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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할 때  
 

설명 : 복음을 전할 때는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없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상대방에게 조그만치라도 거리끼지 않도록 이렇게 할려고 애쓰는 것은 그것이 죽기를 두려워서 공포나 비겁에 쌓인 그것이 아니고 그 상대방에게 거리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나 또 그게 아니라도 지금이라도 악한자들이 복음을 대적해서 할 때에는 악에 속한 사람은 그 사람은 내게 대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어떤 나쁜 말을 하고 한다 할지라도 복음 전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털끝만치라도 잘못을 인해서 그 사람이 상대방이 그렇게 하도록 하는 그런 일이 없도록 애를 써서 노력을 해서 상대방은 복음 전하는 자에게 백 가지 억울하고 나쁜 일을 가해한다 할지라도 복음 전하는 자는 저희들의 잘못으로, 저희들의 잘못함으로 그렇지. 이 진리를 대적함으로 그렇지 진리에 속한 사람이 털끝만치라도 잘못함을 인해서 그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안하도록, 자기에게 털끝만치라도 복음 전하는 자에게 잘못이 없도록 할려고 노력을 해서 그와 같이 하는 고 비밀을 여러분들이 보지 못하면 성경을 읽을 때에 '아 예수 믿는 사람들도 보니까 사도들도 죽기를 두려워했구먼.

또 예수님도 모두 다 죽일라고 웅성웅성하니까 그 자리를 피하고 한 것 보니까 예수님도 역연 인간은 인간이라 죽기를 두려워했구먼'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다 그 말이오. 제가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그것을 처음에 예수 믿은 지 한 몇 달 안 돼서 그때 성경을 읽는데 이 사도들을 보고 사도들, 사도행전을 읽고 이 성경을 보니까 사도들이, 예수님에게는 감히 그렇게, 대적을 하고 핍박을 하고 이라니까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그만 피했습니다. 그 자리를 자꾸 피했다 말이오. 피했는데, 피할 때는 거기 대해서는 '무엇 때문에 피하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두려워할 것이 없을 건데 왜 피하는고 감히 그런 생각 가지지 못했지만 사도들이 그 자리를 피해서 이래 하는 걸 볼 때에는, 또 벨릭스 각하나 이런 참 총독들에게 나타나 가지고, 사도행전 24장 이하에 쭉 내려보면 총독들에게 이래 걸렸을 때에 그때에 아주 총독을 겁을 내가지고 그 앞에서 뻘뻘 떨면서 말한 거와 같이 그렇게 아주 조심있게 아주 저자세로 말했고, 아주 저자세로 말했고 거기서 참 죽어가는 사람과 같이 그렇게 말하는 그것을 보고 제가 오해를 가졌었습니다.

'도를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다 영생을 가졌고 하나님이 배후에 있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들이 공포와 비겁을 해 가지고 이래 비겁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했을까? 그때 당당히 말을 하지' 그래 가지고 그때 그런 오해를 가져서 그것이 좀 의문이 되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문이 돼 가지고 있다가 그 뒤에 제가 차차 조금 살아가면서 경험을 해 보니까, 그 상대방에게 당당히 말을 얼마든지 할 수가 있고, 언변적으로도 설복을 시킬 수 있고, 정복을 시킬 수가 있고, 굴복을 시킬 수가 있고, 또 할 말이 얼마든지 있고 또 그것을 따지면, 콩팥을 따지면 상대방에게 비가 있다는 것을 그것을 드러낼 수가 있지만 그걸 드러내면 그 상대방이 그로 인해서 오히려 깨닫고 복음을 받는 게 아니라 더 악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빛에서 멀어지게 되고 이러기 때문에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할 말을 못 하고 벙어리 되고, 이길 수 있는 것을, 논쟁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지고. 또 상대방에 대해서 담대함을, 담대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인데 담대한 태도를 가지지 못하고 비겁한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됨으로써 그들에게 뭐인가 하나도 거리끼지 않게 해야 되겠고 또 그들이 실컷 한번 고자세가 돼져야 되지 저들이 고자세가 되지 안하고 저자세가 돼 놓으면 양심을 가지고 뒤에 가서 진리에 돌아오기 어려울 터이니까 실컷 아무것도 아닌 게 고자세를 가지고 한번 눌루고 한번 욕질을 한번하고 그래 안 하면 뺨이나 한번 때리고 실컨 한번 멸시를 해서 발끈 발에 밟아야, 마음이 시원하고 뒤에 거리끼지 안하지 저희들이 털끝만치라도 밟혀 놓으면 그거는 언제든지 그게 소화되지 안하고 항상 거기 대해서 진리를 대항함이, 되기 때문에, 실지로 신앙 걸음을 걸어 보니까 참아야 되겠고, 져야 되겠고 벌벌 떨어야 되겠고, 무슨 죄나 있는 듯이 자꾸 이렇게 해야 그 상대방을 구원하는 일에 지장이 없고 또 그 뒤에 그들에게 가서 전할 수가 있지, 얼마든지 그 이튿날 만나도 또 웃으며 전할 수 있지만 내가 할 말 다 해 놓으면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이 대해 주지도 안 할 뿐 아니라 할 말이 없다 말이오. 그래서, 아, 이 사도 바울들이 이렇게 한 것이, 과연 참 사랑에서 이렇게 했고, 그는 상대방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낌에서 했지 공포나 비겁에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깨닫고 회개를 했습니다.

(8506064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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