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 한 종류 안에서는 그 종류대로의 양심과 동행하는 것이 제일 능률이 높고 수입이 많습니다.
<불교인의 양심>
그러면, 불교인의 양심으로 그 사람이 활동하면 불교인의 양심은 향방이 같고 양심의 본질과 본성이 같기 때문에 그 천 명이 모였을지라도 그 천명의, 불교인의 천 명의 양심은 같습니다. 양심이 같기 때문에 불교인이 양심으로 활동하면 불교인 하고는 다 동류가 되는 것입니다. 동류라 말은 같을 동(同)자 종류 류(類)자, 그러면 불교인은 다 같은 근본이 같은 종류가 되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와 마지막에는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단체라도 그 단체에서 인간을 점령하면 인간의 모든 소유인 사물은 점령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점령하면 그 사람의 소유는 점령이 필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떤 지식, 어떤 양심을 가졌든지 그 사람이 세상의 과학으로나 정치로나 그 능력으로나 수단으로나 압력으로나 유혹으로나 기만으로서나 어떤 그 활동하는 것보다도 그 종류 안에서는 그 종류대로의 양심과 동행하는 것이 제일 능률이 높고 수입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만일 불교인이 불교인의 양심대로 행하게 되면 처음에는 껍데기는 이런 것 저런 것 관계 때문에 서로 맞지 않는 것 같고 대립도 하는 것 같고 외식 별별 수단이 있지만, 그 사람의 그 불교인이라면 불교인의 그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불교인의 제일 절정이 되어 있는 그 주격되는 자는 어떤 자냐 하면 주격되는 자는 그 사람의 양심이요 양심의 주격되는 자는 사탄이가 되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깊은 사상과 주의 본질과 본성과 꼭 같은 본질과 본성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자기의 본질과 본성이 맞으니까 결국은 사람이 같은 종류돼 버리고 말아요.
같은 동류가 돼고 동행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 동류와 동행이 되니까 그 사람의 것은 다 취해지고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교인이든지 유교인이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활동할 때에 자기의 몸으로 활동하는 것, 기술로 활동하는 것, 과학이라는 법칙으로 활동하는 것, 정치로 활동하는 것, 능력으로 활동하는 것 어떤 걸로 활동하는 것보다도 양심으로 활동하는 것이 제일 수익이 크고 점령율이 많다 하는 것을 우리가 이것은, 일반 그 심리학자들도 계산을 하면 압니다. 요새는 뭐 컴퓨터가 있다 하는데 컴퓨터 계산으로 하면 그런게 다 나오리라 생각이 됩니다.
<기독자의 양심>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들은 어떤 것으로 활동하는 것이 수익이 많은가? 우리 기독자들도 양심을 가지고 신앙 양심을 가지고 활동하면 모든 기독자와는 동류가 돼 버립니다. 지금은 서로 원수가 되고 대립이 된 것 갈지만 마지막에는 동류가 돼 버리고 맙니다. 왜? 그의 본질과 본성이 같기 때문에 동류가 되고 맙니다. 그의 모든 사상이 같기 때문에 동류가 돼 버리고 맙니다. 소원이 같기 때문에 동류가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양심으로 신앙 양심으로 활동하면 신앙 양심을 가진 사람은 천 명이나 만 명이나 결국은 다 동류가 되고 맙니다. 동류가 되고 결국은 같이 의논하고 안 하고 할 것 없이 결국은 다 동행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을 가지지 못하고 양심을 죽여 놓은 사람은, 기독자가 양심을 죽였다고 하면 기독자로서 사람을 얻는 일은 다 전멸입니다. 사람 얻는 일은 전멸이요. 또 인인협조라는 것은 다 전멸입니다. 모든 사람과 나와의 동류가 되고 친교를 가지는 그런 일은 다 헛일입니다. 기독교 적인 사회 할동은 완전허 다 진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도 그렇습니다. 불교인도 양심을 버리고 그 사람이 처세한 사람은 그 어떤 그 단체든지 사상이든지 거기에서 사회 활동은 완전히 영이 돼 버리고 맙니다. 사회에서는 하나도 얻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자들이 양심을 길러 놓지 안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지, 또 양심을 길러 놓지 안하면 하나님의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없지, 하나님도 보지 못하지,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종적도 못 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그런 것이 양심의 눈이 있는 사람은 '아, 하나님께서 저렇게 하신다 저렇게 하신다. 저라면 아마 저렇게 할란갑다. 가 보니까 그리 되었다. 과거에 그렇더만 이리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다 맞식 가지고 딱딱 볼 수 있지만 양심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하시는 것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보지를 못합니다. 또 양심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지를 못합니다. 양심이 하나님을 찾는 빛이요. 또 자체에게서는 선구자가 됩니다. 제일 앞에서 인도하는 선구자가 되는데 양심이 없으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지 못합니다. 양심과 자기 언행심사의 행동이 같이 할 때에 기독자는 뭐 얻든지 못얻든지 할것 었이 그만 기독자의 양심은 다 하나입니다.
기독자의 양심은 다 동질이요 동성이요,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이 사람과 저 사랑과 양심이 다 하나 돼 놓으면 마지막에는 다, 싸우고 있어도 마지막에는 하나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모든 기독교인으로 더불어 같이 사귀고. 채은 동류 같은 친구가 되고, 동류가 되고 또 동행을 할려고 하면은 기독자의 양심으로 사는 것, 양심과 동행하는 것 양심으로 내가 모든 행동을 하면 그 기독자의 양심 가진 자 하고는 벌써 합해져 가지고 있습니다. 동류 동행이 되게 됩니다. 그거는 시간에 따라서 다르고 장소에 따라서 다릅니다. 다른 것은 껍데기 그게 있으니까 거게 제재를 받고 방해를 받아 가지고 속으로는 저 사람하고 뜻이 맞으면서도 공연히 뜻 맞지 안한 이 사람하고 뜻이 맞은 척하고 뜻 맞은 사람을 공연히 뜻이 안 맞은 척 이렇게 외식을 해 그렇지 벌써 속으로는 합해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으로 사는 사람 그 사람은 모든 그 신앙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다 동류가 돼서 마지막에는 같이, 동서 남북에 동양에서 행하고 서양에서 행했다 할지라도 나중에 가서 보니까 동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양심이 동류되고 동행하는 것은 공간과 시간이 가로 막지를 못합니다. 이런 것들을 초월해 가지고 동류가 되고 동행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으로 하는 사람이 능율이 많습니다.
<설교자의 양심>
그러기에 설교 하는 사람도 설교하는 사람도 자기가 구변으로 하고 언변으로 하고 뭐 자기가 수단으로 하고 지식으로 하고 수사학으로 하고 어떤 논리학으로 하고 어떤 방편으로 하는 것보다, 그건 다 인적 요소인데.
인적 요소의 어떤 요소로 하는 것보다도 인적 요소 중에는 양심으로 하는 것이 제일 수익이 많습니다. 만일 *설교하는* 사람이 양심으로 설교하면 거게 신앙 양심을 많이 가졌든지 적게 가겼든지 다 기독자라면 신앙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앙 양심을 가진 사람은 많이 합해졌거나 적게 합해졌거나 조만간에 다 합해서 동류되고 동행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 설교를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주 몰라서. 외식하는 사람이요 참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에 암만 해 봤자 결국 사람은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배척당하고 마지막에는 자기는 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어서 다 헛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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