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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관상 지방을 보고 연구  
 

사람이라는 것이 얼굴에서 보입니다. 상이라 하는 것이 얼굴에서도 보입니다.

귀가 작고 뾰쭉하게 생긴 사람은 예민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민에 힘을 쓰는 것보다도 신중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뭣이든지 하면 무겁게, 그저 남자는 가벼워도 천 근 이상은 돼야 된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뭐이든지 좀 무겁게 해서 쉽게 동하고 정하지 말고, 한번 동한 것이면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만하면 되겠는데!’ 해도 꾸준히 나가고 또 한번 정해 놓은 것은 ‘어서 출발하지! 좀 일어서보지!' 이렇게 옆에서 부추겨도 좀 꾹 참고 있어야 합니다. 좀 중량이 있도록, 중량이 있도록 매사에 역사해야 됩니다. 자기 생긴 걸 보고 자기가 자기를 연구를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귀가 크단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 무거워서 탈입니다. 동하고 정하기를 너무 느리게 해서 탈입니다. 하나 하면 쭉 계속하는 계속성은 있지만 뭣인가 파딱파딱 이래 가지고 또 깨닫는 이런 면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코 잘 생긴 사람을 택하고 미국 사람들은 귀 잘 생긴 사람을 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문화인들이 돼 놓으니까 귀가 크단한 사람, 동하는 것은 모두가 지혜 있기 때문에, 안 되면 요새는 모두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뭐든지 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때지만 뭐 하나를 꾸준히 하는 계속성이 있어야 된다 해서 귀가 크면 계속성이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제도 말했는데 내가 강원도 사람이라면, 꾸준하여 언제든지 진실되게 생각하고 야심이나 월권이 없는데 이러기 때문에 발전도 없습니다. 그러니 강원도 사람은 발전이 적습니다. 그 사람들은 언제든지 제가 제 것 먹고 살지 그 무슨 허영이나 허욕 그런 것 없습니다. 없지만 그런 것이 없으니까 그것도 또 안 됩니다.

사람이 남 밑에 있으면서도 ‘내가 저 놈의 과장을 들어내고 내가 과장을 해 봐야 하는데!’ 또 대통령 밑에 장관이라도 ‘내가 장관만 할 게 아니라 언제 대통령 저 것을 치워 버리고 내가 대통령 하지!’ 그런 좀 야심도 있어야 됩니다.

일본 사람들은 섬사람들인데 섬사람들은 대개 야심이 없습니다. 언제 선교사가 와 가지고 일본에 가서 말하기를 아따 그 무슨 대학을 창설한 사람인데 그분이 떠나면서, 그때에 일본서는 참 그 사람을 존경했는데 떠나면서 말하기를 ‘일본 사람들은 야심이 없다. 섬사람이기 때문에 저거끼리 그만 똘똘 뭉쳐 단합이라 하는 요것뿐이지 도무지 섬을 떠나서 이 세계 넓은 대륙에 대해서 손 뻗히는 그 야심이 없다. 야심을 길러라.’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는 그 말이 얼마나 유명해서 퍼졌던지 내 귀에까지 들려왔습니다.

사람은 여러가지로 자기를 연구해야 돼요, 자기. ‘나는 이런 지방 출신이다. 나는 또 생기기를 요래 생겼다.’ 자기를 연구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은 좀 말이지 순하게 생겼어요. 젊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 백 목사는 면모칼이라’ 했습니다. 별명이 면도칼이라. 어떻게 날카로운지. 그래서 ‘이 면모칼을 면해야 되겠는데’ 해 가지고 항상 `좀 온유해야 되겠다’ 이 것을 생각하고 또 ‘겸손해야 되겠다' 이걸 항상 표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연구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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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이여, 야망을 품어라!'

William Clark

'Boys, be ambitious. Be ambitious not for money or for selfish aggrandize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that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소년이여, 포부를 가져라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은 1887년 일본의 북해도 삿뽀르 제국대학에서 당시 일본 청년들을 교육시키던 식물학교수인 미국인 윌리암 크라크(William Clark)박사가 한 말입니다.

크라크 박사는 일본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철저한 신앙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8개월 후에 그가 다시 일본을 떠나서 고국으로 돌아가던 날, 수많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전송하러 모여 있었습니다. 크라크 박사는 교문에 모여선 학생들에게 한 마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갔읍니다.  
"젊은이여, 꿈을 품으시오!"(Boys, be ambisious)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꿈과 비젼을 깨달았던 젊은이들은 후일 일본을 근대화시키는 정신적인 지도자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우찌무라 간조도 그 중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감동적인 데가 있다.

일본의 메이지(明治) 정부는 북방의 방비와 국력의 증진을 위하여 북해도를 개발키로 했다. 이 일을 열심히 추진하던 구로다(黑田淸隆)는 미국의 대륙 개발처럼 하려고 미국을 시찰하고는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에게 협력을 구했다. 1차로 케프론이라는 사람이 파견되지만, 일본측 사정으로 별 진전이 없자 귀국하고 말았다. 그러자 구로다는 다시 그랜트 대통령에게 대타를 부탁했다. 이때 선택된 인물이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농과 대학장이던 윌리엄 클라크 박사였다.

클라크는 구로다와 미국인 조수 2명, 학생 11명과 함께 1876년 9월, 황무지 삿포로에 농림학교를 세우고 초대 교장이 되었다. 이때 일본인 관리가 교칙(校則)을 만들겠다고 하자, 클라크는 웃으며 규칙으로 인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신사가 되라(Be gentleman)’하는 말이면 충분하다고 규칙을 없앴다.
그러나 원기 왕성한 학생들은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자, 구로다는 학생들에게 술을 금지시키자고 했다. 클라크는 자기도 술을 좋아해서 1년치를 미국에서 가져왔지만, 전부 교실에 옮기고 스스로 금주를 서약했다.

1877년, 1년의 체재 기한이 끝나고, 스승도 학생들도 말을 타고 가다가 중간에서 점심을 나누었다. 그리고는 이별의 시간이 왔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는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남기고 숲 사이 언덕길을 넘어 사라져 갔다.

바로 9년 전에 일어난 명치유신(明治維新[1868])을 계기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에 서양열강의 침략의 마수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이 필사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던 때였다. 봉건주의를 지양하고 근대사회에 걸맞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적극적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그 중에는 선진화된 농업기술을 도입하는 사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일본열도의 최북단, 지금도 일본 최대의 국창지대이자 세계3대축제로 꼽히는 '눈 축제'의 무대로 유명한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에 농학교가 설립되었는데, 그곳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 미국인 클래크(William S Clark[1826~86])가 그의 일본인 제자들에게 남긴 한 마디가 이  'Boys be ambitious!'였던 것이다.
 
봉건시대가 종식하면서 급속하게 몰락하고 불안과 실의에 빠지게 된 젊은 '사무라이' 가문의 자녀들에게 클래크는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말아라. 미래는 너희들의 것'이라고 격려하였고, 그 뒤로 이 구절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일본의 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으며, 클래크의 제자이자 '근대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우치무라 칸조(內村 鑑三[1861~1930])를 거쳐 그가 아끼던 조선인 제자 김교신에게 전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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