했고, 주권자를 말했고, 사람들이 나고 죽는 것이 당신의 한 분에게 주권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해서 모든 것이 기독교에는 갈 지(之)자 걸음은 없습니다. 갈 지자는 여기서 이리 갔다가 이리 갔다가 이리 간 그게 갈 지자입니다. 갈 지자 걸음은 없어. 이리 가고 이리 가고 이리 가고 자꾸 이래 이래 이래 자꾸 이라는 갈 지자 걸음을 걷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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