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1.사람이 말하지 않고 주님이 사람을 써서 말씀하시는 것
2.모르는 사람에게 성경 해석해 주는 것
3.말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영생하는 구원을 받는 도를 가르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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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k
1.설교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수족이 되고, 하나님의 입이 되어 전하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사람이 전하는 것 같으나, 실은 그 속에 주님이 계셔서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설교를 할 때에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셔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 말이 성경 말씀이라도 인간의 말이기 때문에 아무 효력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어야 권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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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디모데후서 3장 15절로 16절 17절을 천 번을 읽어도 사람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 말씀을 해석을 해 주는 것이 설교입니다. 해석을 해 주는 것이 설교인데, 그 해석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해석을 해 줍니까? 성경을 바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해석을 해 줍니다. 그러면 설교로써 성경을 바로 깨닫고 나면,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 해석을 외워야 됩니까 이제 해석이 바로 깨닫게 해 주는 그 성경을 외워야 되겠습니까? 그 성경을 자꾸 아무리 외워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외워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는 성경을 단독으로는 모르기 때문에 네 앞에 모세와 선지자를 세워 놓을 터이니까 모세와 선지자가 성경을 가르치거든 그 성경 가르침을 배워서 그대로 네가 성경을 깨달아라.' 가르침 하나를 배워서 성경을 깨달으니까 둘 셋도 깨달을 수가 있고 한 열개 배워서 깨닫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백도 이백도 깨달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해석해서 가르치는 것을 조금만 배워도 됩니다. 조금만 배워도 되고 그대로 배우면서 깨달으면서 또 깨닫고 행하고 깨닫고 행하고 자꾸하면 나중에 가서 아주 건전한 신학자가 되고 건전한 성경 학자가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 마음 속에, 행위 속에, 몸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이 다 나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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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설교를 들을 때에 주의할 것은 옛날 고어로 설교를 하든지 또 개정된 신어로 설교를 하든지 어떤 어학으로 설교를 하든지 설교는 말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영생하는 구원을 받는 도를 가르치는 설교입니다. 그런고로 어떤 말로 가르치든지 거기에 실제의 유익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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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1.설교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수족이 되고, 하나님의 입이 되어 전하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사람이 전하는 것 같으나, 실은 그 속에 주님이 계셔 가지고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설교를 할 때에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셔 가지고 사람을 써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 말은 다 성경 말씀이라도 인간의 말이기 때문에 아무 효력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어야 권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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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의 말씀을 이래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그말이오. 예를 들어 디모데후서 3 장 15절로 16절 17절을 천 번을 읽어도 그 사람이 그게 무언지 모를 수 있다 그거요. 모르는 사람에게 이 말씀을 해석을 해 주는 것이 설교입니다. 해설을 해 주는 것, 이러니까 자 해석을 해 주는 것이 설교인데, 그 해석은 뭣하기 위해서 해석을 해 줍니까? 성경을 바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해석을 해 줍니다. 그러면 설교로써 성경을 바로 깨닫고 나면,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해석을 외워야 됩니까 이제 해석이 바로 깨닫게 해 주는 그 성경을 외워야 되겠습니까? 그 성경을 자꾸 암만 또 외워도 소용 없다 말이오. 외워도 소용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너는 성경을 단독으로는 모르기 때문에 네 앞에 모세와 선지자를 세워 놓을 터이니까 모세와 선지자가 성경을 가르치거들 랑 그 성경 가르침을 배워 가지고서 그대로 네가 성경을 깨달아라.' 하나 가르침 배워 가지고 성경을 깨달으니까 둘 셋도 깨달을 수가 있고 한 여나문 배워서 배워서 깨닫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백도 이백도 깨달을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그 해석해서 가르치는 것을 조그매만 배워도 돼요. 조그매만 배워도 되고 그대로 그만 배우면서 깨달으면서 또 깨닫소 행하고 깨닫고 행하고 깨닫고 행하고 자꾸 그라면 나중에 가서 아주 건전한 신학자가 되고 건전한 성경 학자가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 마음 속에, 행위 속에 몸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이 두부렁 떠서 다 나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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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설교를 들을 때에 주의할 것은 옛날 고어로 설교를 하든지 또 개정된 신어로 설교를 하든지 어떤 어학을 가지고 설교를 하든지 이 설교는 말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영생하는 구원을 받는 도를 가르치는 설교입니다. 그런고로 어떤 말로 가르치든지 거기에 실제의 유익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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