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0:1-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여기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있고 또 여호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5절까지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26절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우리가 사람을 이렇게 짓자' 하는 '우리'라는 복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는 그 창조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인 것을 거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창세기 2장 4절에서부터 비로소 그 이름이 나타났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특별히 중심되는 뜻이 사람으로 더불어 계약의 하나님이라, 계약을 선포하시고 계약하신 그대로 이행을 하시는 그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그 뜻을 중심으로 해서 여호와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인데 이름 중에도 계약을 선포하신 그 하나님이라는 그런 뜻을 나타낼 때에 '내 이름은 여호와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는 이 말씀에서, 모든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실 때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시고 사람으로 더불어 첫계약을 선포한 것이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고 또 다른 일반 과실은 다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마라 먹으면 죽는다' 하는 그 계약인데, 그 계약을 나타낼 때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행사가 있고, 또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행사가 있는 신인 계약의 시발이 에덴동산인데 에덴동산을 말씀하실 그때에 비로소 처음으로 여호와라는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당신이 나타냈습니다. '나는 여호와로라' 하는 그 말씀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이 십계명을 주실 때에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는 것은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인도하시는 데에는 하나님이 인도하셨는데 그 인도하시는 인도의 주체는 여호와였다 하는 것을 여기 표시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창1:1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창1:26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창2:4 :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87032420)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하는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두고 말씀을 하셨고,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인도하여 낸' 그때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으로 나타내 놓고, '여호와로라' 하는 데에서 성자 하나님을 여기 나타내고, 우리 구원에 대해서, 창조 이후에 우리 구원에 대한 말하자면 책임자, 우리 구원을 책임맡은 그 직위를 가진 이 여호와는 누구인가? 이 여호와는 곧 인인 관계에 책임자인, 인인 관계에 중보자가 되는 그리스도다, 여기 '여호와로라'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구원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구원을 하셨지마는 그러면 성부는 어떤 역할을 했느냐? 성부는 포도원 밭주인으로서 농부 역할을 했고,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고 잘 자라게 했고, 성자는 바로 포도나무고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고, 또 성령은 그 포도나무를 열매 맺게 한 포도나무의 모든 그 힘이고, 생명과 힘이고 그렇다는 것을 또 성경에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는데 이 여호와를 모두 다 성부라고 생각을 하고, 여호와를 성부라고 생각을 하고 성자로 이렇게 여기지 않는 이것을 지금 변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여호와라는 것은 성부도, 물론 성부 있는 데 성자 성령 다 같이 있고 성령 있는 데 성부 성자 다 같이 있지마는 특별히 하나님이라 이렇게 하는 데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냈고, '여호와라' 할 때부터 성자 곧 그리스도를 나타내서 하는 말입니다. 성부라고 하는 것과 성자라고 하는 것이 아주 판이합니다.
그러면 여호와라는 이름이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졌다가 신약 성경에 와 가지고는 여호와라 이름이 이제 없습니다. 또 구약에서도 처음부터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는 게 아니고 처음 있는 것이 창세기 2장 4절 신인 계약을 역사하시는 그때부터 처음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을 나타냈고 또 출애굽 하는 십계명을 나타낼 때에 여호와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셨지마는 이 십계명은 성부가 주셨다. 구약은 성부가 주장을 하고 신약은 성자가 주장을 했다' 이렇게 여호와라는 말을 자꾸 성부라고만 인정하는 그것을 지금 변호하고 것입니다.
특별히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역사했지마는 여기 여호와라고 말하는 것은 곧 성자를 가리켜 말한다, 그러기에 창세기 1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할 때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요한복음 1장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이 태초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다' 하는 그 태초가 아니고 그 태초보다 영원 전을 가리켜서 태초라 이렇게 말했는데,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하신 이 말씀은 곧 성자를 말합니다. '말씀이 계시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신, 존재하는 것도 꼭 같이 존재했고 또 본체가 하나이십니다. 하나님이신데 '그가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창조하셨다 하는 것도, 말씀이 창조했다 하는 것도 성자가 창조했다 말입니다.
