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면 그 속에 있는 것을 발표하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면, 말과 속이 달라서 속에는 이러하면서 말은 또 달리 발표하는 이중적인 그런 행위도 있을 수 있고 나쁜 이중적인 나쁜 행위도 있을 수 있고, 또 이중적인 좋은 행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 이중적인 행위를 한다든지,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서 이중적인 행위를 하는 그런 것은 다 악령에게 속한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을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타의 구원 방편으로, 이중이 안 되고 하나로, 안ㅍ이 같은 것으로 이렇게 해 버리면 혹 상대방들의 대인 관계가 잘못 돼 가지고 손해될까 해서 그렇게 이중하는 일도 있습니다.
바울이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하고 또 야만에게는 야만같이 하고. 유식한 자들에게는 유식한 자같이 하는 것은, 다만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한다고 말씀하는 그것은 분명히 이중생활입니다. 속은 아니면서 그저 그 사람의 정도에 맞춰 가지고서 이와 같이 하는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방편으로 썼기 때문에 성신의 감동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84031210) 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