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십자가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 말로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렇게 하는 뜻입니다. 이 성구를 사람들이 해석을 할 때에, 주님은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이시지만 참 이 죽음이라 하는 고통이 심하여 주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얼마나 어려웠기에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 이렇게 말을 했다고 그렇게 해석하는 신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신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입니다.
(88120401)
마27:46/롬8:29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든 형제 중에 첫 열매로, 맏아들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는데 예수님이 피조물로서 제일 성공했고 세상은 사람으로서는 제일 쾌락을 누렸는데 이분이 우리보다 조건이 나은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와 조건이 같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없을 때에는 예수님과 우리와 조건이 달랐지마는 예수님의 구속 후에는 예수님의 조건과 우리 조건이 꼭 같습니다.
같은데 예수님은 단지 믿음 하나 가지고 그분은 피조물로서 제일 성공한 사람이고 제일 승리한 사람이고 제일 희생한 사람이고 제일 존귀한 일을 한 사람이고 제일 고귀한 공로를 설정한 사람이요 그는 무한의 봉사 무한의 희생 무한의 사랑 무한의 시은 무한한 평강과 무한한 쾌락 속에서 무한한 자유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단지 믿음 하나로 됐는데 우리도 믿음 하나 가지고 우리도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이 능력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이 믿음 바른 믿음 내 마음대로 시간을 정하고 내 마음대로 분량을 정하고 내 마음대로 종류를 정해서, 마치 8.15가 지나가고 나니까 신사참배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8.15 해방이 되기 전에 신사참배 하면 죽인다 할 그때에 안한다고 해야 그것이 믿음이라.
이래서 내가 이 믿음만 가지면 이 믿음은 즉시 내가 믿음을 가졌을 때에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음을 가진 그 믿음 속에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역사해서 내 자체를 변화시키고 나와 상대방들을 변화시키고 모든 운동들을 다 변화시켜서, 이 능력이 와서 맏아들 예수님과 같이 이렇게 해 줌을 받을 수 있는 우리들인데 인간으로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 못 박히시면서 그것을 감사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여 어떻게 나를 모든 피조물의 대속주로, 이렇게 대속의 공로를 베풀도록, 이렇게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도록, 이렇게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되도록, 이렇게 봉사를 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이렇게 대우해 주십니까? 하는 이 감사와 이 기쁨 이것은 인간이 상상도 못할 일이라 그 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 성구에 대한 해석을 사람들이 달리 한다 그 말이요. 이것이 뭐이냐? 예수님이 한 것 아니요.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예수님을 도와 그렇습니다.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예수님을 도와서 이렇게 했소. 이 능력이 예수님에게 와서 일 하도록 어떻게 해서 그랬느냐?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했습니다. 믿음 하나 가지고 이렇게 했어요.
(79082453)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는 그 성구를 해석을 아주 장시간을 걸쳐서 거게 대해서 해석하는 그것은 잘 들려서 제가 들었습니다. 서목사님 이 해석하는 것은 '이것은 주님이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영접함을 받아서 이것은 주님의 대속이다' 하는 그것을 많이 말했는데 그거는 옳습니다. 그것은 옳으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그 성구에 대한 해석은 그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아버지에게 그와 같이 말할 때에 대속이 아직 대속하는 중에 있습니까 대속이 미결에 있습니까 대속이 끝난 것입니까? 어떤 것이요? 대속이 끝이 났습니까 지금 대속 중에 있는 것입니까 아직까지 대속이 지금 미완성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완성) 뭘 보고 완성이라고 생각합니까? 예, 예, (건설구원이든지 기본구원이든지 주님의 대속으로 완성된 것을 이제 벗지만 말고 입고만 있으면 된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봐서 완성된 것이 아닌가 이래 생각합니다.) 예, 그런데 그것은 대속은 완성된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 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랬습니다. 과거사입니다.
