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이제 주님의 죽으심에 내가 연합한 자 되는 이것이 둘째 죽음입니다. 마16:24 이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자기가 자기로 살았는데 자기로 살던 그자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주님의 것이 된 것을 인정했으니까 자기는 없어진 것입니다. 이제 자기가 살아 있는 것은 예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 것이 아니니까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을 부인하라 말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죄 때문에 죽고 의 때문에 죽으셨으니 죄의 형벌로 죽고, 죄의 형벌로 죽어서 죄 짓는 자를 멸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그대로 자기에게 죄의 몸을 죽이는 이것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죄의 몸을 죽이는 이것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죄의 몸을 죽이는 죄의 자기를 죽이는 이것이 둘째 죽음입니다. 이 둘째 죽음은 첫째 죽음을 죽은 자가 능력 얻어 가지고 둘째로 이 능력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첫째 죽음을 죽은 자가 예수님의 대속의 능력 영생하는 이 능력을 자기가 첫째 죽었을 때에 첫째 죽음에 죽으면 이 능력을 실질적으로 받는다 했습니다. 실효 있게 받는다 했습니다. 그러면 이 능력을 받아 가지고 이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의 몸이 죽는다 말은 자기를 죽인다는 말이요 자기를 꺾는다는 말이요 자기를 뽑는다는 말이요 다시 말하면 자기 욕심을 죽인다는 말이오. 자기 욕심을 죽이는 것, 자기 소원을 죽이는 것, 자기의 모든 성품을 죽이는 것, 자기의 뜻을 죽이는 것, 자기의 계획을 죽이는 것, 자기를 죽이니까 자기를 죽이는데 어디까지 죽일 것이냐? 송장이 되어 무덤에 장사지내기까지 죽여야 다 죽인 것입니다. 무덤에 장사지낸 그 송장이 다시는 자기 행동은 못 합니다. 완전히 송장이 무슨 행동을 하겠습니까? 송장은 그것은 그 송장이 죽기 전 살았을 때에 이것저것 계획도 소원도 욕심도 포부도 모든 제 자존심도 주관도 성질도 뭐 산 것이 많았지만 송장이 되면 그런 것 다 죽어서 완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둘째 죽음은 자기가 송장 되기까지 죽이는 것이 그것이 둘째 죽음입니다.
* 마16:24 : 자기를 부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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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자가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셨는가 그 죽으심을 본받아서 우리도 죽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우리도 죽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하신,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에 연합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사는 자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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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여기 5절에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그’라 말은 예수님을 가리킨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는다’ 그 말은 본받아도 되고 안되고 하는 그런 게 아니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근원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 따라서 죽는 일이 되어야 되는 걸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요, 또 처음 익은 열매요, 절대적인 표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 ‘본받는다’ 말은 따른다는 그 뜻을 주로 가집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결되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따라 연합한 자가 되면, 연결된 자가 되면 또 예수님의 부활을 따라, 그 부활의 공로를 인해서 또 연결된 자가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자가 되어야 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을 시켜 주신다’ 하는 계약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셨는가?’ 하는 그 모형으로, 예수님이 죽으신 그 죽으심이 기본이며, 원형 죽으심입니다. 우리의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그 죽으심과 꼭 같은 죽음을 우리가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꼭 같은 죽음을 우리가 죽어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건설구원적으로, 활동적으로, 자기의 생애적으로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을, 내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해서 두 가지 죽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 죽음을 가지는 이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일을 당신이 하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예수님이 죽으셨고, 죽음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것은 하나님이 부활을 시키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 이하에 보면 ‘그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했습니다. 그 살리심과 같이 우리를 살려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두 가지 죽음을 죽어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한,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이 삶으로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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