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 계획을 세울 때 자기의 허욕이나 어떤 충격으로 하지 말고 할수 있는 약소한 계획을 정합니다.
뜻을 정할 때에 그때에 시간을 두고 걸쳐서 뜻을 정하면서 조그만치라도 무슨 자기의 허욕이나 허영이나 어떤 충격을 받아 하는 그런 것으로 하지 말고 '이는 아무래도 해야 될 것이요 이것만큼은 할 수 있다' 해서, 가장 약소한 그런 계획의 뜻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거야 못해? 뭐 이거야 할 수 있다' 하는 그런 아주 어리고 약한, 유약한 정도의 계획을 딱 세워 놓고 또 보고 보고 해서 '이것이야 넉넉히 할 수 있지 않겠나? 이것을 못한다면 뭐 되겠느냐? 이거야 뭐 노인이라도 할 수 있고 이것은 그렇게 힘 안 써도 할 수 있다' 하는 그런 쉬운 정도로, 거게다가 허욕이나 허영을 붙이지 말고 쉬운 정도로 그렇게 뜻을 정해 놓고 그대로 우리가 행하면서 나갈 때에 그 때 작정된 것은 가장 우리에게는 평범한 것이면서 보편적의 것이요, 또 우리로서는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고 그저 수월하게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도수의 것들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또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이는 뭐 틀림 없다.' 그렇게 몇 번 다져서 재심사하고 재심사하고 재심사해서 작정을 해 놔도 자기도 모르게 어떤 때 가면 '이거는 무리한 작정 이다' 하는, 자기가 계획을 세워 놨지만 그 계획에 대해서 찬동이 가지 안하고 그 계획에 대해서 이의가 나오는 그런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도, 이의가 나와도 원첨 계획 할 때에 충분한 거게 대해서 다짐을 가졌고 또 심사를 했고 몇 번이나 느꼈기 때문에 '이것은 이 작정된 계획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돌변적으로 변해서 이런 것이지 그 계획이 틀린 것이 아니라' 해서, 먼저 정죄를 자기에게 두고 그것을 고 쳐 나가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계획 한 것을 여간 따지고 이래 하면 나중에 가 보면 이것은 자기가 봐도 무슨 최면술에 걸려서 다 치우쳐서 지나친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절대 볼가능한 일을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만 계획을 자기가 벌써 부인하게 돼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그 생애는 엉망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 때 가도 그 계획이 불신임을, 자기에게 불신임을 받지 안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가지도록 그렇게 해서, 계획할 때에는 아주 쉽게 아주 어리고 약하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계속해서 나가면 계속하는 가운데에서 자기는 여러 가지 애로가 부딪히는 것을 자기가 볼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때에 어떤 것이 그때에 고 계획에 대해서 대적이 되어지느냐? 대적이 되어지는 것은 내나 옛 사람인데, 악습이 대적이 되어집니다. 악습. 자기에게 이제까지 습관 되어 있는 그 악습이 들어서. 악습이 대개 우리의 계획을 실패케 하는 것은 우리의 계획을 자기가 실수하게 해 버립니다. 그만 그습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거는 투쟁도 해 보지 안하고 그만 선뜻 그만 그것이 돼 버렸다 말이오. 돼 버려서 우리의 계획을 그만 실패하도록 그떻게, 자기하고 자기하고 계약한. 스스로 계획한 자계약인데, 자계약이요 자치요 자율인데 그만 거게 위반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내게는 이 참된 길을 걸어갈라고 할 때에 방해하는 이 악습이 얼마나 교묘하게 뱀처럼 이렇게 나서 가지고 미혹한다 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저놈을 참 어짜든지 제어하고 방어하고 악습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 여기서부터 비로소 노골적으로 나옵니다.
어떨 때는 이 계획 안 하고 해 나가면 악습이 하는 일이 그만 자기 안에 모든 주관들에게 다 통과가 돼 가지고, 이것은 의례히 할 일인데, 그 악습을 거역하는 것이 비정상이지 악습 그대로 하는 것은 정상으로 이래 여겨지게 돼지지만 우리가 평소에 심사 숙고해 가지고 계획한 거, 이거는 틀림이 없는 것이 확고한 건데 그때에 그 악습이 들어 가지고 이것을 '아니라' 하니까 그때는 의심할 거 없이 '이거는 악습이다. 이거는 이게 틀렸지 내 계획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해서. 악습을 그놈을 악습으로 정죄를 해서 확실히 사로잡을 수가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쉬운 그런 계획에서 악습을 잡고, 악습으로 더불어 싸워서 악습을 잡는 그 일을 해 보면 쉽게 했지만 우리는 쉬운 때 계획할 때에 악습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안하고 하기 쉽습니다. 악습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안하고 하기 때문에, 아주 쉽다고 생각했는데 악습 그놈이 돌출해 가지고 돌격을 해서 오는 거기서 우리가 넘어지는 일이 많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아예 이것은 이길듯 말듯 이라기 때문에 싸워서 투쟁해서 이길 그런 용기도 생겨지고 또 이겨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안하고 벌로 계획한 사람은 말뿐이지, 그러기 때문에, 벌로 계획한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만 과거에 대해서는 후회로만 이루 어지지 현실에 대해서는 전혀 해당되지 안하는 그런 공상 계획을 하기 쉽습니다. 