벌써 그것은 버려서 대속은 다 끝나 버렸습니다. 대속을 끝나고 난 다음에 주님이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우리가 그걸 좀 분류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직까지 이 대속이 끝이 나지 안했으니까 지금 이 대속이 아직까지 미완성 가운데 있으니까 이 대속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도와 달라는 그런 지금 간청의 그 말일런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대속을, 큰 대속을 했기 때문에 이 대속의 그 효력이 충만해지도록 그것을 그 효력을 지금 아버지에게 부탁을 하는 일이 되어지는지? 또는 그 대속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이 대속을 인정해 달라는 그 인정에 대해서 이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인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그것이 무슨 말이 되겠습니까? (목사님?) 예 (그핀데 거 기서 대속을 완성이라 하면 그 시제적으로 보면 지금 예수님이 운명하시기 전에 말씀을 하셨으니까 아직 운명하시지 안했기 때문에 대속은 예수님이 완전히 죽음으로 완전히 죽음이 끝나야 대속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저는 생각이 됩니다.) 예, 그런데 저주를 받았고, 저주를 받음으로써 사망을, 아직까지 이거 생명이 끝이 남아 있지만, 조금 숨은 남아 있지만 완전히 정죄를 완전히 정죄받은 게 완전히 끝났고 또 정죄받아 가지고 벌써 사형을 받아서 그때에 말 두 마디밖에 못 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거 하고 '아버지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그 두 마디 하고 끝났는데 그것은 벌써 죽음이라는 것도 벌써 사망에 벌써 제물로 바쳐서 정죄도 받았고 사망도 받았고 그 나머지기 행사하는 그것만 예언하신 대로 그걸 2가지 행사를 끝마치는 그것만 그렇지 대속은 완전히 완료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벌써 정죄받았고 사형받았고 지금 사형으로서 다만 그때 그저 생명이 남아 있으나 벌써 그거는 대형으로 벌써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끝난 것입니다. 끝난 걸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기 때문에 과거사가 되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그러면 지금 그걸 볼 때에 아직까지 대속이 지금 미완성으로 봐야 되느냐 대속이 완성으로 봐야 되느냐? 이것이 첫째 중요한 문제고 그러면 대속을 미완성으로 본다면 예수님이 그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뭐 지금 회피를 할라고 지금 말씀을 하는 것인지, 아직까지 미결이니까 지금 뭘로 가지고 어떤 뜻으로서 하고 있는 것인지? 도와 주심을 말하는 것인지 그 효력이 크다는 것을, 대속하기가 너무 힘이 들고 큰 일이라는 그걸 나타내기 위해서 한 것인지? 그러면 대속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지금 간구하는 거든지 그리 안 하신 대속에 대해서 대속을 지금 하는 데 있어서 도와 달라는 간구가 되든지 또 그렇지 안하면 대속의 가치를 지금 더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대속에 대해서 간구가 되든지 원망 불평이 되든지 대속에 대해서. 힘이 드니까, 미완성이라고 하면, 대속에 대해서 미완성이니 지금 미완성에 대해서 그러면 미완성이면 도와 달라고 하는 말인지? 그러면 대속이 지금 끝났다고 하면 대속에 대해서 효력을 지금 노리는 말인지? 대속에 대해서 무슨 불만이나 불평을 지금 하고 있는 말인지? 대속에 대해서 그 대속된 것을 감사하는 그 감사의 말인지? 뭐인가? 감사든지 그리 아니면 요구를 하는 것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대속의 효력을 지금 인정해 달라고 하는 그런 것이든지 그 외에는 딴거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 거기 대해서 어떤 말로 삼아야 되겠습니까? 그거는 감사한 말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나. 왜? 벌써 그 유월절 잔치 때에 원하고 원한다는 그것을 말했고 그 뒤에, '이 잔이 내게서 떠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와 가지고 주님께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주님이 '아버지여 능치 못하심이 없사오니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해 주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이랬으니까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하는 그 기도는 주님이 무슨 뜻으로 그래 기도했던가? 고난을 그것을 할 수 있으면 가능하면 그 고난을 그 잔을 마시지 안하고 그 잔을 피하기 위해서 지금 하신 말씀인가? 