* 요15:1-5
* 창1:1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요1:1-3
(87032420)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절부터 십 계명입니다. 3절이 십 계명 중에 일계명이요 4절부터가 이계명입니다. 일계명과 십계명까지의 모든 계명의 뿌럭지가 1절과 2절입니다. 그러기에, 1절과 2절에 기록된 이것을 생각해야 3절로부터 그 아래에 계속해서 있는 17절까지에 있는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3절로부터 17절까지에 있는 계명을 지키는 그 은혜가 어디서 오며 힘이 어디서 나는가? 3절로부터 17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열 가지 계명을 지키는 근거가 1절과 2절입니다. 집을 지으면 기초 없이는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터 없는데 어떻게 공중에 집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터가 있어야 그 터 위에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1절과 2절을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3절로부터 17절까지에 있는 열 가지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1절부터 말씀하신 것이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무슨 말인데?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에굽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주라고 했고 또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이라다가 이렇게 형통해지니까 이스라엘이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망령되이 날뛰다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니 갑자기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시하고 천대합니다. 멸시하고 천대하니까 우리가 이 애굽 사람들로 더불어 어떠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어떻게 교제를 해야 되고 뭐 화평을 누려야 되고 잘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이 애굽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런 대인 관계를 하면 안 되고 하니까 애굽 사람에게 잘 서로 교섭을 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교섭 위원들도 났을 것이고. 뭐 또 제가 잘났다고 교섭한다고 떠드는 인간들도 많았을 것이고, 말 잘하는 자도 많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애굽에서는 이스라엘을 아주 씨족을 멸할라고 그렇게 박해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들이 죽을 지경이니까 하나님에게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애굽에서 학대하는 그 일을 내가 보았고 그들이 호소하는 걸 들었다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실려고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의 그 능력으로 열 가지 재앙을 베풀어서 애굽 사람들을 꺾어 가지고 복종을 시켜서 해방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라 그 말입니다.
너희들이 어떻게 해서 애굽에게 존대를 받았으며, 어떻게 해서 애굽에게 배척과 멸시를 받았으며, 어떻게 할 때에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으며, 또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할 때에 어떻게 구원했느냐 하는 그것을 너희들이 생각하라. 나는 너희를 애굽 종 되어 있던 때에서 해방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다. 이것을 생각하라 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이 은혜를 생각하지 안 하면 망합니다. 기독교는 사은의 도입니다. 기독교는 사은의 도요,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도입니다. 겸손의 도요 기독교에는 잘 났나고 대가리 떠돌면 하나님 앞에서 그만 멸망 받습니다. 지금도 교회 가운데서 제가 잘난 척 하고 인간 운동으로 떠들어 쌓는 자는 하나님께서 버려두니까 제가 암만 해야 교회가 부흥 안 됩니다. 또 근근이 있어도 전부 하나님 앞에 심판할 것만 심판받을 것만 장만하지 제 구원이나 자기에게 속한 양떼 구원은 하나도 주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 이제 일계명 이계명 순서대로 십 계명 까지 계명이 필요합니다.
기독교는 무엇이든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 전능자 밖에는 할 수 없는 그것을 받아 가지고 사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할 일은 감사뿐이오. '아, 이 은혜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저 은혜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주신 은혜를 잘 보존하면 됩니다. 주신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고 그 은혜를 천하게 여기지 말고 부스러기라도 다 주워서 그 은혜를 버리지 안하고 간직하면 그것이 하나님 대우요, 그라고 나면 거기에서 당신의 은혜가 와 가지고 일 계명으로부터 십 계명까지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짜배기 얻기 때문에, 공짜배기의 댓가는 뭐이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 깨닫고 잘 보존하고 잘 그 은혜를 써먹으면서 은혜 주신 분에게 감사하면 다 됐어 그라면 또 새 은혜 주시고 새 은혜 주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감사가 없는 인간은 하나님의 도에는 받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 계3:3 :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85052451/060160) 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