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 주일학교가 성경을 읽을 때는 부흥하고 재독할 때는 떨어진다는 신고함의 말을 기쁘게 들었습니다
제가 신고함을 여는데 거게 기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 기록해 놨는데 '우리 주일학교가 이거 자꾸 쇠퇴해 가는데. 부흥이 돼야 될 터인데' 그 사람 말이 나는 맞든지 안 맞든지 나는 참고로 삼습니다. '우리가 주일학교 부홍될 때에는, 성경 읽기를 시작할 그때부터 부흥이 됐습니다. 이 설교 재독하는 이 재독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주일학교가 내려 갑니다.' 그 말을 나는 무심히 듣지 안하고 아주 힘있게 나는 듣고 있습니다. 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이 다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말씀을 깨닫게 하는 소개하는 것이지. 성경 말씀이 아니라면 청산 유수의 설교를 한다 해도 그거는 전부 사람 죽이는 소리지 아닙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을 아무리 말한다 할지라도 성경은 가르치지만, 성경을 가르치지만 설교는 양식을 주는 것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을 성경 공부를 가르치는 것과 설교와 다릅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그 시간에 하고자 하는 그 말씀을 해야 됩니다. 보기는 사람이 말하지만 서도 속에 말씀하신 이는 주님이 말씀을 사람을 기계로 쓰시든지, 무슨 당신의 지체로 쓰시든지, 입술로 쓰시든지 말씀하시는 이는 주님이 말씀해야 거기에 생명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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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성경과 설교록에 관한 말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런, 신고함에 써 넣었어요, '성경 보기로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주일학교가 부흥이 됐는데 재독하기 시작하고 난 다음 에는 주일학교가 내려간다' 하는, 그 사람의 말도 참고가 됩니다.
이러니까 뭣 때문에 설교 재독을 듣느냐? 설교 재독 듣는 것은 자기 단독으로 성경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 성경을 배우는 것이니까 성경 배우는 것은 성경 알기 위해서 배우지, 성경 배우는 그것이 성경을 알고 나면 성경 배우는 게 필요가 없습니다. 배우는 것은 성경을 알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을 단독 읽어서 모르니까. 이러기 때문에, 재독하는 것도 필요하고 재독은 한 번씩밖에는 없으니까, 재독은 한 번씩밖에 없으니까 재독은 재독을 들어야 되겠고, 깨달아야 되겠고, 성경은 다른 날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이런데, 그 사람의, 신고함에 써 넣은 그 사람 속에는 뭐인가 좀 야릇 한 것이 들어서 오해가 들어있는 것인데 그걸 그 사람이 회개를 해야, - 요 가운데 있는지 모르겠는데- 구원 이루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 마음에는 '아이구. 재독? 성경을 봐야 되지' 하는 그 사람인데 제가 성경 암만 봐서. 성경을 봐서 깨달았으면, 성경을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 이라면 여기서 설교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셨기 때문에 놀라고 기절하고 생명을 내 두고 그럴 건데 그 사람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하나의 일종 설그의 반대의 그말이 아닌가 이래서,그 사람이 좀 불쌍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보여지는데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설교 재독은 성경을 가르쳐 깨닫게 하는 것이니까 그거는 찍해야 한 일 주일 동안에 아마 두 시간밖에는 없을 것이고, 두 시간밖에 없고 성경 보는 시간은 몇십 시간이든지 있어요. 일주일 동안이면 보자 이십 사 시간인데, 자, 여덟 시간 자고 열 여섯 시간씩 말하면 얼마돼? 한 여덟 시간 만 잡아도 칠 팔이 오십 육, 한 오십여 시간인데, 오십여 시간 되네. 오십 여 시간에 성경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말이오. 그거는 뭐이냐? 마귀로서 지금 하나님이 복음 운동 역사를 깨트릴려는 그런 자기 주관주의에서 나온, 주관 신앙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럴 때에 비판할 때에 '아, 그거는 일주일 동안에 두 시간만 하면 되는 것인데, 두 시간, 그거하고 나머지기 시간 성경 얼마든지 볼 수 있고 그거는 성경만 봐 가지고 자기가 깨닫지 못하니까' 성경을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봤지만 깨닫지 못하니까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자기가 배움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성경도 열심히 봐야 되고, 그래 늘 말하기를 여기 설교하면 설교 필기를 가지고서, 필기를 가지고서, 성경 본문을 보고 깨닫고 '아 이 본문에 이게 있구나' 본문 보고서 그것을 캐달을 수 있다고 하면 설교 기록한 노트는 불에 태워 버리고 집어 뜯어 없애 버려야 됩니다. 왜? 성경만 보면 다 아는데 뭐 할라고 해석해 놓은 그걸 볼 필요가 있습니까? 성경만 보면 그 해석을 다 알고 있는데.
그러니까 어짜든지 이거 깨달아야 되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해도 소금이라 하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 말이오. 암만 읽어 봤자 '나는 세상의 소금이라 소금이라' 암만 해봐도 모르면 안 된다 말이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말은 너희는 세상에게 진리와 영감에게 쓰여짐으로 없어짐으로 인해서 세상을 진리화시키고 영감화시킬 네라. 그러면,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네가 현실에서 진리와 영감에게 쓰여져서 없어지면 없어진 것은 벌써 진리화됐고 영감화됐기 때문에 그것이 너를 바로 뺏기지 안하고 너를 바로 보존, 주님이 십자가의 대속한 것을 바로 보존한 것이다. 만일 그런데 현실에 네가 진리와 영감으로 살지 못했으면, 진리에게 영감에게 복종하는 생활 하지 못했으면 예수님이 대속해 놓은 것을 다 뺏겨 버렸다 그말이오. 너를 뺏겼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잃는다는 것과 뺏긴다는 것과 두 말이 달라. '잃든지 뺏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런데 조그만한 그까짓 것, 사소한 그것보고서 진리화 영감화 다 뺏기니까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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