또 그라고 나면 그 다음에는 '저게 뭐이냐?' 악성인데, 악성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이 악성 아닙니까? 요 계획대로 해 나갈라고 하면 요 계획에 배치가 될 때에 자기 때문에 요 계획이 배치되고, 자기 사정, 처지 형편, 또 자기의 모든 경영한 그 모든 경영들 이런 것이 요 계획에 배치가 되는 그럴 때가 옵니다. 그럴 때가 오면, 이걸 계획을 안 세워 놓고 나가면 그만 그때에 그 자기가 자기인 줄 알기 때문에 싸울 용기도 없고 오히려 그와 같이 해 나갈려고 할 때에 방해하는 것을 원수라 합니다. 만일 성령이 와서 방해하면 성령을 대적할 것이고, 목사가 와서 방해하면 목사를 대적할 것이고, 자기의 동지가 대적하면 동지를 대적하게 되지만 자기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심사 숙고해서 해 놨기 때문에 이 제약에 위반된 자기라는 것을 발견 할 때에 그때에 '이는 틀림 없는 참 옛사람이라 하는 악성 이놈이로구나' 하는 것을 발견할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쉬운 계획에서 거기서 악습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기는 일을 연습해서 이것을 이기도록 성장시키고, 또 여기에서 악성으로 더불어 싸워서 성장을 시켜서 이렇게 나가면 그래 나가는 가운데에 악령의 감화가 우리에게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악령의 감화는 반드시 주위와 환경. 형편. 사정, 처지, 자기에게 가장 갈급한 그 면을, 모자라는 그 면을, 돈이 없을 때에는 돈이라는 그 면을 잘 알기 때문에 돈이라는 문제 가지고 들어오고. 인정 문제일 때는 인정이라는 그 문제를 가지고 들어오고, 그는 우리의 요소를 잘 알기 때문에, 잘 압니다. 악령은 우리가 모르는 것은 제가 모르지만 우리 아는 것은 우리 심령을 들여다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심령에 벌써 가진 것은 그가 볼 수 있다 그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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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자기가 체험하는 데서 자라가지 그리 안 하면 안 자라가기 때문에 자라가는 방편 중의 하나, 우리가 계획을 세워 가지고, 계획을 세울 때에는 가장 평범하고 평안 무사한 때의 계획을 세워라. 그래야 아무데 도 충격 받지 않는다. 또 계획을 세워놓고 난 다음에는 몇 번이든지 재심 재심 해서 '이것이야 만고에, 이걸 틀렸다 하면 그거는 그게 틀렸지 이거는 틀리지 않겠다.' 그렇게 언제든지 자기가 자기 계획을 인정할 수 있고 확실히 신임할 수 있고, 그 계획에 대해서 충돌이 있으면 그게 대적이 되지 그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의심나지 안할 그런 계획을 세워놓고 그런데, 그 계획을 세울 때는 '이거야 아무도 할 수도 있지 않느냐?' 아주 쉬운 정도로서. 쉬운 것을. 쉬운 정도의 계획을 세워라. 쉬운 정도의 계획을 세워라.
그래도 만일 어려운 것이 와 놓으면 나중에 가서 뒤에 가서 뭐이 자빠지느냐 하면 '아, 이것이야 그때는 그랬지만 어떻게 이리나 갈 수가있겠느냐?' 이러기 때문에, 너무 자기에게 멀면, 못 올라갈 나무에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자기와 거리 멀기 때문에, 우리가 잡을똥 잡을똥 해야 일이 되어지는 것이지 그리안 하면 안 된다 말이오. 그게 다 하나의 초절이요 허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쉬운 걸 계획 세워 놓고, 그렇게 해 나가 보면 거기서 무슨 전투가 벌어 지느냐? 구습으로부터, 악습으로 더불어 전투하는 전투가 있고 악성으로 더불어 전투하는 전투가 있고, 악령으로 더불어 전투하는 전투가 있어서 거기서 하나 둘 싸워서 자꾸 나가는 거기에 자기가 변화되면 계획도 변화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정도에 맞는, 그러기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있으라' 하고, '아닙니다. 맹세하고 따라갈랍니다.' '그라면 가자.' 하는 고 간단하게 가르쳤지만 신앙생활은 전부 이렇게 가기 쉽고 쉬운 걸음을 하는 이 평범에서 승리해 나가야 되는 것이지. 무슨 호기심을 가지고 그렇게 별스러운 특수한 그런 방편을 쓰는 데에는 대단히 위험하고, 되는 것 같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실패로 돌아가기가 쉽습니다.
이래서,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 했는데 우리는 오늘 이 첫 시간에서 우리가 가서 쉬운 뜻을, 다는 못 해도 그래도 그걸 한번 정해 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는' 예를 들면 시간으로 말하면 '아침에는 언제로부터 어느 시간까지는 뭘 한다. 또 거기서는 어떻다.' 아주 뭐 쉬운 거, 암만 놀면서 할 수 있는 쉬운 거. 쉬운 것을 그렇게 정해 놓고 해도, 그렇게 쉬운 데 나중에 가서 하루 해를 지나고 나서 계산을 대면 전부 실패입니다. 그대로 하지를 못했어요. 이러니까, 계획을 세울 때와 마지막 계산을 지나 가고 나서 뒤에 결산을 낼 때와는 너무 차이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이거 차이 있는 것을 없도록 자꾸 애를 써 가지고 계획과 마지막에 결말이 일치가 되어지도록 노력 하려는 데에서 거기서 우 전투할 전투가 있고 양육할 그 양육이 있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84070213교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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