그렇지 안하면 당신이 그 사양하는 말로 한 말이었는지? 사양하는 말이었을까? 피하기를 원하는 말이었을까? 피하기를 원하는 말이라면 나중에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기를 원한다는 그 말씀에서 피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거게서 사양했다 사양했다. 그것은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내게서 이 잔을 마시지 안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는 그 말은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그 잔 마셔서 대속 하는 것이 힘이 들기 때문에 '이 내가 대속하는 것이 힘이 들기 때문에 나로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제 이 대속을 충족히 할 수 있는 나보다 나은 자가 있으면 나은 그에게 이 대속을 맡겨서 원만히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하시는 대로 하시옵소서' 이렇게 그 기도하신 것은 그 어려운 것과 당신이 거게서 아버지의 뜻이면 하지 당신의 윈대로 하는 그런 교만한 자세나 그런 것을 가지지 아니했다는 것을 거기서 우리가 또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해석이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 하는 그 뜻이나 같은 그런 뜻의 해석이 되겠습니다. 그거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그것은 지금 뭣 때문에 그랬는가? 그러기 때문에 그 성구에 대해서 해석이 분분 합니다. 그거는 다 원망 불평하는 것밖에는 안 되는데 너무 고난이 어렵기 때문에 원망 불평의 말을 했나. 그러나 그걸 처음에는 다 그렇게 주석가들이 다 말을 했지만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자원하는 공평으로 한 게 아니고, 자원함이 아니고 조그마치라도 불만으로 강제성이 거게 있지 않느냐? 이리 되면 그 우리의 대속이 지공에서 이루어질 수가 없다.' 하는 여게 대해서 이거 난해절이 돼 버리고 그만 말고 아직까지 그 해석이 잘 안 되고 있었는데 그래 인제 이 근경에 와 가지고 사람들이 그렇게 깨닫고 이것은 참 '어떻게 나를 화목의 제물로 이래 했습니까?' 이거 제일 인성으로도 최고의 고귀한 최고의 영광의 직책이요 길이요 또 영면으로 말해도 하나님이 자존하시고 있으면 뭐합니까? 이런데 하나님 신성면에서도 이것은 가장 영광스럽고 존귀한 이 대우의 길이기 때문에 이거는 벌써 사망은 없고 영생을 가진 그것을 믿는 분으로서는 거게 대해서는 이 직책을 감사할 것뿐이지 불만이나 불평을 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접함을 받았다' 하는 것은 주님의 대속을 그것을 해석했는데 대속 해석하는 것은 그거는 맞고 잘됐습니다. 대속 해석은 다 맞고 잘됐는데 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그것은 대속 문제가 아닙니다. 그 대속에는 벌써 지나 가 버렸고 대속 문제가 아니고 대속 제물 삼은 데 대해서 지금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속 문제가 아니고, 그리 자꾸 혼돈해 버리면 안 돼.
(89041012) 1
인간이 하나님의 기쁨을 도무지 측량 못 한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 하는 그말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떻게 나로 하여금 이 모든 자의 대형을 하게 하시며 대행을 하게 하시며 대화친을 하게 하시며 영원히 대신 천해져서 상대방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일을 맡깁니까?’
이는 참으로 예수님께서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에 넘쳐서, 감사와 기쁨에서 ‘어떻게 이렇게 영광스럽고 존귀한 이 직책을 나에게 맡겨서 나로 하여금 이 직책을 하게 하십니까?’ 하면서 감탄해서 못 견뎌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는데 인간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근 이천 년이 되도록 성경을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생각할 때에는 다 ‘예수님이 너무 기막혀서 그렇게 안 할 수 없어서 그렇게 고민하고 원망하는 소리를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쁨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것이 얼마나 기쁨이요 얼마나 즐거움이며 얼마나 평강이 된다는 그것을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의 그 기쁨인 것을 이해 못 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내가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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